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3

[남기정] 이시바 내각 탄생의 의미 - 교수신문

[글로컬 오디세이] 이시바 내각 탄생의 의미 - 교수신문

[글로컬 오디세이] 이시바 내각 탄생의 의미
남기정
승인 2024.10.0


글로컬 오디세이_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일본에서 새 내각이 탄생했다. 20%대 지지율에 허덕이던 기시다 수상이 불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지난 9월 27일 자민당 총재선거가 실시되었다. 여기에서 당선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를 중심으로 한 내각이다.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에는 9명의 후보가 난립했었다. 자민당 정치의 특징인 파벌이 해소된 데 따른 현상이다. 파벌 내에서 후보자를 정리하던 방식이 무너졌던 것이다. 지난 기시다 내각에서 불거진 불법정치자금 문제가 파벌정치 때문이라는 비난 속에서 자민당 갱생을 위해 주요 파벌들이 자진 해산하는 결단을 내렸다. 불법정치자금 문제의 진원지가 되었던 아베파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사진=이시바 시게루 공식 홈페이지

파벌 정치에 거리를 두고, 아베 비판의 선봉에 서 있던 이시바가 총재로 선출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유사정권교체가 일어난 것이다. 위기에 몰릴 때마다 발휘해 왔던 자민당의 특기다. 그 결과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던 정치가 이시바가 집권당의 총재선거에서 승리하는 일이 벌어졌다. 상식적인 일이지만 파벌정치가 이를 왜곡해 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시바 총재 탄생은 이변이었다.

이시바의 당선으로 2012년 이후 지속된 아베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시다의 실패는 아베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아베의 그림자 속에서 탄생한 기시다 내각은 역설적으로 아베의 극복을 숙제로 안고 있었다. 동맹 강화와 이를 위한 적극적 방위정책, 그리고 아베노믹스가 대표적이다.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기시다가 내놓은 정책이 ‘신시대 리얼리즘 외교’와 ‘새로운 자본주의’였다. 이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기대는 점점 실망으로 바뀌었다. 정책들 사이의 혼선으로 국민들의 의구심은 높아지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지리멸렬했다. 거기에 아베 저격 사건으로 자민당과 통일교의 어두운 관계가 불거졌고, 불법정치자금 문제가 잇달았다. 아베 정치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에 대한 미진한 대응을 보며, 실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기시다 내각은 회생 불가능 상태에 빠졌다.

이시바 내각은 이에 대응을 과제로 안고 출범하게 된다. 어쩌면 이는 ‘전후 정치’를 총체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서는 당내 리더십 확보가 1차적 관건이다. 그러나 이시바는 이 점에서 가장 취약한 정치인이다. 비주류로 일관하며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다. 이번에 총재가 될 수 있었던 최대 장점이 앞으로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가 정책통으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려 왔던 안보정책에서도 쉽지 않은 길이 예상된다. 그는 평소 미일동맹을 비대칭적 쌍무동맹이라 부르며 그 시정을 요구해 왔다. 대등한 미일동맹의 요구를 미국은 껄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시정을 위한 논의가 개시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이시바가 주장하는 것이 아시아판 나토의 창설이다. 여기에서 중국의 위치가 어디인가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에 따라 미국의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 이시바의 구상이 중국을 포함하는 공동안보구상이라면 미국이 반대할 것이며, 중국을 배제하고 적대시하는 집단방위구상이라면 중국이 반발할 것이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이에 적극 참여할지도 아직 미지수다. 나아가 대칭적 미일동맹이나 아시아판 나토 구상이 실현되려면 헌법개정이 필요하다. 이 또한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시바는 지난 8월에는 대만을 방문해서 중국 측의 의구심을 산 적이 있다. 그러나 중일 국교 정상화를 실현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를 정치적 스승으로 모시는 이시바가 중일관계 파탄을 무릅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과거사 문제에서 적극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동원과 관련해서 기존의 일본 측 입장에서 진전된 해결을 모색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우선 당내 입자를 굳혀야 할 이시바가 대외정책에서 큰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다만 주목할 점은 북일관계다.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이시바는 납치일본인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양자간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아베와 다르다. 이번 총재선거에 도전장을 내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평양과 도쿄에 연락사무소를 둔다는 구상을 피력한 바가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11월의 미국 대선이다. 해리스가 당선된다면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 이래 진행되는 한미일 안보협력 제도화 기조가 유지되겠지만, 만일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일동맹론자들이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이시바가 당내 기반을 안정화시켜 북일정상회담을 추진한다면 동아시아는 신냉전 아닌 다극화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 우리 대일 외교가 신한일공동선언 채택에 올인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내년에 우리는 다시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앞에서 급변하는 일본 외교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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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일본 정치와 외교이며 현재 민교협 공동상임의장을 맡고 있다. 주요 논문과 저작으로 「정치 기획으로서 <반일종족주의>: 유령잡기에 도전함」(2020), 『기지국가의 탄생』(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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