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회주의로 갈까 봐 불안해하는 목사님들에게
'말씀과순명' 기도회를 지켜보며…체제 선택하는 상황 아냐, 불신의 사회 더욱 불안하게 하지 말아야
기자명 전남식
승인 20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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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신교 목사들이 한국 사회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기도회를 열겠다고 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모여 기도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그 기도회를 걱정했다. 교계 지도자들이 연일 헛발질을 해 대고 있었기 때문에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드디어 기도회가 개최됐고, 아니나 다를까 교계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 전반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미 알겠지만 '말씀과순명' 기도회 이야기다. 첫 번째 기도회에서 사회를 맡은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는 왜 이 시점에 기도회를 개최하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에 인간의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모였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는데 그 말이 이 기도회에 주목하고 있던 많은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아니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불안한 마음을 주시고 계십니다."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일까. 그는 우리나라가 극우나 극좌의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며 안타깝다고 말했다. 바로 이어진 순서는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 설교였다. 홍정길 목사 설교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사죄의 은총에 관한 내용이었고, 후반부는 회개의 기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설교였지만 그가 든 사례 중 몇 가지가 유 목사 말처럼 불안한 마음을 줬다. 그중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언급이 가장 불편했다. 홍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 자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반대하면 물러나야지. (중략)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양심이 있어 민심 속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지팡이 들고 경무대를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동시에 민주주의, 다시 말해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뜻이다. 이미 대한민국은 헌법을 가진 법치국가였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라면 나라의 기초인 헌법을 충실히 이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수차례 불법 선거를 통해 정권을 유지했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외친 수많은 사람을 처형했다. 심지어 무고한 시민들에게 '부역자' 누명을 덧씌워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를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라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백성들이 반대하면 물러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임기가 됐을 때 물러났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재임 기간에 백성을 하늘처럼 받들고 존중했어야 했다. '백성'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사대부가 아닌 일반 평민을 일컫는 말"이기도 한데, 따라서 이승만은 자신을 왕족, 적어도 사대부 양반으로 생각한 반면 국민을 아랫것으로 여긴 것은 아닐까.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2월 19일 오전에 열린 '말씀과순명' 두 번째 기도회. 뉴스앤조이 최승현
홍정길 목사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조지 오웰의 <1984>를 언급했다. 그는 '유토피아'는 실현 불가능한, 상상 속 이야기일 뿐이니 거론 대상이 되지 못할 뿐더러, 지금 사회가 빅 브라더가 통제하는 전체주의사회로 치닫고 있다고 보고 불안해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유토피아는 상상 속 세계, 그러니까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한 사회일 수 있겠지만 모어가 과연 그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모어는 16세기 영국 사회 왕족과 귀족들이 토지를 독점하면서 민중들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이 책에서 비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세상을 상상했던 것이다. 비록 '유토피아'가 세상에 없는 나라를 뜻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당시 영국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이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웅변이었던 셈이다.
이는 성경이 시종일관 보여 주는 내용 아니던가. 비록 지금은 제국의 억압 아래 살고 있지만, 메시아가 통치할 세상을 꿈꾸면서 불의하고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꿈꾸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이 되라고 말이다. 동시에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가 통제하는 사회는 국민들을 사찰하고, 비판적 예술가나 문화 활동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았던 지난 정부와 훨씬 가까웠다. 문재인 정부는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홍 목사는 이를 "아무도 가 보지 못한 나라", 사회주의 체제라고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유기성·홍정길 목사와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원로)를 포함한 지도급 목사들이 불안해하는 사회주의 체제는 무엇인가? 사회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체제인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주의 체제는 불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밖에 없음을 역사를 통해 배웠다. 인간은 능력이나 처한 상황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자유주의 체제에서는 특별한 소수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반대급부로 나타난 체제가 사회주의다. 다수의 약자도 안전과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역설하면서, 그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때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한 법적 장치가 부유세, 토지공개념 등이며, 성경에서 안식년, 희년 제도 등을 통해 수많은 예언자가 외쳤던 내용과 일치한다.
감독상·작품상 등 4개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을 두고, 한 언론인은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 이후 계급투쟁을 부추기는 데 가장 거대하게 성공한 작품"이라고 설레발을 쳤다. 그가 보기에 '기생충'과 같은 영화는 한국 민주주의 체제 붕괴를 조장하는 작품이다. 그 상황에서 한국교회도 덩달아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하며 불안해한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부의 재분배, 사회복지 강화, 종부세 강화 등을 강조하면 모두 계급투쟁이자 사회주의혁명 시도이며, 반기독교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언자 이사야는 성전과 국가가 무너지는 이유를 지도자들이 뇌물을 밝히고 돈만 추구하면서 과부와 고아들의 하소연에 귀를 막은 탓으로 돌렸다. 그는 외쳤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사 1:17)."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 약자를 상징한다.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면 하나님께서 망해 가는 나라와 성전을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외쳤다.
예레미야도 같은 메시지를 선포했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고, 이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겨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내가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하도록 준 이 땅, 바로 이곳에서 너희가 머물러 살도록 하겠다(렘 1:6-7)." 나라든 성전이든 그들이 그 땅에서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은 약자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일이었다. 한국교회, 한국 경제가 무너지는 이유는 오히려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해 가난한 자들에게 재분배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 데 있다.
그런 정책에 반대하면서 예배 행위만 강조하는 교회를 향해 예레미야는 "강도의 소굴"(렘 7:11)이라고 쏘아붙였다. 우리는 예수께서 이 구절을 인용하셨음을 익히 알고 있다(막 11:17). 예수께서는 교회를 기도하는 집, 예배 처소라고 말한다. 기도하는 집, 예배 처소,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열리는 예배는 사회정의와 무관한 행위를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정의가 부재한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단언하셨다(사 1:15). 나라를 다시 회복하고, 교회의 부흥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 말씀을 명심하라.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사 1:17)."
나라를 걱정하시는 선배 목사님들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 땅의 수많은 사람이 부의 양극화, 기회의 제약, 치열한 경쟁으로 고통받고 있다. 지금 이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 중 하나를 선택할 상황이 아니다. 극우와 극좌의 양극화로 치닫고 있지도 않다. 그들이 말하는 극우는 누구이고, 극좌는 누구인가. 혹시 여당을 극좌라고 판단한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극좌라니. 반면 극우는 누구일까? 전광훈을 비롯한 태극기 부대를 이용해 여론 몰이를 하고 있는 자들이 극우 아니겠는가.
예언자 스가랴는 아직까지 가 보지 못한 나라를 꿈꾸면서 이렇게 말했다. "예루살렘 광장에는 다시, 남녀 노인들이 한가로이 앉아서 쉴 것이며, 사람마다 오래 살아 지팡이를 짚고 다닐 것이다. 어울려서 노는 소년 소녀들이 이 도성의 광장에 넘칠 것이다(슥 8:4-5)." 스가랴는 예루살렘이 성실한 도성, 거룩한 산, 노인들과 아이들이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곳이 되리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그런 상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수반되어야 했다. 바로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고, 과부와 고아들, 나그네(난민)들에게 관용과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7:9-10). 그러한 세상이 바로 하나님나라다. 여러 선배 목사님은 이런 하나님나라를 공정한 기회를 빼앗는 사회주의 체제(?)라고 불안해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19로 온 사회가 불안에 떨고 있다.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불신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존경하는 목사님들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 홍정길 목사 언급대로 1987년 6월 항쟁 이후 30년이 지났다. 지난 30년간 우리 민주주의는 퇴보하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퇴보와 진보를 거듭하면서 서서히 민주화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민주주의가 심각한 퇴보를 겪는 듯했으나, 수많은 시민의 촛불로 불의한 정부를 몰아내고 현 정부가 들어섰다. 현 정부가 들어서고 3년 동안 잘한 일도 있고, 잘못하거나 미흡한 부분도 있다. 그러면서 역사는 더디게 진보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문학동네)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페스트의 시대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페스트의 기준에 맞춰 살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사상 차이로 혐오와 배제를 조장하는 앙시앙 레짐(구체제)은 종식됐다. 아니, 종식돼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고, 그것을 통해 기생하는 페스트들이 잠복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당신들의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을.
전남식 / 꿈이있는교회 담임목사, 느헤미야교회협의회 상임대표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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