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유하 선생님께
저는 처음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할 때부터 비이성적인 마녀사냥에 반대해 박 선생님을 옹호했고, 동시에 선생님께서 생각을 좀 바꾸시기를 바란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책에 대한 판금이나 이재명 성남시장 등의 비이성적인 선동에 대해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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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쪽에선 ‘친일파’ ‘매국노’로 극단적으로 매도되고 ‘판금’의 위기에 처하고, 반대로 다른 한쪽에선 ‘가장 양심적인 학자’에 희생당한 사람 또 ‘한나 아렌트’에 비유되며 칭송되는 현실을 동시에 보자는 거였고, 그 안에서 무엇을 성찰하거나 바꿀지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아래에서도 썼던 바, 딜레마 중 하나가 상황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박유하라는 ‘개인’을 비판하게 되는 점이라 했습니다. 이는 비이성적인 민족주의와 집단의식을 비판하는 것과 또다른 문제를 야기한다고 썼습니다. 더구나 당장 고난을 겪는 와중이신데 아프게 해드린 것 같아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 지식인 사회나 '아사히 ' 서평 등 일본에서의 상황에 대해 거론한 것은, 이 또한 박선생님께서 정말 진지하게 고려하셔야 할 ‘위험한 상황’일 수 있다는 점에서입니다. 이 ‘동상이몽’은 그야말로 ‘2차 파동’을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상황이나 일본어 본이 내용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제가 다 섬세하게 알지는 못하니 인용으로써 이야기했습니다. 길고 진지한 정영환 선생님의 서평 중에서 국가(군)와 동원 문제를 거론한 대목들은 한국어본을 제가 읽었을 때 기본적으로 가졌던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매춘’ ‘동지’ 등의 용어와 용법, 법적 책임이나 ‘국가(군) 동원’에 대한 관점 등에 대해서는 제가 처음 책을 읽었을 때의 생각은 지금껏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책 전체에 대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 책은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가르쳐주어 좋은 책이라 할 수 있지만, 선생님의 거창한 의도(‘한일 화해’나 위안부 문제 해결 등)에는 걸맞지 않는 한계와 모호함을 지닙니다.
- 8만부 운운한 건 제가 확인 못한 것입니다. 아래 포스팅에 사실관계에 틀림이 있으면 지적하기를 바란다 했고, 그 문장은 삭제했습니다. 이 대목은 죄송합니다. 제가 인용한 연구자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한 연구회에서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온 이야기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들었고, 출처는 아사히의 관계자였다고 합니다만, 그것을 전해 들었을 때 일본어/한국어 통역의 문제도 있고 해서 정확한 숫자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저자가 아니라고 하시니 아닌 것이 맞겠지요. 정확하지 못한 숫자를 인용해 이 글을 보신 분들께 여러 가지로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말씀대로 바로 지금 답해야 할 이유는 없고, 또한 선생님의 글과 행동이 비교적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려 하는 분들이 가진 의구심들에 대한 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책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은 흘러넘친다 생각하여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직접 구체적으로 쓰진 않았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읽고 논해보겠습니다.
모쪼록 거대한 집단 사이에 낀 한 사람의 연구자가 과도하게 매도ㆍ비판당하거나 ‘판금’ 조치를 받는 현실은 무척 아픕니다. 박유하 선생님, 건강을 지키시며 계속 싸우십시오. 그런데, 박선생님 자신이 판결문을 인용하여 쓰신 바 “시민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건전하게 해소>할 수 있기를” 더 바랍니다. 그것이 현재로서는 어떻게 가능한지? 도대체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저자나 <나눔의 집>이 한발 물러나거나 진심으로 성찰하는 모습이 전제돼야 하겠지요. 어떤 해결을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이만 줄입니다.
일단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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