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탐방기] 재미동포 교사 이금주의 따끈따끈한 북한이야기(7) - 뉴스페이퍼
[북한 탐방기] 재미동포 교사 이금주의 따끈따끈한 북한이야기(7)
교사 이금주
승인 2020.02.14
북의 미술관 <만수대 창작사>
만수대 학생소년궁전 일정을 마친 후, 근방에 있는 만수대 창작사를 방문하였다. 만수대 창작사는 북한의 예술 전문기관으로 미술관련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하는 곳이다. 원래 여정에는 없었는데 미술관을 가고 싶다는 내 요청에 따라 갑자기 생긴 일정이었다. 여행을 하면 꼭 가보는 곳이 미술관이다. 평양의 미술관. 가보고 싶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의 미에 대한 가치와 사회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북의 미학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북의 미술품은 어떨까? 과연 어떤 작품이 있을까? 이런 궁금증과 호기심을 품고 방문하게 되었다.
만수대 창작사 전경
한국화와 유화, 수채화로 된 풍경화, 도자기 작품을 감상하였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이지만 수준급의 훌륭한 작품임은 분명해 보였다. 모든 그림이 섬세하고 사실적인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어떤 그림은 마치 사진을 찍어 놓은듯 실물과 똑같다. 산수화 앞에 섰다. 그림 속의 풍경이 마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옮겨 놓은 듯하다. 그림인지 실제 자연인지 착각에 빠진다. 시냇물이 흐른다. 졸졸졸 물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그림 속의 새가 나뭇가지를 박차고 훨훨 날아 오른다. 나뭇잎 사이에 바람이 이는 듯하다. 그림이 살아 숨쉰다. 붓끝의 터치가 꿈틀거리는 듯 살아있다. 붓끝이 움직이는 듯 생동감과 섬세함이 드러난다. 강한 힘도 느껴진다.
그중 조선호랑이 그림은 실로 압권이었다. 호랑이의 깃털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그림 속 조선호랑이가 깃털을 세운다. 서늘하고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치 그림 속에서 걸어나올 것 같다. 이런 사실적인 표현은 북한 예술의 특징인가? 아니면 사회주의 예술의 특징인가? 그 표현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의 조선화는 내가 지금까지 본 남의 한국화나 동양화와는 분명이 차별화된 뭔가가 있었다. 표현이 매우 섬세하다. 사실적 표현의 극치를 보았다. 그러면서도 작가의 감성과 내면이 작품에서 느껴진다. 작가의 열정과 힘이 붓터치로 전해진다. 조선화는 사실적 섬세함과 역동성을 조화롭게 담아내고 있는 듯 하다.
만수대 창작사 안내원에 따르면 이곳에는 분야별로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를 비롯한 북한의 1급 미술가들이 망라되어 있다고 한다. 그 호랑이 그림은 창작사의 김철 작가의 작품이다. 인민예술가와 공훈예술가의 작품은 사진 촬영이 허용이 안 되어 아쉽게도 호랑이 그림은 사진으로 담지 못 했다. 만수대 창작사의 방문은 북한의 예술을 조금이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남과 북의 예술가들의 교류가 활발해 지고 남측에서 북측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북측에서도 남측의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만수대 창작사 그림 전시관
남과 북의 하나됨을 표현한 5.1 경기장 집단체조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릉라도 5.1경기장으로 향한다. 릉라도 5.1. 경기장(이하 5.1. 경기장)은 1989년 8월에 개최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위해 1989년 5월1일에 완공되었다.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다목적 경기장이다. 5.1 경기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19일 남북2차 평화회담 차 평양을 방문하면서 15만명의 평양시민 앞에서 남과 북의 ‘평화, 협력, 번영’의 비전을 제시한 연설을 해 유명한 곳이다.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을 담은 문대통령의 연설이 북녘동포의 가슴을 울리고 감격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던 바로 그 장소이다.
또한 5.1. 경기장은 집단체조로 유명하다. 북의 집단예술의 극치라는 집단체조를 꼭 관람하고 싶었다. 운이 좋게도 내가 평양에 머무르는 기간에 집체극 공연이 있었다. 사회주의체제의 집단주의 가치에 기반한 공연예술은 어떠할지 궁금했다. 집단체조 관람을 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통로라고 여겼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최선이다.
멀리서 왕관 모양의 경기장 보인다. 다시 한번 북의 건축물의 독특함을 느낀다. 티비로 통해 봤던 그 5.1 경기장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 평양 하늘 아래 한여름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던 태양은 어느새 뉘엇뉘엇 기울어 간다. 땅거미가 내리는 무렵이라 경기장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환하게 빛난다. 경기장에 가까이 올 수록 새로운 체험에 대한 기대로 나의 가슴은 설렌다. 북의 집체극. 이제 곧 보게 된다!
5.1 경기장 내부-경기장 보안원(왼쪽), 5.1경기장-조선중앙텔레비죤 중계차(오른쪽)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5.1경기장 입구에 도착했다. 너른 주차장은 이미 차로 꽉 차있다. 주차장에서 경기장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차를 대었다. 집단체조를 관람하기 위해 지방에서 온 듯한 버스들이 주차장에 여러 대 보였다. 북측 주민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외국인 관광단을 태운 버스와 미니밴, 외국인 공관의 승용차도 보인다. 서양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열을 지어 걸어간다. 경기장까지 걸어가는 많은 인파들. 상당수는 평양시민과 지방에서 올라온 북측 시민들이다. 안내원에 의하면 5.1경기장 집단체조는 북녘 동포들도 보고 싶어하는 매우 특별한 공연이라고 한다.
릉라도 5.1 경기장 집단체조 매스게임
경기장 너머로 구호를 외치는 함성이 들린다. 묘한 흥분이 가슴에서 인다. 군중의 함성은 항상 나에게 감동과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87년 6월 거리의 함성과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의 함성과 묘하게 교차된다. 함성. 그것은 대중의 목소리. 그것이 가지는 힘은 특별하다. 빨리 경기장 안으로 가고 싶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경기장으로 향한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온 가족,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 예쁘게 단장하고 나온 젊은 여성들, 다양한 평양시민들이 게이트를 향해 계단을 오른다. 나도 이 행렬에 합류에 4호구(4호게이트)를 통과했다. 경기장 보안원이 게이트 앞에서 서 있다. 게이트 옆에는 “조선중앙텔리비죤”이라고 씌여진 방송중계차도 보인다. 모든 장면, 순간순간 내가 보는 모든 것이 경이롭다. 경기장에 들어섰다. 와우! 말로만 듣던 5.1 경기장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 큰 규모와 시설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과연 15만명을 수용하는 경기장다운 웅장함이다.
카드섹션을 하는 수천의 학생들이 정면에 보인다.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필자도 인천에서 큰 운동경기가 있거나 전국체전을 하면 카드섹션 매스게임에 동원된 적이 있다. 수십년 전 추억이 돋는다. 현란하고 일사분란한 매스게임이 눈 앞에서 펼쳐진다. 대동강, 대성, 모란봉, 락랑, 보통강, 만경대...카드섹션으로 참여하는 각 학교의 이름을 표시한다. 시시때때로 학생들이 일제히 구호를 외친다. 15만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이 쩌렁쩌렁 크게 울린다. 무슨 구호인지는 분명히 들리지 않는다. 나와 안내원은 집단카드섹션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내 옆에는 영국인 관광객과 영어통역 안내원이 앉아있다. 자리 여기저기에 서양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도 상당수가 앉아 있다.
5.1 경기장 인민의 나라 집단체조(왼쪽위), 5.1 경기장 인민의 나라 집단체조(왼쪽 아래), 인민의 나라 집단체조에 등장한 4.27 선언 매스게임(중앙), 인민의 나라 집단체조 매스게임-9월평양공동선언(오른쪽 위), 인민의 나라 - 통일의 염원을 표현한 매스게임(오른쪽 아래)
매스게임은 공식공연 전 분위기를 돋군다. 밝고 현란한 색상의 카드로 펼치는 또 하나의 예술이다. 매스게임을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구경이다. 수백의 꽃송이 문양의 카드섹션과 더불어 공연이 시작된다. 분홍, 초록, 노랑 등 화사한 색감의 한복을 입은 여학생 수백명이 등장한다. 우리 전통무용의 춤사위를 펼친다. 나풀나풀 나비가 춤을 추듯 경쾌하고 발랄하다. 이번에는 서양무용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전통춤사위와 현대무용이 오묘하게 어우진다. 수백, 수천의 무용수가 펼쳐내는 군무. 하나의 몸이 움직이는 듯 정확하고 빈틈없다. 실로 칼군무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대규모 칼군무! 아름답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큰 매력이 있다.
공연은 계속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이번에는 전통악기 연주이다. 수백의 가야금 연주자들이 등장한다. 어깨 춤을 추듯 흥에 겨워 가야금 줄을 튕긴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어깨가 들썩인다. 흥이 전이된다. 수백개의 가야금이 울리며 자아내는 우리 고유의 선율. 힘과 흥이 넘친다. 선녀복을 입은 무용수들의 부채춤이 이어진다. 천개가 넘는 부채가 펄럭인다. 수백, 수천의 나비가 날개짓을 하는 듯 하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춤사위가 연출된다.
군악대의 연주, 차력시범, 공중곡예, 리본체조 등이 이어졌다. 어린이들의 귀여운 재롱도 보인다. 깜찍하고 발랄한 소학교 어린이들의 율동에 관중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낸다. 남이나 북이나 아이들은 곱고 어여쁘다.
다시, 우리 전통춤과 현대무용이 조화를 이룬 공연이 이어진다. 수백명의 무용수 뒤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카드섹션이 펼쳐진다. <4.27 선언>. <9월평양공동선언>. 아, 남과 북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평양시민들의 기립박수가 여기저기서 터진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의 마음은 이렇게 하나가 된다. 이건 우리의 운명이자 필연이다. 이런 생각이 몰아쳤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이심전심일까. 눈 앞에 “우리는 하나다” 라는 카드섹션이 펼쳐진다.
수천의 카드가 초록의 하나된 한반도를 만들어 냈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하나가 아닐까. 그렇다. 남과 북은 이미 마음으로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과 북이 간절히 평화를 원함을 확인했고 그 평화의 열망을 실현하기 위한 청사진도 공유하였다. 남과 북의 지도자가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악수하고 포옹하는 장면을 보고 우리는 감격과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남과 북의 대중들은 그 누구보다도 남과 북의 평화와 하나됨을 염원한다. 이제 실행만이 남아 있다. 다시 한번 “우리 민족끼리” 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공연의 클라이막스다! 우리 민족의 하나됨을 표현하는 무용과 음악, 매스게임을 삼위일체로 5.1경기장 집단체조의 최절정을 이루었다. 평화를 바라는 북녘동포의 마음이 뜨겁게 경기장을 달군다. 관람 온 평양시민들은 모두 일어나 우뢰같은 박수를 보내며 평화와 통일의 열망을 전한다.
기립 박수는 계속 이어진다. 평양시민들의 박수는 더 뜨겁게 경기장을 달군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수분간 이어졌다. 평양시민, 북녘동포들이 기립해 뜨거운 박수를 쏟아내자 외국인 관광객들도 합류한다.
“남과 북이 한마음으로 평화를 갈망하며 찢어진 반도를 하나로 잇기를 원한다. 이에 세계시민들은 함께 지지하며 지원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은 세계평화애호시민과 연대해 한반도평화와 더불어 세계평화를 이루어 낸다.” 마치 이런 무언의 메시지를 박수를 통해 표현하는 것 같다. 나만의 해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수만의 관중이 하나되어 “우리는 하나다”를 바라보며 그렇게 한마음으로 하나된 한반도를 박수로 소망했다. 밤하늘의 별도 찬란히 빛나며 우리의 소망을 축복한다. 정말 아름다운 밤이다.
이제 공연이 막바지에 이른 듯 하다. 전세계 민속 의상을 입은 남녀 공연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춘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왈츠가 울려 퍼진다. 오케스트라가 서양의 고전 음악을 연이어 연주한다. 카드섹션은 “국제친선, 연대, 협력”의 글자를 새기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 마지막 부분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국제친선, 연대, 협력” 여기서 북이 지구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강한 메시지를 읽었다. 북은 “세계 여러 나라와 친선관계를 원한다”고 공연을 통해 말한다. 나는 북이 미국과도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대화는 바로 이러한 의지의 표현이지 않은가! 북은 미국과 수교를 맺고 상호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친선관계를 원한다. 당당하고 대등하게 말이다. 이는 곧 한국전쟁의 종식과 한반도의 영원한 평화의 안착을 의미한다. 70년 전쟁을 끝내고 군사적 긴장과 적대를 몰아내고 평화롭게 공존하고자 하는 북의 메시지가 미국에게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다.
집단체조가 막을 내리고 우리는 수만의 인파와 함께 경기장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여러 무리의 공연자들이 보인다. 그중 부채를 들고 파란 한복을 입은 여성들과 나란히 걷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흥분과 반가움에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 오늘 공연 정말 훌륭했어요! 정말 멋져요! 수고 많으셨어요!”
“그렇습네까! 고맙습네다.”
재미동포라고 나를 소개했다. “아, 미국에서 오셨습네까? 멀리서 오셨구만요. 반갑습네다.”
간단한 대화가 오갔다. 내가 먼저 사진을 같이 찍자고 제안했다. 조금은 수줍은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좋습네다.” 평양의 북녀들과 부모님 고향이 황해도인 보스턴 북녀는 오늘밤을 기념하며 미소 가득한 얼굴을 사진에 담았다.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늘의 장대한 공연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내원과 기사도 중학교 시절 카드섹션에 참여했다고 한다.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경험이다. 거의 모든 중학생들이 참여한다. 더운데 연습하고 공연하는 게 힘들지 않았냐고 내가 물었다.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수만 관중의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을 때 정말 보람되었고 힘든 것이 다 보상되었다고. 기사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학창시절 이야기 전했다. 나는 나대로 중학생시절 매스게임에 참여했던 나의 경험을 나누었다. 남과 북의 옛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5.1 경기장 집단체조를 마치고 기념촬영(왼쪽), 5.1경기장 집단체조 공연자들과 함께(오른쪽)
개성으로 가는 길
북에서 맞이한 셋째날 아침이다.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개성으로 향한다. 쪽빛 하늘에 태양이 빛난다. 그 아래 뭉개 구름 한 두점이 떠간다. 고려의 역사유적이 남아 있는 도시. 개성하면 송도삼절,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가 떠오른다. 또한 절개의 상징 ‘정몽주의 선죽교’로도 유명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대대적인 폭격으로 북한의 도시 80%가 파괴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역사문화유적이 소실되었다. 개성은 한국전쟁 당시 3.8선 이남에 위치해 있었기에 미군의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개성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많은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다. 오늘은 그중 고려성균관, 선죽교, 표충사, 왕건릉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 동안 역사 교과서로만 접했던,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던 우리의 역사유적을 볼 수 있다. 아침부터 개성 여행에 대한 기대가 가득하다.
평양을 벗어나 다른 지역, 특히 북녘의 농촌지역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오늘 여정의 큰 매력이다. 평화자동차는 우리를 싣고 평양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달린다. 정겨운 농촌 풍경이다. 나즈막한 살림집(아파트)들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넓게 펼쳐진 논과 밭. 옥수수와 벼, 그리고 여러 종류의 농작물이 8월의 뜨거운 햇볕은 받으며 초록물결로 넘실거린다.
고층빌딩이나 아파트는 보이지 않는다. 남측이나 어느 곳이나 그렇듯이 농촌 풍경은 어릴 적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번화하고 번잡하지 않는 삶의 모습.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흙내음과 그 흙 속에 땀을 쏟는 사람들의 삶이 있는 곳이다.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북의 농촌 풍경. 평온하고 정감 넘친다.
평양-개성 가는 길 풍경(왼쪽), 평양-개성 가는 길 전원풍경(오른쪽)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이제 평양-개성 고속도로로 들어선다. 평양에서 개성까지 연결되는 총연장 170km의 평양-개성 고속도로. 평양과 개성을 거의 직선으로 연결해 곡선 구간도 거의 없고 경사도 완만하다고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4.27 판문점 회담을 위해 달려온 그 길이다. 김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대하면서 길이 불비해 문대통령이 불편함을 느낄까 염려했다. 오늘의 여정이 이길을 달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할 각오로 길을 나섰다.
아스팔트와 중간중간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이어졌다. 아스팔트가 패인 곳을 시멘트로 땜질한 부분도 보였다. 중간중간 덜컹거리는 느낌이 있어 아주 편안한 승차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크게 불편한 승차감도 아니었다. 멀리 차창 풍경과 지평선을 보면서 조용하고 편안한 자동차 여행을 즐겼다. 평양-개성, 2시간 20분 정도의 여정 동안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고속도로는 대부분의 구간이 왕복 4차선이었다. 간혹 왕복 2차선도 있었다. 구간에 따라 조금 붐비기도 하고, 아주 한산한 하기도 하다. 교통체증은 없었다.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직선의 도로를 막힘없이 쭉 달린다. 승용차, 미니버스, 대형버스, 트럭 등 다양한 차들이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달렸다. 이정표를 자주 보았다. 속도 표지판도 자주 보았다. 제한 속도는 대체로 시속 100 km. 때때로 110 km 인 구간도 보았다. 170 km를 달리는 동안 많은 터널을 지났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처음으로 ‘통일굴'을 지났고 이어 ‘ 례성굴, 옥천굴, 륭궁굴, 주포굴, 부흥굴’ 등의 터널을 지났다. 산을 뚫어 만든 터널들. 험한 산세와 산으로 덮인 지형을 말해 주는 듯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터널을 지났다.
평양-개성 고속도로 온정휴게소 풍경(왼쪽), 평양-개성고속도로 휴게소 옥외 매대(오른쪽)
평양을 출발해 1시간 반 남짓 지났을까.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고속도로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머물렀다. 온정휴게소. 옥외 매대에서 판매원이 한무리의 중국인 관광객들에서 커피, 차, 과일, 아이스크림 등을 팔고 있었다. 휴게소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꽤 붐비었다. 휴게소 건물 한쪽에 화장실이 있었다. 중고대학 시절 남측에서 자주 보던 좌변기다. 평양의 화장실은 대부분 양변기다. 평양-개성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북에 와서 처음으로 좌변기를 보았다. 관리는 전반적으로 잘 되어 있다. 화장지도 잘 비치되어 있다. 화장실 청소상태도 양호하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는데도 화장실은 깨끗했다.
부지불식 간에 남의 휴게소 풍경이 교차된다. 보통 휴게소에는 주유소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주유소를 보지 못 했다. 한가지 더 특이했던 점은 톨게이트를 보지 못 했다. 고속도로 이용료를 내지 않는 듯 하다. 안내원에게서 북에서는 세금이 없다고 이미 들은 바 있다. 고속도로도 무료인가 보다. 현재는 고속도로를 무료로 이용하지만, 남북 관계가 좋아져서 남쪽에서 자동차로 북을 거쳐 중국을 여행하는 시대가 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북에서 톨게이트를 만들어 요금을 받지 않을까? 남과 북이 빵빵 뚫린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그날을 상상해보며 마땅히 톨비를 내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평화 자동차는 개성을 향해 다시 달린다.
개성 가는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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