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2
“고대 중국의 천하관념은 전지구적 정치 담을 논리 틀”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고대 중국의 천하관념은 전지구적 정치 담을 논리 틀”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고대 중국의 천하관념은 전지구적 정치 담을 논리 틀”
등록 :2005-09-15 19:29수정 :2005-09-16 14:03
천하체계-세계제도 철학 서론
자오팅양(趙汀陽) 지음. 장쑤(江蘇)교육출판사 펴냄. 2005년 4월
세계만 있고 천하가 없어 오늘날 인류가 난세에 빠져 천하 관점에선 타자 없어 새로운 중화주의 묻어나
바깥세상 책읽기
<천하체계>는 160쪽에 지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풍부하다. 자오팅양(44)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연구원이 지난 4월 펴낸 이 책은 고대중국의 ‘천하’ 관념을 현대 국제정치에 접목시켜 ‘제국의 질서’ 대신 ‘천하의 질서’를 대안논리로 제시함으로써 중국 안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전통 논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능력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현대 중국의 지식인들이 중국의 전통과 현대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는 점이 더욱 흥미롭다.
<천하체계>는 지은이가 2002년 인도 보아와 2003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천하’ 체계와 관련된 두 편의 논문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왜 중국의 세계관을 토론해야 하는가’란 제목의 서론을 덧붙였다.
지은이는 오늘날 인류가 ‘난세’에 처한 까닭이 “‘세계’는 있지만 ‘천하’가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서방에서 발전해온 국제정치는 국가와 민족을 중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 정점과 귀결에는 ‘제국’이 놓여 있다. 그러나 고대 중국의 철인들은 제국의 패권을 다툴 때도 ‘천하를 얻어야 한다’는 사상을 발전시켰다. ‘천하를 얻는 일’은 패권 추구 대신 ‘민심’을 얻는 일이며, 이를 통해 하늘의 지지를 구하는 길이다.
지은이는 “전지구화 시기를 맞아 경제의 전지구화는 가속화하고 있지만 ‘전지구적 정치’ 문제는 뒷전에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민족과 국가의 틀에서만 정치를 보아온 서방에서는 이 새로운 ‘전지구적 정치’를 감당할 틀을 제시할 능력이 없으며, 중국의 ‘천하’ 관념이야말로 전지구화 시대 새로운 정치역학을 소화할 수 있는 논리틀이다.
‘천하’ 관념의 가장 큰 특징은 “바깥이 없다”는 점이다. ‘천하’란 특정 제왕이 지배하는 영토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인간세계 전체를 가리키기 때문에 천하 바깥에는 다른 세계가 없다. 천하에 바깥이 없기 때문에 천하의 관점에 선 이들은 어떤 ‘타자’도 거절하지 않는다. 타자를 정복 또는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 제국주의나 민족주의와 달리, ‘천하의 논리’에서는 어떤 타자도 ‘천하’의 동반자이자 참여자다.
천하의 논리는 관용의 정신과도 다르다. 관용은 서방의 논리다. 천하의 논리는 대승의 관점에서 타자를 혐오하지 않는다. 서방의 관용정신은 비록 이단과 적과 타자를 혐오하지만 이를 참는 것인데 비해, ‘천하의 논리’가 추구하는 세계질서는 “적을 벗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 때문에 천하의 질서 아래서는 ‘이단’이나 ‘적대적인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지은이의 ‘천하체계’는 ‘중국위협론’에 대한 세련된 대응논리라는 평을 얻고 있다. ‘천하’ 논리의 규명을 통해 지은이는 중국이 ‘제국의 패권’을 추구하는 대신 ‘천하’의 논리를 실천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서론에서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아직 ‘지식생산 대국’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천하’ 사상과 같은 전통 세계관의 창조적 해석에 착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만약 중국의 지식체계가 세계 지식체계의 건설에 참여할 수 없다면 거대한 경제규모와 물질생산 대국이란 이름을 얻을지라도 작은 나라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발언은 ‘천하’를 논하는 지은이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건 ‘대국’을 추구하는 강렬한 민족주의임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지은이는 서론에서 현대 중국인의 중국 연구 경향을 ‘중국 성토론’와 ‘중국 재발견론’ 등 두 가지로 나눈다. 루쉰이 대표하는 ‘중국 성토론’은 전통 중국의 몽매성에 대한 ‘철저한 비판’에 주력했으나, 지은이가 보기에 이런 ‘철저한 비판’은 중국을 아무런 희망이 없는 땅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을 뿐이다.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중국 재발견론’은 량수밍을 대표로 하는 신유가, 리저후이를 대표로 하는 ‘서체중용’론자 등 다양하게 발전해왔으나 전반적인 기조는 중국 전통에 대한 대긍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은이 또한 이 흐름에 서 있음은 물론이다.
<천하체계>는 중국 전통논리를 현대적·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중국 지식인의 고투와 더불어, 이 새로운 ‘운동’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새로운 중화주의’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풍요로운 저작이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4801.html#csidx1b599944ce1f1869aa630b0926fc3c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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