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Yuha
서울의소리사태란 무엇인가
고등학교 후반 무렵, 그러니까 1974,5년, 박정희의 유신체제하에 흉흉한 일들이 벌어지던 무렵, 나 역시 교련훈련에 동원되어 열맞추어 행진하고 붕대를 감았다 풀었다 응급처치연습도 하는 군사독재치하 소녀였지만 본격적인 정치의 그늘이나 압박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세상 물정을 잘 몰랐던 탓이기도 하고 여고라는 공간의 한계 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이면 자주 “정치 얘기하면 잡아 간대” 하고 소곤소곤 이야기하곤 했다.
김건희의 녹취록 파일 공개사건은 지금 우리 사회가 그 70년대로 회귀중임을 보여 준다. 권력에 해가 될 수 있는 얘긴 공적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 혹은 권력이 이것이 옳다고 도장을 탕탕 찍어 공공의 ‘상식’이 된 내용에 반하는 이야기는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사실 세상에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다른 생각이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사적으로’ 이야기한다. 심지어 사적 공간조차 공유가능한 그룹으로 나뉘지 않던가.
그런데 그렇게 선택된 개인의 공간이 그 문맥이 소거된 채 갑자기 공공의 장에 내던져진 사태가 이번 녹취공개사태다. 녹음도 문제지만 당사자의 동의 없이 공표된 것. 심지어 비난과 함께 끌어 내려져 국민들의 손으로 처단 당할 것을 단 하나의 목표로 하는.
그러니 말로는 대통령후보 (부인) 검증이고 국민의 알 권리지만, 실제로는 ‘국민’이 국가의 얼굴을 하고 한 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자신이 선택한 공간에서 말할 권리를 빼앗은 사태다. 그런 탄압에 동조한 MBC 역시 마찬가지.
MBC에 대한 항의를 MBC 관계자들은 언론탄압이라 했지만, 비밀녹음의 긴 시간과 그 공개과정이 보여주는 건 단하나, 국가 혹은 국민의 권력욕망과 그걸 매끈하게 감추기 위한 ‘정의’의 가면이다.
박정희는 자신만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잡아 가거나 죽였다. 지금은 직접 그렇게 할 수 없는 시대라, 국가권력만 할 수 있었던 일을 이번엔 국민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거나 이런 저런 이유를 끌어다 지지한다.
그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이 알아서 입을 닫는다. 그렇게 ‘순종적인’ ‘국민’이 되어가는 것. 생각을 함께 하지 않는 비국민으로 색출당하지 않기 위해서. 대통령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김건희씨의 안희정 관련 발언에 대한 비판을 내가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 이가 있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 대해 발언해야 할 의무가 나에겐 없다. 무엇보다 그런 생각 자체가 사상검증이라는 걸 그는 잊은 듯 하다. ‘정의’에 불타는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어하고 확인을 강요중인 것.
물론 그 때의 지목대상은 대개는 이미 잠재적 비국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처형을 위해 도청에 나섰던 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
사적인 대화란 ‘안전한 공간’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이루어진다. 서울의 소리 기자의 녹취공개는 시민이 했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공개되었고, 권력쟁취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국가권력의 도청과 다를 바 없는 사태다. 그런데도 그런 사태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아직 나오지 않은 목소리마저 나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자신의 검증을 거치라는 것.
물론 이 역시 이미 불신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검증이다. 그런 이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보안법철폐를 주장한다.
김건희씨가 김지은 사태를 그저 돈문제로 치부한 건 분명 부적절했다. 하지만 김지은씨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 해도 안희정에 대한 처벌이 무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법정이라는 곳은 유죄/무죄를 나누는 곳이어서 사태가 극단적으로 단순화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김건희씨는 예술에 관여하는 사람이고 예술이란 법적사고 —이분법 사고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서의 사고에 익숙한 이의 생각이 ‘법적’판단과 달랐다 해서 꼭 비난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김건희씨 발언이 부적절했으면, 그냥 윤후보를 안 찍으면 되는 것.
물론 김지은씨는 사과를 요구 할 수 있다. 하지만 김지은씨 앞에서라면 말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 다시 말해 상처 입을 걸 알면서도 상처주려고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판단도 필요하다. 이건 사실 ‘법적’으로 따질 때 쟁점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제3자가, 사태를 멋대로 단정하고, 자신의 단정과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 공간이 바로 전체주의적 공간이다. 우리는 지금 피와 살을 발라내 뼈만 남아 버걱대는 ‘정의의 처벌’주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곳에선 굳이 국가가 잡아가지 않아도 국민이 국가의 얼굴을 하고 또 다른 국민을 ‘응징’한다. 미완의 다른 권력을 위해서. 
이 사태는 언론이 ‘국민’의 이름을 빌어 개인의 공간을 침해한 사태다. 그러니 서울의 소리와 엠비씨가 먼저 김건희씨한테 사과해야 할 사태다. 순서가 거꾸로 됐다.
녹음이 밝힌 건 결코 공익이 아니다. 김건희씨 개인의 생각과 인성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폭력적으로’ 검증당한 사태.
안방을 진흙발이 점령한 사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공간을 조심조심 골라야 하고, 심지어 선택된 그 공간 조차 얼마든지 파괴될 수 있어
사람들이 알아서 입을 다물도록 만드는 2020년대는,
여학생들이 소곤소곤 대화로 국가의 처벌을 두려워했던 저 1970년대와 얼마나 다른가?
대통령 비난에 대한 금기와, 사람들의 지지라는 힘을 갖게 된 개인 비판에 대한 금기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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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comments
Pyung-joong Yoon
탁월한 통찰이십니다. 저도 요사이 프라이버시 문제를 곰곰이 생각중입니다.
· Reply · 5 h
Park Yuha
윤평중 감사합니다. 이 글을 또 비난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떤 글(말)이든 문맥(주어진 공간)속에서 읽혀져야 온전한 건데 그렇지 않은 사태 같아서요.
· Reply · 5 h · Edited
Kihyun Kim
대학생 단톡방에서 여학생 얼평했다고 징계받을 때 이미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닐까요?
· Reply · 5 h
Park Yuha
김기현 그런 사건이 있었던 생각이 나네요. 하나 하나 문맥 속에서 생각해 봐야겠죠.
· Reply · 5 h
Soo-Young Kim
김기현 단톡방은 완전한 사적 공간이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단톡방 자체를 무척 싫어해서요.
· Reply · 5 h
Alexander Park
동의합니다
· Reply · 5 h
박상수
파시즘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Reply · 5 h
Park Yuha
박상수 이미 조짐은 꽤 이전부터 시작 됐구요.
· Reply · 5 h
박상수
박유하 네 여러가지 요인이 있는 듯 한데...알고리즘과 코로나 등이 겹치며 급가속되는 듯 합니다. 변호사 업계도 여론때문에 사건을 맡는걸 주저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을 정도이고. 여론이 나쁜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는 테러에 가까운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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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숙
비단 한국에 국한된문제로 보이지않는데...
이현샘이 나쁜교육이란 책을 추천해주셔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See more
· Reply · 5 h
Park Yuha
임지숙 고맙습니다. 말씀대로 한국만의 정황이 아닌 듯 해요.
이런 저런 자료를 들여다 보면서 냉전 종식후 진보일각의 ‘그 후’ 도모 과정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 Reply · 5 h
임지숙
박유하
저도 시초를 찾는데...
미국은 교육에 심리학을 심하게 도입한 시기부터인가 싶고요.
족히 5~60년 쌓아온 문제같아요.
한국은 30여년정도로 봅니다...
진보가 그 에 무관치않아보여...
씁쓸합니다.
· Reply · 5 h
Park Yuha
임지숙 우리 경우는 지향해야 할 가치가 현실적 정치와 접합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 듯 합니다. 독단은 물론 폭력과 기만조차 허용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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