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6

‘동학역사만들기’에 방치된 역사적 진실 복원 - 교수신문




‘동학역사만들기’에 방치된 역사적 진실 복원 - 교수신문

‘동학역사만들기’에 방치된 역사적 진실 복원

교수신문
승인 2001.05.03


이훈상 / 동아대·사학과

‘`‘동학사’와 집강소 연구’는 화려한 이론적 가설이나 80년대 신망을 얻은 각종 이론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찾아볼 수 없는 고증으로 일관된 연구서이다. 그러므로 이것과 대화할 수 있는 이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 연구자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기존 논의들에서 그가 제기한 논제는 처음부터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 연구서의 핵심이라 할 오지영의 ‘동학사’에 대한 첫 연구 성과가 출간된 것은 1989년이다. 그 후 동학농민봉기 100주년이 되는 1994년을 전후하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숱한 심포지엄이 열렸지만 노용필은 어디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확신 속에서 진행된 한국사 연구자들의 ‘동학역사만들기’와는 전혀 다른 그의 목소리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오지영의 ‘동학사’는 동학농민봉기의 혁명적 이미지를 깊이 각인시키는 데 단서를 제공한 주요 논저였다. 이 책에 동학농민봉기군이 토지 분배 등을 개혁 강령으로 제기했다는 사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작 1894년 동학농민봉기가 일어날 당시의 기록에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다. 한 마디로 오지영의 ‘동학사’를 통하여 구축된 동학농민봉기의 혁명성은 그 진실에 대한 검토 없이 이제까지 근대사 서술에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한 셈이다. 그 강령의 진실성 여부에 회의를 제기한 연구자가 없지는 않았지만 노용필은 ‘동학사’의 초고와 간본 등을 오지영의 활동 등과 결부하여 면밀하게 살펴봄으로써 이 대목이 저자 오지영의 저술 의도에 맞추어 이루어진 것이라는 확고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 연구서의 또 다른 축을 구성하는 집강소의 성격에 대한 재해석도 되새겨봄직 하다. 그 성격과 역할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들이 나왔지만 이것이 농민들의 자치 역량을 입증하는 독자적인 기구라는 해석은 대체로 공통된다. 이에 대하여 노용필은 집강소가 기존의 행정 체계를 통해 도정에 반영하는 조직이라고 논박한다. 집강소의 주요 기능은 치안 유지에 있으며, 이를 통한 동학군의 폐정 개혁 요구도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논의가 기존 가설을 전복할 만큼 설득력을 가지려면 집강소의 역할과 이를 구성하는 부류들을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동학농민봉기 전에 집강소를 구성하는 부류들은 봉기 당시 교체되었는가? 봉기 조직과 동학 조직 등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러한 물음은 여전히 애매하다.

동학농민봉기와 대원군과의 관계를 밝힌 것도 동학농민봉기의 복잡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측면이다. 전봉준이 대원군의 문객이라는 기왕의 논의와 더불어 대원군과 동학농민봉기와의 관계에 대해 거론한 것은 대원군의 정치 구도와 관련하여 동학농민 지도부의 성격을 재규정하는 주요한 측면으로 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저작에 대한 면밀한 검토 결과, 장기간에 걸쳐 정착한 역사의 이미지를 전복시키지 않으면 안될 만큼 중요한 또 다른 사례가 있다.

한국과 일본, 미국의 한국근세사 연구자들에게 19세기 한국 정치사를 서술하는 데 기본 텍스트가 되어 온 박제경의 ‘근세조선정감’이 그것이다. 케네스 퀴논스가 지적했듯이 이렇듯 작은 분량의 책이 근대 한국사 서술에서 그토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퀴논스가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은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으며 매우 부정확하여 거의 활용할 수 없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근세조선정감’을 통하여 구축된 19세기 정치사의 이미지는 부식되지 않았으며 특히 대원군 시대에 대한 매우 중요한 학문적 성과가 축적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오지영의 ‘동학사’에 대한 비판적 검토, 집강소에 대한 새로운 가설, 그리고 대원군과 지도부와의 밀접한 관계 등의 이슈는 새로운 사실들을 추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의 논증이 합당하다면 이것이 수반하는 파장은 상상을 넘어선다. 그것은 동학연구가, 그가 마침표를 찍은 바로 그 지점부터 다시 출발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 제기된 갑오경장의 추진 세력과 그 성격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이러한 결론을 통하여 지반을 넓힐 수 있었다. 확신을 끊임없이 요구받는 시대에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지만 연구자들의 지나친 신념이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학역사만들기’라는 기념비 작업으로 뜨거웠던 1990년대를 증언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노용필의 연구가 방치된 것을 더불어 생각하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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