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2

주체사상 - 북한지식사전 - 위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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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류]주체사상( 1 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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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주체사상은 북한의 통치이념으로 김일성이 창시하고 김정일이 이론적으로 심화시켰다고 주장하는 김일성의 공산혁명사상이다. 북한은 주체사상체계 전반 을 ‘김일성주의’라고 한다. 이러한 주체사상은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외교·군사 등 사회 모든 분야를 규정·지배하고 있다.

배경편집

북한에서 주체성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1950년 대 중반부터이다. 당시 ‘주체’는 하나의 사상이나 철학으로 제시되었다기보다는 제국주의 사상과 문화의 침투에 대한 민족주의적 대응의 성격이 강하였다. 제국주의 사상과 문화의 침투란 스탈린 사망(1953.3) 이후 흐루시초프의 등장에 따른 스탈린 격하운동과 평화공존노선 채택, 공산권 내부에서 사회 주의 체제로의 다양한 길 인정, 마오쩌둥의 영향력 증대에 따 른 국제 공산주의 운동 내 또 하나의 중심축인 중국의 등장 등을 의미한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김일성의 1인 지배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명문논리로 제시되었다. 대내적으로는 소련파·연안파 등 김일성의 반대세력을 숙청하기 위한 논리로서 이용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스탈린 사후 소련에서 개인숭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김일성의 지도력이 도전받게 되는 것을 차단하고, 중·소 간 이념분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중립적 위치를 고 수하려는 외교전략적 대응으로 표출된 측면도 있었다.




북한에서 ‘주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55년 12월 28일 김일성이 노동당 선전·선동 일꾼들 앞에서 행한 연설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 할 데 대하여”에서이다. 그러나 북한은 주체사상의 기원에 대 하여 김일성이 1930년 6월 중국 지린성 창춘현 카룬에서 열린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의’에서 주체사상의 원리를 처음 천명했으며 조선혁명의 주체적 노선을 밝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천편집

북한은 1955년 ‘사상에서의 주체’를 시작으로, 1956년 ‘경 제에서의 자립’, 1957년 ‘정치(내정)에서의 자주’, 1962년 ‘국방에 서의 자위’ 그리고 1966년 ‘정치(외교)에서의 자주’를 표명하면 서 주체사상의 이론적 체계화를 시도하였다.




‘주체’가 ‘주체사상’으로 된 것은 김일성의 1인 지배권력의 강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주체사상이라는 명칭이 정립 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12월 6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4기 제1차 회의에서 김일성의 “국가의 모든 활동분야에서 자주, 독 립, 자위의 노선을 철저히 구현하자”라는 연설에서이다. 이 연설에서 김일성은 “우리 당의 주체사상은 우리의 혁명과 건설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가장 정확한 맑스-레닌주의적 지도사상이며 공화국 정부의 모든 정책과 활동의 확고부동한 지침”이라고 밝혔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주체사상은 당의 유일한 이념으로서 혁명과 건설의 지도적 지침으로 표방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 제5차 당대회에서 주체사상을 당의 공식이념으로 채택하였고, 1972년에 제정된 사회주의헌법은 주체사상을 공식 통치이데 올로기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주체사상은 맑스-레닌주 의를 떨쳐내고 독자적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80년 대에 접어들면서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공식 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일을 우상화하기 위해 수령에 대한 지속적 충성심을 강조하는 작업이 더해졌다. 대를 이어가며 주체의 위업이 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982년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대하여>는 주체사상을 체계화, 이론화하여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였고, 1986년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를 통해 혁명적 수령관과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정식화하고 주체사상체계를 완성하였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동유럽 사회주의권과 소련이 붕괴하 자 체제위협을 느낀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주체사상을 재해석하여 북한식 사회주의를 동유럽 사회주의 권과 차별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1994년 김일성 사망과 1990년 중반 이후 심각한 경제난을겪으면서 주체사상의 영향력은 약화되기 시작하였고, 2000년 대에 접어들면서 선군정치가 북한정치의 전면에 부상함에 따 라 주체사상의 사회적 구속력이 저하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장한 이후 개정된(2012.4) 노동당 규약 전문에서는 당의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주체사상 대신 ‘김일성·김정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평가편집

주체사상은 사실상 개인의 권력 독점을 통한 1인 지배체 제의 강화와 우상화를 위한 정략적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혁명적 수령관’이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등을 동시에 내세워 수령과 인민대중의 관계를 사실상의 주종관계로 규정함에 따라, 인민대중을 수령의 지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복종해야 하는 수동적 객체로 전락케 하였다. 즉 수령의 절대화 또는 인민대중의 비주체화·비자주화를 합리화하는 논리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또한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속되는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주체사상은 최고 지도이념이라는 공식적 위상과 달리 실질적 정책지침으로서의 실효성이 약화되었고, 이에 따라 사회적 영향력도 저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관련 검색어편집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수령론
우리식 사회주의
주체의 사회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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