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치 - 망국의 신하에서 일본 경제의 전설이 되기까지
[eBook]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 망국의 신하에서 일본 경제의 전설이 되기까지
시부사와 에이이치 (지은이),박훈 (옮긴이)21세기북스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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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 망국의 신하에서 일본 경제의 전설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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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0979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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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경영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히는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직접 구술한 자서전으로 그가 일본 경제의 전설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성공 철학을 담고 있다.
메이지 유신 전후를 살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난세를 잘 사용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막부의 신하에서 메이지 정부의 관리까지 되었다. 이후 관직을 그만두고 500여 개의 기업을 설립하면서 일본 자본주의의 뼈대를 세웠다. 동시에 양육원, 적십자사 등 600여 개의 자선기관을 세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어떤 자세로 어려운 시대를 이겨내 독보적인 경영인이 되었을까? 이 책 곳곳에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인생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다. 글의 역주자이자 일본사 연구의 권위자인 박훈 교수는 당시 일본의 역사적 배경과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정신과 전략을 소개함으로써 내용의 전문성을 더했다.
목차
역주자의 말
머리말
1. 청년 시부사와
뜻을 펼칠 줄도,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
- 나의 소년 시대
- 뜻을 세우고 고향을 나서다
2. 막부의 신하가 되다
우연한 계기를 커다란 기회로
- 뜻을 세우고 고향을 떠나다
- 낭인 생활
- 히토츠바시가 출사
- 미토 낭사 문제
- 녹주홍등 속에서 마음가짐을 철과 돌처럼 하다
- 군대 모집의 고심
- 산업 장려와 번찰 발행
3. 유럽에 가다
더 넓은 세계와의 조우
- 개혁 착수
- 새로운 계획의 성공
- 막부 근무
- 외국행
4. 망국의 신하에서 신정부의 관리로
국가 건설을 위한 결심
- 귀국과 형세 일변
- 시즈오카번 출사와 상평창
- 메이지 정부 출사
5. 일본의 제도를 개혁하다
부강한 나라를 위한 분투
- 재임 중의 사업
- 퇴임과 건의서
- 재정 개혁에 관한 상주문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그런데 일신상의 이력을 자세히 얘기하려면 아무래도 훨씬 이전의 과정부터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P. 5 시부사와가 현재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기업 설립?운영에 관한 업적도 업적이지만, ‘도덕 경영’이라고 하는 그의 독특한 경영 철학 때문일 것이다. 특히 『논어』를 경영인의 필독서로 생각한 그는 부를 이루는 근원은 인의 도덕이며, 올바른 도리에 따라 쌓은 부가 아니면 그 부는 영속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도덕?경 제 합일설은 국내에도 제법 알려져 있다.
【역주자의 말】 접기
P. 14 짧다고 생각하면 한순간도 아니고, 길다고 보면 천 년도 더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일생이다. 하지만 짧은지 긴지는 꼭 흐른 세월의 숫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은 일들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또는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내 생애를 말하자면, 옛날 고향에 있을 때는 쟁기와 소쿠리를 짊어졌고, 장마에는 나비가 밀을 먹어버릴까 걱정했으며, 가뭄에는 묘판에 물이 부족한 것을 원망하며 살았다. 그러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한탄하여, 겁 없게도 국가의 우환을 자신의 우환이라고 여겨 줄곧 살아왔던 초가집을 떠나 서쪽의 수도[교토]로 갔다.
【머리말】 접기
P. 31~32 사치에 물든다는 것은 원래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차이가 없는 것이다. 미세한 부분이라도 그 분수에 따라 처음 시작될 때 잘 자제하지 않으면, 마침내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경우는 예로부터 얼마든지 그 예가 있다. 지금 내가 이렇게 화려한 벼루 상자와 책 상자를 살 정도라면 다음엔 집도 서재도 맘에 안 든다며, 만사에 사치해서 결국 햐쿠쇼 집안을 견고하게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1. 청년 시부사와】 접기
P. 62 지금 같은 위태로운 시세에 처해 있으면서 내 본분이 아니라고 정치에 입을 열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므로, 정말로 마음을 다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데에 분골쇄신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2. 막부의 신하가 되다】
P. 166 프랑스 수도 파리에 가서 당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에게 대박람회에 참가하러 왔다는 취지의 국서를 봉정하고 답서를 받아 공식적인 의식을 마쳤다……. 나는 공자 신변의 일을 살피거나 혹은 일본에 공적인 문서를 발송할 때에 그것을 집필하거나 했다. 또는 야마다카를 비롯하여 공자 직속의 사람들에게 월급을 지급하거나 공자를 위해 잡화를 매입하거나 하는 일도 했다. 마치 서기와 회계를 겸한 거 같은 직책이었지만 평소에는 매우 한가했기 때문에 그사이에 프랑스어를 공부할 생각을 했다.
【3. 유럽에 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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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시부사와 에이이치 (澁澤榮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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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 말기에 농업과 상업과 겸한 집에서 태어난 시부사와 에이치는 어려서부터 ‘왼손에는 논어, 오른 손에는 주판을 들고’, 선비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익혀나갔다. 1867년 27살의 그는 파리 만국박람회를 시찰한 것을 계기로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산업제도가 얼마나 우수한지를 몸소 체득한 후 1869년 메이지 정부의 조세국장, 구조개혁 국장을 맡고 일본의 조세,화폐,은행,회계 제도를 근대적으로 개혁하였다.
1873년 33살에 ‘상업이 부흥해야 나라가 선다.’는 신념으로 관직을 버리고 실업계에 투신했다. 미즈호 은행, 도쿄가스, 도쿄해상화재보험, 태평양시멘트, 데이코쿠호텔, 치치부철도, 도쿄증권거래소, 기린맥주, 세키스이 건설 등등 500개의 기업 설립에 관여하며 일본에서 ‘최초의’ 사업과 제도를 수없이 벌여나갔다. 상인에게 고등교육이 필요 없다는 당시의 편견을 깨고 히토쓰바시, 도쿄게이자이, 와세다, 도시샤 대학 등의 설립에 관여했다. 도덕·경제합일설을 평생 동안 주창하며 실업계에서 은퇴한 후에도 부를 사회적으로 환원했다. 도쿄양육원, 일본적십자사, 세우루카국제병원 등등 600여 개의 공익단체를 주도하고 미국, 중국, 인도 등과 민간외교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이러한 공로들로 자작 칭호를 받고 1926년, 1927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때문에 ‘일본 경제의 아버지’ ‘일본 금융의 왕’, ‘일본 근대자본주의의 최고영도자’, ‘일본 현대문명의 창시자’라고 불린다.
저서로는 <청연백화> <논어와 주판> <논어강의> <경제와 도덕> <논어처세담> <아마요가타리> 등등이 있다. 특히 1927년에 낸 <논어와 주판>에서 ‘공자는 부귀가 악’이라고 했다는 주자학파의 해석을 오류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정당한 부는 부끄럽지 않고 지속가능한 부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했다. 왼손에는 건전한 부의 윤리를 강조하는 ‘논어’, 오른 손에는 화식(貨殖)의 ‘주판’을 들고 당당하게 경제활동을 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이 책은 ‘일본 상인의 나침반, 일본을 굴기시킨 비즈니스의 상경(商經)’으로 불리며 끊임없이 읽히고 있다. 공익을 전제로 한 부는 다수의 부라는 합본주의(合本主義) 전통을 세웠기에 “서양의 경영학에는 피터 드러커, 동양의 경영학에는 시부사와 에이치”라는 칭송을 듣는다. 접기
최근작 : <논어와 주판>,<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논어와 주판 (보급판)> … 총 8종 (모두보기)
박훈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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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도쿄대학 총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메이지 유신과 일본 근대화이다.『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사료로 보는 아시아사』(공저)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공저) 『근대화와 동서양』(공저) 『일본사의 변혁기를 본다』(공저)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으며 『일본이란 무엇인가』를 번역했다.
박훈 교수는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에서 상세한 역주를 통해 우리에게 다소 낯선 막말 유신기 일본사의 전개과정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온 일본 경제의 아버지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잘 알려지지 않은 모습과 삶의 태도, 경영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인문학의 성찰과 전망>,<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사료로 보는 아시아사> … 총 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나는 경영의 본질을 시부사와 에이이치에게 배웠다.” -피터 드러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어떻게 일본 경제의 아버지가 되었는가?
경영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히는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직접 구술한 자서전으로 그가 일본 경제의 전설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성공 철학을 담고 있다. 메이지 유신 전후를 살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난세를 잘 사용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막부의 신하에서 메이지 정부의 관리까지 되었다. 이후 관직을 그만두고 500여 개의 기업을 설립하면서 일본 자본주의의 뼈대를 세웠다. 동시에 양육원, 적십자사 등 600여 개의 자선기관을 세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어떤 자세로 어려운 시대를 이겨내 독보적인 경영인이 되었을까? 이 책 곳곳에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인생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다. 글의 역주자이자 일본사 연구의 권위자인 박훈 교수는 당시 일본의 역사적 배경과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정신과 전략을 소개함으로써 내용의 전문성을 더했다. 이 책을 통해 성공한 경영인으로써, 자신만의 철학을 실천했던 사상가로써, 도덕적인 삶을 살았던 한 인간으로써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진정한 부의 창출은 도덕 경영에서 시작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영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일본의 근대화와 자본주의에 앞장선 인물로 유럽의 주식회사제도를 들여와 철도회사, 가스회사, 전등회사, 방직회사 등을 설립했다. ‘삿포로맥주’, ‘임페리얼호텔’, ‘도쿄전철’ 등 그가 세운 기업들은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커다란 기둥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찬사 받는 이유는 그가 이룬 경제적인 성과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일본에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들어오기도 전, 즉 상업이 무시 받던 시기에 경제의 중요성을 통찰했다. 동시에 경제 부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도덕’을 꼽았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도덕과 경제는 서로 반(反)하는 게 아니라 수레의 두 바퀴처럼 서로 의지하며 굴러가야 진정한 근대 자본주의가 완성된다.”고 하며 ‘인의’와 ‘도덕’을 선행되어야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재산 축적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경영인들의 비윤리적인 행태들이 드러나는 오늘날, ‘도덕 경영’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정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신화가 된 남자,
그의 위대한 도전이 시작된다
청년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일본의 개방을 요구하는 서양의 목소리에 거세게 반항했다. 그는 미국과 조약을 맺은 막부를 부정하며 일종의 봉기를 계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막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막부의 신하가 되었다.
이후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파리 만국 박람회에 참가해 유럽을 돌아보며 서양의 문화를 직접 목도하게 되었다. 그는 서양의 주식회사 제도 등을 보며 일본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럽 체류 중에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몸담았던 막부가 붕괴해버렸고 시부사와는 졸지에 ‘망국의 신하’가 되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시부사와 에이이치에게 이번엔 메이지 정부가 손을 내밀었다. 이제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정부의 관료로 변신하여 근대일본의 틀을 구축하는데 앞장섰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서양 자본주의의 잔상은 너무나 짙게 남았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머지않아 관직을 그만두고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장사치들을 손가락질 하던 당시, 촉망받는 관리였던 시부사와는 일본에 주식회사제도를 도입하여 상업을 부흥시키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도전은 일본이 경제 강국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었다. 결국 이 책은 시부사와 한 개인의 도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본 경제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이기기도 한 것이다.
메이지 유신의 전문가 서울대학교 박훈 교수의
상세한 설명과 유려한 번역!
친척들은 비오는 날 밤이면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찾아와 그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됐는지 이야기를 청했고 그 이야기를 받아 적은 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이 책이 자신의 자손들에게 읽히길 바라며 자신의 ‘유품’이라고 했다.
메이지 유신과 일본 근대화 전문가인 박훈 교수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남긴 이야기를 되새기며 독자들에게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독자들이 메이지유신 전후의 시대적인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한 주석을 더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소설 같은 이야기와 박훈 교수의 친절한 설명이 더해진 이 책은 독자들에게 평생의 ‘유품’으로 남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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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읽는가? ‘도덕경영’을 실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정부 관리로, 사업가로 지내면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흔치 않은 일이다. 이 책은 그가 직접 구술한 자서전이다.
파워리뷰어 2018-12-21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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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불문하고 남다른 철학을 가진 사람은 그 시대를 평정하게 되어 있나 봅니다. 신분을 떠나서 사업가로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란 쉽지 않은것 같다.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이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긴점은 나라를 불문하고 배울점인것 같다.
이민선 2019-02-1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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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지사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다
개인적으로 일본 메이지시절, 막부파와 존왕파의 대결구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어쩌면 한 때 내가 즐겨 보던 만화 <바람의 검심>의 영향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 만화가 없었다면 보신전쟁이니 도바후시미전투 그리고 하코다테 전쟁에 대해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중의 하나인 신센구미 출신 후지타 고로에 대한 이야기도 현대일본을 설계한 막부의 신하이자, 신정부 관료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가로도 유명한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반생을 다룬 자서전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의 하나다.
사이타마현 농상의 집안에서 태어난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어려서부터 글을 가까인 한 소년이었다. 아마 그 시절 일본 소년들처럼 <대학>과 <중용>도 배운 모양이다. 한학은 동아시아 제국을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적 소양이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소설 읽기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중국고사를 다룬 소설들과 패관야승 부류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아버지가 하시는 가업을 도와 쪽을 매입하는 일을 하면서 상업의 세계에 투신하기도 했다. 그의 이재 기술은 훗날 입신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신분상으로 햐쿠쇼(농민)인 시부사와는 1853년 페리 제독의 흑선이 내항하면서 강제개국을 하게 되고, 당시 일본을 지배하던 도쿠가와 막부의 무능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막부 타도를 목표로 폭거를 기획하기도 한다. 역시 청년 지사다운 기개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모양이다. 막부 타도를 인생의 목표로 조정했던 청년이 막부에 들어가 가신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막부 조정의 인정을 받은 시부사와는 어엿한 사무라이 대접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주특기인 회계와 재정 분야의 역량을 인정받아 막부의 역인으로 출중한 실력을 과시하기에 이른다.
히토츠바시가의 가신으로 교토수어총독으로 내정된 주군을 위해 영지에 내려가 병력을 소집하고, 식산흥업을 장려한다. 시부사와는 어쩌면 상업이야말로 미래 일본국가의 방향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왜 우리는 시부사와같이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이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인재가 없었나 싶다. 아니 그런 인재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 위정자들을 탓해야 하는 걸까? 시부사와가 가신 그룹에 등용되기 전, 몰래 주군을 만나 담판을 짓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주군이 가신을 고를 수도 있지만, 가신이 주군을 골라 충성을 맹세할 수도 있다는 건 조선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으리라. 물론 신분 간의 위계질서가 엄정한 일본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흑선의 내항과 제국의 식민지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국가적 위기감이 그런 사고의 발상을 가져온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편, 14대 쇼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히토츠바시공이 막신 그룹에 의해 다음 쇼군으로 내정이 되자 당시 정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시부사와는 쇼군 계승을 극렬하게 반대한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도쿠가와 막부의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그런데 시부사와의 이런 주장들이 모두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에 쓰인 글이 아닌 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중에 오래 시간이 나서야 비로소 그 시절을 되돌아 보며 회상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슬쩍 끼워넣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시절에 이렇게 주장했다고 말이다. 어쨌든 시부사와의 주장대로 막부의 15대 쇼군이 된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훗날 삿초동맹으로 알려진 조슈번과 사쓰마번의 공격 아래 결국 대정봉환을 하고 700년간 이어진 무신정치를 마감하게 된다.
시부사와는 이런 망국의 소식을 본국 일본이 아니라, 도쿠가와의 민부공자를 모시고 프랑스 유학길에서 듣게 된다. 그는 미래 벌어질 서구 열강과의 (제국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서구의 선진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개화된 사고를 가진 인사였다. 소년 도쿠가와 아키다케를 호종한 다른 사무라이들과는 달리 장기간에 걸친 유학준비에도 시부사와는 철두철미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한 시부사와는 원래 신정부에 출사할 생각 없이, 미토의 후계자가 된 민부공자를 모시거나 아니면 시즈오카번으로 삭번(400만석->70만석)된 과거 주군 요시노부공을 종사할 생각이었다. 귀국 후 자신과 한 때 뜻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 쇠락한 막부파에 서서 차례차례 죽어가는 모습에 회한을 느끼기도 한다. 이미 천하의 대세가 메이지 유신파로 돌아섰다는 것을 깨달은 시부사와는 코너에 몰린 막부파들이 장기전 대신 하코다테에 집결한 해군력을 동원해서 경천동지할 신묘한 방식으로 천하를 뒤흔들어야 살 길이 생기리라는 냉철한 분석도 내놓는다. 결국 그들은 똘똘 뭉친 토막파에게 진압당하고 말았다.
시대는 천하의 인재를 시골에서 썩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신정부의 대장성을 맡은 대보 오쿠마 시게노부는 그를 설득해서 등용하는데 성공한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행적에 다시 한 번 의혹을 품게 되는데, 대장성 상관인 소보가 바로 우리에게는 원수 같은 존재였던 이토 히로부미라는 점이다. 과연 신정부의 관료이자 미래의 기업가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정한론의 주창자이자 제국주의자 이토 히로부미의 영향을 단 1도 받지 않았을까.
어쨌든 대장성을 통해 입신한 시부사와에게 주어진 임무는 차고 넘쳤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걸으며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는 일이 바로 그가 맡은 바였다. 폐번치현이라는 수백년된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정치상의 대업으로부터 시작해서, 조세 징수 화폐개혁과 철도부설 그야말로 한 때 청년지사가 꿈꾼 나라의 기틀을 만드는 일들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특히 메이지 시대 근대적 세입세출의 근거한 재정개혁은 꼭 필요한 과제였다. 그때 이미 정부 내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가진 군부(육군과 해군)는 정액론을 주창하기 시작했다. 타이완정벌을 반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내가 보기에 자신은 군부독재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저자의 변명으로 보인다) 결국 대장성을 사퇴하는 것으로 시부사와 에이이치 삶의 전반기를 마친다.
요시다 쇼인 같은 자가 메이지 유신의 이데올로그였다면,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앞선 사상가들이 만든 부국강병(나라가 강해지면 반드시 침략전쟁이 뒤따르기 마련이다)의 실제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데 앞장 선 경세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구의 내셔널뱅크를 모델로 삼은 제일국립은행을 만들어, 번찰의 태환과 화폐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했고 상공업 식산을 위해 수많은 기업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했다. 문제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이룬 일련의 행동들이 훗날 군국주의 일본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도구가 불의하게 사용된다면 그것을 좋게 바라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인민의 생활개선을 위해 자신의 부분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그렇게 만들어진 군국주의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의 연이은 승전에 고무되어 한반도를 병탄하고 만주를 침공했으며, 결국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황된 주장을 펼치며 태평양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런 전쟁에 필요한 전쟁물자를 만들어낸 곳이 바로 내로라하는 일본의 기업들이라는 것도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던가. 과연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타이완정벌에 반대했다는 것 정도로 군국주의 일본국가 융성의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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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01 공감(25)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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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대
【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 - 망국의 신하에서 일본 경제의 전설이 되기까지
_시부사와 에이이치 (지은이), 박훈 (옮긴이) | 21세기북스 | 2018-12-17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누구인가? 그는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에서 일본 패전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 가장 저명한 경제인, 기업인으로 소개된다. 막 문을 연 메이지 정부에서 경제 관료를 지낸 후 바로 실업계에 몸담았다. 대장성 관료시절 시부사와는 측량, 도량형 개정, 조세 개정, 지폐 제도 도입, 철도 부설 등 일본의 근대 경제 건설에 핵심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했다고 한다.
경제계로 진출한 시부사와는 오사카방적회사, 제일국립은행 등 근대 일본 경제의 핵심적인 회사들을 비롯하여 평생 5백여 개의 기업, 경제조직 설립에 간여했다고 하니 퍽 대단한 일이다. 반면 그는 자신의 재벌기업군을 끝내 만들지 않았다고 하니 이 또한 특이한 일이다. 아울러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시부사와의 정치적 입장 중 가장 주목할 것은 그가 초지일관 일본 정부의 군사적 해외팽창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었다는 점이다. 그가 시류에 휩쓸려 강병노선을 택했다면 읽을 만한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한 개인적 삶의 여정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막부(幕府) 말기에서 메이지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일본 사정을 알아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책의 번역자인 박훈 교수는 막부말 유신기 전공자로서 역주를 통해 이 시기 일본사의 전개과정을 보충설명해주고 있다. 피터 드러커를 비롯한 많은 경영인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다는 시부사와 에이이치. 이 책은 그의 소년시절부터 청년기까지의 삶을 구술한 것을 글로 남긴 것이다(책으로 완성된 것은 시부사와가 60세 때).
유년기의 독서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가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6살 때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구두(句讀)를 배우고 나서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읽고 『논어(論語)』 2장까지 배웠다.” 그 후 7,8세 때부터 친척(사촌형)이 운영하는 사숙(私塾)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그가 받은 독서훈련은 암송할 수 있을 때까지 정성껏 반복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서책을 통독시켜서 자연스럽게 힘을 기르게 한 다음 여기는 이런 의미, 여기는 이런 뜻이다라는 식으로 스스로 터득하게 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지도자는 다독(多讀)을 권장했다. 아이들의 독서 훈련에도 응용해볼 만한 부분이다.
책을 읽다보니 격동의 세월에 나름대로 참 열심히 살다간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책 뒷부분에는 그가 정부 관료의 자리를 떠나면서, 정부가 민생과 민력을 돌보지 않고 재정을 확대하거나, 큰 사업을 벌이는 것을 크게 염려하는 일종의 경고성 의견서가 첨부되어있다. 그는 일본의 타이완(臺灣) 정벌 반대의견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일본 정부는 막대한 재정을 소모하며 타이완을 침략했다. 〈재정 개혁에 관한 상주문〉에 실린 글 중 현시대의 정치, 관료들이 마음에 담았으면 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대저 천하지사(天下之事)는 미리 목표를 높게 잡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실제 일을 할 때에는 한발 한발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실질을 위주로 하여 정치 논리(政理)가 민력 양성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코 서둘러 경솔하게 나아가려고 하거나 하루아침에 급히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의설계자
#시부사와에이이치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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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리뷰어 2019-01-07 공감(1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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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과거처럼 백도 경장百度更張에만 힘쓰고 개명을 정치 방면에만 구하게 된다면, 백성을 보호할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정부가 백성을 보호할 길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어떻게 숨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258p
근대 일본 경제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국의 한 다큐멘터리 덕분이었습니다. ‘왼손에는 논어를 오른손에는 주판을’이라는 말로 소개되었던 시부사와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었지요. 그러다 이번에 그의 자서전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읽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다한 유품으로 생각해달라는 말이 인상적이었고, 예스러운 어투와 어휘가 처음에는 난감하기도 했었네요. 메이지 유신 전문가 박훈 교수의 역주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래된 글을 읽는 느낌에 빠져들며, 점점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전해진 지혜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맨 뒤에 연표가 있는데, 1840년에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1931년에 영면에 들기까지 그의 일대기에 옅은 글씨로 나열된 역사적 사건만 살펴보더라도 그가 살던 시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막부에서 메이지 정부의 관료로 그리고 상공업을 부흥하는 것이 먼저라는 신념으로 일본의 자본주의의 기틀을 닦는데 앞장서게 됩니다. 또한 경제적 부흥에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람이기에 교육에도 앞장섰고, 각종 자선기관을 세우는데도 몰두했습니다. 은행, 철도, 전기, 방송, 항공에 이르기까지 기간산업에 집중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재정 개혁에 관한 상주문’을 보면 백성을 지킬 길이 어디 있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대로 나아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부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리고 민부공자를 수행하고 파리 만국 박람회를 다녀오던 이야기도 그러하고,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의 유연성입니다. 양이론을 주장했지만 외국에 나가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외국어를 배울 결심하고, 자신이 속한 막부가 무너졌지만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인재상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빠르게 활로를 찾고, 또한 메이지 정부에 들어가는 과정도 저에게는 그렇게 다가왔거든요. 자신이 어린 시절 목표한 곳을 향해 나아감에 있어서 굽혀야 할 때는 굽히고, 필요한 것은 취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처음에는 도덕경영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의심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의 일대기를 보니 논어와 주판을 양 손에 들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사탄의 맷돌’이라고 말했던 칼 폴라니가 이 책을 읽었다면 아주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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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9-01-02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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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 경제의 거물,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청년기
일본 메이지 시대의 저명한 경제인이자 기업가인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어린 시절부터 가 일본 경제의 거물이 되기까지의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원전은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구술을 받아 적은 책 <비 오는 날 밤의 이야기 -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자서전(雨夜譚 渋沢栄一自伝)>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에도 막부 말기였던 1840년에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가신이 된 시부사와는 1867년 요시노부의 명을 받아 파리 만국 박람회를 시찰하게 된다. 시부사와는 이를 계기로 유럽의 자본주의와 기업 경영의 중요성에 눈 뜨게 된다. 막부가 멸망한 후 일본에 귀국한 시부사와는, 막부의 가신이라도 유능한 인재는 널리 등용한다는 신 정부의 방침에 따라 대장성 재무 담당으로 발탁된다. 이후 시부사와는 4년간 경제 관료로 일하며 신 정부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퇴직 후에는 잘 알려진 대로 기업 경영에 투신해 일본 경제를 이끄는 거물로 성장한다.
이제 막 출범한 신 정부이기는 해도 대장성 재무 담당 관료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자리인데 취임한 지 4년 만에 사의를 표하고 자리에서 내려온 이유가 흥미롭다. 당시 일본은 왕정 유신이라며 그 이름은 실로 아름다운 듯하지만 실은 폐번치현 후 정치가 조금도 정돈되어 있지 않아 국가는 피폐하고 민생은 열악하다. 이런 때에 '외국에서 일을 만들어 전쟁을 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그러니 자신은 정계에서 빠져나와 상공업 부흥에 힘쓰겠다는 것인데, 지금에 와서 보면 상당히 현명한 처사로 보이지만 당시로선 신 정부에 충성하기를 거부하는 몸짓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생애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인 실업가 시절 직전에서 책이 끝난 것은 아쉽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시부사와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일본 역사와 경제에 관한 나의 지식이 높지 않아 서울대학교 박훈 교수의 상세한 설명과 유려한 번역 덕을 많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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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2019-01-04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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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혼신을 다해 세상을 구제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멀리 돌아가는 방법으로는 우선 현명한 주군 밑에서 벼슬을 해서 말이 받아들여지고 지모가 쓰이거나, 또는 로쥬나 와카도시요리의 직책을 얻어 천하의 정치에 간여하는 것이 순서에 맞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도더히 이룰 수 없었다. 특히 그 당시 도쿠가와 정치는 이른바 세관, 세직 이라고 해서 문벌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 아무리 능력이나 재주와 지식이 있더라도 새로이 그 지위에 오를 수는 없었다. 그 밖의 관직도 모두 제각각 계급 순서가 있어서 농민 따위가 아무리 재주와 지식이 있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천하는 커녕 일국일군의 정사에도 간여할 수 없는 제도였다. (P63)
전회까지 얘기한 것은 처음에 농상의 신분에서 갑자기 낭인이 되고 낭인에서 히토츠바시가에 사관하여 마침내 유럽에 갔다가 하는 수 없이 돌아와 시즈오카에서 조용히 살 생각이었는데, 조정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어 현 정부에 봉직할 때까지의 경력이었다. 이것은 내 신상에 가장 변화가 많을 때의 얘기였다. 특히 그 무렵은 이른바 소장 객기가 격심할 때이고 또 시세 변천도 매우 급격하여 의외의 일도 많았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변화도 적고 용장 활발한 것고 없으므로 잘 참고 들어주기 바란다.(P218)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1840년에 태어나 193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에 대해서 '일본 경제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의 존재 가치는 일본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시부사와 에이이치에 대한 전기적인 성격을 가진 책들은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 '경영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가 시부사와 에이이치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의 존재가치는 커져가게 되었다.이 책을 읽기 전에 시부사와 에이이치에 대한 간략한 정보들을 훑어본 뒤에 읽어본다면 이 책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메이지 유신 시대에 살았으며, 부유한 집안의 장남이었다. 집안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버리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생각과 가치관이다. 세상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고, 일본 정세가 위기 단계에 봉착한다 하여도, 부를 축적한 이들을 안전한 길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그렇지 않았다. 1860년대 중반, 20대 중반의 나이에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큰 꿈을 펼쳐 나갔으며, 아버지를 설득하게 된다. 바버지를 설득하는 과정이 일본의 설계자라 부를 수 있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첫걸음이다. 자신을 밀어주는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 속에서 일봉에서 벗어나 유럽사회를 향하게 된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일본 정세와 다른 유럽의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일본의 시대적 변화에 긍정적인 단초를 제공하게 되었고,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아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일본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자신의 위치가 높은 곳에 잇어야 한다는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고, 스스로 실천해 나갔다. 그가 일본 제일 은행을 설립하고, 금융과 산업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 500개 기업을 창업하고 꾸려 나갈 수 있었던 건 일본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있었다. 그의 자서전을 읽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목적과 겹쳐지고 있다. 모방을 잘하는 한국 사람의 근본적인 기질은 2세기 이전에 살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고, 그의 성공 노하우를 빌려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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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9-01-02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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