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7

‘씨알은 무엇인가?’ 함석헌 다시 읽는다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씨알은 무엇인가?’ 함석헌 다시 읽는다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씨알은 무엇인가?’ 함석헌 다시 읽는다

등록 :2010-09-0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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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사진·1901~1989)
‘제1기 바보새 씨학당’ 문열어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해설·토론
기념사업회서 대중 강좌 마련

“씨알사상에 현재적 의미 부여
젊은이들에 계승 방법 고민중”



근대가 열린 뒤 서양의 철학과 사상이 물밀듯 쏟아져들어왔고, 식민지배와 근대화·산업화를 거치는 동안 우리는 줄곧 남의 말글을 빌려서 철학을 했다. 이에 따라 ‘나는 누구인가’ 또는 ‘우리는 무엇인가’ 등 자기 주체에 대한 본연적인 탐구에는 항상 걸림돌이 있었다. ‘씨알’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롭게 자기 주체를 인식하려는 철학을 펼친 함석헌(사진·1901~1989)의 존재는, 그래서 독보적이라고 평가받는다. 2001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철학자대회에서 함석헌이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전 세계에 소개됐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는 오는 10일부터 서울 마포구 서교동 기념사업회 건물에서 ‘제1기 바보새 씨알학당’을 연다. 매주 금요일마다 함석헌의 대표 저작인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함께 읽고, 해설과 토론을 벌이는 대중 강좌다. 12주 동안 펼쳐지며,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김조년 한남대 교수, <함석헌 평전>의 지은이 김성수 박사, 이치석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등이 번갈아 강사로 나선다.

이번 강좌는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함석헌 사상을 알리고 현재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념사업회 부설 씨알사상연구원은 지난 4월 반년간 학술지인 <함석헌 연구> 창간호를 펴낸 바 있다. 또 비슷한 시기에 47명의 학자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함석헌학회’가 창립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항상 함석헌이 꼽히는데도, 정작 학술적으로나 대중적으로 ‘함석헌 읽기’는 그리 충분치 못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 된다.

역사철학자·종교사상가·문필가·시인·시민사회 운동가 등 한평생 다양한 면모를 지녔던 함석헌은 생전에 강단이나 연구실에서 자신의 사상을 갈고 닦지 않았다. 제도권 학문의 틀을 뛰어넘어, 어려운 논문이 아니라 쉬운 강연과 글, 또 스스로의 삶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문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함석헌에 대해 “당신의 사상을 글로 쓰기 전에 먼저 성명서를 쓴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 기독교, 유·불·도, 인도철학 등 다양한 사상들을 아우른 그의 사상은 간단히 파악되기 어렵다. 때문에 그 동안 제도권 학계에서는 그의 사상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한글로 씌어진 최초의 통사(通史)이기도 한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함석헌 사상의 대강을 드러내는, 말하자면 입문서에 해당하는 함석헌의 대표 저작이다. 함석헌은 역사를, 단순히 지나간 사실들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의 주체가 자신과의 살아있는 관련성을 바탕으로 사실이 가지는 ‘뜻’을 풀이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역사인식은 주체의 철저한 자기 인식의 과정이기도 하다. “누구의 나와도 통할 수 있는 참나”, 곧 보편적인 주체로서 ‘나는 누구인가’를 밝히려 하기 때문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여기에서 함석헌 사상의 핵심인 씨알사상과 고난사관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역사란 곧 고난의 역사이며, 그 역사를 짊어가는 주체는 바로 씨알(민중)이라고 봤다. 때문에 그는 “‘세계와 내가 하나’라는 것을 깨달은 씨알들이 서로 손을 잡아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며 개별 주체의 내적 혁명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진화를 이어가려는 생명사상, 자유와 사랑을 진리로 삼는 비폭력 평화주의, 세계평화정신 등을 설파했다.

그렇다면 함석헌을 다시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씨알사상연구원장인 김경재 교수는 아예 이 문제를 ‘바보새 씨알학당’ 첫 강의의 주제로 삼았다. 그는 “씨알사상은 함석헌 개인의 사상이라기보다, 전형적인 ‘한국적 사상’으로서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한국인은 도대체 누구인가를 묻는, 자기정체성 탐구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민족주의 사상이 아니라 “개성적이면서도 세계적 보편성을 동시에 품은 세계사상”이기 때문에 더욱 그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함석헌의 ‘사도 바울’로 구실하겠다고 한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는 지금 함석헌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로 ‘최초의 한글 철학자’로서의 의미와 시대적 요구 두 가지를 든다. 이마누엘 칸트가 독일에서 독일어로 주체적 철학을 세웠다면, 한반도에는 한글로 된 사상을 이룬 함석헌이 있었다는 것이다. 곧 한문과 서양 언어 등을 통해 외부로부터 주입된 사유에 사로잡힌 우리나라 학문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함석헌이 제시해준다고 한다.

시대적 요구는 더욱 절실하다. 자본주의와 물신숭배, 근대국가, 형식적 민주주의 등 ‘서구적 근대’가 한계에 부딪힌 지금, 사회적 혁명과 개별 주체의 내적 혁명을 함께 말하는 함석헌 사상은 실천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김상봉 교수는 “그 동안 양반·귀족·시민 등을 내세운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은 ‘강자의 철학’이었지만,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민중을 주체로 삼은 ‘약자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강자의 철학을 극복할 수 있는 사상으로서, 또 고난을 극복하고 뜻을 이루고자 하는 실천적 사상으로서 의미가 깊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단절 때문에 세상을 뜬 지 20년이나 된 함석헌을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친밀하게 여기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기념사업회가 이번에 대중 강좌를 기획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문대골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함석헌의 사상을 젊은 세대들에게 어떻게 계승시킬 것이냐가 앞으로의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8950.html#csidx5923d42e3ce67f4b7b3653e32b770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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