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soo Lee - 추천 [서평] 김련희씨의 조속한 송환이 통일의 시작이다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Jangsoo Lee
13 March at 02:10 · Seoul, South Korea ·
추천 [서평] 김련희씨의 조속한 송환이 통일의 시작이다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김련희 저, 2017. 8., 303쪽, 도서출판 615
저자 김련희씨는 이북 사람이다. 1969년 11월 21일 평양시 동대원구역 삼마동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피복전문학교를 졸업하여 양복사가 되었다. 결혼 후 김책공업종합대학 양복점에서 일하면서 대학 교직원들의 양복을 맞춰주는 일을 하였다.
군의관과 결혼한 그녀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남편을 따라 부대 인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2011년 6월 친척들이 있는 중국여행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간복수(간경화의 증상)가 재발하여 치료비를 벌던 중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 한국에 실수로 오게 되었다.
인천공항에 입국하자마자 그녀는 버스에 실려 곧바로 국정원으로 끌려갔다. 독방에 감금된 후 그녀는 국정원 담당자에게 “브로커에게 속아 잘못 왔으니 내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려보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정원 담당자는 그녀가 북에 돌아가면 그쪽에서 죽일테니 보내줄 수 없다고 그리고 한국에서 살면 평양에 있는 딸도 한국에 데려와 주겠다며 그녀를 유혹했다.
국정원의 유혹을 거부하며 그녀는 20일 동안 단식을 하며 버텼다. 그러나 국정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국정원은 그녀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면서, 쓰지 않으면 죽어도 국정원에서 나갈 수 없고 그녀가 그곳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독방에 감금된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국정원은 그녀에게 태어나서 한국에 입국하기까지 모든 일을 쓰라고 강요했다. “간첩인지 아닌지를 조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 달쯤 지난 후, 그녀는 위경련으로 안산병원에 실려갔고 간복수가 재발했음을 알았다. 그러나 국정원은 입원 3일 만에 의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를 강제로 퇴원시켜 국정원으로 끌고 갔다. 국정원 직원은 “너가 남자가 아니었으면 내 손에 죽었어”라며 그녀를 협박했다.
그후 그녀는 언젠가 국정원 안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커졌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 있어야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국정원이 강요하는 대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겠다는 서약서를 쓰고야 말았다.
한편 그녀는 과거에 탈북자로부터 한국에서 6개월 이상 살면 여권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훗날 여권이 나오면 중국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녀가 국정원에서 나오니 <하나원>이라는 곳으로 보내졌다. 하나원에서 3개월 동안 한국사회 정착에 필요한 여러 가지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 탈북자에게는 600만 원의 정착금이 책정되었다. 하나원에서 나오기 며칠 전에 통장을 만들고 먼저 300만원을 넣어주었다. 그것으로 브로커 비용을 갚으라는 것이다. 하나원 관계자는 “브로커 비용을 갚지 않으면 하나원에서 나간 후 브로커들과 재판까지 가고 빚까지 진다”고 협박했다. 그렇게 300만 원 중 250만 원을 브로커에게 계좌이체해 주었다.
나머지 정착금 300만 원은 3개월에 100만 원씩 입금된다.
유우성 씨등 탈북자들의 간첨 조작 사건을 변호한 장경욱 변호사는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면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실제 탈북자들에 대한 조사과정은 반인권적”이라면서 우선 “영장도 없이 독방에 가두고 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반인권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 개월 동안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조사당하게 되며, 매일 끊임없이 썼던 것을 또 쓰고 쓰게 만든다는 것이다. “국정원 합동신문센타 안은 무법지대에요. 직원들은 폭력적인 언사, 폭행도 많이 저지릅니다. 합신센터의 인권침해가 심각하다는 것은 2012년 여론조사 결과에도 공개되었습니다. 간첩이 아니었던 사람도 이런 상황이 되면 누구든 간첩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33쪽)
2011년 9월 한국에 입국한 후 7년 째인 올해까지 그녀는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위조 여권 발급 시도, 자살 시도, 간첩이라는 허위자백... 그러나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한국에 정착한 일반적 탈북자들과 다른 그녀의 이야기는 2015년부터 언론에서 보도되기 시작했다. CNN과 NewYork Times까지 소개된 그녀의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그녀가 사는 대구지역에 김련희 송환준비모임이 꾸려졌다. 모임 이름은 ‘평양주민 김련희 송환준비모임’. 김련희 씨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으로 송환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단체이다. 대구지역의 26개 종교, 시민단체, 인권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후부터 그녀의 송환활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투브] 탈북자 김련희 정착금 기자회견, 자주시보, 강연, 간첩 김련희 행보?! https://youtu.be/NgTJnX9JrSM
이 책은 대구에 사는 김련희 씨의 수기이며 자서전이다. 이 책을 읽어 보면 남북분단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이른바 모든 ‘적폐’의 뿌리라는 것을 곧 이해할 수가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만큼 비정상적이고 비인도적인 상황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의 핵심이 부정당하는 무법천지의 상황인 것이다.
우리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 특히 분단이 마치 정상인 것 같은 착각에 하루하루 살기에 바쁘다. 그러나 김련희 씨의 책을 읽다 보면 요소요소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아, 우리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살고 있었지. 그리고 분단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었지.”라는...
이 책은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대담의 형태로 북쪽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고 이에 대해 김련희 씨가 답을 하는 대담이 포함되어 있다. 중간 중간에 인터뷰, 문답이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읽는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북쪽에 대해 무지한 남쪽 시민들에게 좋은 통일교재로서 손색이 없다.
통일의 시작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특히 분단의 최대피해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그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김련희씨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련희씨가 본인의 의사와 희망에 따라 북쪽으로 가서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은 ‘적폐’ 청산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씨가 살아가야 할 곳은 남녘땅일까 북녘땅일까. 분명한 건 합동신문센터에서 김씨의 북송 요청이 바로 받아들여졌다면 김씨가 남한을 떠나기 위해 개인적으로 북쪽을 접촉할 일도 없었고 간첩죄로 처벌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저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과 조국을 사랑할 뿐이에요. 남한에도 인간적으로 좋은 분들 많은 것 알지만 제 부모님을 잊고 살 수는 없어요. 국가가 천륜을 끊어버려선 안 돼요. 전 죽어서라도, 살아서 못 가면, 죽어서라도 가족들 옆에 묻히고 싶어요. 열백 번 날 이곳에 강제로 붙잡아도 전 꼭 돌아갈 거예요.”
[자주시보] 김련희 평양시민, 내가 나서 자란 조국을 사랑하는게 죄인가?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7093§ion=sc4
이 책을 읽고나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한국 정부의 조속한 결단을 촉구한다!!”
[2018년 3월 11일]
(다른 책에 대한 리뷰가 궁금하신 분은 블로그http://book.interpark.com/blog/connan 를 찾아가시면 됩니다...^^)
13 March at 02:10 · Seoul, South Korea ·
추천 [서평] 김련희씨의 조속한 송환이 통일의 시작이다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김련희 저, 2017. 8., 303쪽, 도서출판 615
저자 김련희씨는 이북 사람이다. 1969년 11월 21일 평양시 동대원구역 삼마동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피복전문학교를 졸업하여 양복사가 되었다. 결혼 후 김책공업종합대학 양복점에서 일하면서 대학 교직원들의 양복을 맞춰주는 일을 하였다.
군의관과 결혼한 그녀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남편을 따라 부대 인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2011년 6월 친척들이 있는 중국여행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간복수(간경화의 증상)가 재발하여 치료비를 벌던 중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 한국에 실수로 오게 되었다.
인천공항에 입국하자마자 그녀는 버스에 실려 곧바로 국정원으로 끌려갔다. 독방에 감금된 후 그녀는 국정원 담당자에게 “브로커에게 속아 잘못 왔으니 내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려보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정원 담당자는 그녀가 북에 돌아가면 그쪽에서 죽일테니 보내줄 수 없다고 그리고 한국에서 살면 평양에 있는 딸도 한국에 데려와 주겠다며 그녀를 유혹했다.
국정원의 유혹을 거부하며 그녀는 20일 동안 단식을 하며 버텼다. 그러나 국정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국정원은 그녀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면서, 쓰지 않으면 죽어도 국정원에서 나갈 수 없고 그녀가 그곳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독방에 감금된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국정원은 그녀에게 태어나서 한국에 입국하기까지 모든 일을 쓰라고 강요했다. “간첩인지 아닌지를 조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 달쯤 지난 후, 그녀는 위경련으로 안산병원에 실려갔고 간복수가 재발했음을 알았다. 그러나 국정원은 입원 3일 만에 의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를 강제로 퇴원시켜 국정원으로 끌고 갔다. 국정원 직원은 “너가 남자가 아니었으면 내 손에 죽었어”라며 그녀를 협박했다.
그후 그녀는 언젠가 국정원 안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커졌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 있어야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국정원이 강요하는 대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겠다는 서약서를 쓰고야 말았다.
한편 그녀는 과거에 탈북자로부터 한국에서 6개월 이상 살면 여권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훗날 여권이 나오면 중국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녀가 국정원에서 나오니 <하나원>이라는 곳으로 보내졌다. 하나원에서 3개월 동안 한국사회 정착에 필요한 여러 가지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 탈북자에게는 600만 원의 정착금이 책정되었다. 하나원에서 나오기 며칠 전에 통장을 만들고 먼저 300만원을 넣어주었다. 그것으로 브로커 비용을 갚으라는 것이다. 하나원 관계자는 “브로커 비용을 갚지 않으면 하나원에서 나간 후 브로커들과 재판까지 가고 빚까지 진다”고 협박했다. 그렇게 300만 원 중 250만 원을 브로커에게 계좌이체해 주었다.
나머지 정착금 300만 원은 3개월에 100만 원씩 입금된다.
유우성 씨등 탈북자들의 간첨 조작 사건을 변호한 장경욱 변호사는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면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실제 탈북자들에 대한 조사과정은 반인권적”이라면서 우선 “영장도 없이 독방에 가두고 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반인권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 개월 동안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조사당하게 되며, 매일 끊임없이 썼던 것을 또 쓰고 쓰게 만든다는 것이다. “국정원 합동신문센타 안은 무법지대에요. 직원들은 폭력적인 언사, 폭행도 많이 저지릅니다. 합신센터의 인권침해가 심각하다는 것은 2012년 여론조사 결과에도 공개되었습니다. 간첩이 아니었던 사람도 이런 상황이 되면 누구든 간첩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33쪽)
2011년 9월 한국에 입국한 후 7년 째인 올해까지 그녀는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위조 여권 발급 시도, 자살 시도, 간첩이라는 허위자백... 그러나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한국에 정착한 일반적 탈북자들과 다른 그녀의 이야기는 2015년부터 언론에서 보도되기 시작했다. CNN과 NewYork Times까지 소개된 그녀의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그녀가 사는 대구지역에 김련희 송환준비모임이 꾸려졌다. 모임 이름은 ‘평양주민 김련희 송환준비모임’. 김련희 씨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으로 송환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단체이다. 대구지역의 26개 종교, 시민단체, 인권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후부터 그녀의 송환활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투브] 탈북자 김련희 정착금 기자회견, 자주시보, 강연, 간첩 김련희 행보?! https://youtu.be/NgTJnX9JrSM
이 책은 대구에 사는 김련희 씨의 수기이며 자서전이다. 이 책을 읽어 보면 남북분단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이른바 모든 ‘적폐’의 뿌리라는 것을 곧 이해할 수가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만큼 비정상적이고 비인도적인 상황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의 핵심이 부정당하는 무법천지의 상황인 것이다.
우리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 특히 분단이 마치 정상인 것 같은 착각에 하루하루 살기에 바쁘다. 그러나 김련희 씨의 책을 읽다 보면 요소요소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아, 우리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살고 있었지. 그리고 분단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었지.”라는...
이 책은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대담의 형태로 북쪽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고 이에 대해 김련희 씨가 답을 하는 대담이 포함되어 있다. 중간 중간에 인터뷰, 문답이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읽는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북쪽에 대해 무지한 남쪽 시민들에게 좋은 통일교재로서 손색이 없다.
통일의 시작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특히 분단의 최대피해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그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김련희씨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련희씨가 본인의 의사와 희망에 따라 북쪽으로 가서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은 ‘적폐’ 청산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씨가 살아가야 할 곳은 남녘땅일까 북녘땅일까. 분명한 건 합동신문센터에서 김씨의 북송 요청이 바로 받아들여졌다면 김씨가 남한을 떠나기 위해 개인적으로 북쪽을 접촉할 일도 없었고 간첩죄로 처벌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저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과 조국을 사랑할 뿐이에요. 남한에도 인간적으로 좋은 분들 많은 것 알지만 제 부모님을 잊고 살 수는 없어요. 국가가 천륜을 끊어버려선 안 돼요. 전 죽어서라도, 살아서 못 가면, 죽어서라도 가족들 옆에 묻히고 싶어요. 열백 번 날 이곳에 강제로 붙잡아도 전 꼭 돌아갈 거예요.”
[자주시보] 김련희 평양시민, 내가 나서 자란 조국을 사랑하는게 죄인가?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7093§ion=sc4
이 책을 읽고나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한국 정부의 조속한 결단을 촉구한다!!”
[2018년 3월 11일]
(다른 책에 대한 리뷰가 궁금하신 분은 블로그http://book.interpark.com/blog/connan 를 찾아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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