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31
남북한의 기념박물관
남북한의 기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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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의 기념박물관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6-11-11
북한은 한국전쟁 시기 황해남도 신천 지역에 주둔한 미군이 만행을 저질렀다며 관련 자료를 신천박물관을 통해 전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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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박물관은 일반적인 것이고 기념박물관은 어떤 것을 기념하려고 세운 특별박물관이지요. 박물관은 목적하는 바를 알리려고 역사유물 등을 통해 눈에 호소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지요.
남북한에는 각기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독립을 기념하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독립기념관과 조선혁명역사박물관입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두 기념박물관의 성격과 역할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남쪽의 독립기념관은 나라 이름을 붙이지 않은 채 그냥 독립기념관입니다. 이름을 지을 때 독립운동기념관, 광복기념관, 민족기념관, 겨레의 집 등등이 올랐으나 최종적으로 독립기념관으로 정해졌지요. 당연히 한국을 대표하는 기념박물관이기 때문에 나라이름을 부칠 필요가 없는 거지요. 북쪽의 박물관은 조선혁명박물관입니다. 처음에는 국립중앙해방투쟁박물관이란 이름이다가 1960년 8월에 지금의 이름으로 됐습니다.
박물관과 기념박물관은 어떻게 다릅니까?
임채욱 선생: 박물관은 일반적인 것이고 기념박물관은 어떤 것을 기념하려고 세운 특별박물관이지요. 박물관은 목적하는 바를 알리려고 역사유물 등을 통해 눈에 호소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지요. 눈에 호소한다는 것은 그림, 사진, 자료, 유물 같은 것으로 볼거리를 꾸며서 교육시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기념박물관은 한 국가나 정권이 국민에게 특별히 정한 어떤 것을 눈에 호소해서 알리려는 목적을 가지기 때문에 일반 박물관과는 다른 특별박물관이라 할 수 있지요.
남북한의 기념박물관이 특별한 어떤 것을 알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임채욱 선생: 그것은 국가의 정통성이나 정권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군요. 기념박물관은 그러니까 정통성이나 정당성을 교육적인 볼거리로 꾸며서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보여주려 하는가요?
임채욱 선생: 독립기념관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관한 유물과 자료를 보관, 전시 함으로서 대한민국은 일본 제국주의와의 독립전쟁 결과로 수립되고,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정통성을 가진 정부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뜻으로 세워졌지요. 반면에 조선혁명박물관은 김일성과 그를 따른 항일혁명군의 투쟁역사를 널리 알리려고 세웠던 박물관으로 전시물의 많은 부분이 김일성에 집중돼 있는 편이지요.
그럼 남북한의 기념박물관인 독립기념관과 조선혁명박물관은 어떻게 세워졌는지 그 과정을 한 번 알아볼까요? 먼저 독립기념관을 말해 주세요.
임채욱 선생: 독립기념관은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데 북한보다 많이 늦은 1987년 8월에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세우자고 논의가 시작된 것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광복 직후부터였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현시키지를 못하다가 1975년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활동하면서 민족박물관 설립 필요성을 정부에 건의했고 마침 1982년 일본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 편찬을 하게 돼서 이른바 교과서 파동이 일어났지요. 교과서 파동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것을 왜곡되게 그들 교과서에 실은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될 수 있는 여러 조건이 갖춰져 있다는 이른바 식민사관이란 것을 근거로 교과서를 쓴 것이지요. 이에 우리 우리나라 국민은 격분했고 이를 계기로 정부와 민간이 합심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기념관 설립을 추진한 것입니다.
다음은 북한 혁명박물관은?
임채욱 선생: 북한은 정권이 수립되기도 전인 1948년 8월 1일 평양 중구 역에 혁명박물관을 세웁니다. 이 박물관은 김일성의 발기로 세워지는데 김일성이 보관하던 이른바 혁명관계 자료들 외에는 별 자료가 없어서 1955년 8월이 돼서야 개관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1961년 1월 김일성 광장 동쪽에 좀 더 넓혀서 재개관을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1972년 4월 김일성 60회 생일을 맞아 만수대 언덕 넓은 터로 다시 이전합니다. 현재 만수대 언덕에 있는 이 박물관은 5만 평방미터로 커졌고 부지 넓이만 해도 24만 평방미터나 됩니다. 물론 북한 지역 어디에든 있는 김일성 동상은 여기에도 있습니다.
이 박물관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혁명사상을 알게 하고 그들이 현명하게 통치를 잘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느끼게 하고 공산주의 덕성이 이렇다는 것을 몸에 배이게 교양시키고 있지요. 이른바 혁명전통교양을 시키는 것이지요.
꾸며 놓은 전시물을 어떤 방식으로 해 놓았습니까?
임채욱 선생: 독립기념관은 7개의 전시관이 있는데, 민족전통관, 근대민족운동관, 일제침략관, 3.1운동관, 독립전쟁관, 임시 정부관, 대한민국관 등입니다. 우리 민족사에서 국난극복을 한 사례를 살펴보고 서양의 도전 앞에 겪는 민족의 시련을 본 다음, 일제가 우리나라를 어떻게 침략했는가를 살펴보면서 3.1운동과 독립전쟁을 어떻게 치뤘는지, 그 결과 상해에 임시정부를 어떻게 세우고 그를 계승한 대한민국 건국은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알게 합니다. 상해임시정부 계승론이 대한민국 정통성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 조선혁명박물관입니다. 혁명박물관은 혁명시대별로 나눠진 혁명관이 있고 조국통일관이 있고 일본동포관, 수령관 등을 포함해서 100개의 전시실이 있습니다. 혁명관의 시대별로 구분돼 있다고 했는데, 이른바 항일혁명투쟁시기로부터 시작해서 북한 정권이 세워지던 전후와 6. 25전쟁이 있던 시기를 거쳐서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사회를 만든다고 하던 시기,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이룩하는 시기 등등으로 돼 있습니다.
그럼 남북한은 독립기념관과 조선혁명박물관과 같은 기념박물관을 통해 정통성 확보라는 소기의 목적을 이뤄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물론 남북 각각은 기념박물관이 바라는 바의 목적을 이뤄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통성문제는 분단된 남북한에는 한 쪽이 확보하면 다른 쪽은 가질 수 없는 제로섬 게임이나 마찬가집니다. 한국의 임시정부 법통성론이나 북한의 혁명전통론은 결국 남북한 주민의 선택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정통성을 위한 남북한 기념박물관의 역할은 통일될 때까지 여전히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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