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단폭격 같은 인도주의 지원만이 북한 폭주 막는다”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융단폭격 같은 인도주의 지원만이 북한 폭주 막는다”
등록 :2017-07-20
북한의 대미불신 연구 김성학
“북한 위협은 내면화된 신념
남한의 고유한 협상력 높여야”
전갈의 절규-북한의 대미 불신의 기원과 내면화
김성학 지음/선인·5만원
지난 4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선언했다. 반복되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집요할 정도로 한결같이 미국을 겨누고 있다. 국제사회에선 이를 흔히 ‘광기’로 풀이하곤 한다. 그러나 “북한은 미쳤다”는 단정만으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한반도 분야를 다뤄온 김성학(46) 기자가 최근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만든 <전갈의 절규>를 펴냈다. ‘북한의 대미 불신의 기원과 내면화’라는 부제에서 보듯, 미국에 대한 북한의 뿌리 깊은 불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분석한 책이다. <김일성 저작집>을 비롯한 북한 쪽 문헌들과 고위급 북한이탈주민의 증언 등을 활용한 ‘내재적’ 접근이 돋보인다.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지은이는 “만약 망상을 앓는 환자가 있다면, ‘미쳤다’고 단언부터 할 것이 아니라 증상은 어떤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등을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라며 “구조를 정확히 알아야 적확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은이는 북한의 대미 불신의 기원을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에서 찾는다. 김일성은 항일투쟁 이력을 주된 정체성으로 내세워 경쟁자들을 숙청했고, 끝내 북한의 권력을 장악했다. 그 뒤 일본 제국주의는 미국 제국주의로 대체됐고, 이것이 제도로까지 굳어지면서 북한 전체가 ‘반제반미’의 신념을 내면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행위자는 제도를 창출하지만, 제도는 행위를 제약한다”는, 신제도주의 이론의 ‘경로의존성’ 논의다. ‘반제반미’의 경로는 어떤 이탈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강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젠 “북한 스스로 변화를 원해도 할 수 없는 제도의 속박에 갇혔다”는 것이다.
북한의 대미 불신을 다룬 <전갈의 절규>의 지은이 김성학 미국 <타임> 기자가 1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김성학 지음/선인·5만원
지난 4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선언했다. 반복되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집요할 정도로 한결같이 미국을 겨누고 있다. 국제사회에선 이를 흔히 ‘광기’로 풀이하곤 한다. 그러나 “북한은 미쳤다”는 단정만으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한반도 분야를 다뤄온 김성학(46) 기자가 최근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만든 <전갈의 절규>를 펴냈다. ‘북한의 대미 불신의 기원과 내면화’라는 부제에서 보듯, 미국에 대한 북한의 뿌리 깊은 불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분석한 책이다. <김일성 저작집>을 비롯한 북한 쪽 문헌들과 고위급 북한이탈주민의 증언 등을 활용한 ‘내재적’ 접근이 돋보인다.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지은이는 “만약 망상을 앓는 환자가 있다면, ‘미쳤다’고 단언부터 할 것이 아니라 증상은 어떤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등을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라며 “구조를 정확히 알아야 적확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은이는 북한의 대미 불신의 기원을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에서 찾는다. 김일성은 항일투쟁 이력을 주된 정체성으로 내세워 경쟁자들을 숙청했고, 끝내 북한의 권력을 장악했다. 그 뒤 일본 제국주의는 미국 제국주의로 대체됐고, 이것이 제도로까지 굳어지면서 북한 전체가 ‘반제반미’의 신념을 내면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행위자는 제도를 창출하지만, 제도는 행위를 제약한다”는, 신제도주의 이론의 ‘경로의존성’ 논의다. ‘반제반미’의 경로는 어떤 이탈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강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젠 “북한 스스로 변화를 원해도 할 수 없는 제도의 속박에 갇혔다”는 것이다.
북한의 대미 불신을 다룬 <전갈의 절규>의 지은이 김성학 미국 <타임> 기자가 1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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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미국을 ‘조선 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쑤’로 규정하기 위해 “현재의 정치적 목적에 맞춘 역사의 재구성”을 대대적으로 시행해왔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조선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 약탈이 1800년대 중엽부터 시작됐다고 규정한다거나, 그 출발이 되는 ‘제너럴셔먼호 사건’ 때 김일성의 증조부인 김응우가 배를 침몰시키는 데 큰 구실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6월25일부터 한 달 동안을 ‘반제반미투쟁의 달’로 기념하는데, 이 기간에 미국이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신천군 학살’의 잔인함을 집중적으로 되새기기도 한다.
독재권력이 주민들에게 신념 체계를 강제로 주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참혹했던 한국전쟁의 경험, 견제받지 않는 김일성의 권력 독점은 이런 경로의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무차별 공습, 네이팜탄을 사용한 초토화 작전 등을 직접 경험한 북한 주민들의 트라우마는 미국을 악마화하는 독재권력의 조작 선전을 100% 받아들이고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과 남한은 북한의 이런 내재적인 구조를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서로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지은이는 1994년 제네바 합의가 그런 접근의 한계를 보여준 대표적 실패 사례라고 말한다. 뿌리 깊은 대미 불신에 갇힌 북한은 이미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남몰래 준비하고 있었고, ‘북한 조기 붕괴’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미국 역시 애초에 경수로 제공 등의 합의를 이행할 생각이 없었다. “서로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대를 배신”한 것이다.
인터뷰에서 지은이는 ‘북한붕괴론’이 “북한의 내재적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위험한 접근법”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은 국가라는 시스템이 아니라 수령체제 자체를 그 근간으로 삼기 때문에, ‘북한붕괴론’은 허구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역시 ‘북한붕괴론’에 빠져 통일부를 ‘급변사태 준비 부서’로 바꿔놓는 등의 패착을 두었다”고 비판했다.
또 최근의 상황에 대해서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실전 배치는 이제 시간문제”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동안 진행 상황을 볼 때,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등 필요한 기술들을 이미 갖췄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란 얘기다. 그렇게 되면 북-미 관계가 지금보다 더 날카롭게 부각되는 한편 남한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진다. 앞서 살폈듯 북미의 뿌리 깊은 상호 불신은 그 어떤 협상도 합의도 어렵게 만들 것이며, 위기만이 증폭될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역설적으로 “그렇게 되면 남한의 구실이 다시 중요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미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면, 양쪽 모두 다시금 남한의 구실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남한이 제구실을 할 수 있으려면, “한-미 동맹을 탄탄히 유지하는 한편, 북한에 대한 남한의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그런 맥락에서 지은이는 “인도주의 융단폭격”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외삼촌의 용돈을 받고 자란 아이가 외삼촌을 미워하기 힘들듯, 대대적인 인도주의 지원만이 북한에 대한 남한의 협상력을 끌어올리고 북한의 대남 적대감을 완화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은이는 “문재인 정부가 국제기구와 함께 인도주의 지원을 위한 상설기구를 평양에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증상 완화’에만 매달린 단기적인 접근의 결과다. 이젠 중장기적으로 병의 원인을 치료하려는 접근이 필요하다.” 지은이가 말하는 중장기적인 접근은 한마디로 ‘북-미 간 신뢰 구축 프로세스’다. 제네바 합의 같은 ‘최대주의적 접근’을 피하고, 낮은 단계에서부터 조금씩 신뢰를 쌓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독재권력이 주민들에게 신념 체계를 강제로 주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참혹했던 한국전쟁의 경험, 견제받지 않는 김일성의 권력 독점은 이런 경로의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무차별 공습, 네이팜탄을 사용한 초토화 작전 등을 직접 경험한 북한 주민들의 트라우마는 미국을 악마화하는 독재권력의 조작 선전을 100% 받아들이고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과 남한은 북한의 이런 내재적인 구조를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서로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지은이는 1994년 제네바 합의가 그런 접근의 한계를 보여준 대표적 실패 사례라고 말한다. 뿌리 깊은 대미 불신에 갇힌 북한은 이미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남몰래 준비하고 있었고, ‘북한 조기 붕괴’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미국 역시 애초에 경수로 제공 등의 합의를 이행할 생각이 없었다. “서로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대를 배신”한 것이다.
인터뷰에서 지은이는 ‘북한붕괴론’이 “북한의 내재적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위험한 접근법”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은 국가라는 시스템이 아니라 수령체제 자체를 그 근간으로 삼기 때문에, ‘북한붕괴론’은 허구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역시 ‘북한붕괴론’에 빠져 통일부를 ‘급변사태 준비 부서’로 바꿔놓는 등의 패착을 두었다”고 비판했다.
또 최근의 상황에 대해서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실전 배치는 이제 시간문제”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동안 진행 상황을 볼 때,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등 필요한 기술들을 이미 갖췄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란 얘기다. 그렇게 되면 북-미 관계가 지금보다 더 날카롭게 부각되는 한편 남한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진다. 앞서 살폈듯 북미의 뿌리 깊은 상호 불신은 그 어떤 협상도 합의도 어렵게 만들 것이며, 위기만이 증폭될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역설적으로 “그렇게 되면 남한의 구실이 다시 중요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미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면, 양쪽 모두 다시금 남한의 구실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남한이 제구실을 할 수 있으려면, “한-미 동맹을 탄탄히 유지하는 한편, 북한에 대한 남한의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그런 맥락에서 지은이는 “인도주의 융단폭격”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외삼촌의 용돈을 받고 자란 아이가 외삼촌을 미워하기 힘들듯, 대대적인 인도주의 지원만이 북한에 대한 남한의 협상력을 끌어올리고 북한의 대남 적대감을 완화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은이는 “문재인 정부가 국제기구와 함께 인도주의 지원을 위한 상설기구를 평양에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증상 완화’에만 매달린 단기적인 접근의 결과다. 이젠 중장기적으로 병의 원인을 치료하려는 접근이 필요하다.” 지은이가 말하는 중장기적인 접근은 한마디로 ‘북-미 간 신뢰 구축 프로세스’다. 제네바 합의 같은 ‘최대주의적 접근’을 피하고, 낮은 단계에서부터 조금씩 신뢰를 쌓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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