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무릎 꿇었던 거물 애국자 정해룡
중앙선데이
입력 2021.04.24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김민환 지음
문예중앙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김민환의 장편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끝나는 해방부터 시작된다는 데에서 우리가 보기 힘든 해방공간의 정황을 돌이켜볼 수 있겠다고 반가워했고, 형제간의 이념이 다른 모습에서 염상섭의 『삼대』에서 보인 세대 간 갈등 양상이 빚을 이념적 대립의 결과를 알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그 읽기가 계속되면서 소설적 허구가 아닌 실제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검색한 인터넷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봉강 정해룡의 ‘잠들지 않은 남도의 정신적 뿌리’([독립운동가 열전 〈삶과 넋〉 49])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보성의 명문가 장손으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통신과정을 이수했고, 3000석의 재산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면서 구휼과, 교육·문화의 민족 계몽 사업을 해온 지방의 대단한 유지였다. 언론학 교수로 정년퇴직한 후 작가로 데뷔한 김민환은 이 거물 운동가의 행적을 조용히 뒤따르며 소설로 재구성하고 있다. 작가가 재현한 주인공은 양반의 체통을 품위 새롭게 높이면서 주변 인물들에 두루 관대하고,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면서 심각해진 갖가지 착잡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싸안아 포용의 정신으로 개혁 실천한다. 단독정부 구성을 추구하는 이승만과 김일성과는 달리 남북의 화해와 민족의 통일을 추구하는 여운형을 지지하며 해방된 우리 사회의 독립과 번영, 화해와 통합을 꿈꾼다. 노비를 해방하고 토지를 소작농들에게 분배하며 지역의 갖가지 혼란을 수습하고 요구와 주장을 타협하여 온건한 개혁을 위해 헌신한다.
뒷줄 왼쪽부터 정해룡, 매제 안용섭, 동생 정해진, 아래는 어머니 윤초평. 1943년 전남 보성의 정씨 고택 ‘거북정’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정길상]
그의 품격과 바람과는 달리, 그럼에도, 그의 생애는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동경제대 출신의 동생은 월북하고, 그들은 여순 반란 사태로 고역을 겪어야 했고, 아내는 조현병을 앓고, 제3의 노선을 표방한 그는 총선에서 떨어진다. 그의 재산은 한없이 졸아든다. 나라도 남과 북으로 갈리고 내란과 전쟁으로 더 이상 회복하기 힘든 파탄으로 몰려가고 만다. 작가가 이 같은 몰락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가면서 끊임없이 묻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하나로 모으려는 덕과 인의 품격 높은 정신과 꿈이 왜 늘 패배하고 현실은 더 참담해야 하는가라는 역설에 대해서이다. 여기서 그가 이를 수 있는 것은 “남북을 분단한 시대의 실패”였고 “미국과 소련이 분단을 택한 그 순간에 패배가 예비되었다”는 결론에서 예감되는 남북한의 전쟁과 분단의 고착화였다. 정해룡의 실패는 그러므로 나라와 시대의 실패였다는 것이 당초 사회과학자였던 작가의 진단이다.
작가는 논픽션으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을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론적 운명으로 확대하고 문학작품으로 비약 발전시키는 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가령 해룡의 모친 윤씨가 사용하는 고급한 전통적 화법은 우리 언어미의 부활을 촉구하는 예술적 품위의 표현이다. 특히 대가의 인척 관계와 나이를 적는 작가의 버릇은 우리 전래의 가족 구조 면모를 알려주는 심층 심리구조를 드러낸다. 사소하게 보이는 이 수법들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국적 시니피앙과는 또 다른 ‘낯설게 하기’로 우리의 논픽션적 시선을 문학적 전망의 형식으로 재현한다. 그럼으로써 57세 이른 나이로 자신의 꿈을 사려야 했던 역사 속의 한 인물을 그의 삶과 꿈에 고난을 강제하는 세계의 고통과 보편의 인간 운명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포용하는 이상주의자의 끊임없는 추구는 그렇게 이 세상에 용인될 수 없는 소망인가. 이 작품은 이 세계의 그 시대적 억압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김병익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4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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