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국민화 - 독일 대중은 어떻게 히틀러의 국민이 되었는가?
조지 L. 모스 (지은이),
김지혜 (옮긴이)소나무2008-03-25
원제 : The Nationalization of the Masses: Political Symbolism and Mass Movements in Germany from the Napoleonic Wars Through the Third Re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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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독일 파시즘은 루소 이래 서구에 팽배했던 인민주권 사상의 구현이며, 강제적 동원이 아니라 자발적 참여와 희생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밝힌다. 독일 대중이 국민으로 나아간 길이, 히틀러의 표현대로 무자비하고 광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문화적인 방식이었다는 서구 학계에 충격을 준 주장을 펼친다.
건축양식과 비장센, 각종 동호회와 대중예술, 조명과 합창의 진화가 모래알 같은 대중을 어떻게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국민으로 바꾸어 놓았는지 서술한다. 나치즘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과 더불어 문화사와 미시사를 여는 발판을 마련했다.
목차
감사의 글
역자 해설
1장 새로운 정치
2장 정치의 미학
3장 민족 기념비
4장 공공 축제: 토대와 발전
5장 공공 축제: 연극과 대중운동
6장 조직들 손을 잡다
7장 노동자의 공헌
8장 히틀러의 취향
9장 정치적 제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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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치 역시 군사 행진을 이용해 총통 탄신일을 기념했다. 때론 4시간씩 지속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치는 숭배 의례에도 의지했다. 주요 기념식은 라디오로 중계되었고 모든 지역의 당 산하 기구가 그 행사들을 모방했다. 주요 행사는 저녁 늦게 뮌헨에서 개최되었다. 놀라운 조명 효과로 부각된 어둠 속에서 깃발, 신성한 불꽃, 제창, 참가자 전원의 서약이 진행되었다.
한 목격자에게 주로 군인의 헬멧 장식으로만 기억된 빌헬름 축제와는 전혀 달랐다. 독일 통일 이전에 축제의 성공을 확실히 뒷받침해주던 역동성은 사라졌고 독일의 영광은 주로 행군하는 군인으로 대변되었다. (145쪽, '4장 | 공공 축제 : 토대와 발전' 중에서) 접기
(오직 대의 정부만이 민주적이라는 전제가 오류인 것은) 파시즘이 작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파시즘이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던 근거가 된 것이 바로 초기 대중운동의 신화와 제의였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무솔리니가 말한 전통 안에서 의회 민주주의라는 ˝부르주아˝ 개념보다 더 생생하고 의미 있는 정치적 참여의 표현을 보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전의 오랜 전통 덕분이며 그 전통은 내셔널리즘 지지자의 대중운동뿐 아니라 노동자의 대중운동에서도 볼 수 있다. 30) 접기 - nana35
파시즘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정치사상을 하나의 체계라기보다 ˝태도˝라고 묘사했다. 그것은 사실 민족 제의에 틀을 제공한 일종의 신학이었다. 그래서 의례와 전례가 그 중심이 되었고 글에 호소할 필요 없는 정치론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나치와 다른 파시즘 지도자들은 말을 강조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연설은 이데올로기를 교훈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전례의 기능을 수행했다. 말은 그 자체로서 숭배 의례에 통합되었고 실제 이야기된 내용은 결국 이런 연설을 둘러싼 무대 장치나 의례보다 중요치 않았다. 36) 접기 - nana35
남성합창단, 사격동호회와 체조동호회가 기념식에서 제 역할을 했다. 프로테스탄트 사제들이 애국적인 설교를 했고 프로테스탄트 성가대가 노래를 불렀다. 게르만적인 것과 프로테스탄티즘의 이런 혼합은 19세기가 시작된 이래 변함이 없었다. 1815년 나폴레옹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며 사람들은 그 제단 위의 신성한 불꽃에 예배를 드렸다. 10... 더보기 - nana35
민족 해방 투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유는 뮈토스의 주요 주제였다.
...
이런 형식의 민주주의는 민족의식의 발전에 기본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민족으로 여기고 기념하는 하나의 전체로서의 민중이었다. 내셔널리즘은 민족을 해방한 것은 물론이고 각 개인의 영혼을 해방시켜 그들이 민족과 결합해 진정으로 창조적인 ... 더보기 - nan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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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조지 L. 모스 (George L. Mosse) (지은이)
독일 출신의 미국 역사가로, 내셔널리즘과 파시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1918년 독일 베를린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난다. 외조부 루돌프 모세는 『베를리너 타게블라트』 등 유력 언론매체들을 소유한 언론계의 거물이었다. 모스는 어린 시절 유명 사립학교인 몸젠 김나지움과 살렘에서 교육받는다.
1933년 나치 집권 후 영국으로 망명해 퀘이커교 계열의 부댐 학교에 다니며, 이곳에서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알게 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했으나, 1939년에 미국으로 이주하고 해버퍼드 칼리지에서 학부과정을 마친다. 1946년 ‘16~17세기 영국 헌법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아이오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근대 초 유럽의 종교와 종교개혁에 대해 연구하던 모스는 1955년 위스콘신 대학(매디슨)으로 옮겨 근대사를 강의한다. 이후 30년 넘게 이곳에서 강의와 연구 활동을 계속한다.
1964년 근대 내셔널리즘의 뿌리를 분석한 『독일 이데올로기의 위기: 제3제국의 지적 기원』을 출간하면서, 내셔널리즘, 파시즘, 반유대주의 연구를 본격화한다. 1969년 이후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에서도 강의한다. 1975년 근대 국민국가의 지배 장치인 ‘정치종교’의 발전 과정을 분석한 『대중의 국민화: 나폴레옹 전쟁에서 제3제국까지 독일의 정치적 상징주의와 대중운동』을 펴낸다. 1985년에 출간한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 근대 유럽에서의 고결함과 비정상적 섹슈얼리티』는 근대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인 ‘내셔널리즘’과 성性에 대한 특정한 태도인 ‘고결함’의 상관관계를 다룬다.
1990년에 나온 『전사자 숭배: 국가라는 종교의 희생제물』은 내셔널리즘이라는 시민종교의 작동 방식을 전쟁문화사로 풀어낸 역작이다. 1996년에는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에서 다루었던 ‘남자다움’에 대한 연구를 더 심화한 『남자의 이미지: 현대 남성성의 창조』를 펴낸다.
그 밖에 『영국의 주권 투쟁』(1950), 『종교개혁』(1953), 『서유럽 문화 입문: 19세기와 20세기』(1961), 『최종 해결을 향해: 유럽 인종주의의 역사』(1978), 『파시스트 혁명: 파시즘의 일반 이론을 향해』(1999) 등 20여 권의 저서를 남긴 모스는 1999년 1월 미국 위스콘신 주 매디슨에서 생을 마친다. 그 이듬해 자서전 『역사와 마주하기』(2000)가 출간된다. 접기
최근작 : <전사자 숭배>,<대중의 국민화>,<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 … 총 65종 (모두보기)
김지혜 (옮긴이)
역사 교육과 서양사를 전공했고, 현재는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역사서들을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시인을 체포하라』와 『주변부의 여성들』(공역), 『혁명 전야의 최면술사』, 『각주의 역사』,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면화의 제국』, 『역사의 색』 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2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대중을 국민으로 이끈 문화적 장치들에 대한 연구
무수한 대중을 국민으로 만드는 일은
소위 객관적 관점을 나약하게 강조하는 어정쩡한 방식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목표를 향해 무자비하고 광적이며 일방적으로 나아가야
이룰 수 있는 일이다.
―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이 책의 소재는 히틀러의 이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왕과 신의 가호에서 벗어난 익명의 대중을 불러내 국민으로 만드는 일은 근대 세계 최대의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많은 정치가와 역사가들이 이러한 프로젝트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분투해 왔다. 모스의 독창성은 파시즘에 대한 통념을 뒤집은 것이었다. 2차 대전 이후 많은 역사가들은 파시즘의 요체를 전체주의적 강제동원 체제로 역사의 정상 궤도에서 이탈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의한 파시즘의 패배는 일탈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낙관적이면서도 순진하게 해석되었다.
모스는 이러한 통념을 뒤집었다. 독일 파시즘은 루소 이래 서구에 팽배했던 인민주권 사상의 구현이며, 강제적 동원이 아니라 자발적 참여와 희생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밝힌 것이다. 독일 대중이 국민으로 나아간 길이, 히틀러의 표현대로 무자비하고 광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문화적인 방식이었다는 모스의 주장은 서구 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더구나 그가 나치즘의 피해자 가운데 하나였으며, 파시즘의 대두를 직접 겪은 현장 관찰자였다는 점에서 충격의 강도는 더 컸다.
모스는 이 책에서 이전의 역사학이 등한시한 것들을 분석한다. 건축양식과 미장센, 각종 동호회와 대중예술, 조명과 합창의 진화가 모래알 같은 대중을 어떻게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국민으로 바꾸어 놓았는지 흥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예로 남성합창단의 진로를 보자. 남성합창단은 중세 이래의 교회합창단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신을 찬양하던 합창단에 독일 민족혼이라는 불의 세례를 내린 것은 나폴레옹 침략전쟁이었다. 불의한 외세에 맞서 노래를 좋아하는 독일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노래패를 결성한다. 그들은 새롭고 애국적인 노래들을 개발한다. 이 노래들은 선풍적으로 독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다. 그 노래들이 갈구한 것은 하나되고 행복한 통일 조국이었다. 그러나 메테르니히 반동체제는 독일의 통일을 저해하고, 이때부터 노래패는 반체제가 되었다. 반체제가 될수록 합창단에는 가속도가 붙고 응집력이 강화된다. 이제 그들의 노래는 온국민의 애창곡이 되었고 합창단원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인 명예가 되었다. 비스마르크에 의한 독일 통일은 노래패에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가져온다. 정부 지원을 받으며 공식 제전에서 찬양가를 부를 수 있게 된 반면, 반체제적 저항성은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일차대전의 패배와 바이마르공화국의 혼란 속에서도 이 노래패들은 민족정신의 강력한 담지자가 되었다. 그후 히틀러의 집권을 여는 동맹 세력의 역할을 충실히 했으나, 종국에는 히틀러의 합창단에 용해되어버리고 만다.
조지 L. 모스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현대사가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동원가요는 물론이고, ‘님을 위한 행진곡’ 같은 운동가요들의 운명이 떠오른다. 체제든 반체제든 공통점은 민족주의이다. 흩어진 대중을 하나의 국민으로 만드는 강력한 마법의 노래라는 점이다. 민족주의를 대중들의 마음속에 내면화시켜 자발적으로 참여케 한 것은 히틀러의 공포정치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노래들이었다는 모스의 분석은 과연 우리 현대사와 무관할 것인가. 더구나 21세기에도 이러한 정치문화 양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나라가 있다. 다름 아닌 북한이다. 이 책에서 독일이라는 말을 북한이라는 말로 치환시켜면 그대로 문맥이 통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모스의 명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을 쓴 모스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그의 이름을 유대식으로 읽으면 모세가 된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독일의 유력 일간지 <베를리너 타게스블라트>의 발행인이었다. 나치는 이 신문을 아주 미워해 나치가 집권하자 모스 일가는 영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모스는 기숙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본원적인 체험들이 삐딱한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힘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스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역사 연구를 이끈 점을 인정받아, 미국역사학회의 연구상을 받았다.
나치즘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과 더불어 모스의 역사학에 대한 또 하나의 공헌은 문화사와 미시사를 여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모스가 이 책을 발간한 1970년대 중반은 사회경제사가 학계를 휩쓸 때였다. 이때 사격동호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기념비 양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데 시간을 쓴다는 것은 동키호테 같은 짓이었으리라. 그러나 그후 역사학의 극적인 방향 전환은 모스가 모세만큼이나 선견지명이 있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지금은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문화사와 미시사를 언급하고 있지만, 모스는 훨씬 이전에 그것도 혼자 그러한 연구를 수행했던 것이다.
이 책을 옮긴 임지현은 대표적인 탈민족주의 논객으로, 한국 사회의 민족주의 논쟁을 주도해온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이 책의 번역을 여러 해 전에 기획했으나 시간이 없어 이제야 독자들에게 내놓게 되었다고 미안해하고 있다. 공동번역자인 김지혜는 영화와 역사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는 소장 연구가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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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제의: 루소와 히틀러가 공유했던 국민 만들기의 주술
보댕이 주권을 분석하면서 신학과 분리되는 근대적 이론의 체계를 처음으로 제시한 것은 종교전쟁 중이던 16세기 말이었다. 국가의 주권은 비록 신법의 하위에 놓였지만 모든 인간의 법 위에 놓인 최고의 법(solutus legibus)이었다. 보댕이 제시한 주권은 ‘인간과 사물에 대한 지배’(Imperium)를 뜻했으며, “주권이야 말로 종적 질서를 창조하는 유일한 원리”였다. 주권의 절대적인 성격을 강조한 보댕의 주권 개념에서 주권은 결코 나누어질 수 없는 유일한 권력이었다. 국가의 유일성과 통일성은 이러한 주권의 성격에 기초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댕의 주권 개념은 국가 주권에 대한 또 다른 강력한 이론인 계약론과 상충하는 성격을 지녔다. 유일하고 절대적인 주권 권력에 대항하는 인민의 저항권과 모순되기 때문이었다. 앙시앙 레짐 하의 프랑스 왕정은 왕권신수설로서 대응했다.
그러나 프랑스대혁명의 결과로 지배적인 국가이론이 된 것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이었으며, 그 중 가장 중요한 주권 개념이 ‘일반의지’였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국가와 사회가 공히 계약에서 비롯한다고 제시했다. 이러한 사회계약은 “도덕적인 집단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한가운데에 개인들보다 상위에 있는 공적인 권위를 만들어내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계약의 당사자들인 인민들은 “자신의 인격을 완전히 양도”하여 ‘일반의지’에 자발적으로 복종할 것에 동의했다. 이렇듯 일반의지는 모든 개인들이 지닌 개별의지의 산술적 합이다. 그러나 일반의지는 또한 일반적이기 때문에 나누어질 수 없는 속성을 지녔다. 따라서 일반의지를 수행하는 주권자 역시도 정치체의 모든 구성원을 포함해야 하므로 부분을 대표하는 파당성을 띌 수 없었다. 원초적 계약이었던 사회협약은 파당성과 분리성을 방지하는 다수결원칙의 근거로서 제시되었다.
『대중의 국민화』는 프랑스혁명의 와중에 지배적인 주권 개념의 자리를 차지한 ‘일반의지’와 파시즘 사이의 연속성을 신화와 제의를 매개로 추적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파시즘의 정치양식이 ‘일반의지’로 대표되는 인민 주권사상을 통해 나타난 “새로운 정치”의 절정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독일에서 “새로운 정치”가 출현했던 19세기 초부터 나치즘이 발흥했던 20세기 중반까지의 시기에 출현한 신화와 제의를 대상으로 분석을 한다.
루소가 주창했던 ‘일반의지’라는 주권 개념은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신학과 분리하였다. 기존에 왕권신수설이 맡았던 권력의 정당화는 민족/민중의 자기 통치라는 성격을 통해 스스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주권의 담지자로 상정된 추상적인 민족/민중에 개별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동일시(identify)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추론만으로는 부족했다. ‘일반의지’가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신학과 분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빈 공간이 바로 상징에 의한 동일시라는 정동(affect)의 부분이었다. ‘일반의지’를 주창했던 루소 역시 스스로의 주권 개념이 지닌 빈 공간을 상징으로 메워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폴란드 지배자들에게 민족축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신학과 분리했지만 주권의 담지자인 민족/민중에 스스로를 동일시하면서 그것의 정의로움 또한 믿기 위해서는 ‘정치 종교’가 필요했던 것이다.
독일의 경우는 19세기가 시작되면서 통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내셔널리즘이 발흥하였고, 또한 대중운동과 대중 정치가 출현하는 가운데 제의와 전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저자는 기존의 파시즘 연구자들이 흔히 파시즘을 “역사의 정상궤도를 이탈한 것”으로 바라봤기에 새로운 정치가 제의와 전례를 매개로 파시즘과 연속성을 지니는 것을 포착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대중의 국민화』가 해당 시기의 제의와 전례에 주목하며 새로운 정치에서 정치 종교가 맡았던 중요한 역할을 부각시켰던 것은 기존 파시즘 연구들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능했다.
새로운 정치는 르네상스로 대표되는 고전주의의 이상, 그리스도교의 전례형식, 게르만 신화의 인물을 변형하고 조합하여 전통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전통은 계급적 분화 등 근대사회의 불안정한 현실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안정된 세계를 제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품위와 질서로 대표되는 안정된 세계는 부르주아의 정치 미학이었다. 새로운 정치가 민족의 뿌리로 제시했던 전통은 결국 부르주아의 정치 미학을 ‘일반의지’로 일반화하는 것이었다. 신화와 제의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다면, 나치가 의도한 축제의 일상화(280쪽)는 상징을 공유하는 장치를 통해 내셔널리즘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주체를 일상적으로 생산해내려는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주체생산은 학교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통해 국민국가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다. 『대중의 국민화』가 분석하고 있는 국민의 생산을 국민국가 일반으로 확장해볼 수 있을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중의 국민화』는 상징의 발명과 제의의 수행을 설명하면서 “그 시대의 사회적 요인”(285쪽)과 함께 길항하는 동학을 보여주어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상징과 제의를 기획하는 집단과 사회적 요인에 따라 수행의 성과가 변동하는 모습을 통해서 서로의 상관관계도 읽어낼 수 있다. 지도자마저도 제의의 일부분으로 섞이기를 바랄 정도로 제의의 절대적인 중요성을 강조했던 히틀러의 당대회가 사회주의자들의 계몽적인 의례보다 훨씬 더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점은 의례가 단순한 도구가 아님을 충분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국민화』에서 ‘민중’의 호응은 읽을 수 있지만 개별 개인들의 구체적인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의례를 통해 동일시를 하는 ‘민중’이 있다면, 그러한 의례에 참석하지 않았던 외부의 ‘민중’ 또한 존재했을 것이다. 수만 명의 ‘민중’이 시가행진을 하는 것은 그들이 ‘일반의지’를 대표하고 있다고 전시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그들의 민중-됨에 포함되지 않는 다수의 인민의 존재를 더욱 드러내보여야 할 것이 아닐까? ‘대중독재’라는 표현을 두고 ‘대중이 독재에 합의했다면 그것이 왜 독재라고 불려야 하는가’라고 비판하는 이들의 지적은 이처럼 『대중의 국민화』가 보여주지 못하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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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2014-02-12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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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찌 독일의 문화
우리는 군국주의 일본의 망령에 치를 떤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발언이 우리들의 마음을 괴롭힐때마다 독일은 그렇지 않은데... 하는 생각을 한다. 과연 독일은 과거의 자신들의 역사로부터의 단절을 철저하게 하고 있다. 틈만 있으면 유대인에 대한 과오를 떠올리며 반성과 사과를 되풀이하고 있다.
히틀러. 전유럽과 나아가 전 세계를 2차대전으로 몰아넣은 사람이었다. 그러고 나찌 독일은 광기에 휩싸인 전쟁집단으로 생각되어왔다. 그러나 기록영화나 나치에 대한 기록물을 보는 틈틈히 느껴지는 것은 나찌독일의 문화가 어떤 것이었나 하는 의문이었다. 물론 그것에 관한 자세한 자료를 접할 수가 없어서 그저 나 스스로 추측을 해본 것 뿐이었다.
이 책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준 그런 책이다. 나찌와 히틀러에 대한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독일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갔는가의 과정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는 이 책은 바로 나찌가 행한 문화운동에 촛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남성합찬단에서부터, 바그너의 음악과, 미술품...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분석하고 있다.
대중과 국민은 같은 내용이면서도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찌가 어떻게 대중을 국민으로 전환시켰는가. 그리고 국민이라는 개념은 어떤 것인지. 문화가 하는 역활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만한 책이고, 모르고 있던 많은 것들을 알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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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 2008-04-10 공감(3) 댓글(0)
대중의 국민화 / 조지 L. 모스
일시적이고 한정적인 정체성을 지닌 집단을 대중이라고 한다면, 영속적이고 동질화된 정체성으로 '만들어진' 집단이 바로 국민이다. 군소 도시들간의 끊임없는 분쟁에 시달리면서도 로마 제국을 재건하고자 하는 야망을 간직해 온 독일에서는 18세기에 이르러 사회를 통합하는 공통 심상과 초시간적 절대성을 미의 기준으로 삼는 사유가 체계화되고 있었다.
지식인들은 질서잡힌 세계를 지향하는 고전주의와 고양된 열정을 직접 체화하는 낭만주의를 동시에 세계관으로 받아들였으며, 대중들은 체조동호회와 남성합창단, 사격동호회 같은 지역단체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적 전례와 게르만족의 신화가 버무려진 민족적 표현 양식을 꾸준히 습득했다. 하나의 국민을 지향하는 세속 종교가 사람들을 포획해 나아갔다.
새로운 정치양식인 세속 종교의 본질은 신화와 상징을 단순히 물질성의 반대항으로 삼는 것에 반대하고, 그것을 한층 추상화된 관념으로 재조직하여 현실에서 이룩할 수 있다는 '약속된 체제'의 기반으로 삼는다. 이것은 소음으로 가득한 다원성을 억누르고 일체화된 집단의식을 바탕으로 진정한 공동체를 향하여 도전하는,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나치즘은 독일인들의 내면에 녹아있는 정서를 정교한 기계적 절차 속에서 국가 숭배로 전환해냈다. 대중은 그저 눈을 가린 채 민족주의의 용광로에 떠밀려간 희생자가 아니라, 민족 정기가 서린 공간에서 잘 구성된 제의와 축제를 체험하면서 자발적이고 민주적으로 고양된 애국심으로 뭉친 민족의 일원이었다. 나치는 '신학'의 집행자이자 완성자였던 셈이다.
(오직 대의 정부만이 민주적이라는 전제가 오류인 것은) 파시즘이 작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파시즘이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던 근거가 된 것이 바로 초기 대중운동의 신화와 제의였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무솔리니가 말한 전통 안에서 의회 민주주의라는 "부르주아" 개념보다 더 생생하고 의미 있는 정치적 참여의 표현을 보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전의 오랜 전통 덕분이며 그 전통은 내셔널리즘 지지자의 대중운동뿐 아니라 노동자의 대중운동에서도 볼 수 있다. 30)
파시즘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정치사상을 하나의 체계라기보다 "태도"라고 묘사했다. 그것은 사실 민족 제의에 틀을 제공한 일종의 신학이었다. 그래서 의례와 전례가 그 중심이 되었고 글에 호소할 필요 없는 정치론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나치와 다른 파시즘 지도자들은 말을 강조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연설은 이데올로기를 교훈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전례의 기능을 수행했다. 말은 그 자체로서 숭배 의례에 통합되었고 실제 이야기된 내용은 결국 이런 연설을 둘러싼 무대 장치나 의례보다 중요치 않았다. 36)
남성합창단, 사격동호회와 체조동호회가 기념식에서 제 역할을 했다. 프로테스탄트 사제들이 애국적인 설교를 했고 프로테스탄트 성가대가 노래를 불렀다. 게르만적인 것과 프로테스탄티즘의 이런 혼합은 19세기가 시작된 이래 변함이 없었다. 1815년 나폴레옹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며 사람들은 그 제단 위의 신성한 불꽃에 예배를 드렸다. 104)
민족 해방 투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유는 뮈토스의 주요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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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식의 민주주의는 민족의식의 발전에 기본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민족으로 여기고 기념하는 하나의 전체로서의 민중이었다. 내셔널리즘은 민족을 해방한 것은 물론이고 각 개인의 영혼을 해방시켜 그들이 민족과 결합해 진정으로 창조적인 존재가 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157)
하나의 거대한 애국 조직으로서 사격동호회는 대중적 조직을 위한 하나의 모범을 제공했다. 체조동호회원들, 합창단원들과 함께 그들은 하나의 거대한 애국 단체를 형성했고 나치가 집권하기 전 한 세기 이상 민족 의례를 지탱하고 거기 참여했다. 그들의 축제는 통상적인 정치 회합이 아니었다. 피셔의 말처럼 민족 제의를 형성하고 보존하는 데 큰 도움을 준 활동이었다.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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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35 2015-10-22 공감(2) 댓글(0)
집단의 정체성 확립과 조작에 중요한 의례의 무서움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 기억이 많이 났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오후 5시 혹은 6시 경에 국기 게양식이 있으면 가던 발걸음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얻고 멈췄었던 것과 반공 포스터 혹은 웅변대회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일원임에 열심히 노력하던 어린 나를 많이 보게 되었다.
서문에서 역자인 임지현의 국기법에 대한 언급과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부문 그리고 이 책 전반에 걸쳐서 독일의 역사를 관통하는 민족적 기념비 발달이 어떻게 대중독재를 가능케 했는지에 대해서 저자의 탁월한 견해에 놀랍다. 하지만, 비전공자인 내가 읽기에는 특히 제3제국의 역사와 파시즘 그리고 나아가서 나찌즘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기에는 마니 어려웠다. 그리고, 한 번에 쭈~욱 읽은 것이 아니라 띠엄띠엄 읽어서 그런지 앞서의 내용과 후반부 내용의 논리적 연결을 많이 놓친점은 내 독서습관의 문제라 생각되며, 소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음식물을 토해놓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별로 좋지가 않다. 다시 한 번 더 읽어서 상기 리뷰건에 대해서 재 작업을 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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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심 2008-09-0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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