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연 칼럼]김원봉과 황장엽에 대한 불공평한 시선
조호연 논설주간
입력 : 2019.06.26
한국 보수의 특징은 대북강경정책이다. 하지만 실제 대북관 운용은 자의적이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박 대표는 편지에서 북한의 연호인 ‘주체’와 ‘북남’이란 용어를 구사했다. 어투 역시 ‘위원장님께 드립니다’로 시작해 시종 최고의 경어체로 일관했다. 편지 내용만 봐서는 ‘종북 빨갱이’ 그대로다. 그런데 누군가 이를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일 때 김정일에게 간 편지’라는 제목으로 박사모 카페에 올렸다. 박사모 회원들은 “북한 추종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북남이란 표현을” “마치 신하가 조아리는 듯하지 않습니까?” 등 거친 비난과 욕설을 쏟아냈다. 그러나 편지 쓴 사람이 박 대표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반응은 크게 달라졌다. “업무상 편지 좀 주고받은 것 갖고 뭐 이리 난리냐”는 식이었다.
북 지도자 찬양이라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 수 위다. 그는 1985년 김일성에게 보낸 친서에 “주석님께서 40여년 동안 평화정착을 위해 애쓰신 데 경의를 표한다”고 썼다. 정상외교라 해도 수백만명이 희생당한 6·25를 일으킨 ‘북한 수괴’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친서를 쓴 것은 아웅산테러 발생 후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이 편지가 공개돼 논란이 일었던 2013년 새누리당은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이중 잣대는 ‘약산 김원봉 서훈 논란’에서도 작동한다.
보수세력은 김원봉의 목숨 건 30여년 독립운동보다 ‘월북 후 행보’에 더 주목한다.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노동상까지 지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평가 속에 의열단 단장, 광복군 부사령,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을 역임하며 쌓은 혁혁한 독립운동 공적은 빛을 잃는다. 그러니 서훈은커녕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언급한 것만으로 펄펄 뛴다. “북의 전쟁 공로자에게 헌사를 보낸 대통령, 귀를 의심케 한다.”(전희경 대변인)
이해가 안되는 것은 자유한국당 일각에 김원봉 찬양분위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국당 소속 박일호 밀양시장은 김원봉 생가터를 매입해 ‘의열기념관’을 세웠다. “약산은 밀양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2015년 영화 <암살> 상영회를 국회에서 열었고, 당시 김무성 대표는 만세삼창을 했다. 2015년 새누리당 기관지 ‘새누리비전’은 김원봉의 활약상을 다루면서 “독립투사들의 뜻과 정신을 기리자”고 썼다. 정점은 ‘박근혜 역사교과서’다. 김원봉을 12번이나 언급하면서 상찬하고 있다.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정상화 교과서”라고 평가했다. 혼란스럽다.
보수의 대북관은 황장엽 앞에서 또다시 변신한다. 이명박 정부가 1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하고 국립묘지에 안장한 인물이다. “북한의 잔혹상을 알려 안보 태세 확립에 기여하고, 북한 민주화 발전과 개혁개방에 헌신했다”(맹형규 행안부 장관)는 이유였다. 황장엽은 남한 망명 후 13년간 북한 실상 폭로와 북한 정권 비난에 앞장섰다. 노동당 비서 등 요직을 지낸 그의 남한행은 그 자체로 북 정권에 큰 타격을 준 것은 맞다.
그러나 황장엽의 삶을 톺아보면 보수가 찬양할 수 없는 사실들이 드러난다. 북한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정립해 수령국가체제의 기틀을 세우고 세습독재의 명분을 제공한 것만으로도 서훈의 부당성은 충분하다. 이로 인해 북한 인권은 참담한 수준으로 악화됐고, 분단체제가 더욱 심화됐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의 나팔수 역할도 잦았다. 1988년 구주의회 사회당 의장 면담에서 “6·25는 북침전쟁”이라고 말하고, 115명이 희생된 대한항공 858기 폭파테러 사건에 대해 “생명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남한의 조작”이라고 모략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남한에서의 언행도 문제였다. 그는 ‘인간중심철학’ 연구와 강연활동을 계속해 “주체사상을 버리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일성을 비난했지만 한편으로는 호의적인 발언도 자주 해 “내심 김일성을 존경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실제로 그의 책과 강연에서는 김일성을 ‘식견 높고 지혜롭고 너그럽고 포용력 있는 지도자’로 묘사한 경우가 많다. “역사는 6·25전쟁을 일으킨 전범자로 김일성을 평가하지만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 보면 지도자로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본다.”(<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일부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한국당의 평가 잣대는 불공평하다. 황장엽의 경우 ‘74년간의 북한 행적’은 배척하고 ‘13년간의 남한 행적’만 평가한다. 김원봉은 ‘30여년 독립운동’은 외면한 채 ‘11년간의 북한 행적’에만 집착한다. 이 때문에 ‘항일무장투쟁의 대부’는 민족반역자로 전락하고 ‘주체사상의 대부’는 북한민주화위원장으로 변신했다. 모두들 동의하는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260600005&code=990100&fbclid=IwAR0oeYcSmYGyyF_Xd0oo7fwWrN4hqMGj3Rgbytgg7hbP5cpaIwhguvMstX8#csidxfd9938c1f6b3155b678f10ba4b54394
Vladimir Tikhonov
6 hrs ·
한국 극우들의 '약산 서훈 반대론'을 듣다 보면 이 중앙아세아 속담만이 기억납니다: "죽은 사자를, 당나귀도 발로 찰 수 있다"라는 속담이죠. 저들이 약산을 입에 올리는 것도, 불편하고 불경스럽게 느껴집니다. 저들은, 약산이 의열단 동지들을 폭탄과 권총을 주면서 식민지 조선이라는 사지로 내보내는 그 심정을 이해나 할 수 있을까요? 친일 경찰에게서 고문과 모욕을 당하고 나서 부득불 월북한 뒤에 남한에 남은 거의 온 가족들이 다 학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그가 느꼈을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1956년 종파 사건 이후의 연안파의 몰락을 그가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었는지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저들이 약산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이게 20세기 한/조선반도의 대비극이죠.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적인 근대적 개인이 된 사람들은, 그 독립심 그 주체성 탓에 남북/북남의 그 어느 병영화된, 타율적인 명령-복종 체제에서도 그 주류에 편입될 수 없었습니다. 김원봉, 박헌영처럼 북에서 죽거나, 조봉암, 신향식처럼 남에서 죽거나, 이현상, 박치우처럼 유격전하다 죽거나, 윤이상, 조승복처럼 그냥 "제3국"에서 외롭게 살다 죽거나....저는 오늘날 극우들의 "약산 콤플렉스"를 보면서 약산이 궁극적으로 남에서도 북에서도 생존할 수 없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재확인합니다. 세상의 모든 색깔들을 다 흑 아니면 백, 천하 만인들을 "내 편" 아니면 "너 편"으로 다 획일적으로 이분화시키고 同黨伐異에만 열중하는 소인배들 무리하고는 약산이 같은 땅에서 살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입력 : 2019.06.26
한국 보수의 특징은 대북강경정책이다. 하지만 실제 대북관 운용은 자의적이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박 대표는 편지에서 북한의 연호인 ‘주체’와 ‘북남’이란 용어를 구사했다. 어투 역시 ‘위원장님께 드립니다’로 시작해 시종 최고의 경어체로 일관했다. 편지 내용만 봐서는 ‘종북 빨갱이’ 그대로다. 그런데 누군가 이를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일 때 김정일에게 간 편지’라는 제목으로 박사모 카페에 올렸다. 박사모 회원들은 “북한 추종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북남이란 표현을” “마치 신하가 조아리는 듯하지 않습니까?” 등 거친 비난과 욕설을 쏟아냈다. 그러나 편지 쓴 사람이 박 대표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반응은 크게 달라졌다. “업무상 편지 좀 주고받은 것 갖고 뭐 이리 난리냐”는 식이었다.
북 지도자 찬양이라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 수 위다. 그는 1985년 김일성에게 보낸 친서에 “주석님께서 40여년 동안 평화정착을 위해 애쓰신 데 경의를 표한다”고 썼다. 정상외교라 해도 수백만명이 희생당한 6·25를 일으킨 ‘북한 수괴’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친서를 쓴 것은 아웅산테러 발생 후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이 편지가 공개돼 논란이 일었던 2013년 새누리당은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이중 잣대는 ‘약산 김원봉 서훈 논란’에서도 작동한다.
보수세력은 김원봉의 목숨 건 30여년 독립운동보다 ‘월북 후 행보’에 더 주목한다.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노동상까지 지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평가 속에 의열단 단장, 광복군 부사령,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을 역임하며 쌓은 혁혁한 독립운동 공적은 빛을 잃는다. 그러니 서훈은커녕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언급한 것만으로 펄펄 뛴다. “북의 전쟁 공로자에게 헌사를 보낸 대통령, 귀를 의심케 한다.”(전희경 대변인)
이해가 안되는 것은 자유한국당 일각에 김원봉 찬양분위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국당 소속 박일호 밀양시장은 김원봉 생가터를 매입해 ‘의열기념관’을 세웠다. “약산은 밀양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2015년 영화 <암살> 상영회를 국회에서 열었고, 당시 김무성 대표는 만세삼창을 했다. 2015년 새누리당 기관지 ‘새누리비전’은 김원봉의 활약상을 다루면서 “독립투사들의 뜻과 정신을 기리자”고 썼다. 정점은 ‘박근혜 역사교과서’다. 김원봉을 12번이나 언급하면서 상찬하고 있다.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정상화 교과서”라고 평가했다. 혼란스럽다.
보수의 대북관은 황장엽 앞에서 또다시 변신한다. 이명박 정부가 1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하고 국립묘지에 안장한 인물이다. “북한의 잔혹상을 알려 안보 태세 확립에 기여하고, 북한 민주화 발전과 개혁개방에 헌신했다”(맹형규 행안부 장관)는 이유였다. 황장엽은 남한 망명 후 13년간 북한 실상 폭로와 북한 정권 비난에 앞장섰다. 노동당 비서 등 요직을 지낸 그의 남한행은 그 자체로 북 정권에 큰 타격을 준 것은 맞다.
그러나 황장엽의 삶을 톺아보면 보수가 찬양할 수 없는 사실들이 드러난다. 북한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정립해 수령국가체제의 기틀을 세우고 세습독재의 명분을 제공한 것만으로도 서훈의 부당성은 충분하다. 이로 인해 북한 인권은 참담한 수준으로 악화됐고, 분단체제가 더욱 심화됐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의 나팔수 역할도 잦았다. 1988년 구주의회 사회당 의장 면담에서 “6·25는 북침전쟁”이라고 말하고, 115명이 희생된 대한항공 858기 폭파테러 사건에 대해 “생명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남한의 조작”이라고 모략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남한에서의 언행도 문제였다. 그는 ‘인간중심철학’ 연구와 강연활동을 계속해 “주체사상을 버리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일성을 비난했지만 한편으로는 호의적인 발언도 자주 해 “내심 김일성을 존경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실제로 그의 책과 강연에서는 김일성을 ‘식견 높고 지혜롭고 너그럽고 포용력 있는 지도자’로 묘사한 경우가 많다. “역사는 6·25전쟁을 일으킨 전범자로 김일성을 평가하지만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 보면 지도자로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본다.”(<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일부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한국당의 평가 잣대는 불공평하다. 황장엽의 경우 ‘74년간의 북한 행적’은 배척하고 ‘13년간의 남한 행적’만 평가한다. 김원봉은 ‘30여년 독립운동’은 외면한 채 ‘11년간의 북한 행적’에만 집착한다. 이 때문에 ‘항일무장투쟁의 대부’는 민족반역자로 전락하고 ‘주체사상의 대부’는 북한민주화위원장으로 변신했다. 모두들 동의하는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260600005&code=990100&fbclid=IwAR0oeYcSmYGyyF_Xd0oo7fwWrN4hqMGj3Rgbytgg7hbP5cpaIwhguvMstX8#csidxfd9938c1f6b3155b678f10ba4b54394
Vladimir Tikhonov
6 hrs ·
한국 극우들의 '약산 서훈 반대론'을 듣다 보면 이 중앙아세아 속담만이 기억납니다: "죽은 사자를, 당나귀도 발로 찰 수 있다"라는 속담이죠. 저들이 약산을 입에 올리는 것도, 불편하고 불경스럽게 느껴집니다. 저들은, 약산이 의열단 동지들을 폭탄과 권총을 주면서 식민지 조선이라는 사지로 내보내는 그 심정을 이해나 할 수 있을까요? 친일 경찰에게서 고문과 모욕을 당하고 나서 부득불 월북한 뒤에 남한에 남은 거의 온 가족들이 다 학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그가 느꼈을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1956년 종파 사건 이후의 연안파의 몰락을 그가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었는지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저들이 약산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이게 20세기 한/조선반도의 대비극이죠.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적인 근대적 개인이 된 사람들은, 그 독립심 그 주체성 탓에 남북/북남의 그 어느 병영화된, 타율적인 명령-복종 체제에서도 그 주류에 편입될 수 없었습니다. 김원봉, 박헌영처럼 북에서 죽거나, 조봉암, 신향식처럼 남에서 죽거나, 이현상, 박치우처럼 유격전하다 죽거나, 윤이상, 조승복처럼 그냥 "제3국"에서 외롭게 살다 죽거나....저는 오늘날 극우들의 "약산 콤플렉스"를 보면서 약산이 궁극적으로 남에서도 북에서도 생존할 수 없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재확인합니다. 세상의 모든 색깔들을 다 흑 아니면 백, 천하 만인들을 "내 편" 아니면 "너 편"으로 다 획일적으로 이분화시키고 同黨伐異에만 열중하는 소인배들 무리하고는 약산이 같은 땅에서 살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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