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1

알라딘: [전자책]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문영심

알라딘: [전자책]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eBook]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문영심 (지은이)
시사IN북201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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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 368쪽, 

책소개
1976년 12월4일부터 1979년 10월26일까지 34개월 동안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사람. 1979년 10월26일 대통령 박정희를 저격해 살해하고 1980년 5월24일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 김재규. 그동안 10.26과 관련한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김재규와 10.26에 대해 철저하게 드러난 사실만을 바탕으로 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한 책은 없었다.

이 책은 강신옥, 안동일 등 김재규 변호사들이 34년간 고이 간직해온 자료와 기억, 가족의 증언, 김재규와 운명을 함께 한 박흥주, 박선호 등 5명의 충직한 부하들이 남긴 이야기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경기대학교 김재홍 교수가 어렵사리 입수한 <박정희 살해사건 비공개 진술>, 그 외 방대한 자료들의 토대 위에 있다.

27년간 텔레비전 다큐멘타리를 써왔으며 등단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 문영심은 그녀의 이력에 걸맞게 이 책에서 다큐의 사실성과 소설적 재미를 결합해냈다. 그녀의 책 속에서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 그리고 독재자 박정희와 그를 에워싼 군상들은 인간의 체취를 물씬 풍기며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목차


추천사
김재규 장군에게 빚을 지고 있다 _함세웅 신부
왜 박정희 대통령을 쏘았는가 _강신옥 변호사


민주주의의 역설, 김재규의 역설

1부
1. 잠행
2. 해서는 안 되는 말
3. 중독
4. 채홍준사採紅駿使
5. 호랑이 꼬리를 밟는 일

2부
1. 막다른 골목에서
2. 민주주의를 위하여
3. 총소리
4. 우리 같이 살자
5. 코드 원

3부
1. 남한산성 7호특별감방
2. 유신이 끝났다고?
3. 민주주의를 해야 국가 안보도 튼튼하다
4. 그의 행위는 정당방위다
5. 우리 남편은 죄가 없어요
6. 변호인단의 변론을 거부합니다
7. 장군들의 야간 외출 8. 야, 얘기하지 마!
9. 사형! 사형! 사형!
10. 당신이 제일 보고 싶다

4부
1. 인권변호사
2. 질문 같지 않은 질문
3. 시퍼렇게 젊은 친구들 죽이지 말아주십시오
4. 우리는 그에게 빚진 게 있다
5. 박정희의 정치적 아들 전두환
6. 아빠는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다

5부
1. 포로가 된 장군
2. 그들이 살아야 민주주의가 죽지 않는다
3. 먹구름과 천둥
4. 할 일을 하고 먼저 갑니다


제4심의 전망
참고자료
접기


책속에서


바람 없는 천지엔 꽃이 필 수 없고, 이슬 내리지 않는 곳엔 열매도 없다. - 제주도야자수



저자 및 역자소개
문영심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27년여 동안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했다. 조작간첩 사건을 취재하면서 탈북민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후 탈북민들의 삶과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더 깊이 있게 바라보게 되었다. 지은 책으로 소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가즈토이, 2010)을 비롯해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김재규 평전』(시사인북, 2013), 『간첩의 탄생: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진실』(시사인북, 2014), 『이카로스의 감옥: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진실』(도서출판 말, 2016), 『세상 밖으로 부는 바람』(도서출판 말, 2017), 『문작가의 제작노트: 애국자게임 2-지록위마』(민중의소리, 2019), 『탈북 마케팅: 누가 그들을 도구로 만드는가』(오월의봄, 2021)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정해룡 평전>,<탈북 마케팅>,<문작가의 제작노트> … 총 1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10.26 34주년을 앞두고 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가 나왔다. 그동안 10.26과 관련한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김재규와 10.26에 대해 철저하게 드러난 사실만을 바탕으로 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한 책은 없었다. 이 책은 강신옥·안동일 등 김재규 변호사들이 34년간 고이 간직해온 자료와 기억, 가족의 증언, 김재규와 운명을 함께 한 박흥주·박선호 등 5명의 충직한 부하들이 남긴 이야기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경기대학교 김재홍 교수가 어렵사리 입수한 <박정희 살해사건 비공개 진술>, 그 외 방대한 자료들의 토대 위에 있다. 이 책은 김재규 변호사들이 검증한 최초의 10·26 정사(正史)라고 할 수 있다.
27년간 텔레비전 다큐멘타리를 써왔으며 등단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 문영심은 그녀의 이력에 걸맞게 이 책에서 다큐의 사실성과 소설적 재미를 결합해냈다. 그녀의 책 속에서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 그리고 독재자 박정희와 그를 에워싼 군상들은 인간의 체취를 물씬 풍기며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책을 읽는 내내 역사의 기록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영화나 희곡을 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작가는 그동안 밥을 벌려고 방송작가로서 일하는 동안 미디어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오지 않았다는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유신 말기에 청춘을 보낸 작가는 이 책을 쓰는 1년여 동안 매일처럼 유신의 악몽에 가위 눌려야 했다.

김재규. 1976년 12월4일부터 1979년 10월26일까지 34개월 동안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사람. 그는 1979년 10월26일 대통령 박정희를 저격해 살해하고 1980년 5월24일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박정희의 심장을 쏴버린 박정희의 오른팔. 유신을 허물어 버린 유신의 핵심. ‘계획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엉성하고, 우발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치밀하게’ 일을 저지른 사람. 모순으로 가득한 그의 행동 탓에 그동안 그와 관련해 너무나 많은 구구한 억측과 오해가 뒤따랐던 것이 사실이다. 작가가 이처럼 혼란스런 그의 언행을 따라가면서 떠올린 핵심 단어는 ‘역설’이다.

대한민국 권부에 총성이 울린 것은 세 번이었다. 박정희가 나라를 지키라는 군대를 이끌고 한강 다리를 건너 서울로 쳐들어와 초병을 죽이고 5·16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것이 맨 처음이다. 그 박정희를 김재규가 총으로 쏘아 살해한 사건이 10·26이다. 그 뒤 군부의 전두환·노태우 일파가 다시 군을 이끌고 권력을 장악한 것이 12·12 쿠데타이다.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하고 국헌을 문란케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성립하는데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쿠데타는 두말할 나위 없는 내란죄다. 그러나 김재규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하지 않았다. 권력을 잡으려고 움직인 흔적도 없다. 김재규는 법정에서 군사독재를 끝내려고 거사를 했는데 내가 집권하면 역시 군사독재가 되기 때문에 나는 집권할 생각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전두환·노태우는 나중에 내란죄로 기소돼 각각 무기징역과 12년형을 받았지만 사면됐다. 박정희는 기소조차 되지 않고 국립묘지에 묻혔다. 내란죄를 저지르지 않은 김재규만 사형당했다. 김재규는 내란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도 못 되고 내란죄로 처형된 셈이다. 김재규 사건 자체가 우리 역사의 모순이며 역설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전두환의 합수부가 주도한 군사법정이 의도한 대로 김재규가 단순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박정희를 살해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받아들이게 된 데서 우리 현대사가 일그러지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박정희에 저항했던 민주화 세력이나 정치인조차 김재규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폄하했다. 혹시라도 그가 민주화의 공을 독식할까 두려워해 탄원서에 서명하는 것조차 꺼렸다. 당시 모두가 그가 제대로 된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사형당하는 것을 방치하고 말아 신군부가 다시 등장할 빌미를 주지 않았는지 저자는 의심한다. 김재규가 민간법정에서 법의 보호를 받으며 공정한 재판을 받았다면, 김재규가 말하고 싶었던 진실을 자유로운 언론이 국민에게 알렸다면 우리 역사는 지금과는 훨씬 달라지지 않았을까.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피를 흘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사람들은 여기게 되지 않았을까. 저자가 새삼스럽게 10·26을 끄집어내 햇빛 아래 말리고자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저자는 김재규 33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다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김재규가 부마항쟁으로 전쟁터처럼 변한 부산 시내를 암행했을 때 우연히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게 됐던 사람이다. 그는 작가에게 그 날 김재규와 박흥주가 최루가스에 맞아 초주검이 된 어린아이를 구하려고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는지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그는 나중에 신문을 보고 자기가 만난 사람이 김재규란 걸 알고 언젠가 시간을 내 고인에게 인사나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뒤늦게나마 고인의 빈소를 찾게 됐다고 작가에게 털어놓았다. 30여 년 전에 딱 한 번 만난 사람의 마음속에도 당시 김재규의 절박함과 고뇌는 잊을 수 없을 만큼 뚜렷하게 각인됐던 것이다.

김재규를 직접 만나본 이들은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국선변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김재규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던 인권 변호사도 당연히 처음에는 그를 변호하는 데 시큰둥했다. 하지만 그를 만난 지 30분 만에 자신의 생각이 180도 바뀌는 것을 의식하며 당혹스러워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들은 지금도 마치 오래 전에 떠나보낸 연인을 그리듯 고인의 묘를 찾는다. 거사 30분 전에야 겨우 김재규의 뜻을 전해들은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신군부의 갖은 유혹과 협박에도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 한마디도 김재규를 비난하지 않고 묵묵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단순히 김재규의 인품이 고결해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작가는 당시 그들은 박정희가 왜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또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김재규밖에 없었음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정보부를 채홍사로 삼아 한 달이면 열흘이나 여자 연예인이나 여대생들을 강제로 끌어다 주지육림의 파티를 벌이며 부마사태를 “야당의 사주를 받은 ‘뽀이’들이 저지르는 난동”쯤으로 받아들였던 박정희와 그를 에워싼 군상들. 이 책은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야수이자 괴물이었다는 걸 분명히 말해준다. 저자는 김재규를 둘러싼 이 같은 역설과 모순에 분노하는 이들이 있는 한 김재규가 그토록 원했던 제 4심, 즉 정당한 문민의 재판은 열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이 그 시작이 되기를 희망한다.

박근혜 시대, 다시 김재규를 읽는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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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혁명이란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신질서를 수립하는 것입니다.`한 김재규의 10.26이 33주기가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정치적 아들인 전두환이 건재하고,그의 딸이 대통령이 된 이 시대는 여전히 신질서가 수립되지 않고 있다. 눈 밝은 국민들이 이 책을 많이들 읽기를 바란다. 작가에게 감사를,
appletreeje 2013-10-24 공감 (2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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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감시자가 되어야 했던 시절, 무단 결석으로 사형까지 가능했던 시절, 무조건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던 시절, 여고생들도 땡볕에서 쓰러지며 국군의날 준비하던 시절, 그시절이 유신 이었다. 하루빨리 제4심이 열리길!
lakeyoun 2013-11-08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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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들을 다시 사형장에 세우는 장면의 뜨거운 눈물이 그들을 살리고 또 살린다. 명예의 참뜻을 그에게 돌려주며 혁명/쿠데타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평전.
에르고숨 2013-11-18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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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도 울고 갈 현대판 죄와벌..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
dhgk19 2017-04-11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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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했습니다~잘 읽을게요 ㅎ
alalalal 2016-12-31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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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는 하늘을 이기지 못한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이토우 히로부미를 쏘아 죽였다.

그로부터 70년 후,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는 다카기마사오를 쏘아 죽인다.



안중근은 영웅이 됐지만 김재규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김재규는 영웅인가? 역적인가?



김재규는 박정희를 왜 쏘았을까?





1979년 10월 17일, 유신 선포 7주년 기념행사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하루 전, 부산에선 학생들이 <민주구국투쟁선언문>을 낭독했다.



“한민족 반만 년 역사 위에 이토록 민중을 무자비하고 철저하게 탄압하고 수탈한 역사적 지배집단이 있었단 말인가. 모든 경제적 모순과 실정을 노동자의 불순으로 뒤집어씌우고 협박, 공포, 폭력으로 짓눌러왔음을 YH사건에서 본다. 타율과 굴종으로 노예의 길을 걸어 천추의 한을 맺히게 할 것인가, 아니면 박정희와 유신과 긴급조치 등, 불의와 날조와 악의 표본에 의연히 투쟁함으로써 역사 발전의 장도에 나설 것인가?”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시민들과 합세하여 시위를 벌이고 마산에서의 시위로 까지 번졌으니, 우리가 익히 들은 <부마사태>의 시작이었다. 김재규는 부마사태를 직접 눈으로 보고 와 박정희에게 보고한다.



“각하, 제가 시위대 속에 직접 들어가서 시위대의 성분을 체크하고 왔습니다. 노동자도 있지만 사무직 종사자들도 있고 상인들도 있습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시위대가 밀리면 시민들이 음식을 날라다주면서 격려하고, 쫓기면 숨겨줍니다. 시위대와 시민이 완전히 한 몸입니다.”



박정희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4.19때처럼 서울에서 데모가 크게 나면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어. 그때는 최인규나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내렸으니까 총살됐지, 대통령인 내가 발포 명령을 내리는데 누가 나를 총살시키겠어, 안 그래?”



차지철이 박정희를 거든다.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쏴 죽이고도 까딱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나면 한 100만 명이나 200만 명 처치하는 게 무슨 문제겠습니까? 각하께 불충하고 빨갱이들하고 똑같은 소리나 하는 놈들은 이 차지철이가 탱크로 다 밀어버리겠습니다.”



차지철의 말에 다카기 마사오는 심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김재규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강신옥 변호사였다. 강신옥 변호사를 대면한 김재규는 강신옥 변호사를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5년 전,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때 강신옥은 변호를 맡았고 당시 김재규는 중앙정보부 차장이었다.

아무 죄 없는 젊은이들을 빨갱이로 뒤집어씌워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모든 고문을 총동원해 조작한 사건이 바로 인혁당 사건이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만 하루가 안 된 20시간 만에, 즉 사형선고를 받은지 20시간 만에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송상진,여정남,우홍선,이수병,하재완등이 사형을 당했다. 명백한 사법살인이었다.

(이 군법회의의 판결을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전에 ‘법이 그랬으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은 1988년 3월, 14년 8개월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음에도 박근혜는 이 판결은 인정하지 않고

1975년 판결이 옳다고 말한 것이다.)



‘인혁당 사건’은 세계 사법 사에 길이길이 기록될 ‘업적’을 쌓았다.



1. 기소자들의 선고형량 합계가 1천 650년이나 되어 단일 사건으로 최대.

2. 변호사가 법정에서 변론 도중 끌려 나간 전무후무한 재판.

(강신옥 변호사를 끌어낸 게 중앙정보부 요원들이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해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 협회는 그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세계 법학자들이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 말했건만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자는 ‘법이 그랬으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가x를 확 찢어xxxxx 이 개 xx x!!!!)





“그때부터 제가 정말 유신체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품게 됐습니다.

그 민청학련 사건 이후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김재규의 저격의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재규는 유신정권 중앙정보부장이었으니까. 강신옥 변호사 역시 김재규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재규의 주장에 따르면 이번이 네 번째 시도였다.



1974년 9월 14일 건설부장관 임명장을 받을 때

1975년 정월 27일 대통령 초도 순시 때.

1979년 4월, 궁정동 만찬 때.

그리고 1979년 10월 26일 마침내 거사를 실행한 것이다.



김재규는 차치하고 김재규의 부하였던 박선호, 박흥주,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은 사형이란 판결에 억울하지 않았을까?



김재규를 원망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들은 죽음 앞에서도 김재규에 대한 존경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박선호는 아내가 보낸 성경 속에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는 구절을 되뇌이며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박흥주는 살고자 했다면 살 수 있었을 테지만, 김재규를 배신하라는 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딸들은 ‘아빠 냄새 난다고’ 아빠가 늦는 날이면 아빠 옷을 끌어안고 잘 만큼 아빠를 사랑했다고 한다. 그런 딸들을 두고 가야 했으니.....



박흥주는 사형 당일, 평소에 좋아하는 시편을 펼쳤다. 다음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50장 15절>



박흥주는 사형직전 눈을 가리지 않았다. 12명의 헌병들이 사격자세를 취하자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김재규는 다카기 마사오를 왜 쏘았는가.



한마디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유신체제는 박정희만을 위한 독재정권에 불과했으므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 가지 원인을 들 수 있다.

한 가지는 정치적인 것이고 두 가지는 개인적인 것이다.



1. 부마사태.



분명 박정희는 자신이 직접 발포 명령을 하겠다고 말했다.

차지철은 백만 명, 이백만 명 죽여도 문제가 안 된다고, 탱크로 다 밀어버리겠다고 말했고,

박정희는 흐뭇해했다.

김재규가 보기에 이건 애들 허풍이 아니다. 그가 지켜본 바로 박정희는 충분히 학살을 실행할 만한 ‘도살자’였다. 차지철 역시.



만일 그가 박정희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부산, 마산에선 광주보다 더한 살육이 벌어졌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부산, 마산 사람들이 새누리당을 밀어주고 ‘도살자의 딸’을 지지하고 있는 현실은 그야말로 아이러니하다.



2. 여탐



박선호는 한 달에 적어도 열 번 이상 궁정동 모임을 준비해야 했다. 당시 연예인 중에 궁정동 안가를 안 거쳐 간 사람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연예인뿐만이 아니었다. 박정희는 일반인들도 눈에 띄는 대로 끌고 와 강간했다. 중앙정보부라는 국가기관이 동네 양아치마냥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끌고 와 두목한테 상납한 것이다. 박선호는 후에 채홍사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고 말했다. 선비 타입인 김재규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3. 박근혜와 박지만



박정희 아들인 박지만은 육사 생도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박지만의 행실에 대해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재규는 박근혜가 명예총장, 최태민이 총재에 있는 구국여성봉사단을 조사해 박정희에게 보고를 올렸다. 최태민은 사이비 이단 교주로서 1974년부터 ‘태자마마’를 자칭하던 사기꾼이다. 최태민은 박근혜의 이름을 팔아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었지만 박정희는 정보부가 이런 것 까지 간섭하냐며 불쾌해 했다고 한다.



강직한 김재규의 입장에선 박정희 자식들의 부정부패를 눈뜨고 봐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역사에 ‘만일’은 없다. 그렇지만 생각을 막을 순 없다.

만일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국민들이 나서서 민주주의를 회복했을까?



나는 김재규가 거사를 하는 바람에 신군부가 집권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생각했었다.



“참 답답한 이야기요.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지 않았으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아무도 몰라요. 광주항쟁이나 4.19때보다 더한 희생이 따랐겠지. 전두환의 신군부는 어떤 식으로든 정권을 탈취하려고 덤볐을 테고, 12.12 사태 이후에 군인들은 물론이고 여당 정치들인, 기업인들이나 대학교수까지 전두환 밑에 줄 서기를 했어요. 역사가 왜곡된 것은 김재규 탓이 아니고 박정희가 죽고 나서도 유신 세력들을 몰아내지 못한 정치인들과 국민들 탓이지요.”



광주시민들을 학살하고도 여전히 뻔뻔스럽게 살아있는 전두환과 노태우를 보면 맞는 말인 듯싶다.





김재규와 부마사태 때 국밥집에서 만났던 사람은 노인이 되어 그의 무덤을 찾았다.



“저는 압니더. 얼라 씻겨주는 거 보고 알았심더. 그분은 나쁜 사람 아니라예. 죽기 전에 꼭 한 번 와봐야겠다 싶어서 벼르고 벼르다가 요번에 왔심더. 참말 가심이 아픕니더. 오죽했으면 대통령을 직일 맘을 먹었겠십니거? 김 장군이 그카지 않았시믄 광주 사람덜 대신 우리 부산 사람덜이 다쳤을지도 모르지예.”



김재규의 고향은 경상도 구미다.

그의 추모비를 세운 건 경상도 사람들이 아니라 광주 전남지역의 재야인사 모임인 송죽회였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적어도 경상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족들을 총칼로 학살 했었을 살인마들에게 투표하는 대신, 김재규의 무덤 앞에 국화 한송이라도 바쳐야 하는 거 아닌가?



김재규는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그는 정말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박정희를 쏜 것일까?

김재규를 믿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함세웅 신부는 말했다.



“누가 박정희를 쏘았나? 자네가 쏘았나? 아니면 자네가? 아니면 내가 쏘았나? 아니야. 김재규가 쏘았네. 그는 박정희를 쏘면 자기가 죽을 걸 알면서도 쏜 거야. 그가 박정희를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하지만 그는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고 잡혀가서 지금 감옥에 있네. 실제로 자네들이나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도 실행할 용기가 있었을까? 그건 목숨을 건 싸움이야. 그가 박정희에 의해서 희생될 수도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구했어.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의 죽음이후 35년이 지났건만 민주주의는 멀고 신자유주의는 가깝다.

그는 유신의 심장을 쏘았으나 유신세력은 귀신이 되어, 괴물이 되어

우리 곁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非理法權天



비리법권천,

이치에 어긋난 것은 이치를 이기지 못하고

이치는 법을 이기지 못하고

법은 권세를 이기지 못하고

권세는 하늘을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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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11-01 공감(85) 댓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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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역사의 4심!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 그것도 부정적인 모습으로만. 너무도 오래 전 이야기이고, 또 제대로 다뤄주지도 않는다. 사람들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제가 본 부분만으로만 이야기한다. 그런 사람이 바로 김재규다.



별로 흥미도 없다. 대통령을 죽인 사람. 이정도다. 알고 있는 사실은. 젊은시절에는 김재규가 사형당한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직도 감옥에서 살아있겠지 하고 말았는데...



대통령을 죽였다고 그가 혼자 일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미국과 교감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이나 다른 외국으로 도피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 그래서 그렇게 사형을 시켰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사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뿐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대통령을 죽였다고 해도 그 역시 그 대통령 밑에서 그 체제를 유지하게 하는데 큰 힘을 발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권력다툼.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또는 질책을 두려워해서 저지른 일. 이정도. 참 정보가 없기도 했다. 도대체 재판기록을 본 적도 없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잊혀진 사람. 아니 잊혀져야 할 사람. 그것이 바로 김재규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우연히 장군이라고 부르는 글을 보게 되었다. 글이라기보다는 그런 구절을 보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장군이라고? 그는 중앙정보부장 아니었어? 중앙정보부장은 민간인이 하고, 보안사령관은 군인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만큼 정보가 부족했다. 그가 군단장 출신의 3성장군이었다는 사실. 그를 보좌한 비서관인 박흥주가 현역 대령이었다는 사실.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렇게 빈약한 정보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려고 했었나? 한홍구의 "유신"을 읽다가, 그 책의 저자가 김재규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무언가 모르는 부분이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하들에게 겨우 30분 전에 거사를 알려주었다는 얘기를 "유신"에서 읽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됐다. 거사 직전 30분이라? 이게 말이 되나? 한 나라의 대통령을 제거하는 일인데...



사육신이 세조를 제거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공모를 했는데... 그래도 실패했는데... 이상하다? 뭔가가 있나? 겨우 30분 전에 얘기했는데 그 말을 따라? 제 목숨이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거.. 참...



김재규에 관한 글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막 솟아올랐다. 김재규에 대한 글을 읽는다고 그에 대해서 다 알지는 못하겠고, 모든 글은 자신의 관점에서 쓰여지니 읽으면서 정리할 부분도 많겠지만, 지금은 너무도 정보가 없기에 찾아 읽어야 했다.



검색어로 김재규를 쳤다. 제법 책이 나온다. 이걸 다 읽긴 좀 그렇고? 최근에 나온 책을 읽기로 한다. 그래도 최근 것이 더 많은 정보를 정리해서 알려줄 거라는 생각에...



추천사에 함세웅 신부가 있고, 강신옥 변호사가 있다. 이거 만만치 않은데... 이 분들은 유신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분들인데... 유신의 중심에 있던 김재규 평전에 추천사를 쓰다니...



점점 흥미가 인다. 읽어보기 시작한다. '평전'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작가가 드라마 작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흥미롭다. 장면 장면이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진다.



그래서 그런지 전기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때의 사건을 재구성한 '그때 그 사건"을 읽는 느낌이 든다. 김재규 평전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김재규의 시간은 1979년에서 1980년이다. 채 일년이 되지 않는다.



그가 대통령을 죽이기 바로 직전부터 사형당하기까지가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다. 여기에 김재규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그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박흥주, 박선호에 대한 이야기도 곳곳에서 나온다.



이렇게 셋이 이 책을 이끌어가는 인물이 된다. 10.26 이후에는 변호사들도 중심 인물로 나온다. 이 때는 한 편의 법정드라마가 된다.



앞부분은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본격 무협담같은 느낌을 준다면 뒷부분은 요즘 나온 영화 "변호인"을 보는 듯한 법정 장면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재판정에서 오고간 말들이 나오기에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장면에서 김재규라는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된다. 그가 한 일과 왜 했는지...



그럼에도 그는 잊혀져갔다. 아니 잊혀져야 했다. 그는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했지만, 또다른 유신의 자식들이 등장함을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비극이었고, 그의 명령을 따랐던 사람들의 비극이었다.



유신의 심장은 멈추었지만, 또다른 유신의 자식들은 여전히 존재했고, 그들 앞에 그는 세워졌던 것이다. 이런 역사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의 말대로 4심이 있어야 한다.



유신시대에 있었던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다시 심판을 받아 명예가 회복되었다. 이것이 바로 4심이다. 역사의 흐름에 의해서 올바름이 증명이 되는 것. 그는 그렇게 4심을 기대했다. 그 4심... 이제 30년도 넘게 흐른 지금... 서서히 준비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 이상 자료가 사라지기 전에...



조금은 알겠다. 그에 대해서. 그는 10.26을 혁명이라 했지만, 그 자신도 바로 유신에 속한 사람이었음을 나중에는 알았겠지... 그것은 그가 벗어날 수 없는 멍에다. 그 멍에를 지고 그는 결행을 했다. 그 정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났는데...



하나는 삼국지가 생각났다. 삼국지.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남자라면 꼭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명쾌하다. 여기에는 의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관계. 주군이 시키는 일이면 목숨을 걸고도 해야 하는 사람들.



겨우 30분 전에 부하들에게 통보했다고 하는데도 부하들은 그를 따랐다. 삼국지에 나오는 그런 유형의 행동들이다.



또 하나 채만식의 "태평천하"의 마지막 장 이름... '망진자 호야(亡秦者 胡也)'란 말. 진나라를 망하게 할 존재는 오랑캐라고 그래서 만리장성을 그렇게 쌓았다고 하는데, 그 놈의 호(胡)가 바로 진시황의 아들 이름이었다니...



절대권력은 역시 내부로부터 붕괴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김재규가 진정한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의 내부에 들어가 대통령을 설득해서 개혁을 하려고 해서는 안되었다는 생각도 했다. 왜냐면 안에 들어가는 순간, 자신도 이미 권력의 일부가 되어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의 내부에 들어가 권력을 개혁하겠다는 사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을 읽은 지금... 내게는 10.26은 두 개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하나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 날짜를 이 책에서 자주 언급을 한다. 그러니 우리 역사에서 10.26은 두 개의 사건을 담고 있는 날짜다.



마치 9.11이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쿠테타로 붕괴시킨 날과 미국 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난 날이라는 두 개의 사건을 담고 있듯이.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가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한 것, 그리고 그것이 결코 사욕이 아니었음은 인정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지만...



역시, 역사라는 심판대에 4심을 맡겨야 할 듯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자료가 공개되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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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14-03-10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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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김재규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79년 당시에는 고교생이었고, 태어날부터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가 죽었다.

그것도 부하의 총에 맞고.

분위기에 눌려 대통령 죽었다고 울었던 세대이다.

그러면서 집에 오던 신문은 한줄도 빠짐없이 다 읽으면서

몇가지 의문이 생겼었다.

당시에는 양주, 양담배를 마시거나 피면

잡혀가던 시절이었다. 외국인이나 외국을 다녀온 사람 아니면

양주와 양담배는 불법이었다.

그런데 왜 모범이 되어야할 대통령이 양주를 마셨지?

왜 술자리에 유명한 여가수와 모델지망생 어린 여대생이 있었을까?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인 후에 왜 빨리 정권을 잡지않았을까?

갑자기 왜 전두환이라는 듣보잡 인물이 나와서

계엄군을 이끌고 후에는 체육관선거로 대통령이 되었을까?



이 책을 읽고서야 어릴적부터 줄곧 따라 붙었던 의문이 풀어졌다.

인간 김재규의 면모가 느껴지니 그가 바라던 세상으로 가지못한

이 현실이 더 마음 아프게 와닿았다.



그러나 역사는 계속 공부해서 그 잘못을 반복하지않으려 하는 데 있듯

더 많은 책을 읽고 역사의식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필 수 없고,

이슬 내리지 않는 곳엔 열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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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dong 2013-12-01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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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평전을 읽고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암살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울었다. 장례 행렬을 지켜보던 노인들은 마치 왕이 죽었을 때처럼 소복을 입고 나와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멈추었고 아이들은 더러 책상에 엎드린 채 울기도 했다. 나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또렷이 기억난다. 울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자기 검열, 슬퍼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엎드려 울다보니 자꾸 눈물이 났다. 상실감이나 애도보다는 당혹감과 막연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눈물이었다.



내 평생 대통령은 오직 박정희 하나뿐일 줄 알았는데, 박정희는 내가 죽은 후에도 계속 대통령으로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그 ‘영원한 대통령’이 부하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게 어린 마음에도 자못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감히 ‘우리의 왕’을 살해한 김재규 일당은 천인이 공로할 악당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김재규라는 인물이 궁금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수인복을 입은 김재규의 사진을 본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뭔가 내가 생각했던 그림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어쩐지 나쁜 사람 같지 않았고, 후회나 두려움, 원망이 없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지치고 병색이 짙은 그의 얼굴에서는 범상치 않은 차분함과 품위가 흘러나왔다. 이러 저러한 연유로 한편으로는 사건 경위에 대한 세간의 상식(그가 박정희를 쏘게 된 계기는 차지철과의 권력 경쟁이라는 것)을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김재규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 하나. 김재규는 역시 모순적인 인물이라는 것. 이 책에 실린 자료들을 토대로 판단해 보건데, 분명 그는 교육자, 군인, 공무원으로서 민주주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고, 불교 신자로서 생명 존중 사상을 깊이 내면화했다. 또한 공산주의를 절대 악으로 간주하고, 미국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한국을 일체의 악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그의 세계관에는 다소 어리석어 보일 만치 순진한 구석이 있다. 박정희의 고향 후배인 그는 박정희로부터 한 때 가장 신임을 받았으며, 유신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그의 세계관과 정치적 신념은 박정희와의 인간적·정치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일으켰을 것이고, 그의 ‘혁명’은 그러한 모순을 끝내기 위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그의 일기, 법정 증언, 담당 변호인의 진술 등 관련 자료들은 올곧은 군인 정신의 소유자인 그가 유신 체제, 재판, 교수형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은 부침과 고뇌를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박정희가 그의 손에 죽지 않았다면 부산과 마산에서 5월의 광주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홀로코스트가 있었을 것이다. 전두환이 집권하게 됨으로써 대량 학살의 시기와 장소만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박정희의 정치적 계승자인 전두환은 새로운 버전의 유신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면 그의 ‘혁명’은 실패한 것일까 성공한 것일까?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실패한 시도가 반복됨으로써 조금씩 성장했다. 인간의 인간다움을 가능케 하는 삶의 조건은 그만큼 어렵게 얻은 결실이다. 김재규를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고자 했던 ‘혁명가’로 평가할 것인지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유신 체제의 핵심부에서 그가 겪었던 치열한 고뇌, 그가 꿈꾸었던 이상과 재판 과정에서 그가 목도한 좌절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단상. 당시의 생생한 기록을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사건과 인물 관련 자료에 압도되어 글쓴이의 해석이 약해진 점, 김재규 연보가 실려 있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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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writer 2014-01-06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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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질언론에 세뇌된 잘못된 믿음을 깨우치며....



부패정권의 홍보지 찌라시 조중동을 40여년간 구독했었다.


10.26 그 때는 고교시절...
학교 바로 인근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수많은 탱크들이 광화문과 청와대를 계속 돌고....하늘엔 호외가 뿌려졌다.

수많은 시위대 인파...시위진압에

수업의 조기종료로 얼룩진 학창시절....


그땐 그리고 한동안은 김재규가 정말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암살자로 느꼈다.
사형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명박정권들어 방송과 신문이 사실이 아닌것이 많은 걸 알게 되면서...



40여년동안 조작언론에 세뇌된 내 머리가 서서히 개조되기 시작했다.


이 책은 10.26사건을 김재규 입장에 정리된 책이다.

대책없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으로 부하직원들까지 사형당했지만....

강단있고 열사와 같은 분임을 느꼈다.



후에 우리나라가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날이 오면

김재규는 자연인 박정희를 암살한 살인자지만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믿어본다.



과연 그 날이 올런지......



책이 인쇄가 군데군데 희미하고 오자도 많지만 지금 제 3의 유신시대같은 이시대에 용기있는 출판이며 또한 객관적인 사료에 근거한 의미있는 역사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재규 그리고 특히 상사의 명령을 충성스럽게 따른 부하들에게 늦게나마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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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h1354 2014-01-17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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