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3

[한일관계][위안부문제] 영화[Railway Man]에서 배우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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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위안부문제] 영화 <Railway Man>에서 배우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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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에 사는 (사회학 박사과정의) 일본인 아야카 상이 쓴 글.
세진: 이런 글을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써 준것이 고맙다. 세진이 적당 번역.
밑의 글은 일본 정부의 사과 등 이야기가 아니고 일본인 개인 개인, 특히 위안소를 이용했던 전 일본군들이 많이 직접 위안부들을 찾아가 사과를 하던지, 뭔가 해서 양쪽의 가슴속에 엉어리를 풀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나에게는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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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인 우리가 "전쟁의 비극"이라는 말을 사용 때마다 가려져가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각하고있어 좋은 것일까요?
지난 밤, 영국의 TV 채널 Film 4에서 방영 된 2013 년의 영화 "The Railway Man"(일본 타이틀 '레일 웨이 맨')을 보았습니다. 제 2 차 세계 대전중인 1942 년 일본군은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버마 철도의 건설을 시작했다. 현지인 이외에도 연합국 포로 6 만 2000 명을 동원, 영국인 6904 명, 호주 2802 명, 네덜란드 인 2782 명, 미국인 133 명 등 모두 1 만 2621 명이나 가혹한 노동 끝에 사망 있었다고합니다 :
https://ja.wikipedia.org/.../%E6%B3%B0%E7%B7%AC%E9%89%84%E9%8...
이 영화는 연합군의 포로로 버마 철도 건설에 강제로 동원되었다 영국군 병사 통역으로 복무 일본인 헌병 대원의 실화를 바탕으로하고 있습니다.
일본어 자막의 트레일러는 여기에서보실 수 있습니다 :
(아래는 스포일러가되기도하기 때문에주의를.)
이야기의 주인공 영국군의 엔지니어로 맥스는 싱가포르에서 일본군의 포로가되어, 버마 철도 건설을 위해 태국에 연행되지만 일본군의 굴욕적인 취급을 받아도 정신적으로는 결코 굴복 (surrender)하지 않았습니다.
로 맥스는 전황을 알기 위해 동료와 협력하여 건설 현장에서 부품을 모아 라디오를 만들고 동료들 사이에서 희망의 별이되지만 결국 얼마 안 있어 일본군에 알려지게되고, 또한 철도를 좋아 해서, 철도의 지도를 작성하여 소지하고 있던 것 때문에 간첩 혐의를 받아 처절한 고문에 받습니다. 고문 장면 일본인이 조직적으로 도입한 고문의 수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관타나모 정도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에서도 같은 수법은 사용 된 것인지, 중국이나 한국에서의 고문 수단은 더욱 더 잔인한 것이 아닌지, 라고 생각하게되었습니다.
이야기의 두 번째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헌병대 원 · 나가세는 당초 통역으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하고 고문은 다른 상관이 하고 있었지만 "진실을 말하라!"고 위협을 한다. 로우 맥스는 " 연합군에게 유리한 전황 역전 대해 라디오에서 들었다 '고 고백을 하자 "대본영 (일본의 총사령부)의 발표'만 믿고 있던 나가세도 불끈해서 고문에 직접 참가하게 됩니다.
이 때의 고문을 계기로, 콜린 퍼스가 연기 한 로우 맥스는 퇴역 후 트라우마로 고통 받고 플래시백을 반복하여 갑자기 폭력적인 충동을 받고, 그의 트라우마는 아내에게도 고통을 줍니다.
한편, 사나다 히로유키가 연기 한 나가세는 헌병대원이었던 과거를 은폐하고 연합국 측의 통역으로 전쟁 범죄 조사에 참가한 후 일본에 귀국하지 않고 태국에서 전쟁의 역사를 전하는 관광 가이드가 됩니다. 태국 신문이 사나다 히로유키의 활동에 대해 전한 것에 의해 나가세의 소식에 대해 알고 로우 맥스는 오랜 고통을 끝장 내기 위해 태국에 가서 전쟁 박물관에서 나가세와 직접 대결하게 됩니다 만, 이 사진은 영화의 클라이 막스라고 할 수있는 그 장면의 것입니다 :
우선,로 맥스는 일본군이 다녀온 포로 학대 현지인의 살해에 대해 관광객에 대해 "(자신이 가담했다고) 일인칭으로 말하라"고 나가세의 기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다음의 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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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세 : "나는 전쟁의 비극을 잊지 않을거야"(I will not forget the tragedy of war).
로 맥스 : "무엇을 잊지않겠다고?"(The what?)
나가세 : "비극"(The tragedy).
로 맥스 : "아니, (전쟁 박물관에서 전시를 가리킨다) 이것은 비극이 아니다. 이것은 전쟁 범죄이다. 너는 죄를 범한 것이다. 너는 머리가 좋고 교육도받은 인간이었다 그래도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This was not a tragedy. This was a crime. You 're a criminal. You were an intelligent, educated man. And you did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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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독일인 친구들이 결코 "전쟁의 비극"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반면, 우리 일본인이 "전쟁의 비극"라는 말을 많이하는 것에 대해 위화감을 안고 왔지만, 나는 또 다시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비극"이라는 말은 우파와 좌파 지금까지 쌍방이 많이하고 왔고 그 것은 일본인의 대부분이 제 2 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입지를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네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몇 년간에서도 매년 8 월에 내가 읽은 것 중에서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전율 할 잔학 한 행위를 반복 조직적으로 전쟁 범죄를 거듭 한 것을 진심으로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 '는 논리에 기반을 둔 성명보다 '도쿄 대공습, 원폭, 남양 전 등에서 많은 일본인이 사망하고, 고귀한 희생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 '는 논리에 근거한 성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본인 좌파의 역사 인식에 있어서는, 원폭 체험에 근거한 '피해 의식'만이 강조되고 가해자의 의식이 결여 된 것은 James J. Orr가 2001 년에 출판 된 책 "The Victim as Hero . Ideologies of Peace and National Identity in Postwar Japan "(하와이)를 비롯해 세계의 연구자로부터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우파에 대해서도 칸노 강씨도 "일본 회의의 연구」에서 일본 회의와 그 지지자들이 미국에서 「일본 국 헌법을 강요했다 '는'피해 의식 '투성이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지적 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이 세상의 한 구석에 '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히트하고 있습니다 만, 일본의 전시 체제를 지탱 한 것은 군부 만이 아니라 지혜를 짜내 절약에 절약을 거듭 "갖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길 때까지"를 관철한 서민들, 특히 주부들 이었음은 Sheldon Garon가 1997 년에 출판 된 책"Molding Japanese Minds : The State in Everyday Life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가 대 히트 한 이래, 전세계의 연구자에게 알려지게되어 있습니다.
이전 제 2 차 세계 대전 중 서민 생활, 서민에 의한 나치에 가담을 그린 독일 영화 "Unsere Mütter, unsere Väter"(2013 년)을 자세히 소개했지만, 대 힛트 중인 아니메 영화 "이 세상 한구석에 "속에서 일본의 가해 책임이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 어쨋던 저 스스로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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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Railway Man"에서는 일본 헌병대원 · 나가세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후회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을 표시함으로써 영국인 병사 로우 맥스에서 용서 (Forgiveness)를 얻고 막을 닫습니다.
현재 부산에서 '소녀상'설치 후 종군 위안부에 관한 논의가 다시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온 연로 한 전 · 종군 위안부들은이 사진처럼 가해자에게 직접 다가서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일본인에 있어서, 제 2 차 세계 대전의 가해의 역사 인식이 희미해져가는 가운데, 그녀들의 절망, 분노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요.
이 영화는 부조리에 굴복 (surrender)을 강요당한 자의 굴욕, 분노, 고통, 긴 세월 동안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각한 지, 그리고 가해자가 죄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과, 피해자의 용서가 양쪽의 인생에 있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 것 인지 우리에게 호소 해 오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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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人である私たちが「戦争の悲劇」という言葉を用いるたびに、覆い隠されていく何かがあることに、私たちは無自覚でいてよいのでしょうか?
昨晩、イギリスのTVチャンネルFilm 4で放映された、2013年の映画"The Railway Man"(邦題「レイルウェイ 運命の旅路」)を観ました。
第二次世界大戦中の1942年、日本軍は、タイとミャンマーを結ぶ泰緬鉄道の建設を開始。現地人以外にも連合国の捕虜6万2000人を動員し、イギリス人6904人、オーストラリア人2802人、オランダ人2782人、アメリカ人133人の合計1万2621人も過酷な労働の末に亡くなったそうです:
この映画は、連合国の捕虜として泰緬鉄道の建設に強制的に従事させられたイギリス軍兵士、通訳として従軍していた日本人憲兵隊員の実話に基づいています。
日本語字幕付きのトレイラーはこちらでご覧になれます:
(以下はネタバレにもなっているので、ご注意を。)
物語の主人公、イギリス軍のエンジニア・ローマックスは、シンガポールで日本軍の捕虜となり、泰緬鉄道の建設のためにタイに連行されますが、日本軍による屈辱的な扱いを受けても、精神的には決して屈服(surrender)しませんでした。
ローマックスは、戦況を知るために、仲間と協力して建設現場から部品を集めてラジオを作り、仲間たちの間で希望の星となりますが、やがてそのことが日本軍に知られることなり、さらに、鉄道好きゆえに鉄道の地図を書いて所持していたことによってスパイ容疑をかけられ、壮絶な拷問にかけられます。
拷問のシーン、日本人が組織的に導入していた拷問の手口は想像を絶するもので、グアンタナモどころではないという印象を受けました。中国や韓国でも同様の手口は用いられたのか、中国や韓国での拷問の手段はさらに残虐さを極めたのだろうか、とも考えさせられました。
物語の第二の主人公とも言える憲兵隊員・永瀬は当初、通訳としての役のみを果たしており、拷問は別の上官が行っていましたが、「真実を言え!」と脅されたローマックスが「連合軍有利の戦況逆転についてラジオで聴いた」ということを告白したとき、「大本営発表」を信じ切っていた永瀬も逆上、拷問に直接担加することになります。
このときの拷問がきっかけで、コリン・ファースが演じたローマックスは、退役後もトラウマに苦しみ、フラッシュバックを繰り返し、突然、暴力的な衝動に駆られたりもし、彼のトラウマは妻をも苦しめます。
一方、真田広之が演じた永瀬は、憲兵隊員であった過去を隠蔽し、連合国側の通訳として戦争犯罪の調査に加わった後、日本には帰国せず、タイで戦争の歴史を伝える観光ガイドとなります。
タイの新聞が真田広之の活動について伝えたことにより、永瀬の消息について知ったローマックスは、長年の苦しみに決着を付けるため、タイに赴き、戦争博物館内で永瀬と直接対決するのですが、この写真は映画のクライマックスとも言えるそのシーンのものです:
まず、ローマックスは、日本軍が行ってきた捕虜の虐待、現地人の殺害について、観光客に対して「(自分が加担したと)一人称で語れ」と永瀬の欺瞞を指摘します。
そして、私にとって、最も印象に残ったのは以下の会話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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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瀬:「私は戦争の悲劇を忘れるつもりはない」(I will not forget the tragedy of war)。
ローマックス:「何を忘れないと?」(The what?)
永瀬:「悲劇を」(The tragedy)。
ローマックス:「いや、(戦争博物館内の展示を指して)これは悲劇ではない。これは戦争犯罪だ。お前は罪を犯したのだ。おまえは頭がよく、教育も受けた人間だった。でもおまえは何もしなかった」(This wasn’t a tragedy. This was a crime. You’re a criminal. You were an intelligent, educated man. And you did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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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前から、ドイツ人の友人たちが決して「戦争の悲劇」という言葉を用いないのに対し、私たち日本人が「戦争の悲劇」という言葉を多用することについて違和感を抱いてきましたが、私も改めてそのことについて考えさせられました。
「戦争の悲劇」という言葉は、右派と左派、これまで双方が多用してきましたし、そのことは、日本人の多くが第二次世界大戦における日本の位置づけを「加害者」としてではなく、むしろ「被害者」として認識していることの現れなのかもしれません。
ここ数年間においても、毎年8月に私が読んだものの中では、「他国を侵略し、戦慄すべき残虐な行為を繰り返し、組織的に戦争犯罪を重ねたことを心底恥じるがゆえに、私たちは戦争に反対する」という論理に基づく声明よりも、「東京大空襲、原爆、南洋戦などで多くの日本人が亡くなり、尊い犠牲を払ったため、私たちは戦争に反対する」という論理に基づく声明の方が圧倒的に多かったと記憶しています。
日本人の左派の歴史認識においては、原爆体験に基づく「被害者意識」ばかりが強調され、加害の意識が欠けていたことは、James J. Orrが2001年に出版した本 "The Victim as Hero. Ideologies of Peace and National Identity in Postwar Japan"(ハワイ大学)をはじめとして、世界の研究者からも指摘されています。
右派に関しても、菅野完さんも『日本会議の研究』の中で、日本会議とその支持者たちがアメリカから「日本国憲法を押し付けられた」という「被害者意識」にまみれていたことを指摘しています。
また、現在、「この世界の片隅に」というアニメ映画がヒットしているようですが、日本の戦時体制を支えたのは、軍部のみではなく、知恵を絞って倹約に倹約を重ね、「欲しがりません勝つまでは」を貫き通した庶民たち、特に、主婦たちであったことは、Sheldon Garonが1997年に出版した本"Molding Japanese Minds: The State in Everyday Life" (プリンストン大学出版)が大ヒットして以来、世界中の研究者にとって知られることとなっています。
以前、第二次世界大戦中の庶民の生活、庶民によるナチスへの加担を描いたドイツ映画"Unsere Mütter, unsere Väter"(2013年)を詳しくご紹介しましたが、大ヒット中の「この世界の片隅に」の中で、日本の加害責任がどのように描かれているのか、いずれ自分で観てみようと思っ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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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画"Railway"は、日本人憲兵隊員・永瀬が自分の犯した罪を誠実に認め、心から悔い、恥じたことを示したことによって、イギリス人元兵士・ローマックスから赦し(Forgiveness)を得て、幕を閉じます。
現在、釜山での「少女像」の設置後、従軍慰安婦に関する議論が再び始まっています。
長年、トラウマに苛まれてきた年老いた元・従軍慰安婦たちは、この写真のように、加害者に直接詰め寄り、謝罪を求めることなど、できませんでした。
多くの日本人において、第二次世界大戦における加害の歴史認識が薄れていく中、彼女たちの絶望、怒りはどれほどのものなのでしょうか。
この映画は、不条理に屈服(surrender)を強いられた者の屈辱、怒り、苦しみ、長年に渡るトラウマがどれほど深刻なのか、そして、加害者が罪を誠実に認めること、被害者の赦しが双方の人生にとっていかに切実に必要とされていることを、私たちに訴えかけてくるよい映画だ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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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ao Kokubo, Kim GwangYol and 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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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yaka Löschke
    Sejin Pakさん、こちらこそ、長いものを訳していただいて、どうも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とても嬉しく思います。
    この映画は、身体の自由を奪い、虐待し、精神的にも屈服させることの罪深さをよく伝えている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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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TOME.NAVER.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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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y
    • Sejin Pak
      長い返事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韓国軍がベトナムでやった事に対する反省は韓国社会の分です。しかし、慰安婦問題に関しても、私は韓国人たちの間に当時の韓国(朝鮮)社会への反省もあるように願っています。朝鮮が日本の植民地ではなかったとしても、また戦時期ではなかったとしても若い女性たちが売られる構造が朝鮮にあったからです。それは、1920年代の貧しい日本の農家の娘が売られる構造と大きく変わりません。植民地朝鮮での家父長制の問題は、植民地支配だけの問題ではなく、朝鮮社会の問題でしたからです。より複雑な問題は、植民地からの国家動員された朝鮮人の自発性という問題ですね。帝国日本の国民の国の動員のための自発性は話をすることができても、植民地朝鮮での帝国の動員のために参加の「自発性」を論じることは、韓国社会ではタブーになっているからです。韓国では、このような問題を自由に論じる自由な雰囲気さえないと思います。日本でも、韓国でも、そして日韓の間に、もっとグロバル市民としてのダイアログあればいいな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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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y
  • Hokuto Imamura
    독일군 위안부의 실태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군의 직접 운영으로 일본보다 규모가 크고, 사과는 아직 완료되지 않습니다.
    「実際のところドイツ軍慰安所ってどうだったの?結構えげつないことやってたみたいだけど・・・」 ドイツを見習え!でお馴染みのドイツに学ぶ戦時性暴力問題
    TOGETTER.COM
    「実際のところドイツ軍慰安所ってどうだったの?結構えげつないことやってたみたいだけど・・・」 ドイツを見習え!でお馴染みのドイツに学ぶ戦時性暴力問題
    「実際のところドイツ軍慰安所ってどうだったの?結構えげつないことやってたみたいだけど・・・」 ドイツを見習え!でお馴染みのドイツに学ぶ戦時性暴力問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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