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2

정승관 선생이 말하는 ‘나와 풀무학교 그리고 김교신’ - 에큐메니안



정승관 선생이 말하는 ‘나와 풀무학교 그리고 김교신’ - 에큐메니안
정승관 선생이 말하는 ‘나와 풀무학교 그리고 김교신’수도권 예수살기 10월 ‘명사초청강연회’ 열어
한별 기자 | 승인 2013.10.16 17:03


15일 저녁7시 서울시 서대문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하 기사련) 빌딩 지하 이제홀에서 수도권 예수살기가 주관하는 10월 ‘명사초청강연회’가 정승관 선생(풀무농업고등학교 전 교장)을 초청해 열렸다.

조언정 목사의 사회로 참가자들이 인사를 나눈 후 ‘나와 풀무학교 그리고 김교신’ 이라는 주제로 정승관 선생은 본격적인 “나의 예수살기”에 대해 강연을 진행했다.



▲ 15일 저녁7시 서울시 서대문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하 기사련) 빌딩 지하 이제홀에서 수도권 예수살기가 주관하는 10월 ‘명사초청강연회’가 정승관 선생(풀무농업고등학교 전 교장)을 초청해 열렸다.(사회를 맡은 조언정 목사와 정승관 선생). ⓒ에큐메니안
조언정 목사는 “정승관 선생은 77년부터 풀무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면서 교육과 농업에 전념을 했었는데, 작년 2월 퇴임을 했다. 지난 작은 교회 박람회 심포지엄에서 발제를 했던 것을 보고 오늘 명사초청을 하게 되었다.”고 초청 이유를 설명했다.



정승관 선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77년에 홍성에 내려가 2012년 2월까지 홍성 풀무고등학교에서 재직했다. 정 선생은 풀무에 가게 된 이유에 대해 “당시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워 큰 뜻이 있거나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정상 풀무에 가게 되었는데 당초 3개월만 있으려고 했던 것이 이렇게 긴 시간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어 함께 풀무를 그리기 시작했고, 함께 근무했었던 2년여 시간 동안 인생의 미래를 계획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정 선생에 의하면 풀무학교는 1958년 홍성에 위치한 홍덕이라는 마을에 세워졌다고 한다. 홍덕 토박이인 주홍로 선생과 함석헌 선생 등이 만나 홍덕 마을에서 무교회 집회를 하던 중에 지역에 학교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여 설립하였던 것이다.

학교 설립에 기여했던 이창갑 선생이 학교 설립 2년 만에 연탄사고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하다 돌아가신 후 교육에 큰 뜻이 없었던 주홍로 선생이 학교를 맡아 운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풀무에 나타난 인물이 홍순명 선생이다. 정승관 선생은 홍순명 선생에 대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고 전했다.

어려운 집안에서 자란 홍순명 선생은 17살에 교사 검정제도에 합격할 만큼 교육에 의지가 있는 분이었고, 군대를 제대한 후 풀무에서 자기 인생을 묻게 된다. 홍순명 선생과 30년간 교장, 교무주임으로 일을 해온 정 선생은 “홍순명 선생은 새로운 것을 접하면 못 참는 성격이다. 어떻게든 그것을 새로 해보려고 하기에 많은 선생님들을 힘들게 했고, 내가 많이 말리기도 했다. 그래서 교사들 사이에서는 홍 선생님에 대한 반발이 심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홍 선생의 열정과 열의는 후에 홍 선생이 교직을 떠난 후 많은 선생님들에게 그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홍 선생님 퇴임 후 교사회의를 하는데 모두가 홍순명 선생님의 열정과 철학을 따라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 정승관 선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77년에 홍성에 내려가 2012년 2월까지 홍성 풀무고등학교에서 재직했다. ⓒ에큐메니안
정승관 선생은 풀무학교에 가서 김교신 선생을 접하면서 그의 철학과 사상 등이 목표가 되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지니고 있는 책이 김교신 선생의 일기라고 밝혔다. 김교신 전집 중 5~7권은 일기로 되어있는데, 신앙인으로서 교육자로서 일반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구구절절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정 선생은 오늘 김교신 선생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이 많았다고 밝히면서, 2008년 풀무학교가 50주년을 맞이하던 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김교신 선생에 대한 글을 발표했던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고 당시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글의 전반적인 내용들은 김교신 선생의 일기 내용, 당시의 제자들이 김교신 선생에 대해 표현하거나 편지를 썼던 글들, 다른 사람에게 김교신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내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 선생은 김교신 선생을 통해 자신이 닮아가고자 하는 것 중에 중요한 것으로 “평교사로서의 삶을 닮고자 했다.”고 고백했다. 또한 “누군가의 삶을 흉내 내는 것을 좋아해서 평생 평교사로 살겠다는 약속도 했었는데 결국은 못 지켰다.”며 어쩔 수 없이 풀무학교 교장을 맡았던 일도 소개했다.

정 선생에 의하면 김교신 선생은 때론 엄격한 교사, 때론 자유로운 교사였다고 한다. 그리고 주일마다 자기 학교 학생들을 집에서 데리고 성경공부를 했었고 서울 근교를 데리고 다니면서 교육을 했었다고 한다. 특히 당시 김교신 선생은 ‘학교 교육을 하며 졸업할 때까지 아이들을 보니 한, 두 아이가 하나님을 알더라. 그러나 내가 가르치는 알짜배기는 주일학교 아이들이더라.’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신앙적 교육을 중시했다는 것도 강조했다.

김교신 선생을 통해 정 선생은 제대로 된 대안 교육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김교신 선생의 교육이다. 아이 한명 한명을 그 아이의 위치까지 깊이 파고들어 제대로 된 인물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라며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를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정승관 선생은 “풀무학교는 김교신 선생의 생각을 신앙적으로 교육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교사들은 평소 학생들과 생활하면서도 기독교를 직접 가르치려 하기 보다는 상담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주로 대화를 통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도록 한다.”고 전했다.



▲ 강연회에 참가한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 왼쪽)와 양재성 목사(수도권예수살기 대표, 오른쪽). ⓒ에큐메니안




한별 기자 ektlgof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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