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정 : 때때로 불편한 느낌을 갖게도 하는
그런 지점이 있었습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 분의 발표나 발제에 대해서 저는 거의 모든 내용에 대해 동의를 하고 받아들이며, 그에 제기할 이론異論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불편하게 느꼈던 지점이라는 것이, 제가 지금까지 지녀온 생각과 충돌하는 지점들이기 때문에 이를 출발점으로 해서,
새로운 생각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해서, 제 생각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세 분의 발제문을 제가 다 이해를 했는지 확신이 없고, 그 발제문의 내용에 적합한
이야기일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제가 말씀드릴 내용이) 중요한 내용인지 아닌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고요. 그러니 지금 드리는
말씀은 저의 이야기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첫 번째로 오구라 선생님의 발제문, 그리고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느꼈던 것은
진실의 다양성, 다면적 진실이라고 하는 문제입니다. 동그라미
진실이 있고 네모의 진실이 있습니다. 관점이 평면에 머무를 때는 이 두 진실이 절대로 화해할 수 없고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관점이 입체적일 때 이 두 진실은 하나로 합쳐질 수 있습니다. 원기둥을 생각해보면 아실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모로도
보이고 동그라미로도 보이는 그런 세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평면적 관점을 갖고 있다가
입체적 관점을 획득한 사람의 태도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입체적 관점에서 이미 보고 있기 때문에 평면적
관점에서의 지식은 부분적이거나 혹은 진정 지식이라 부를만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면적인 지식은 그것이 동그라미이든 네모이든 너무나 단순명쾌하기 때문에 입체의 관점을 획득한 사람은 단순명쾌한
평면의 지식을 진실로 믿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평면적 관점을 지닌 사람과 입체적 관점을 지닌 사람들이 진실로 소통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럴 경우에, (제가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기원의 협동체 같은
것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총체적인 지식은 평면의 진실에서 입체의 진실로
도약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새로운 진실을 우리가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두 번째로 선우정 선생님의 발표에 대해서는요. 우리 안의 화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는 한국의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이 민족주의가 갖고 있어야 하는 굉장히 중요한 두 가지가 상승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상쇄작용에 들어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승이 아닌 상쇄구조로 들어가게 만든 것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였다고 생각합니다. 더 풀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족주의란, 제가 이해하는 한에서는, 국가라고 하는 하나의 정치공동체 내부에서
정치적 경제적 최고의 권위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그것이 대외적으로 더 이상 권위가 없는, 어떤 권위에도
종속되지 않는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앞의 것을 근대화라고
한다면 뒤의 것은 자주화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근대화와 자주화라는, 상반된 방향을 보는 두 가지 지점을 동시에 추구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참된 민족주의를 이룬 선진 국가들은 이 두 가지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나아간 사례도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제국주의로 발전이 되어 그 지배를 받은 국가들 속에서는 이 두 가지가 상쇄 쪽으로 작용을 하게
됩니다. 즉, 0과 1의
디지털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이죠. 자주화를 추구할 때 근대화는 한없이
0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근대화를 추구할 땐 자주화는 또한 한없이 0에 가까운 모습을
띠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라고 하는 것은, 자주화
민족주의의 좌절이 아니라, 이런 근대화 민족주의와 자주화 민족주의의 상쇄작용을 일으키는 구조를 배태시켜
놓았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주화 민족주의를 추구하여 그것을 재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근대화 민족주의와
자주화 민족주의로 갈라졌던 그리고 그 두 가지가 상쇄작용을 일으켰던 것을 화해시키는 것이 일본의 식민지배 경험을 극복하는 길이고, 우리가 민족주의를 반성하는 것이고, 우리 안의 화해이고, 또한 타자와의 관계 없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미래설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우정 선생님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 “일본과
얽히게 되면 우리는 현실을 과거로만 해석하게 된다.” 우리가
과거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과거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것,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바로 방금 말씀드린 민족주의의 두 가지 요소의 분열
속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과거의 노예가 되었을 때 우리는 증오의 감정을
갖고 그 반작용으로 극단적인 호의를 또한 외부에서 찾게 됩니다. 증오가, 또는 호의가 노예의 심성이고 그로부터 한 국가의 외교방향을 정하지 말 것을 역설한 사람은 조지 워싱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민주주의 외교의 최고의 가치로 중용한 사람은 알렉시스 토크빌이었습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워싱턴의 연설문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다른
나라에 대해서 일상적으로 증오나 호감의 감정에 빠지는 나라를 어느 정도 노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는 자신의 증오나 애정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 두 가지 감정 가운데 어느 것도 그 나라의 임무나
이해관계에서 엇비껴 나가도록 하기에 족합니다.” 워싱턴의
이 연설문을 조금 더 인용해보고 싶습니다. “어느
한 외국에 대한 과도한 호감과 어느 한 외국에 대한 과도한 혐오는 오직 전자의 위험만을 보게 하고, 후자에
대한 술책을 은폐하고 옹호하는 구실을 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조관자 선생님의 글과 발표를 통해서 저는 ‘악마화
구도의 극복’이라는 생각을,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악마화 구도의 해체가 아닌 악마화
구도의 극한적인 긍정을 통한 극복의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상대방과의 화해, 그것을 통한 해원, 이를 통하지 않은, 나 홀로만의 결단을 통한 용서의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조관자
선생님은 한일관계에 투영된 민주와 반민주,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대립구도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의 진보와 보수 전선이 있을 수 있고 이 합작을
통해 한일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제시해주셨습니다. 한국은 선이고 일본은
악이라는 악마화 구도를 해체할 것을 요구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이 구도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으로서 용서에 도달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최근 읽은 데리다의 <용서에 대하여>의 일부분에서 이 생각의 단서를 얻었습니다. 데리다는 용서에 대해서 용서의 개념 속에 애초에 내재한 논리와 상식의 역설을 지적합니다. 용서 불가능한 것이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우리는 용서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사실상
그것이야말로 용서해야 하는 유일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있는 것만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용서라는 관념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만일 용서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종교적으로 사람들이 대죄라고
부르는 것, 최악의 것, 용서할 수 없는 범죄나 과오일 것입니다.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만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논리와 상식의 역설이 있는 셈이죠. 이러한 용서라는 것을 나 홀로만의 결단으로 단행할 때 어쩌면 그것이
사상의 도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사상의 도약을 국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때 조용히 복상
중인 일본인의 손을 잡고 “아! 히로시마”라고
따뜻한 말을 전할 수 있을 것이고, 이렇게 한국인이 건네는 위로의 말에 일본은 아시아와 등지기를 멈추고
돌아서서 진정으로 아시아와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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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토론>
쿠마키 : 후쿠오카 대학의 쿠마키 쓰토무라고
합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시간이 5분에서 10분 정도가 될 것 같은데요. 제 생각을 이것저것 말씀드리면 내용이
산만해질 것 같아서 주제를 하나 잡아서 질문을 드리고 말씀을 나누는 형식을 취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아까 오구라 교수님께서 직접 말씀을 안 하신 부분인데요, 12페이지가 되겠습니다. 거기에
"그리고 이 복상은 결과적으로 동아시아를 안정시켰습니다."라는 언급이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선생님들께서 아베 정권을 어떻게 보시는지 그 평가와 전망에 대해서 여쭤 봤으면
합니다.
조관자 : 사실은 아시아와의 외교갈등이 아베
정권 이후 심각해졌을 때도 미일 동맹을 기조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와의 갈등을 증폭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다고 저는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기본적인 역사인식에 관해서는, 아시아 각국 간
갈등의 이해의 폭이 좁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건 왜냐면, 제가
아베의 역사 담화, 그 담화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담화를 읽어보면 기본적으로 아베 총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전쟁을 반대하고 과거의 전쟁, 그러니까
일본의 전쟁을 반성하고 절대 전쟁을 다시 하는 나라가 되지 않겠다는 그런 진실성은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아시아에 대한 언급을 전혀 않는다는 건데요. 물론 아시아의 타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는 했지만, 아시아 각국과의 외교 문제를 어떻게 풀겠다는 이야기를 일부러 하지 않았어요.
그건 왜냐면 아시아의 타자들이, 박근혜 정부도 그렇고 시진핑 정부도 그렇고, 굉장히 일본과 적대적이기 때문에 70주년 기념 역사담화가, 아시아와의 담화로서는 실패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의 민족주의 내지 국가주의 같은 것으로 일어나는 상호간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오히려 미국이
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당분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리고 미일동맹이 유지되는 한에서 한국과의 극단적인 갈등은 없을 거라 예상은 하는데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우리(동아시아)가
미국에 의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아베에 대한 평가도 그의 국내정책을 군국주의화다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기보다, 보통국가로서의
자기 위상을 재정립하려는 그런 노력을 아시아의 국가들이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타협을 해 나가면서 서로 적대감을 약화시켜나가는, 그런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한 한 아시아의 갈등이
증폭되지 않는 방향으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생각입니다. 이런
문제는 아베 총리가 주도적으로 끌고 나갈 만한 문제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베는 그럴 능력과
비전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런 부분까지도
사실은 중국하고 한국에서 정치가들뿐만 아니라 국민들까지, 그런 걸 이끌어나갈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데. 우리는 아베 정권을 좀 과거에 얽매여 생각하는 그런 경향이 짙습니다. 이런 건 마치, 민주당 정권의 실패로 인해 아베 정권이 등장한 것처럼, 아베 이후에 더 악수를 둘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나중에 아베가 더 나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만한 토대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지금 필요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입니다.
쿠마키 : 지금 제가 아베 정권에 대한 의견을
좀 여쭤봤습니다. 사실 아베 정권은 친미 보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프레임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아베 정권을 비판도 하고 경계도 하고 그러는데…. 한편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부분이 반대로 일본에서 반미 보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아베 정권은 국민적 인기가
있다는 강점이 있는 점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인 것 같고, 또 친미 보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일본인들은 지금 현재 큰 변화를 그리 원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에는 분명 반미 보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오히려 반미 보수에 있지 않을까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지만, 반미 보수에 대한 경계와 비판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입니다.
최범 : 일본 정치에 대해서 두 분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으론 노지현 기자님, 십 분 이내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노지현 : 동아일보 사회부에서 일하고 있는
노지현입니다. 오늘 세 분의 말씀 들으면서 특히 선우정 위원께서 말씀하셨던 언론의 나쁜 역할에 대해
공감을 했었고 컸었고, 오늘 선우정 위원께서 말씀하신 부분 중에서 제가 국제부에서 근무하면서 고민스러웠던
부분이 바로 한국 미디어에서 다루는 일본과 일본인의 모습이 두세 가지뿐이라는 점이었어요. 첫째로 경제나
사회 문제에서 항상 우리보다 한 발짝 앞서갔고, 우리가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미리 배울 수 있는 경제문제나
사회문제, 그럴 때는 부정적 감정 없이 배울 점을 찾아 일본의 사례 혹은 미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고요. 또 또
저출산 문제도 일본의 지혜를 들어보자 하는 식으로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고 또 독자들도 편안하게 받아들이곤 합니다.
문제는 정치부분인데요, 특히 8월에 정치부분에
관한 기사를 많이 쓰곤 하는데, 아까 논설위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자로서 항상 저희가 지녀야 할 객관적인
시선, 그러니까 감정적인 논조를 배제하라고는 하지만 일본 기사의 경우 감정적으로 쓸수록 더 칭찬을 받는, 기자로서보다는 한국인으로서 응당 그래야 한다는 식으로 칭송을 받고 인터넷에서도 지지를 더 받는 일들을 겪으면서
젊은 기자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악하다고 할 만한 일들에 대한 감정을 자극하는
사진이라든가 기사라든가, 이런 것들에 익숙해져 가면서 그것이 인터넷을 다시 한 번 달구고,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분노의 감정이 확대 재생산되는 데 일조하지 않은가, 그런
고민이 들었고요. 또 이런 도식화된 일본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편에선
일본인 관광객을 볼 땐 돈의 관점에서 봅니다. 일본인은 한류를 좋아한다, 일본 관광객이 몇만 명 왔다, 일본은 우리 한국문화를 숭배해 주는
사람들이다 하는 데서 자부심을 느끼는 현상, 이런 식으로 계속 어떻게 보면, 저도 그런 데 일조하긴 했지만, 그런 기사들이 더 널리 퍼지고 그만큼
더 많이 소비하고 그런 현상들이 계속되면서 언론의 파행도 문제시되지만 지식인들의 이해에도 역시 영향을 미치지 않은가 싶습니다. 이런 관점의 연장에서 오구라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여기서 일본인에 대한 이분론, 일본인은 모두 나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조금은 양심적인 사람이 있다 하는 인식에 조금 보충설명을 하자면 일본에서 공부를 했거나 일본에 대해 많이 쓰는 기자들은 무엇보다도 당신이
한국인이냐 아니냐라는 시험대에 서는 그런 일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해 객관적이라
해야 할지, 어쨌든 조금이라도 우호적인 표현을 쓸 때 이것이 과연 괜찮은지에 대해 스스로 점검을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자책을 하거나 하는 일이 분명 생긴다고 봅니다. 그런
것 때문에, 모조리 일본인이 나쁘다는 식이 아니라 일본인 일반에 대해서는 좋게 생각하는, (글을 쓸 적마다) 자신을 검열하는 한국의 젊은 세대나 또 한국의
젊은 기자들이 있다는 사실, 이런 점들도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려스러운 점이라면, 제가 지금
30대인데, 20대 기자들 중 중국어를 하는 이들은 많지만 일본어를 할 줄 알거나 공부하는
기자들은 적은 것으로 보이고, 그러다보니 상호 소통의 기회가 줄면서 알아갈 만한 경로가 좁아지는 현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관자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저희가 명동을 다니며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다니다 보면 젊은 세대들의 경우 과거사에 대해 배운 바가 없기
때문에 (양국의 외교현안에 관한 질문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하는 반응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조관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좌우합작이라는 건, 취재시 젊은 세대들의 반응과 일본의 개헌 움직임에 반대하는 젊은
세대들을 아울러 볼 때 ‘좌우’라는 이념적 구별이 유효한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해서 글의 말미에 있는 ‘좌우합작’이
그리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일본의 젊은이든 한국의 젊은이든 사실 이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인데, 그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최범 : 오구라 선생님에게 질문이 집중되어서
조금은 나중에 말씀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우선은 조관자 선생님께서 마지막 발언이라 생각하시고 종합적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조관자 : 젊은 세대들은 좌우의 대립의 역사도
모르고 무관심하고, 그런 말씀에 역시 그렇구나, 하고 한
방 얻어맞는 느낌이긴 한데요. 넷우익이라든가, 혐한이라든가
하는 신규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 일본 내에서 아직은 좌우의 논쟁이 있기는 합니다. 한국에서도 그렇고요. 말씀하신대로 우리의 실생활에서 좌우 구별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인데도 서로를 편가르기 하는 담론 차원에서는 여전히 동원이 되고 우리가 거기서 벗어나 있지 못하는 현실이란 생각이 듭니다. 분명 탈냉전 이후 좌우나 진보/보수 이런 개념이 해체되고 이합집산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동아시아에선 냉전의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기에 청산도 되지 않는 것이다, 말하자면
저는 냉전의 역사를 좌우 구별대립의 역사로 보기보다, 상호 역학관계와 그 안에서 벌어진 다양한 폭력의
양상을 이해할 때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설 수 있는 지점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범 : 다음은 선우정 논설위원께서 종합적으로
한 말씀 해주시죠.
선우정 : 한일관계 칼럼, 기사를 쓰면서 맞추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쓰는
내용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일본에 대한 지식의 정도에서 좀 더 습득을 해야만 이해를 받을
수 있는, 말하자면 우리의 일반적인 반일감정의 반대편 쪽 지식을 좀 더 익힌 이들에게서나 이해를 구할
수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제가 어떤 글을 쓸 때 이해를 구하지 못하면 바로 공격이 들어올 수 있다는
지점을 고민하곤 하는데…. 언제까지 이런 고민을 할 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에서 우리가 식민지 시절에 대해 사실은 몰라요. 게다가 일본은 한국을 낮잡아본다, 미워한다, 그런 혐한에 관한 우리의 인식, 그리고 일본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인
면면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갭이 있는데, 그런데도 실제로 식민지시기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보면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그건 우리가 의도적으로 공부를 안했을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 속에서 식민지 공간 속에 우리가 놓여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영화라든가, 요즘 나온 영화들 있죠, 그런 걸 보고 판타지적인 상상을 실제와
착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식민지의 실상을 모르게 됩니다. 그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좀 더 한일관계를 발전적으로 가져가려면 우리 스스로가 식민지 상황에 대해 세계사적 관점에서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굉장히 당황스러운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가, 인도는…. 글쎄
모르겠습니다. 그걸 비교하는 게 의미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도도 어마어마하게 착취를 당했지요. 그런데 제가 굉장히 놀란 것이, 지금도 인도는 영연방에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영연방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래요. 역사문제에
대해서 우리만큼 민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세계사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식민지 경험은 무엇이었는가, 이런 고민을 우리가 좀 더 하고 그런 결과를 일반 국민들과 함께 나누면서 축적하는 일이 필요하겠다, 그런 생각이고요. 일본 쪽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일본 제국주의 역사에서 식민지라고 하는 것은 제국주의 일반으로 보았을 때 그렇게까지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조선이 식민지였을 때 우리가 조선을 어떻게 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탐구해야 할 겁니다. 일본에서도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이들은 굉장히 적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과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최범 : 오구라 교수님 의견 부탁드립니다. 종합적으로요.
오구라 : 질문에 답하기 전에 기자님 하신
말씀에 대해 첨언 좀 하려는데요. 요즘 일본에서는 ‘보수주의’라는
개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자는 움직임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보수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있는데, 이게 많이 팔립니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보수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책에 담긴 공통적인 내용은 ‘보수주의는
이성을 믿기보다 습관, 관습 등을 믿고 그것을 존치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보수주의의 본질을 가르치는 책들이 많이 팔립니다. 아베
정권이 보수주의가 아니라는 개념은 그러다보니 일본 사람들이 거의 합의를 하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아베
정권은 무엇인가 하면, 일본인들의 의식은 아베 정권은 보수주의를 파괴하는 정권이다 하는 데 가깝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보수주의를 다시 쓰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관자 선생님의 ‘악수를 둔다’는
말씀을 저는 ‘다시 보수주의로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문, 한국의 언론에 대해서 저는
건의하고 싶은데요, 아까 동아일보 기자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일본이 앞서가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배운다는
개념은 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입장에서 보면 거의 똑같습니다. 모든
문제가 일본과 한국 사례는 비슷합니다. 똑같다고도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일본을 보고 배운다든가, 경쟁한다든가, 따른다든가, 그런 생각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어느 쪽이 앞서간다기보다
제가 보기에는 일본과 한국은 같은 상황이라고 봅니다. 수치적으로 보았을 때, 그러니까 구매력을 나타내는 경제수치로 봤을 때도 대동소이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가 누구를 앞서고 뒤따르고 하기보다는 협력해서 함께 해결해나가는 식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글쓰기에서의 고민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식민지에 관해서인데요, 우익이 아닌 리버럴 계열의 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 “영국은
지금도 인도에 남겨둔 재산을 반환받으려 하고, 인도도 갚고 있다.” 그러니까
일본도 한국에게 똑같이 하자. 문제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증적인 지식이 많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일본 보수주의 세력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 이것이라고 생각해요.
일본 보수주의의 본질은 실증주의입니다. 이 부분을 한국분들은 잘 모르실 거라 봅니다. 2005년 정도에는 한국의 움직임이나 그런 부분들을 동경하거나 존중하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인의 역사인식은 판타지다, 그런 식의 인식이 혐한파들에게 공유되어
있습니다. 그게 가장 위험한 점입니다. 역사의 사실을 우리가
갖고 있다, 우리가 쥐고 있다, 그런 식의 인식이 일본 우익, 보수주의자들의 위험한 부분입니다. 그런 면에 대처하는 한국의 방식이
좀 아쉽습니다. 다음으로 질문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너무
어려운 질문이 많아 잘 대답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일본에도 한국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시민단체가 많은데, 이 시민단체가 새로운 한일관계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지요. 일본의 시민들은 한국에 대해서 굉장히, 아까 말씀드린대로, 죄송스럽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한국에 와서 소녀상 앞에서 죄송하다는 식으로 하는 행동이 저는, 대등한 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마음속에서 사죄의 마음을 지키는 것, 그리고 활동하는 것, 여기 와서 사과하는 것보다는 한일관계가 좋아지도록
하는 활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제, 한국인과
일본인이 대등한 입장에서 각국의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비판하고 공유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면…,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사건이라고 해도 그 일이 일어난 데 따라 반응이 다를 수 있지요. 세월호 사건과 비슷한 문제가 일본에 일어났을 때, 예컨대 지진에
의한 재난은 관리부실에 의한 사고가 맞습니다. 이런 유사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 국적을 넘어 우리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겠지요. 그리고 제가 기원이라고 말씀드렸을 때, 전쟁, 식민지배의 원죄에 대한 속죄가 더 필요하지 않은가, 기원이라는 것만으로 대등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는데요.
제 생각에 역사문제를 어떤 명제화하여 생각하면 반드시 거기에 반대하는 세력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어떤
현실을 마주할 때 그 현실에서는 아주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것들이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이 복잡하고 다양한
것들을 함부로 명제화시킬 때면 반드시 묵과되거나 대항세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는 좀 더 정적으로
마음속에서 기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사를 절대화시키려는 세력이 있다면 단호하게 맞서야 할 겁니다.
최범 : 답변 감사합니다. 저희 오늘 주제가 말하자면 1876년, 지금부터 140년 전 한국과 일본이 만났던 사건에서부터 오늘 우리가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고요. 사실 그 만남은 좀 불행한 만남이었죠. 즉,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이 되었습니다. 일본이 당시 유럽과 만났던 바로 그 방식으로 한국을 만났지요. 그것이
강화도조약이고 운요호사건이고 그렇지요. 그러다보니 140년
전의 만남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이었고 이 만남의 형태가 그대로 이어져 지금 우리의 문제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가해와 피해라는 구도에서 우리가 시달린다는 부분이 있죠.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 앞으로도 이런 것들이 지속될 것인가, 이런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를 연장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실존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조일수교 140년이
된 현 시점에서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가해/피해 구도를 벗어나 화해와 평화의 구도를 지향할 수
있는가,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여러 선생님들께서
각자 방안도 말씀해주시고 질문도 하고 그러셨는데요. 시간이 많진 않습니다만 사전 질문 외에도 오늘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방청석에서 질문 있는 분께선 해주시기 바랍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더불어 질문해주셨으면
하고요, 오늘 주제의 범위 내에서 생산적인 질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질문자 : (소개 부분은 들리지 않아 생략) 오늘 많은 것을 보고 들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본 주제와 직접
관련되진 않겠지만, 조일수교라는 용어 문제인데요, 이것이
강화도 조약을 가리킬텐데, 이것이 과연 수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는 이견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여 나간다면 ‘조일수교 140년’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데서 재고해주시면
어떨까 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질문하고 싶은 것은 (들리지
않아 생략) 천황의 양위가 일본 정치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이에 관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동시에 (…) 분명히 일본 (…)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한중일의 선린협력 관계가 마음속으로부터 가능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런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범 : 예, 말씀 잘 들었습니다. 현 천황의 양위 표명은…. 오늘
주제와 관련해서 관심사이긴 한데,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을까요?
오구라 : 양위라는 사안에 대해 여론조사를
보면 80프로 이상이 찬성입니다. 그리고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교토에서 하고 있는데요,
문화청이 현재 교토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천황이 퇴임 후 교토로 옮기게 되어있습니다. 도쿄에 있으면 새로운 천황과 비교가 되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게 나라시대부터의 문제였습니다. 퇴위 후 천황이 현실정치에 개입하고 현 천황의 치세에 개입하고 그런
것이 문제가 되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현 천황이 뭔가를 할 수 있도록 전 천황은 물러나주는
식으로, 게다가 정치는 절대로 할 수 없게 되어 있으니 현재의 천황은 문화적인 상징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징인 한 그들에겐 인권이 없습니다. 그런
만큼 일본의 문화를 계승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천황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쿠마키 : 아까 선우정 선생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당시 신문의 제목이 나와 있는데요. 양위에 대해서 헌법 개정과 관련시켜서
이런저런 기사가 나옵니다. 저는 한편에서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보도기관들이 한결같이 왜 그런 해석을
했는지, 제가 천황의 그 말씀을 들었을 때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천황의 말만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글쎄요, 정말 그런 건가요? (웃음) 선우정
위원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건 제가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선우정 : 어떤 팩트가 있어서 그렇게 해석하는
건 아닐 테고요.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저희 언론의
일본보도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 선입관이랄까, 그런
것에 좌우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처음에 왕이 퇴위를 한다는 보도가
NHK에서 나왔을 때 아키히토 천황은 평화주의자의 행보를 걸었다, 사이판에서 어떻게 했고
중국도 가고 어떻게 했고 그 아버지와 다른 행보를 보였고 지금까지 그런 행보를 통해 군국주의의 부활을 견제하는 그런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를 했어요. 그런데 그 평가는 정당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평가에
기반을 해서 저희가 스스로 해석을 해버린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려면 적어도 일본 신문 어디선가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거나, 물론 그랬다면 일본 신문에선 그런 보도를 다들 했겠지요. 하지만
그런 보도는 없었고, 그런 프레임도 없는데 저희가 그렇게 보도를 한 겁니다. 아까도 그래서 발제문에서 그런 걸 문제라고 지적했던 거구요. 일종의
관행적인 보도가 아니었나 그런 생각입니다.
최범 : 한국에 비친 그런 모습이죠. 어느 신문인지는 모르지만 선우정 위원께서 아까 말씀하신 보도 중에 ‘백제계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양위 승부수’, 이건 좀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천황은
고구려계인가요? 제가 1989년에 일본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헤이세이 천황이 즉위한 해였는데요, 새 천황이 즉위하면 기념으로
한 번 더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은데, 혹시
꼭 해야겠다는 질문이 있으시면….
쿠마키 : 짧게 말씀드릴게요. 저는 오구라 선생께서 말씀하셨듯이 실증주의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보도도
그렇고 역사인식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실증주의를 중시해야 하는데, 아까
선우정 선생께서 쓰신 54, 55페이지를 봐주셨으면 합니다. 일종의
주문사항인데요. 저는 한일관계에서 매스컴이 짊어진 역할이 아주 크다고 봅니다. 저희 전문가들도 당연히 큰 책임을 갖고 있지만 매스컴도 그만큼 크다고 봅니다.
그런데 54페이지 밑에서 세 번째 줄을 보면 추측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일본이기 때문에…. 이런 대목요.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 보면
감정을 앞세우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 역시 일본이기에 용인된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제는 이 추세를 지양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좀 더 사실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추측이나 감정을 억제하고 너무 소비적이고 선정적으로 이슈화시키는 그런 기사는
저는 좀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느낌입니다. 매스컴이 어느 정도 책임성을 갖고 실증주의적 태도로 앞으로의
전망을 갖고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을 갖습니다.
조관자 : 지금 이야기가 실증주의로 모아져서요. 우리가 어떤 갈등의 문제를 인식할 때 사실로써 먼저 인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한일관계에서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 그 갈등을 이해하고 해소할 때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단지 사실만으로 이해하는 건 갈등해소를 위해선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갈등을 해소한다는 건 사실관계 그 이상의 문제거든요. 그랬을 때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자세, 앞으로의 비전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의 문제 등은 가치의 문제이고 그걸 어떻게 공유해나갈 것인가 하는 대화가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에, 선악이라든가 하는 분명한 선긋기는 좀 지양하고 대화를 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좌우 합작이라는 것도 그런 구도를 좀 넘어서자는 뜻이지, 과거의
좌우 구도를 그대로 가져와서 접합시켜보자 이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정말로
지켜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과정에서 그것이 보수주의의 입장이건 무엇이건, 편가르기보다는 각자의
가치를 나누어보고 어떤 유의미한 작용을 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런
모임의 중요함을 재삼 생각하게 됩니다.
최범 : 예, 잘 들었습니다. 오늘 특히 한국 언론들이 일본 문제를 다루는 태도를
두고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요. 당연히 그런 부분이 민족적인 그런 감정이 바탕이 되어있지만, 다들 아시겠지만 역사문제가 또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민주주의가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일테면 남북통일의 문제만 하더라도 북한사회가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통일의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 역사문제에서 벗어나는 것도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문제와 절대 떨어질 수 없는 문제죠. 일본 정치도 정치지만 한국 정치가 얼마나 역사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가, 이런 점들은 우리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역사문제도 민주주의의 문제일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 아직 여유가 좀 더 있습니다마는, 아까 인도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얼마 전 제가 어느 글에서 보니
영국과 인도는 단순한 식민지와 지배자의 관계가 아니고 인도의 관점에서 보면 인도가 영국이라는 제국을 이용했다,
1차 대전 참전도 영국의 강제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영국 제국이라는 틀을 이용한 인도 제국의
확장성이라는 측면이 있다, 인도를 단순한 식민지로 보지 않고 제국의 한 다른 층위로 보고 있는 시각이
있습니다. 간디가 변호사 생활을 했던 곳이 남아공이잖습니까? 거기
왜 갔겠어요? 인도인인 간디가 남아공에 갔다는 얘기는 영국 제국의 틀 내에서 인도인들의 진출이 가능했다는
셈이죠. 제가 그런 문제들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글을
읽으면서 새삼 역사문제란 것이 참 복잡하구나, 싶었습니다. 아직
여유가 있으니 다른 질문 없으신지….
강태성 : 객관적 기준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 정말 문제인데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객관적 기준이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최범 : 역사를 보는 객관적 기준요? 그러니까 한일 역사문제를 보는 객관적 기준이 있는가, 있다면 어디에
그 지렛대를 둘 것인가 하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많이 다를 수 있겠지요. 모든 사람이 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다 들어볼 순 없을 것 같고요, 특별히
여기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는 분이라면…, 쿠마키 선생님 하실 말씀이 있나요? 예, 부탁드립니다.
쿠마키 : 객관적으로라고 한다면 물론 역사학에서
보는 입장이 있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 그러니까
피해자라는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은 치유가 안 되어 있어서 상처가 많이 남아있다고 봅니다. 그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실증주의에서 벗어나는 입장을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민족주의, 아니, 지나친 민족주의는 좀 곤란하다고 봅니다. 그것 때문에 안 보이게 되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오늘 주제가 조일수교와도 관련되는데 주로 학교에서 한말을 배울 때 어떻게 배울까요? 한국 분들하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명성황후, 동학, 그러니까 갑오농민전쟁, 이런 얘기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이런 인물이나 사건들도 상당히 복잡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복합적인 요소를 동시에 생각할 필요가 있겠죠. 또, 강화도조약인데요, 당시 조약을 맺을 때 고종의 치세였죠. 당시 고종은 대원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대원군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독재를 하던 때였고요, 재정이 완전히 파탄 난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이 조약을 맺을 때
일본에서 제1조로 내세운 것이 조선을 자주 독립국이라 한 거였어요. 그런
다음에 관세나 영사재판권 등의 불평등한 내용이 있었고요. 그런데 불평등조약이면서 결국 그 중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이 바로 그 제1조였습니다. 다른 부분들보다
말이죠. 당연히 여러 배경이 있을 수 있었던 셈이죠.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갈등도 있을 수 있었고요. 하여간, 재정이
파탄 나고 일본, 중국, 러시아 서구 열강들의 압박도 있었던
시대였고 또 몇 해 뒤 임오군란이 있었고, 그런 가운데서 관료들이 죽어가고 또 힘들게 사는 서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아주 혼란된 상황, 우리가 정작 보는
건 복잡한 상황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사건들일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그 속까지 들여다
볼만한 치유가 이뤄지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좀 더 차분하게 역사에 접근하는 시기가 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최범 :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첫 번째 과정은
피해자를 억압하지 않고 마음껏 말할 수 있게 한다는 그런 게 있죠. 마찬가지일 거라고 봅니다. 한일 간 지난 140년의 가해/피해
구도에 얽힌 수많은 사건과 경험에 대해 아직 우리는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보고요. 더구나 정치적
이유로 인해 기억이 굴절되거나 억압된 것도 대단히 많습니다. 꼭 그것이 직접적으로 그렇게 되었기보다
간접적으로, 민족이란 이름으로 발설할 수 없는 것들도 많았지 않았나 합니다. 그런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되겠지요. 아까 질문하신 역사의 객관적
기준에 대해서라면 이렇게 답변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흔히들 인용되는,
‘사실은 없고 해석만이 있을 뿐’이란
말이 있지만, 그 말이 반드시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닐 겁니다. 사실이
진실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겠죠. 그러니 우리가 역사를 두고
투쟁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유익한 말씀들 많았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은데 오늘 참석해주신, 일본문제를 오래도록 연구해오신 원로 선생님들의 말씀을 좀 들었으면 합니다. 김용운
선생님 오늘 심포지엄 전체적으로 보면서 마무리 격으로 종합적인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용운 :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까 (심포지엄 시작 전) 처음에
말씀드린 내용이기도 한데…, 백강전투에 관해서입니다. 한국사람은 일본사람이 우리에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서기
660년대에 백제가 멸망했을 때 일본에선 이랬어요 : “오늘로서
백제의 일본은 끝났다.” 당시 의자왕의 동생이 지휘하는 일본군 3만 2천이 지금의 변산반도 아래에서 전투를 벌여요. 그때 군사를 보냈던
지역 (잘 들리지 않아 이렇게 씁니다) 에선 지금도 매해
백강전투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선. 우리는 이렇게 싸웠다, 우리는 지금도 가서 거기 죽은 일본인들을 참배를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그 역사를 그 지역 일본인들은 지금도 한으로 갖고 있어요. 그 전투 이후 1250년간 우리는 중국에 대등하지 못한 사대의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정부가, 지도자가, 여론을 이행해서 정치나 외교를 한다면 그건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과 같아요. 여론이란 건 언제 바뀔지 모릅니다. 여론은
이성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런 정치는 이성적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정치가 여론을 이용하고 그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미국에 가서 일본 욕을 하고, 이렇게 하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어떤 사대를 다시 하게
되는 겁니까? 이건 세계 외교사적으로 보아도 우스운 모양새입니다. 1천 3백 년 전의 원한을 일본 어느 지역에서는 지금도 갖고 있어요. 그럼
역사의 한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하는 것이고, 무슨 한을 말하는 것인가, 그 한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문제들을 냉정하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역사를 단순하게 봅니다. 지나치게 강경하게 상대를 대하면 그런 건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옵니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최범 : 사실 동조동선론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되는 부분도 없진 않지요. 그것까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라종일 선생님께서 오늘 들으신 내용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에
대해서도 좀 전체적으로 말씀 주셨으면 합니다.
라종일 : 다 끝나가는데 누가 또 일어나나
하실 겁니다. 이게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도…. 교수를
오래 하면 나쁜 버릇이 두 가지 있는데, 짧게 해도 될 말을 길게 하는 겁니다. 왜냐면 한 학기를 채워야 하거든요. 또 하나는 쉽게 할 말을 어렵게
하는 습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을 못 속이니까요. 아무튼…. 미안합니다. 직업병이라고 이해해주세요. 저야 뭐 이제 거의 은퇴했으니 꼭 그런
습관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몇 가지 말씀드리자면…, 아베
정권을 보수다, 우익이다, 뭐 이렇게 부르는 거야 상관은
없다고 보는데요, 한일관계 논의에서 빠져 있는 것이, 이게
아주 중요한 건데요, 다 아시는 거지만 중국의 부상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부상에 의한 전후 국제관계의 불안이 가중되는 것입니다. 설령 그럴 일이 없다고 해도 중국의 부상에
따라 일본에서는 군사적으로나 뭐 이런 면에서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 요인은 남북의
적대적 진전입니다. 그 결과로 북한이 굉장히 기형적으로 발달했어요. 이런
점들을 정치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어요. 그리고 아까 우리 신문이 우리의 선입견에 따라
일본을 해석한다는 말씀이 나왔는데, 실은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뉴욕타임즈에서도 나왔어요. 제가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건 뭣보다도 언어를 정확하게 쓰는가 아닌가의 문젠데요, 누굴 인용하고 말 것도 할 것 없이, 언어가 논의를 왜곡시키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민족주의도 그렇고요. 아까 ‘지나친
민족주의’라는 말도 나왔지만…. 저는
민족주의를 부족주의와 바꿔 쓸 수 있지 않나, 민족주의가 만일 다른 나라에 피해를 입힐만한 것이라면
그걸 민족주의의 범주에서 빼는 건 어떤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저도 사회과학자로 자처하는 입장인데…. 사회과학자로서
큰 결격사유가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면 어떤 이슈를 봤을 때 이게 정말 사람 사는 데 그렇게 필요한가, 사람이 살아가는 것과는 별 관계없는 그런 이야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감정이 어떻다, 이런 이야기들 한다는데, 그런 말들이 정말 사람들의 구체적인 모습과 그리 관계가 깊은 것인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마오 시대에 관한 평가를 봤는데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식민지시기에 경험한 고통하고 독립 이후에 자국에서 받은 고통이 질적으로 그렇게 다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마오 시대 문화대혁명을 하면서 아사한 사람이 4천 5백만이라고 해요. 대처 수상이 중국 방문을 했을 때 고위층과 이야기
도중 제국주의 침략 때문에 중국 인민들이 고통을 당했다 하니, 대처 수상이 “그래도
공산당 치하보단 낫지 않으냐”고 말했다고 해요. 그러니 좌중이 침묵했다고…. 그
이야기를 어디에 쓰다가, “독립을 하고 또 진보적인 정치세력 하에서
살면서 그런 일을 겪으면, 그건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본에 관한 이야기도 그래요.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만 나도는 것이 아닌가? 이걸 현실적으로 보면 겨우 몇 사람이 권력을 쥔 국가의 문제이지, 사람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말씀들 많이 하셨지만 특히
오구라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기원이라는 것, 역사 속의 문제들을 자기 안으로 흡입하는 그런 개념이라는
생각입니다.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저는, 한일관계에선 중국, 북한, 미국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태평양전쟁 때 우리도 엄청나게 희생을 했죠. 그런데 중국이나 우리 못지않게 일본인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어요. 그런데
이 피해에 대한 인식이 다르죠. 그래서 2차 대전의 종전의
의미를 함께 해석할 수 있는가, 얼마 전 이걸 논문을 써서 발표했습니다. 일본은 종전이라 하고 우리는 해방이라 하고 중국은 승리라고 하고, 북한은
또 한국을 해방시킨 승리라고 부르는데…. 이 개념을 공유할 수는 없는가 고민하면서 썼습니다. 태평양전쟁의
피해는 한국, 중국, 일본의 공통적인 피해입니다. 여기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간하는 일은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로만 보면 가해자는 별로 없고 피해자만 많아요. 이런 피해자 의식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전의 의미라는 걸 우리가 어떤 식이든, 잘못된 사고방식, 전쟁을 일으켰던 바로 그런 사고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어떤 계기로 공유할 수 없을까 해서 논문을 써서 발표했는데, 욕만 잔뜩 먹었습니다. 그래도 한 번 더 제의를 하고 싶어요. 미국, 한국, 중국, 일본 모두
태평양전쟁을 두고 잘못된 사고방식, 국가를 틀어쥔 사람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이 이제 그 종전을 통해 종언을
고해야 한다, 새로운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없을까, 그런 바탕에서 우리가 함께 고민해볼 여지가 없는가,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최범 : 가해와 피해의 틀에서 벗어나려면
가해와 피해를 보는 고정틀부터 바꿔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문학평론가 백낙청 선생도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있죠, 근대 일본이 잘못했다면 한국도 책임이 있다, 이웃의
잘못은, 이웃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이웃도 연계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고, 그런 요지로 쓰신 걸로 기억합니다. 이젠
정말 시간이 다 된 것 같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도 좋겠고요. 폐회사를
김철 대표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김철 : 오늘 아주 오랜 시간동안 여러 선생님들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좋아하는 일본어 관용구 중에 “눈에서
눈곱이 떨어진다”는 표현이 있는데요, 그런 깨달음,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여러 방면에서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저는 한일관계란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이런 면에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존재의 결단, 주체의
근본적인 변화, 이런 것들을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 선생님들께서 말씀해주신 사안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갈등을
해결하고 넘어서기 위해서는 현대의 한국인들이 빠져 있는 파시즘적 사고, 민족주의적 판타지,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용기, 그런
존재론적 변화와 결단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한국과 일본은 인류
역사에 남을 위대한 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 멀리서들 와주시고 장시간동안 발표를
준비하고 토론해주신 선생님들, 사회를 봐주신 최범 선생님, 그리고
청중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이 팸플릿에 나온 사진인데요. 이게 관동대지진때 희생된 조선인들의 유골이 발굴된 나기노하라라는, 치바현의 지역인데, 그 지역의 공터라고 합니다. 이 공터를 그 지역의 일본인들이 학살된 조선인들을 기억기념하기 위해서 기념비를 세우고 관리해오고 추모하는 행사를 해 왔다고 합니다. 이런 일본인들의 마음과 손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
이 공터가 주택지로 개발되려 했는데, 주민들이 그걸 중지시켰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 최규승 시인께서 직접 가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어오셨어요. 박수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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