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사진) 사살된 광정단 대원들 앞에서 사진을 촬영한 일
제 경찰들
Charles Kim
2019. 6. 14.
<1922년, 국내진공작전 중 체포된 광정된 결사대원 김창일(좌)과 김서운(우)>
위 사진은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접했을 사진이다. 이 사진은 3.1 운동 직후 국외에서 조직된 수많은 무장독립운동단체들 중 하나였던 <"광정단">의 결사대원들인 김창일과 김서운을 촬영한 것이며 이는 사진 속 중앙에 위치한 <"남만주잠재광정단결사대원">이라는 문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남만주잠재광정단결사대원">
그런데 이 사진의 내막은 다소 서글픈데 사실 이 사진은 일제에 의해 체포된 광정단 결사대원들을 촬영한 사진이기 때문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햇빛에 감옥 창살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고 김창일과 김서운의 한쪽 손에도 수갑과 포승줄이 채워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체포된 상태이지만 결연한 눈빛을 통해 독립을 위한 강고한 정신만은 죽지 않았음을 느껴볼 수 있는 사진이다.
<저 멀리 보이는 감옥 창살 그림자, 그리고 김창일과 김서운의 손에 채워져있는 포승줄과 수갑>
<김창일과 김서운의 손에 채워진 포승줄과 수갑>
아마 일제는 국외에 산재한 무장독립운동단체들의 무장 상태를 조사 및 분석하기 위해 해당 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전에도 비슷하게 일그래픽과 역사 컨텐츠의 상호작용 제는 청산리 전투에서 체포된 독립군들의 사진을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도 체포 당시의 무장 상태를 그대로 갖추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안전을 위해 총알 등의 위험요소는 미리 제거
했을 것이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양쪽에 일본군을 배치시킨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청산리 전투 당시 체포된 독립군들을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이 사진들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모자에 붙어있는 태극기 모표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독립군들이 태극기 모표를 단 모자를 착용했다는 건 관련 증언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는데 이렇게 실물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제가 당시 독립군들의 무장 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남겼던 사진들이 현재는 당시 독립군들이 어떻게 무장하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는 게 다소 아이러니하다.
-- <현재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는 광정단의 또다른 사진> --
위 광정단 결사대원인 김창일과 김서운의 사진이 촬영된 계기는 1922년 9월에 이루어진 광정단의 국내진공작전에서 비롯되었다. 1922년 9월 25일, 소대장 강승경과 30여명의 광정단 결사대원들은 군자금 모금을 위해 오전 4시경에 국내로 잠입한 뒤 삼수군 삼수경찰서 영성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여 일본 순사 마츠이 요시미(松井好)를 사살하고 그 외 소수의 일제 순사들에게 부상을 입혔지만 이 과정에서 몇 명의 결사대원들이 일제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김창일, 김서운, 그리고 한진술은 체포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 때 체포된 김창일과 김서운을
촬영한 사진이 훗날 광정단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런데 광정단과 관련해서 현재까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진들이 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진은 광정단 결사대원들이 기습 공격했던 영성경찰관주재소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며 이는 사진 우측의 <"영성경찰관주재소">라는 문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주재소 앞에 일제 순사들에게 사살된 2명의 광정단 결사대원들의 시신이 보이며 그 가운데에는 태극기 모표를 단 모자를 착용하고 태극기를 들고 있는 광정단 결사대원이 앉아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살된 광정단 결사대원들의 모습>
태극기를 들고 있는 대원이 누구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상술했듯 당시 체포된 광정단 대원들은 총 3명이었는데 이 중 김서운과 김창일은 얼굴이 알려져 있으니 해당 사진 속 인물은 당시 이들과 함께 체포된 한진술이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체포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는지 몸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광정단 결사대원들 뒤에는 일제 순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중 한 명은 광정단 결사대원들과 교전하던 도중 부상을 입었는지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그 외 한복을 입은 조선인들과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 여성 2명이 보이는데 이들은 광정단 결사대원들과 관련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당시 주재소 부근에 거주하고 있26다가 일제 순사들의 명령에 의해 그래픽과 역사 컨텐츠의 상호작용 사진 촬영에 응한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사살된 동지들 사이에서 태극기를 들고 사진 촬영에 응해야 했던 한진술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울분과 분노. 그것들 뿐이었으리라.
<한진술 추정 사진>
위 사진도 현재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체포된 광정단 결사대원을 촬영한 사진이다. 이 사진 역시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당시 3명의 광정단 결사대원들이 체포된 점, 그리고 얼굴이 첫 번째 사진
속 태극기를 든 인물(한진술)과 비슷한 점으로 미루어 한진술로 추정된다. 이 사진 역시 당시 만주 지역에 산재했던 독립군들의 무장 상태를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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