* 메모 :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딜레마 또는 동상이몽
0) 시초
문제가 시작된 최초에 <제국의 위안부>의 논리에는 동조 못하지만 박유하 선생에 대한 마녀사냥에 대해 반대한다 했다. 그런데, <나눔의 집>이 할머니들을 내세워 책을 고소하는 바람에 문제는 전혀 다른 게 돼 버렸다. 고소와 판금 같은 법적 조치야말로 문제를 꼬이게 만들고 오히려 저자와 그 책에 대해 다른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1) 확장
2월 17일에 1심 법원이 ‘명예훼손’을 판단함으로써 이제 문제는 더 크게 확장된다.
이 책은 위태로운 (정치적) 한일관계 사이에서 소위 ‘금서’가 됐고, 앞으로도 한일 사이의 인식 차이나 갈등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박유하 선생이나 책이 애초의 ‘선의’와는 반대로, 한일 ‘화해’나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콘이나 도구가 되기는커녕 더 거리가 멀어졌다는 뜻이다.
2) 입체적 딜레마?
‘위안부 문제’에 대해 내가 문외한이라는 점과 저자와의 인연 때문에 냉정한 평가와 언사가 어렵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사태를 ‘객관적, 입체적으로’ 보고자 조금 노력해왔다.
(다면적인 문제들에 대한 선택적 판단은 각자의 몫이고, 사실관계에 틀린 것이 있다면 지적 바란다.)
결론은 ‘딜레마’다. <제국의 위안부> 및 박선생의 입장과 판금 조치 양자에 대해 다 반대해야 하는 곤혹이다. 양비론을 말하게 될지 모르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반대는 서로 다른 것과 비대칭적인 것을 향한다. 하나는 박유하라는 개인과 비물질적이며 관념적인 것이고, 후자는 법과 집단의 ‘현실’에 대한 것이다. 이 문제는 매우 어렵고 미묘하다. 개인을 비판하거나 단죄하는 일은 더 높은 윤리를 요구하고, ‘법’이 끼어드는 순간 정신이나 ‘현실’조차 모두 찌그러지고 축약된다.(따로 공부가 필요한 대목이다.)
3)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
‘위안부’ 문제 때문에 ‘친일파’의 혐의를 쓴 박유하 선생이나 ‘뉴라이트’에서 신념을 갖고(?) 활동하는 이영훈 선생의 ‘학문’이나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그 논리의 문제는 별도) 그러나 그 ‘자유’는 기실 ‘역사’나 ‘현실’의 맥락에 비하면 허망한 것일지 모른다. 물론 그런 점 때문에 자유는 되레 큰 빛과 힘을 얻게 된다.
그럼에도 인문학이 기생학문이 되고 ‘현실’과 ‘인간’을 거의 논하지 못하는 오늘날, 나는 오히려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 보다는 ‘학문의 책임, 표현의 책임’도 생각해본다. 우리는 ‘학문’과 ‘표현’이라 말할 때 어떤 무한한 가치중립적 시공간과 문자, 텍스트들을 가정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개 가상일 뿐이다. 심지어 ‘사실’조차 그럴 것이다. 이는 객관성과 가치문제에 기본에 속하는 것이다.
맥락을 사상한 ‘자유’는 공소하다. ‘샤를리앱도’를 포함한 일련의 ‘표현의 자유’ 문제의 교훈이 여기 있다 믿는다.
3-1) <제국의 위안부>의 역설
이는 아슬아슬한 논리적 줄타기를 하는 책이며, 결국 ‘사실’을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고 뵈지 않는다. 이게 <제국의 위안부>의 가장 큰 역설이다.
왜 이미지화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실이 있다는 걸 계몽적으로 밝히는 학술서가
오히려, 식민지 지배의 본질이나 국가 책임이라는 더 큰 ‘사실’을 희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
이 점이 저자가 놓치는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한다. (용어 선택은 별도로 심각하다. 이 자체에 대한 문제는 이미 논의가 진행됐으므로 생략한다. 법정에서의 논란은 박유하 선생의 페북을 참조.)
4) 책이 나오고 난 뒤에
<나눔의 집>의 행동(시위 등)과 고소가 무리한 것이며, 결국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고소를 취하하게 만드려는 일부 노력이 있었다 들었다. 그리고 법원도 중재를 시도했다고 들었다.
결과적으로 양측은 묵은 감정과 이런저런 이해관계 하에서 자기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나눔의 집>측에 성찰을 기대하기도 물론 어려운 일이다. 사실 어제 법원의 판단은 이에 비하면 덜 심각할지 모른다. 그것은 단지 ‘법적 결과’일 뿐인 것이다.
5) 제국의 관점과 식민지 서발턴
박유하 선생이 그간 식민지 문제나 위안부 할머니들 등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많다는 점이 환기돼야 한다.
그는 ‘가처분심리최종준비서’에서 자신이 일본(우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라타니 고진, 오에 겐자브로, 우에노 치즈코 등 일본의 과거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진보지식인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썼다.
과연 그럴까? 그리고 “일본의 과거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진보지식인들”이 진정 식민지 서발턴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을까? 박선생이 중대한 오류나 한계를 노정하는 데가 바로 여기인 듯하다. 그가 ‘일본의 논리를 체화하고 있다’고 비판받는 점 또한 여기다.
박선생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 단지 서경식 같은 이나 이런저런 민족주의자 뿐 아니라, 허다한 여성주의자와 식민지 연구자, 그리고 자이니치들이 포함돼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기타, 인신비판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박선생이 그간 일본 언론이나 학계에 대해 취한 태도와 할머니들에 대해 취한 태도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6) 동상이몽과 ‘한나 아렌트’
소식통들로부터 일본의 상황을 들으니 현재 일본 사회는 박유하 선생과 <제국의 위안부>가 한국 민족주의와 그 역사 왜곡에 맞선, 수난 당하는 ‘양심’이나 ‘영웅’인 것처럼 간주하고 있다 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그런 경향이 커 심각한 면이 있다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오래전부터 NHK는 박유하 선생에 대한 다큐를 만들고 있고, <제국의 위안부> 일역판에 대한 일본의 서평들은 박선생을 ‘한국의 한나 아렌트’라 불렀다. 진보적이라는 <아사히>부터 그랬다.
종전 70년,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의 기념과 미래 한일관계의 동상이몽의 일본 측 소재로 박유하 선생과 <제국의 위안부>가 중용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따라서 <제국의 위안부>는 올곧게 ‘진실’을 향해 있다기보다, 한일의 서로 다른 맥락과 관계 사이에 힘겹게 ‘낑겨’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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