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민 기자
2022.01.02 15:04 입력
북한서 태어나 남한·일본 오간 ‘경계를 넘는 여행자’
복잡하고 중층적인 현대를 묘사
“역사적으로 사회는 늘 발전… 불균형 해소가 과제”
고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
고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저자이자 한·일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 간 우호를 강조해 온 지식인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가 지난 1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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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전 교수는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과 일본을 오가며 산, ‘경계를 넘는 여행자’였다. 고인은 192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46년 평양 김일성대학에 제1회 입학생으로 들어갔다. 1947년에 월남했다. 이후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종교철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덕성여대 교수와 잡지 ‘사상계’ 주간을 지내며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1972년 일본으로 망명했다. 20년 망명 생활의 시작이다. 일본에 머무르며 도쿄여자대학 교수로 9년간 재직했다. 1993년 귀국한 뒤에는 한림대 석좌교수, 일본학연구소 소장,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KBS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74년 7월호 <세카이>에 실린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필자가 ‘T·K生’으로 표기돼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4년 7월호 <세카이>에 실린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필자가 ‘T·K生’으로 표기돼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인은 2003년 자신이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필자 ‘T·K生(생)’임을 밝혔다.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유신독재 시절인 1973년부터 노태우 정권이 수립된 1988년까지 15년간 일본의 진보 학술잡지 ‘세카이(世界)>에 달마다 연재된 글이다.
고인은 ‘T·K생’이라는 필명으로 당시 국내 언론들도 자세히 다루지 못했던 독재정권의 실상과 민주화운동의 경과를 매달 기고해 해외에 알렸다. 당시 국내 정보기관의 추적에도 ‘T·K생’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이 풍부하고 정확해 많은 이들이 ‘T·K생’은 개인이 아닌 다수일 거라 추측했다.
2007년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는 고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 이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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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엮어 책으로 내면서 저자의 말에 “미완의 역사로서 현대사는 자칫하면 쓰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실로 복잡하고 중층적인 현대를 묘사한다는 것은 때로는 일방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며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라고 썼다. 고인은 이 밖에도 <한국을 움직인 현대사 61장면> <한국과 한국인> <한일 관계사 연구> 등 다수의 학술서와 자서전 <경계를 넘는 여행자> 등을 집필했다. 저서에서는 거듭해 지식인의 역할과 한·중·일 등 아시아 국가 간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어두운 시대를 겪고 나면 새 시대가 온다고 봤다. 생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는 늘 발전해왔다. 그런데 사회는 발전 과정에서 늘 한 부문은 쇠락하고, 또 다른 쪽은 융성하는 불균형이 일어난다”며 “우리의 정치적·사회적 중요 과제는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고,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새롭게 융성하는 부문은 키우되, 중요한 가치가 있음에도 쇠락하는 부문은 정책적 배려를 통해 그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4일 오전 7시에 치른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정숙씨와 지형인(게이오대 교수), 지효인(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임원), 지영인(미네소타대 교수), 박순경씨가 있다.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지명관 전 교수 별세 - 경향신문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지명관 전 교수 별세
복잡하고 중층적인 현대를 묘사
“역사적으로 사회는 늘 발전… 불균형 해소가 과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저자이자 한·일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 간 우호를 강조해 온 지식인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가 지난 1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8세.
지 전 교수는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과 일본을 오가며 산, ‘경계를 넘는 여행자’였다. 고인은 192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46년 평양 김일성대학에 제1회 입학생으로 들어갔다. 1947년에 월남했다. 이후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종교철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덕성여대 교수와 잡지 ‘사상계’ 주간을 지내며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1972년 일본으로 망명했다. 20년 망명 생활의 시작이다. 일본에 머무르며 도쿄여자대학 교수로 9년간 재직했다. 1993년 귀국한 뒤에는 한림대 석좌교수, 일본학연구소 소장,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KBS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2003년 자신이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필자 ‘T·K生(생)’임을 밝혔다.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유신독재 시절인 1973년부터 노태우 정권이 수립된 1988년까지 15년간 일본의 진보 학술잡지 ‘세카이(世界)>에 달마다 연재된 글이다.
고인은 ‘T·K생’이라는 필명으로 당시 국내 언론들도 자세히 다루지 못했던 독재정권의 실상과 민주화운동의 경과를 매달 기고해 해외에 알렸다. 당시 국내 정보기관의 추적에도 ‘T·K생’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이 풍부하고 정확해 많은 이들이 ‘T·K생’은 개인이 아닌 다수일 거라 추측했다.
고인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엮어 책으로 내면서 저자의 말에 “미완의 역사로서 현대사는 자칫하면 쓰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실로 복잡하고 중층적인 현대를 묘사한다는 것은 때로는 일방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며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라고 썼다. 고인은 이 밖에도 <한국을 움직인 현대사 61장면> <한국과 한국인> <한일 관계사 연구> 등 다수의 학술서와 자서전 <경계를 넘는 여행자> 등을 집필했다. 저서에서는 거듭해 지식인의 역할과 한·중·일 등 아시아 국가 간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어두운 시대를 겪고 나면 새 시대가 온다고 봤다. 생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는 늘 발전해왔다. 그런데 사회는 발전 과정에서 늘 한 부문은 쇠락하고, 또 다른 쪽은 융성하는 불균형이 일어난다”며 “우리의 정치적·사회적 중요 과제는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고,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새롭게 융성하는 부문은 키우되, 중요한 가치가 있음에도 쇠락하는 부문은 정책적 배려를 통해 그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4일 오전 7시에 치른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정숙씨와 지형인(게이오대 교수), 지효인(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임원), 지영인(미네소타대 교수), 박순경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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