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Yuha
‘아시아의 아이들’을 위해서
오래된 페친들은 아시겠지만 저의 며느리는 일본사람이고 며느리의 어머니는 대만분인데(아들부부 결혼 전에 작고), 외할아버지는 중국에서 건너 왔다니
중국/대만/한국/일본의 피를 받은 아이들입니다.
사실 어느나라 사람인지를 정하는 건 혈통과 언어와 문화인데,
혈통은 거슬러 올라가면 그 “순수”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고, 언어는 자란 곳의 언어가 ‘모국’어가 되니 이 역시 선택 가능한 것이고 문화 역시 마찬가지니
필연적인 “ㅇㅇ인”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지요.
그럼에도 그런 요소들이 필연인 것처럼 교육해 온 것이
근대라는 시대였고요.
그런 의미에서 전 국적이나 혈통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동시에 그 구분이 만든 그룹이 경험한 체험은 그것대로 고찰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의 가족이 되어 준 이들이 다른 나라와 인연을 가졌다는 게 조금 기쁘긴 합니다.
제 경우 부친이 특별히 잘 난 사람이 아니어서 ”친일파”에 속할 만한 집안도 아니었던 거 같은데, 제가 40년 이상 인연을 맺어온 일본(그리고 대만과 중국)과 혈연적인 관계를 맺게 된 것, 그것도 고발당한 이후였다는 건 보이지 않는 운명인가 싶기도 하구요.
어제 ‘일본의 혐한’에 관한 기사가 돌아다니더군요. 한류가 유행이라지만 그런 기류가 존재하는 것도 분명합니다.
멀게는 30년, 가깝게는 최근 10년 일이죠.
일본도 물론 문제가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왜곡된 대일인식에서 시작 됐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유포하기 시작한 왜곡된 인식이 30년 걸려 우리 사회에 정착된 결과.
국가의 정체성이 하나일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 일본인식은 상당히 부정확합니다. 바로 그래서 <제국의 위안부>서문에도 당시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한 “혐한”에 대해 썼던 것이고,
그 책은 그런 상황을 좀 바꿔 보고자 쓴 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국가권력을 동원한 폭력이 저를 덮쳤고, 여러 해째 그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책임도 느낍니다.
기만과 거짓과 왜곡으로 점철된 언어들에 이길 만큼의 힘이 저의 책에 없었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아무튼 작년에 그 30년을 다시 돌아 보면서 현 상황이 포스트냉전적 상황이라는 걸 명확히 알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 자신 놀라운 발견이었지만
동시에 그 주체들에 대한 분노나 원망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문제는 많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존재 역시 역사적 필연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미움과 분노가 횡행하는 양쪽 사회와(일본도 그런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아직 물들지 않은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우애와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일이 아닐까 다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들은 진짜 적이 누군지를 보지 못하게 하고, 필요한 분노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니까요.
진짜 적은 근거 없는 적개심을 만드는 언어들이지요. 싸우도록 만들고 필요하면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언어들.
그런 의미에서 모두 함께 조심해야 할 건 북한이나 일본, 혹은 중국이라는 국가의 이름이 아니라
그 안의 ‘누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보라는 이름의 국가간 싸움은 ‘인간의 안보’를 위험하게 만드니까요.
문제적인 사람만 바라 보면서 불신을 키우는 게 아니라
신뢰 가능한 사람들을 바라 보면서 믿음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겐 누구나 다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개인의 인생조차 세상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유지되지 않지요. 
아침부터 심각한 포즈 취해 죄송합니다.
정초부터 북한이 반복적으로 미사일을 쏴 댄 탓이기도 합니다.
아시아 전체가, 내외부적으로 성급해지고 무관심해지고 적대적인 시대로 접어 들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어려운 시대를 넘어설 수 있게 해 주는 건, 끝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는 타자와도 대화를 시도하는 일이 아닐까 오늘도 생각합니다. 국가건 개인이건.
제 경우 꼬마들을 위해서, 좀 더 그래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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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comments
Jaetae Lee
제국의 위안부는 읽어보고싶었는데, 몇번 시도해보니 인터넷서점엔 절판이라 뜨더군요. 구입할 수 있는 길이 있는지요?
· Reply · 14 h
Hyonggun Choi
손주들 사진 올렸을 때 아무 이유없이 며누님이 혹 일본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족의 구분은 혈통의 유사성보다는 문화적 동질성에서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Reply · 14 h · Edited
Park Yuha
Hyonggun Choi 오 날카로우십니다. ^^ 아들 결혼했을때 아이들 태어났을 때 여러번 한 이야기이긴 한데, 최근에 페친 되신 분들은 모르실 것 같아 다시 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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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민
저토록 해맑고 밝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선생님께서 반드시 좋은 결과와 후세에도 꼭 그리 기록되길 우리 모두 바라야겠습니다!
함께 마음 모아모아서...^^
May be a close-up of flower and nature
· Reply · 12 h
이창섭
탑을 만들듯 사실을 하나씩 쌓으면 진실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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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g Lee
아침에 읽기 참 좋은 글입니다. 자기중심으로 보이는대로 판단하기 쉽다보니 늘 더더욱 조심해야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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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wight Kim
제 경우 꼬마들을 위해서 그래 볼 생각입니다----저 역시 비슷한 처지네요
· Reply · 14 h
Kyungjoon Park
날카로우면서 따뜻한 글입니다. 이 아침에 마음 따뜻했습니다. 공유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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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Geon Lee
"필연적인 “ㅇㅇ인”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지요."
공감합니다.
· Reply · 14 h
장철규
국제 결혼을 해서 20년간 해외서 살다가 한국에 와서 산지 6년이 되어 가네요. 애들의 학습 언어도 3번이나 바뀌었구요. 그래서 그런지 교수님의 글에 많이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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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bum Sung
전혀 심각하지 않은 포즈입니다 ㅎㅎ. 지금까지 해 주신 대부분의 이야기에 담긴 기본적인 마음 아닌지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 Reply · 14 h · Edited
Toni Oh
저도 조카를 위해서 작지만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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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Ho Choi
두 집단이 (국가 민족 등) 얼마나 친목적인가 보는 기준이 경제적 교류 외 통혼율일 겁니다. 통혼율이 높으면 사이가 나쁘거나 전쟁을 안하게 되겠지요. 지역적 거리 외에도 가족제도나 결혼제도가 크게 다르면 통혼율이 낮을 것이고 두 집단이 섞이지 않게 되는 주요 이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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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ada Kanto
"하프"라든가 "더블"이라든가 하는 말투도 이상하네요.인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2개의 유전자를 계승해 1명의 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예외없이 하프이고 더블일 것입니다.유전자에는 민족이나 언어의 색깔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외는 클론이라는 것이지만, 클론이라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유전자는 누군가와 누군가의 2개의 유전자가 섞여서 된 것이기 때문에 하프, 더블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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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 Park
미래 지향적인 가족을 이루신 듯 하여 존경스럽습니다. 하와이 거주민들을 보니 한국, 중국, 동남아, 서양 각국 출신 후손들이 서로 피가 섞여 어떠한 "인종"으로 정의할 수 없는 분들도 많은 것을 보고 아마 이러한 모습이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아마 사회의 많은 부분은 본인이 "순혈"로써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그릇된 "순혈주의"가 그 원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제가 그러한 열린자세를 늘 갖기는 부족하지만 가급적…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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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hyung Kim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동아시아평화론 생각나네요. 2009년 총리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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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 June Park
며느님과 일본어로 소통하시겠지만 며느님의 중국어 실력도 궁금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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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나가사키에는 30년 전 첫 만남에서 저를 한국에 유학보낸 딸이라고 말씀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교수님의 신뢰 가능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믿음을 키우는게 중요하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오늘은 일본의 부모님 목소리를 듣고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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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Kwan Kim
손주들 사진을 보니 한일중 장점만 가져간 훈남훈녀로 자랄 것같습니다. ^^
· Reply · 13 h
Iljoo Yoon
왜곡된 한국의 대일인식이 현재의 한일관계 문제점이라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 Reply · 13 h
박상엽
그안의 누구라는데 공감합니다.
· Reply · 13 h
Sung June Park
이미 저희 세대에서도 반일, 혐한이 많이 희석된 만큼 손주분들이 자라면 할머니가 제국의 위안부 책으로 고생한 것도 신기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 Reply · 13 h
Lee Doosoo
저도 일본여자와 살아보니 우리만의 세계가 아니라 주변의 의견과 분위기에 좌우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넘을 수 없는게 국가와 문화의 장벽이구나 하는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아요. 각 개인의 교양과 품성이 든든해지지 않으면 언제든 국가 혹은 민의라는 쓰나미에 휩쓸린다는 위기감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어렵고요. 국제가정들의 분발을 기원해봅니다. 새로운 대안의 공동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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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joon Shin
박유하 선생님 50대 초중반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벌써 할머니가 되었나요? 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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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Park
100% 동감입니다. 교수님의 진심어린 글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 Reply · 12 h
Dojae Ko
좋은 세대를 이어가는것에 쟁점을 둬야 하는데 근심이 생깁니다
좋은 생각 가지셨어요
· Reply · 12 h
SoYeong Ju
그러게요. 국가니 인종이니 혈연이니가 다 무슨 소용일까요. 함께 있는 공간, 함께 하는 시간에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도우며 자유로이 삶을 향유하기만도 짧은 생인데..
· Reply · 12 h
Gishik Lee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Reply · 12 h
황윤억
혐한의 배경에는
1. 역사
2. 한국경제의 급부상에 따른 반감… See more
· Reply · 12 h
Andy Kim
이웃과 벽이 있으면 여러가지로 불편합니다.하다못해 집을 비우고 어디를 가고싶어도 강아지먹이도 걱정되고 현관에 우편물쌓이는것도 걱정 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웃국가들과 벽을 쌓으면 경제적 손실은 말할것도 없고 서로 말할수없는 여러가지 고통이 따릅니다.… See more
· Reply · 11 h · Edited
정화태
박유하선생님의 견해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일본측이 정략적으로 혐한을 조장한 면도 있지요.특히 아베수상이 위안부에 대한 고노담화부정이
그것이고 박근혜전대통령이
좀 유치하게 대처했지요.… See more
· Reply · 9 h
Kenji Murata
本当に、そのとおりです!ある人たちの愚かしい振る舞いにもそれなりの理由はあるのですから、腹立たしいけれど、敵対してみてもはじまりません。それよりは、差別や偏見から自由に、国家や民族の頸木に縛られず、あたたかい人間関係を構築しようと考えて生きる人たちと一人でも多く心をつなぎ、理性の共同体をつくるほうが、エネルギーの有効利用になりますね。アジアの子どもたちのために、私たち一人ひとりがささやかであっても、希望を積み重ねて行きたいです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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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Kenji Murata 私も村田さんのお言葉に共感します。^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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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yil Ra
백두 혈통은 어떻습니까 ?
· Reply · 5 h
Park Yuha
Jongyil Ra 음 제가 위하지 않아도 위할 사람 많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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