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 대하여
- 2008. 김삼웅
"대저
합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는 것은 만고에 분명히 정해지고 있는 이치이다."라고 시작되는 <동양평화론>의 <서문>에서 안중근은 이 책 서술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고 한 전문가는 정리했다.
① 물질문명의
발달이 인간을 파괴로 이끌어 도덕을 잊고 무력만 일삼는 서양 특히 러시아의 침략을 막기 위해 동양삼국의 단합이 급선무이다. ② 서세동점이라는 시대 속에서 러시아 세력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③ 한 때 천명(天命)이 일본에 있었지만 동양평화를 유린하는 이토를 상대로 하얼빈에서 의전을 행하였으며 동양평화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한 장으로 여순을 선택하였다.
결국 안중근은 동양평화론 서술의 목적을 도덕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일제의 대외침략 정책을 수정하도록 하는데 두었던 것이다.
<전감>에서
안중근은 청.일전쟁부터 러.일전쟁까지 국제정세를 소개하면서 청국의 청.일전쟁 패배이유를 '중화대국'이라는 교만과 권신척족의 농단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반면, 일본 승리의 주된 원인을 러.일전쟁에서 한.청 양국이 동양평화를 위해 일본을 도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의화단 사건을 전후한 러시아를 필두로 한 서양세력의 중국침략은 역사에 보기 드문 참극이자 동양의 일대 수치이며 황인종과 백인종간의 분쟁 징조라고 분석하였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극도의 경계의식을 보이면서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영국, 프랑스 등 서양세력이 동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여 대국적 견지에서 한국과 중국이 지난날의 원한을 잊고 도왔기에 가능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그는 동양평화가 깨진 원인을 동양평화를 소망하는 한.청 양국 유지인사의 뜻을 저버렸으며, 러.일 강화조약에 러.일 양국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한국문제를 조약문에 포함시키는 등 같은 인종을 배신한 일본의 행위에서 찾았다.
아울러 그는 일본의 중국침탈을 동양평화가 유지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라고 지목하였다. 즉, 그러나 그 이유를 따져본다면 이 모두가 일본의 과실이다. 이것이 이른바 구멍이 있으면 바람이 생기는 법이요, 자기가 치니까 남도 친다는 격이다. 만일 일본이 먼저 청국을 침범하지 않았다면 러시아가 어찌 감히 이와 같이 행동했겠는가. 가위 제 도끼에 제발 찍힌 격이다.(주석 10)
안중근은 이 글에서 만국공법에 대해 이를 신뢰하면서도 일제의 행위, 즉 을사늑약과 한일신협약 등 한국 침략을 경험하면서부터 만국공법과 엄정중립을 제국주의의 침략논리로 인식했다. 자신은 의병전쟁 과정에서 일본군 포로들을 만국공법의 정신에서 풀어주었는데, 일제는 의병중장 신분으로 적장(이토)을 포살한 자신을 한낱 '암살자'로 처우하는 부당성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고자 했다. 이어서 만국공법과 중립주의가 침략논리로 둔갑하는, 그 허구성을 논박하려 했다.
안중근의 이 논문이 완성되었다면 일제의 한국, 아시아침략의 실상을 일목요연하게 밝혔을 터이고, 이토의 15개조 죄상을 조목조목 논거하여 그 처단의 정당성을 입증하였을 것이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파괴한 이토 처단은 동양평화를 진작하는 길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형장에서 "동양평화를 삼창하고 죽음을 맞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일본의 속성에 대해 매우 날카로운 '예언자적인'진단을 하고 있다.
종래 외국에서 써오던 수법을 흉내내고 있는 것으로 약한 나라를 병탄하는 수법이다. 이런 생각으로는 패권을 잡지 못한다. 아직 다른 강한 나라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일본은 일등국으로서 세계열강과 나란히 하고 있지만 일본의 성질이 급해서 빨리 망하는 결함이 있다. 일본을 위해서는 애석한 일이다.(주석 11)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아무런 자료와 준비기간도 없이, 더구나 사형집행을 앞둔 매우 절박한 상황에서 쓴 글이다. 다만 일왕을 신뢰하고 있었고, 동양평화를 이끌 주체를 일본으로 설정하는 등 일정한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지적도 따른다.
"일본 천황을 신뢰하고 있었다는 점, 동양평화를 구현하고 이끌고 나갈 주체를 일본으로 설정하였다는 점을 그 한계성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당시의 상황과는 괴리된 이론이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주석 12)
안중근의 일제에 대한 인식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안중근이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침략을 비판하는 초점을 이등 개인에게 맞추고 정작 침략정책의 최고 책임자인 일본천황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일본 천황을 옹호하고 이등박문만을 비판하는 논리는 안중근의 자서전과 공술에서 누차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상논리가 단순히 공판투쟁과정에서 자신의 일신을 구하기 위한 임시방편적 대응책이 아니라 안중근이 평소 지니고 있던 지론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 안중근의 독립사상에 나타난 사상적 한계점이라고 볼 수 있다."(주석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동아시아 현재와 미래의 '평화구도'와 공동체의 모델로 인식되는, 대단히 선구적인 제안으로 평가받는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