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7

Nam-sik In - [돕는 배필] 결혼 30년 6개월째다. 아내는 지금까지 나를 '돕는 배필'이었다. 요즘... | Facebook

Nam-sik In - [돕는 배필] 결혼 30년 6개월째다. 아내는 지금까지 나를 '돕는 배필'이었다. 요즘... | Facebook


Nam-sik In

[돕는 배필]

결혼 30년 6개월째다. 아내는 지금까지 나를 '돕는 배필'이었다. 요즘 세상에서는 좀 생경하게 들릴법 하지만 30년전만 해도 아내는 남편을 돕는 배필이라는 관점이 승했다. 연애할 때 우리 둘을 잘 아는 청년부 담당 목사님은 아내가 '최고의 사모감'이라고 하셨다. (결론만 놓고보면 나를 디스하시는 말이었음)
그러므로 신학생과 결혼하면 좋겠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내 인생에 신학을 전공할 계획은 1도 없던 차라 별 희한한 이야기를 하신다 싶었고, 나는 적극적 구애에 나서 우여곡절끝에 아내와 결혼할 수 있었다. 아직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목회자의) '사모'로 부르셨다"는 소명 고백은 잘 와닿지 않는다. 암튼 당시 아내에게 결혼하자 했던 신학생들 꽤 많았다.
그런데 결혼 후 아내는 마치 나를 돕는 배필로 부르신것처럼 살았다. 무엇보다 시집살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석사1학기 대학원생이었던 나도 참 답이 없었던거다. 집도 절(?)도 없이 결혼했으니. 그리고 2년 후 유학을 떠나게 된다.
아내는 내 유학과 함께 미련없이 사직을 했다. 꽤 좋은 공기업에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었고 동료들에게도 인정받았기에 나같으면 고민했을 터... 커리어보다 가족과 함께 있겠다는 선택을 당연하다는 듯 했다. 그리고 내 공부를 옆에서 돕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니 했다. 아내는 돕는 배필이었다.
영국 도착 4개월 후... 생각지도 못한 IMF 구제금융사태가 벌어졌을 때 난감했다. 아내는 베이비시팅도 하고, 피아노레슨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내 유학 선택의 결과였지만 통장에 잔고가 0 이 된 채 해외에서 여러 날을 버티는 경험을 하면서 아내는 악바리처럼 살아냈다. 회고해보면 낭만적(?)일수도 있지만, 그때는 무척 힘들었다.
항상 내 결정을 따랐다. 내가 교회를 결정하면 아내는 말없이 그 교회에서 충성을 다했다. 유학시절 30킬로미터 떨어진 뉴카슬 한인교회 설립과 섬김을 내맘대로 결정했을 때 아내는 아무말없이 나를 따라주었다. 그리고 헌신했다. 아동설교도 맡았고, 예배반주도 맡았다. 교회 회계도 맡아 헌금관리와 재정정리도 책임졌었다. 유학생들 밥 챙겨서 대접하는 일에 없는 살림에도 기뻐했다. 아내는 돕는 배필이었다.
아내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현지 회사에 취직했다.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관리업무를 맡아, 매일 액셀과 씨름하고 출납업무를 했다. 그제서야 생활에도 약간의 여유가 생겼었다. 우리 먹고 입고 쓸 것도 좀 나아졌다. 나는 공부한답시고 도서관에서 책보고 글쓰고 때론 책상에서 뒹굴거리곤 했지만, 아내는 새벽같이 출근해서 전투적으로 일하고 퇴근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와 가족을 챙기는 돕는 배필이었다.
귀국 후, 내가 자리잡는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아내는 다시 원래 직장에 재입사했다. 이전에 워낙 신임을 받았던 터라 복귀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복직이 아니라 채용 과정을 거치는 재입사였기에 동기들보다 훨씬 낮은 직급으로 들어간 데 대한 불편함없는지 물었다. 아내는 그저 일을 주셔서 감사한다고 했다. 그리고 수입이 불특정한 나 대신 아내의 안정적 수입으로 귀국후 몇년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경로로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나는 외교원 교수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여기저기서 불러주었고, 바깥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은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여전히 내 옆에서 내 돕는 배필이었다. 나는 내가 주인공인줄 알았다.
첫 안식년때 아내 회사에서 배우자 동반휴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내는 다시 기꺼이 사표를 내고 나와 아이들함께 영국으로 향했다. 거기서 이번엔 유학시절처럼 빠듯하게 살지 않아도 되니, 여유있게 여행도 하고 좀 누리고 오자고 말했다. 아내는 말없이 웃었다. 아. 하나 원하는게 있었다. 마당 넓은 집을 구해서 땅을 밟고 살고 싶다고 했다. 유학시절 낡은 기숙사에서 살면서 가든있는 집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고 했다. 그리고 영국에서.... 다시 대학 기숙사로 갔다. 아내는 씩 웃으며 여기도 좋다고 했다.
다시 뉴카슬교회를 찾았고, 아내는 유학시절처럼 섬겼다. 매주 평일 하루 시간내어 올라가서 성도 한분과 성경공부를 했고, 여전도회에서도 열심으로 섬겼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자하면 주일을 빼놓고 가지 않는 원칙 때문에 정작 제대로 다니지 못한 기억이 있다.
첫 안식년 떠나기 전 우리 부부는 어린시절부터 다니던 모교회를 떠났다. 까칠한 내 결심 때문이었다. 나는 매사에 비판적이고, 까다롭고, 영 아닌 것들만 눈에 잘 들어온다. 반면 아내는 매사에 수용하려 하고, 보내신 곳이 곧 소명의 자리라 여긴다.
그런데 부모와 장인장모가 자식들과 즐겁게 다니시는 모교회를 떠난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장인어른 신앙생활 시작하신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도저히 못버티고 떠나기로 마음먹은거다. 아내와 오래 상의했다. 여전도회에서 임원을 맡고, 성가대 반주를 하던 아내는 내 결심에 따라주었다. 남편의 고민에 이유가 있음을 잘 이해해주었기에 무척 고마웠고, 우리는 영국에서 인연을 맺은 화목사님 계신 제자들교회로 옮겼다. 나와 아내는 오랜 갈증이 해소되면서 무척 즐거운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첫안식년 후 귀국했더니 목사님이 다른 곳으로 청빙받아 옮기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내와 나는 이미 잘 적응하고 있었는데 나는 고민끝에 화목사님을 따라 옮기기로 결정했다. 무척 사랑스런 공동체를 떠나기 힘들었지만 그럴만한 사정도 있었다. 아내와 오랜 논의끝에 생각을 같이 했다. 이 때도 난 내가 결정하는 줄 알았고, 돕는 배필로 아내는 내 결정을 따라주었다.
나는 사실 옮긴 교회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 아직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있다. 그러나 아내는 마치 어린시절부터 다녔던것처럼 교회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여전도회장을 맡으면서 안양 소년원 분류심사원도 가고, 경찰서 유치장에 정기적으로 가서 대화 봉사도 하고, 교사를 맡아 아이들을 성심으로 섬겼다. 지금도 교회 의료선교부와 함께 매달 한번씩 무의촌, 쪽방촌 의료봉사를 가고 있다.
아내는 민간 제약회사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만에 임원이 되었다. 별 내색없이 회사일을 하는데 그 열심과 정성이 인정받은거였다. 그리고 해외 제약사에서 백신 수입하고, 식약처 검수받고 하는 일들을 담당하는 일을 옆에서 보는데... 내가 하는 일보다 몇 배는 공익에 가까웠다. 더 국민건강에 유익한 일을 하는 거였다. 특히 어린이들 백신...
이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느꼈다. 그동안 아내가 내 돕는 배필이라고 생각했던게 아니었던거다. 내 타임스케줄에 맞추어 아내는 움직여왔다. 교회도 내가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데 이의 없이 따라주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게 어느 교회든, 어느 회사든 나보다 훨씬 더 성실함과 치열함으로 섬겼고... 주역이 되어 있던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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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내는 권사로 임직했다. 이미 회사에서는 상무이니, 서리집사이자 일개 교수인 나보다 사회나 교회에서 직급이 높다. (는 내 세속적인 평가를 이해 바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제 임직식 때 내게 말씀하셨다.
"정권사가 네 돕는 배필로 살아왔지? 네가 주인공이었고, 네가 결정하고 움직이는대로 네 아내가 따라왔던 것 같지?
노. 노. 천만에! 네 아내가 주인공이었어. 너는 주역인 줄 알고 설레발치면서 앞서 다녔지만 길잡이였던거지. 정작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네 아내를 통해 위로받았고, 내 피로 값주고 산 교회가 든든히 섰어. 시집살이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부모의 마음과 사랑을 얻었고, 네 아내가 일했던 공기업과, 영국 기업과, 지금 제약사에서 훨씬 더 많은 이들이 도움과 힘을 얻었거든. 잘 몰랐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렇지?
그러므로 이제 좀 깨달아라.
네가 주역이 아니었어. 주역은 네 아내였어. 그러므로 네가 돕는 배필이야. 인집사."
깨달음이 있었고, 감사했다. 나야 평생 서리집사 직분을 벗어날 가능성이 없지만, 아내가 교회와 사회, 회사에서 섬기는 일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는 것도 무척 감사하고 벅찬 일이었다.

돕는 배필. 내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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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comments


인경숙

깊이 공감했습니다.
감동이 큽니다.

Seihyung Lee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준경

희주 권사님 권사취임 축하합니다^^
돕는 베필
권사님은 훌륭한 돕는 베필이셨네요…
See more

Youngmin Kim

장가 정말 잘 가셨네! 같은 서리 집사로서 충성하며 삽시다!



Paul Jongweon Lee

읽다 보니 문득 눈시울이 뜨끈해집니다. 감사합니다.



Jeahong Bryan Oh

더람에서 런던 내려가는 중에 들린 휴게소에서 먹던 사모님표 김밥! 미슐랭 3별보다 맛있고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어요! 환대의 정석, 사모님의 권사임직 넘나 축하드립니당~


Yoon Kim

감동받았습니다.


신은경

축하드립니다 정 권사님 인 집사님


Sang Lae Lee

귀한 글 감사합니다 ^^ 또한, 권사님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



Hyunkyung Kim

진정 "피투"된 자의 모범을 봅니다. 맡겨 주신 곳에서 소명자로 살아가기. 계신 곳마다 선교사였네요. 뵙고 십습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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