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4

알라딘: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알라딘: [전자책]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eBook]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은이)한겨레출판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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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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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파일 형식 : ePub(13.56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 312쪽




책소개
“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세상이 서로 깊이 연루된 시기”이자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틀 지은 가장 가까운 과거” 19세기 말~20세기 중반 식민제국주의 시기를 주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은 대륙을 넘어 상호작용하는 동시대 인물들의 연결을 횡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당대의 사고 체계나 인식, 감수성 등의 유산을 종으로 횡단하는 교양 역사서다.

파리코뮌, 러일전쟁, 의화단운동, 제1차 세계대전, 3‧1운동, 제1차 상하이사변, 베를린 올림픽,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정치인과 군인, 연예인과 작가, 과학자와 지식인, 성을 파는 여성과 여성운동가, 독립운동가와 밀정, 평범한 생활인 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향유한 소설과 영화, 노래도 다수 인용된다. 그 모든 것들이 “역사에 휘말리고 역사를 만들다가 이윽고 역사가 되는”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역사의 본질을 연결과 연루로 파악하는 이 책은 선과 악, 승리와 패배, 피해와 가해로 요약되는 국가‧민족 단위의 익숙한 역사 내러티브 대신 움직이고 반응하는 개인의 마음과 태도에 주목한다. 사랑하고 실수하고 꿈꾸고 욕망하는 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얽히며 주고받는 역동을 입체적으로 그려나간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과 역사가 이들에게 져야 할 책임, 나아가 연루된 주체로서 지금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함께 살핀다.


목차


1. 역사의 후퇴 앞에서 리샹란을 생각하다
2. 〈너의 이름은〉, 기억함으로써 잊는 것
3.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4. 카스바에서의 망향, 자기 연민의 서사를 넘어서기
5. 한국인을 혐오한 어떤 서구인 이야기
6. 세계 일주의 꿈, 돌아와서 만나는 나
7. 에레나를 아시나요?
8. 서구의 시선이 동양 여성을 그릴 때
9. 과학이 우리를 구원할까?
10. 압록강을 건넌 의사들
11. 재난의 공동체, 무정과 동정을 넘어
12. 식민지에도 스타는 탄생하는가?
13. 사할린 한인, 나의 나라는 어디인가?
14. 혁명과 사랑의 이중주
15. 레니 리펜슈탈, 무지한 아름다움은 무죄일까?
16. 작은 사람은 어떻게 성숙해질까?
17. 〈사운드 오브 뮤직〉 너머 들리지 않는 이야기
18. 별 없이 걸었다 캄캄한 식민의 밤을




책속에서


P. 9~10 ‘콰이강의 다리’의 실제 역사는 우리에게 역사에 대한 관습적인 인식을 재고하라고 요청한다. 어떤 인식일까? 역사는 국가 나 민족 단위로 흐르며 가해자도 피해자도 분명하다는 인식이다. 실제의 역사는 종종 경계를 넘나들고 경계를 만들며 바꾼다. 콰이강의 다리에 얽힌 실제 역사도 영국, 일본, 한국, 태국, 미얀마가 함께 연루된 ‘어긋나는 공동의 역사’다. 접기
P. 10~11 이향란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에서도 인기가 높던 일본인 리샹란은 1990년대에 위안부 문제에 깊이 개입한다. 그녀의 사죄를 어떻게 보면 좋을까? 한국인이라면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해도 좋을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 장면 은 리펜슈탈의 대표작 <올림피아>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나치 연루자로 비판받았던 리펜슈탈은 사라져가는 아프리카 ... 더보기
P. 60~61 포로감시원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잘 감시하는지 늘 감시받았다. 잘 때리라고 늘 맞았다. 피에르 불은 《콰이강의 다리》에서 이렇게 적는다. “(니컬슨) 대령은 다시 구타를 당했고, 고릴라 같은 조선인은 처음 며칠 동안의 가혹한 체제를 재개하라는 엄명을 받았다. 사이토는 감시원까지 때렸다. 그는 … 죄수뿐만 아니라 간수에게도 권총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들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중첩된 운명의 희생자였다. 조선인 B, C급 전범의 비극을 연구한 일본의 사회학자 우쓰미 아이코는 포로감시원들의 개인적 학대가 없지 않았지만, 식량과 의약품이 부족해 포로를 학대할 수밖에 없던 상황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접기
P. 62~63 조선인 포로감시원은 일제의 전쟁 수행에 협력한 가해자였다. 이런 사례들을 근거로 한국도 일본과 같은 전범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현실적 함의는 일본에 동조한 같은 전범국이니 일본에 대해 전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논리에 동조하는 논리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한편에는 그들은 강제로 끌려간 것이니 그저 순전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있다. 구조적 악이 있다면 그에 동조한 개인의 윤리적 책임은 간단히 면제될 수 있을까? 이학래가 수기에서 고백하듯 결코 그렇지 않다. 일본과 동일시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져야 할 몫의 역사적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때에만 윤리적 주체가 될 수 있다. 접기
P. 65~66 훨씬 사소한 이야기도 있다. 영국인 포로 어쿼트는 회고록에서 짐짝처럼 열차에 갇혀 질식할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이송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경험인지 떠올린다. 그렇게 또 이송되던 어느 날, 포로들이 조선인 포로감시원에게 제발 문을 닫지 말아 달라고, 탈출하지 않겠다고, 도착하면 문을 닫겠다고 애원한다. 놀랍게도 그는 문을 닫지 않았다. “우리가 움직일 때 쾌적한 바람이 불었다. … 나는 감시원이 문을 열어두는 걸 허락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고, 감시원 중 한 명에게 받은 첫 번째 친절과 동정심을 잊을 수 없었다.”
아무도 탈출하지 않았다. 탈출은커녕 도착하자마자 문을 닫음으로써 호의를 베푼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의심받지 않도록 보답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작은 호의를 베푼 이들이 있었다. 참담한 비극 앞에 이토록 작은 호의가 도무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묻게도 된다. 다만 어쿼트는 이를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래서 우리가 알게 됐다. 희망은 어쩌면 여기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접기
P. 93 윤치호(1865~1945)도 미국 유학 중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였다. 인종차별을 겪고 오히려 ‘힘이 곧 정의’라는 사회진화론의 주장을 수용하게 된다. 물론 윤치호는 유길준보다는 내면이 복잡한 인물이었다. 특히 기독교 신앙과 사회진화론 사이의 부조화로 고민했다. 1892년 어느 날의 일기에서 그는 이렇게 고뇌한다. “나의 신앙이나 믿음의 가장 큰 방해물은 인종 간의 불평등과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여러 해악들이다. 왜 하나님께서 코카시안과 몽골리안, 아프리카인 등에게 평등한 기회와 동등한 심신의 능력을 부여하시지 않았는가? …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자 하심에도 못하셨을까? 그렇다면 그의 지혜는 어떤 것인가?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심에도 일부러 하지 않으셨는가? 그렇다면 그의 사랑은 어떤 것인가? 오호, 수수께끼로다!” 접기
P. 114~115 이순탁이 세계 일주를 마치고 돌아와 만난 현실은 나혜석과 박인덕이 돌아와 만난 현실과 달랐다. 지식인 엘리트 남성에게 세계 일주는 삶을 맞바꿔야 하는 모험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현실이 장밋빛일 리도 없었다. 이순탁은 1938년 4월, ‘연희전문 경제 연구회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같은 학과의 백남운, 노동규 교수, 그리고... 더보기
P. 125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사이에 힘과 문화적 상상력의 위계가 엄연했던 만큼이나 성애의 판타지도 가파르게 위계화되었다. 승리한 나라의 남성이 점령지 여인과의 가벼운 로맨스를 꿈꿀 때, 패배한 나라, 약소국 남성은 수치심과 회한으로, 때로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P. 134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제국의 시대(1875~1914)라고 부른 시절이었다. 열강들의 팽창 경쟁은 식민주의 초기의 원거리 교역과 자원 약탈을 넘어 대규모 이주와 자본 수출로 고도화되고 있었다. 서구의 팽창 욕망을 북돋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문화적 상상력, 작품들이 속속 등장했다. 오직 서구만이 비서구, 동양(오리엔트)에 대해 정의하고 표현할 권위를 가질 수 있었다. 서구의 시선으로 동양을 묘사하고 분석하던 온갖 담론과 지식, 문화적 재현물들이 급기야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위압하고 규율하는 하나의 스타일로 변화해갔다. 팔레스타인 출신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이름으로 포착한, 서구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극에 달한 시대였다. <나비부인>은 오리엔탈리즘 문화상품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것이다. 접기
P. 157~158 독가스 개발로 비난받게 되자 하버는 항변했다. “평화의 시기에 과학자는 세계에 속하지만, 전쟁의 시기에 그는 조국에 속한다.” 가정 파괴를 무릅쓸 정도로 독일에 대한 애국심이 넘쳤지만,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망명을 떠나야 했다.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이듬해 스위스에서 죽었다. 하버가 개발진으로 참여해서 만든 살충제 치클론 B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널리 쓰였다. 즉사시키지 않고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게 만드는 참혹한 독가스였다. 그가 이 참극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의 장남 헤르만은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46년에 미국에서 자살했다. 헤르만의 딸 클레어는 미국에서 화학자로 성장했다. 할아버지가 만든 염소가스의 해독제를 개발하는 데 전념하던 중 연구 예산이 핵폭탄 개발에 우선 투입된다는 소식을 듣고 목숨을 끊었다. 1949년이었다. 과학이 세상을 구원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세상을 구원하겠다던 어떤 과학자를 구원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접기
P. 161 과학에 대한 이광수의 관심은 지속되지 않았다. 대신 1930년대에 그가 몰입한 것은 나치즘, 파시즘 등의 전체주의 사상이었다. 나치가 집권하기도 전인 1930년에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발췌‧번역했다. 전체주의라는 말을 만들어 퍼뜨린 것도 그였다. 과학이 전체주의로 바뀌었지만 그 속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관심사가 있었다. 바로 ‘힘에 대한 숭배’다. 돌이켜보자. 《무정》의 마지막 장면에서 형식이 “과학! 과학!” 하고 부르짖기 직전 그가 다짐한 말은 무엇이었나?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 하겠다. 지식을 주어야 하겠다. 그리해서 생활의 근거를 안전하게 하여주어야 하겠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힘에 대한 동경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에 대한 숭배로 바뀌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접기
P. 253~254 미국에서 활동하던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영화 촬영을 위해 런던에 머물던 1936년 무렵, 그녀에게 나치가 접근해왔다. 최고 대우를 약속하며 독일 귀환을 요청했던 것. 사실 디트리히는 히틀러가 가장 좋아한 배우였다. 그녀는 제안을 거절하고 1937년 미국 시민권을 신청했다. 같은 해 <갑옷 없는 기사> 출연료 45만 달러를 독일 유대인의 탈출을 위한 기금으로 기부했다. 전쟁이 터지자 전쟁 자금 마련을 위한 국채 판매에 앞장섰고, 전장을 누비며 순회공연과 병원위문을 다녔다. 리펜슈탈이 나치를 위해 영화를 만들 때 디트리히는 나치에 맞섰다. 종전 후 독일에서 배신자로 비난받았다. 생전에 독일과 화해하지 못했다. 독일도, 미국도 아니고 파리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디트리히가 죽은 지 10년 후인 2002년, 독일 정부는 그녀를 독일 명예시민으로 추서하고, 고향에 그녀의 이름을 딴 광장을 만들었다. 파리에 있던 묘지도 옮겨왔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조형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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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늦은 나이에 정규직(한림대) 교수가 되었으나 적성을 찾아 사직하고, 파주 교하의 협동조합 책방에서 집필과 강연에 전념하고 있다. 동네살이의 일환으로 합창단과 미얀마연대 활동에도 참여 중이다. 제국과 식민지 사이를 헤쳐나간 사람들의 삶, 사랑과 상처에 관심을 기울여온 역사사회학자이기도 하다.
저서로 《우리 안의 친일》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사회》, 공저로 《근대주체와 식민지 규율권력》 《식민지의 일상》 《제국일본의 문화권력》 등이 있다.

최근작 : <[북토크]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조형근 작가 X 장일호 기자 북토크>,<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사람을 잇다 사람이 있다 삼달다방> … 총 2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런 ‘옛날이야기’라면 하염없이 읽고 싶다.” _장일호(《시사IN》 기자, 《슬픔의 방문》 저자)

“무엇보다 이 책은 재밌다. 역사와 나,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앎의 의지를 자극한다.” _김만권(정치철학자, 《외로움의 습격》 저자)

리샹란과 최승희, 히틀러와 손기정, 안창호와 파농,
잭 런던과 윤치호, 나혜석과 아인슈타인…

19세기 말~20세기 중반, 대륙을 넘어 연결된 인물들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남겨진 가파른 마음들

“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세상이 서로 깊이 연루된 시기”이자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틀 지은 가장 가까운 과거”인 19세기 말~20세기 중반 식민제국주의 시기를 주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은 대륙을 넘어 상호작용하는 동시대 인물들의 연결을 횡으로,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당대의 사고 체계나 인식, 감수성 등의 유산을 종으로 횡단하는 교양 역사서다. 파리코뮌, ... 더보기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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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역사책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느끼게 해준 책. 동서양을 넘나들며 역사에 연루된 인물들의 이야기가 한편 한편 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다~
dudb 2024-09-0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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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건설에 참여한 조선인들은 전범일까? 아닐까?



이 책의 주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연루됨의 윤리"(10쪽)다.




영화로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는 일본 제국주의가 현지인과 포로들을 동원에 미얀마와 인도를 연결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당연히 전범인 일본 제국주의 군인들은 현지인과 포로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일본인에게는 조선인이었고, 현지인과 포로들에게는 일본인이었다.

조선인들은 일본군 이등병과 포로들의 사이에 있는 신분으로 직접 포로들의 작업을 감시하고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시하는 것은 일본이었고, 직접 채찍을 들고 포로들을 구타하는 것은 조선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조선인들은 전범일까? 아닐까?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많은 한국인들은 팔이 안으로 굽어 여기 조선인들은 피해자였다고, 그들을 전범으로 규정하는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말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




그러나 예를 바꿔보자.

전후 독일 사회는 전쟁범죄의 주체를 나치 독일의 나치당과 친위대 등의 범죄 집단이 저지른 것으로 한정하려 했다.

국민의 의무로 징집되었던 정규군은 결코 범죄 집단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후 밝혀진 자료들에 따르면 정규군 역시 수많은 학살의 주범이었다.

정규군의 협력 없이 소수의 친위대 병력만으로 그토록 엄청난 학살을 저지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266쪽)

전쟁 중 독일인 1700만명이 정규군에 징집됐다.

독일인 대다수가 정규군이거나 그 가족 혹은 친지였다.

"나는 몰랐다"고 말할 수 있는 독일인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독일인들은 전범일까? 아닐까? 국가권력에 의해서 징집되어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가한 피해자였을까? 아니면 가해자였을까?

남의 일은 판단하기가 쉽다. 그들 역시 전범이며 가해자다.




인간이란 한 단면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 복잡다단한 인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역사는 더더욱 그러하다.

윤치호는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뼛속까지 받아들였던 인물이다.

그의 관점에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것은 인류의 발전 법칙이었다.

물지 못하면 짖지도 말라고 독립운동을 폄하했던 이다.

그런 그가 나혜석과 박인덕의 이혼을 "이혼은 개인의 선택"이라며 변호했다.

이게 뭐 대단하냐 싶겠지만 당대 조선의 지배층 남성으로서 여성의 이혼의 권리를 옹호한다는 것은 거의 혁명적인 발상이다.

민족주의자든 사회주의자든 상관없이 여전히 남존여비, 여성은 남성의 부속물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판을 치던 시대다.

큰일 하는 남성을 위해 여성이 내조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 시대 사람들의 내면 깊숙히 골수에 박혀 있던 시대다.

그런 시대에 윤치호는 이혼을 개인의 선택으로 인정했다. 한 마디로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윤치호의 친일행적이 가려지는가?

승자의 편에 서는 것이 인류전체의 발전의 길이라고 했던 강변이 옳았는가?

그의 눈에는 식민지가 됨으로써 더 고통받았던 그의 주변 수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이런 입장을 통해 그가 향유할 수 있었던 개인의 평안과 부와 권력이 정당한 것이었는가?

자신의 생각이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연루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자의 삶과 선택은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




한나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이라고 했다.

그 사유는 단지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연루됨의 윤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윤리를 제대로 파악할 때 우리는 콰이강의 다리 건설에 참가했던 조선인 노동자들, 나치 독일에 복무했던 수많은 정규군과 평범한 독일인들, 그리고 윤치호 같은 인물들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사유의 끝이라면 인간의 미래는 얼마나 처참할 것인가 말이다.

저 수많은 개인들을 단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윤리적으로 우리들 대부분은 저 시대 저 상황에 처한다면 아마도 다르지 않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라는 말로 변명하거나, 또는 몰랐다라고 프리모 레비가 말한 '고의로 획득한 무지'를 빙자해서 말이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




책을 읽다가 재밌는 대목을 발견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걸그룹의 이름은?

이렇게 물으면 고개를 갸웃하다가 1950년대 활동한 김시스터즈 할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무려 1930년대에 만들어지 5명의 여가수로 이루어진 걸그룹이 있었다.(이 그룹은 일종의 프로젝트성 그룹으로 만주와 일본, 중국 순회공연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인원은 유동적이었다고 한다. 그룹원 중 유명 인물은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이다.)









이 그룹의 이름이 재밌어서 책 읽다가 빵 터졌었다.

뭘까요?




정답은 저고리 시스터즈

뭔가 좀 힙하지 않나? ㅎㅎ




이 책에 대해 리뷰를 쓰다보니 이 책이 한없이 심각하기만 한 책인거 같아 혹시 다른 분들이 어렵게 여겨 안 읽을까봐 걱정이 된다.

그런데 책은 생각보다 쉽고 재밌다.

이렇게 저고리 시스터즈도 나오고....

나치 독일의 최고의 선전예술인이었던 레니 리펜슈탈에 대한 평가도 인상적이고 재미있었다.

또한 알려지지 않았던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아버지의 실제 주인공 트라프소령과 의화단의 난 이야기의 결부와 그가 그 사실을 평생 침묵으로 묻어두었던 이유를 찾아가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러면서 또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연관됨의 윤리를 떠올리는 것이다.

일관된 주제의식 하에 많은 이야기들이 유려하게 펼쳐진다.

이 가을 손에 들어볼 만한 역사책으로 추천하고싶다.






- 접기
바람돌이 2024-10-13 공감(24)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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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연결되는 시간 -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조형근 지음/ 한겨레출판










19세기 말 ~ 20세기 중반 근대사를 관통하는 통찰력 넘치는 시선으로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이야기, 바로 조형근 저자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다.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를 역사 속으로 이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우리의 선조가 지나온 시간처럼 역사임을 그 지속성을, 연결성을, 책임을 일깨워 준다.





















시사주간지 <시사IN>에서 연재되었던 <조형근의 역사의 뒤페이지>를 책으로 엮었다. 총 18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동양의 작은 나라 한반도가 연루된,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 여러 나라들의 인물을, 사건을, 역사를 풀어놓는다.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시작된 독서는 조형근 저자의 예리하고 명징한 서술로 역사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사고할 수 있었다. 에피소드 마무리에 그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남겨진 과제이자 살아가는 자세가 되어줄 묵직한 울림을 건네는 책이다.




조형근 저자는 "거칠고 자의적인 표현은 가급적 삼가려 한다"면서도 1장에서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밝히고 있다. 공명하며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좀 더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자리에 걸맞은 언행과 책임의식 그리고 사명감을 절절히 바라게 되는 요즘, 숨이 트이는 문장이 이토록 반가울 수가 없다.









희생자들과 연결되는 방식은 비극이 남긴 과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데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얽히고설켜 되새김질하듯 인물이나 사건들이 등장하여 환기시킨다. 이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역사의 뒤페이지답게 소설, 영화, 노래, 스포츠 등 친숙한 소재로 이끌어내는 역사적 사실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참담한 비극 앞에 이토록 작은 호의가 도무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묻게도 된다. 다만 어쿼트는 이를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래서 우리가 알게 됐다. 희망은 어쩌면 여기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당대에 미국 작가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가인 잭 런던은 한국인을 혐오했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끔찍했다. 겁 많고 나약하며 게으르고 도둑질 잘 하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이가 바로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죽이고 싶은 욕구를 느낄 정도로 한국인에 대한 강한 혐오를 피력한 잭 런던은 서구 문명의 우월성과 서구에 의한 세계 지배를 당위로 받아들이는 사회진화론자였다. 약육강식이 세상의 진리라 믿는 사회진화론자들이 조선에도 있었다. 유길준, 윤치호. 조형근 저자는 이런 사상이 얼마나 무서우면서도 무지한지 잘 짚어준다. 약소민족, 피지배자인 조선인이 이런 자학적인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빤한 일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폄하한 3.1운동의 의의가 잘 말해주고 있다.










<상하이 릴>, <상하이에서 돌아온 리루>, <에레나>, <나비 부인>, <미스 사이공>. 동양 여성을 향한 서구의 환상을 다루면서 한국 현대사에서 망각되는 이야기를 들추어낸다.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위안부에서 비롯된 양공주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이다. 조형근 저자의 균형 잡힌 시선이 인상적이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고 보듬아야 할 것인가.





타자에게 입힌 상처를 기억할 때만, 우리가 입은 상처도 보듬을 수 있다. 그 균형을 잡기 전까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너의 이름은>, <콰이강의 다리>, <바베트의 만찬>, <사운드 오브 뮤직> 등 유명한 영화들이 역사적 사건과 비극과 연결되어 확장되어간다. 단순히 향유하고 감동받는 데 그쳤던 감상이 비평을 넘어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사유하는, 의식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신일선, 나혜석, 박인덕, 이덕요, 이애리수, 이순탁, 이미륵 등 시대를 넘어 자신이 믿는 신념대로 열정적으로 살아간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양철북>, <만세전>, <무정> 등 문학작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동정을 넘어 해결로, 연민을 넘어 연대로 가는 길이 아직 먼 이유다. 그래도 그 길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짐하는 말이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동지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해야 하는 고통, 참으로 무섭다. 일제가 심은 의혹의 씨앗, 밀정. 혁명가들은 사방이 캄캄한데 별 없이 걷는 법을 배워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별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했다. 상처 입은 채 서로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그 걸음을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토록 연결되어 있었던가. 새삼 무심히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무지가 결코 면죄부가 아님을 무겁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연결된 이 세계를 외면하지 말고 들여다보며 연대하는 걸음을 익히도록 이끌어주는 책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다.










한겨레 하니포터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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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길 2024-09-12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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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 속에서 깊이 사유하기








이 책의 내용은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열거나 개인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역사사회학자로서 독자들의 사유를 깊게할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진다.

우리는 꽤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일제강점기의 시기에 우리 조선인의 대우와 차별과 억압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단순한 피해자로 늘 치부되어 언급되었다.

물론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덧붙여 생각해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 조선인은 피해자만 있는 것인가? 우리는 진실로 피해자의 위치에 놓이기만 하였는가?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우리는 더 비판적인 생각을 하고 놓은 사실을 다양한 관점과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이 책이 제공하는 수많은 지식들과 인문, 역사, 문화, 예술 등을 망라하는 다양한 사실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작가의 평과 시각을 통해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역사에 질문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나는 역사란 역시 어느 하나의 파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행위는 다른 행위의 원인이 되고 그 원인은 무수히 많은 결과와 또다른 사건의 원인들을 만들어낸다. 이 책은 인물, 사건 등이 '와 이게 여기서 이렇게 또 연결이 된다고?' 하는 말을 자아내게 만든다. 마치 잘 짜여진 소설과도 같다. 이러한 세세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연결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작가의 능력에 놀랄 정도다.




하여, 나는 이 책을 통해 지금껏 내가 배우고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계기를 얻을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다시 세계사와 관련된 책들을 뒤적여야겠다는 생각까지 했겠는가. 그만큼 이 책은 우리 독자들의 생각을 다각도로 넓힐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치우친 사고를 가진 것만큼 위험한 가치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그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 읽어보았으면 한다.




*이 책은 하니포터 9기 활동을 위해 한겨레출판을 통해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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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효경 2024-09-12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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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우리 나라 역사에 대한 역사관이 여러 갈등을 낳고 있다. 뉴라이트 문제 친일 문제 등 여러 문제들로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그 속에서 잊혀졌던 인물들을 되새기고 우리의 역사관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역사란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해 본다. 대학 때 읽은 E.H. 카(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생각 난다. E.H. 카의<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학의 본질과 역사 연구의 방법론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한 책으로, 역사학계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카는 역사를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역사가의 해석과 선택이 개입된 것으로 본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가가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주장하며,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역사가의 주관적 견해가 역사를 해석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만, 동시에 역사가들은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역사는 사실의 선택과 해석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 지며, 에 따르면, 역사는 항상 해석의 여지가 있으며,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게 때문에 같은 역사적 사실이라도 시대적 변화와 시기에 따라서 그 해석이 달라진 것이다. 관련하여 역사 속에서 잊혀졌던 우리나라 인물들과 그들이 어떻게 우리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는지 이야기 해 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조형근님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였다. 최근 역사 논란과 함께 꼭 읽어봐야 할 책인 것 같다.

조형근님의 책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에 걸친 식민제국주의 시기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살아간 수많은 개인들의 삶을 조명하는 역사서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과는 다른 관점에서, 각기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상호작용했던 동시대 인물들의 연결을 살피며,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사고 체계, 인식, 감수성 등의 유산을 이야기 해 준다. 이는 역사를 과거의 사실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 담긴 복잡다단한 인간의 마음과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이끈다. 또한, 이 책은 전통적인 역사적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야기로서의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는 우리에게 역사적 책임과 그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새로운 접근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

조형근은 책을 통해 파리코뮌, 러일전쟁, 의화단운동, 제1차 세계대전, 3.1운동, 제1차 상하이사변, 베를린 올림픽,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 여러 역사적 사건 속에서 살아간 다양한 인물들을 조명한다. 이들은 정치인과 군인, 연예인과 작가, 과학자와 지식인, 성을 파는 여성과 여성운동가, 독립운동가와 밀정, 평범한 생활인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 책은 그들의 선택과 행동을 중심으로 역사를 풀어간다. 예를 들어, 일본군에 의해 버마로 강제 징용되어 포로 감시원이 된 조선인들, 신분을 숨기고 일제 괴뢰 만주국의 스타가 되었으나 후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선 일본 평화운동가 리샹란, 염소가스 제조법을 발명하여 대량학살의 시대를 연 프리츠 하버, 약육강식의 질서를 내면화하면서도 이혼녀들을 변호한 윤치호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은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역사의 주역들이었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때로는 숭고하고, 때로는 비열한 선택을 하며, 이 선택들이 새로운 사건으로 이어지는 연쇄를 만들어갔다.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국가와 민족, 선과 악, 승리와 패배, 피해와 가해의 경계를 넘어선 역사의 복합성을 깨닫게 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전통적인 역사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거시적 관점이 아닌 미시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저자는 대규모 전투나 전쟁 같은 큰 사건보다는, 그 사건에 휘말린 개인들의 복잡한 감정과 선택을 상세히 다룬다. 예를 들어, 콰이강의 다리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 포로 감시원들의 이야기에서는 그들이 단순히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던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느낀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드러낸다. 그들은 일본군에게 맞고, 포로들을 학대하는 가해자였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징용되어 왔다는 사실과 전범 재판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는 이중적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서술은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적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 더 복잡한 인간적 현실을 이해하도록 이끈다.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를 '인간의 이야기'로서 풀어간다는 점이다. 저자는 단순히 악인과 선인,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전통적 역사적 인물을 넘어,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프리츠 하버의 손녀가 할아버지가 만든 독가스의 해독제를 개발하던 중, 연구 예산이 핵폭탄 개발로 우선 투입된다는 소식에 자살을 선택한 이야기는 과학의 발전이 단지 인류에게 이로운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일본군 포로 감시원이었던 조선인이 영국인 포로를 구하기 위해 열차 문을 열어준 작은 행동은 역사 속 개인의 작은 선택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역사 속 인간의 선택이 얼마나 다층적이고 복잡한지를 강조한다. 그들의 선택은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으며, 그들의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제국주의 시기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는 보통 이 시기를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그로 인한 피해로만 이해하려고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폭력을 가능하게 한 당대의 사고 체계, 인식, 감수성의 구조를 이해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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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gi386 2024-09-0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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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통해 역사 들여다보기



조형근 작가는 한림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파주 교하의 협동조합 책방에서 집필과 강연에 전념하고 있다. 그가 쓰는 책은 역사사회학, 문화, 과학 등을 아우른다.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다>는 300쪽 분량이지만 글자 크기나 자평을 보면 500쪽 분량 느낌이다.

총 1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음악, 과학 등에서 발전해 역사적 사실로 이어진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이 어떻게 문화를 이용해 제국주의의 도구로 활용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리샹란이다. 리샹란은 고아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일본인 부모 밑에 자랐다. "1933년 만주국 국가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가수 리샹란이 데뷔했다. 그녀는 일본인 야마구치 요시코였다."(p.25)













침략의 앞잡이 노릇을 한 리샹란은 일본인임을 증명하는 호적 서류가 도착하자 매국노라는 죄명이 성립하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 영화에 여러 편 출연했고, 미국에서 셜리 야마구치라는 이름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인물들. 이런 인물들을 조명하며 식민지 시대, 제국주의 시대 한중일의 다층적인 면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일제시기에 세계 일주를 한 조선인들도 있었다. 이순탁, 최린, 나혜석, 박인덕, 허헌.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박인덕의 예가 가장 흥미롭다. 서울에서 이화학당을 나온 박인덕은 이화학당에서 교사로 일했는데, 유관순의 지도교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31운동 당시 학생들을 선동한 혐의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고, 그해 말에 대한애국부인회 사건으로 다시 옥고를 치렀다. 3월 2일 박인덕의 이화학당 기숙사 방에서 만세 시위를 논의할 때 나헤석, 김마리아, 황애시덕 등이 함께했다.

박인덕은 미국 기독교여성단체의 후원을 받아 1926년 미국 조지아주의 웨슬리언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1928년부터 1931년, 1935년부터 1937년까지 35개국을 일주한다. 박인덕은 1930년에 귀국해 남편과 이혼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훗날 박인덕은 친일의 길에 나섰다. 1939년 황도주의 사상단체 '녹기연맹'에 참가했고,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이 결성될 때는 아예 발기인으로 참가해, 대의원과 부인대 지도 위원으로 활동했다.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사람이 훗날 친일을 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렇기 때문에 끝까지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더 존경스럽고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한다. 쉬운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 시대의 엄혹함, 선택의 무게감을 생각하게 된다. 역사에 대한 저자의 호기심에 박수를 보낸다.

저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에 대해 계속 파헤쳐 호기심을 유지하길 바란다.



#콰이강의다리위에조선인이있었네 #조형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9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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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제비 2024-09-1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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