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우리 사회, 남 고통 이해하는 감수성 없어" | Daum 뉴스
김훈 "우리 사회, 남 고통 이해하는 감수성 없어"입력 2019.06.01. 20:26 수정 2019.06.01. 21:02 댓글 132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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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향한 연민·경외심·고통 동감 상실하고 천박한 잔재주 세계로 왔다"
'백두대간캠프'서 공격적 세태 비판.."악다구니·쌍소리·욕지거리가 우리 특징"
(안동=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김훈 작가는 1일 우리 사회 현 세태에 대해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 너무 없고, 남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너무 없다"고 일갈했다.
김 작가는 이날 경상북도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에서 열린 '제1회 백두대간 인문캠프' 특강에서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석주 이상룡 선생과 같은 유림의 리더들이 확립한 전통이 우리 사회 윤리와 정신을 바르게 지켜왔음을 설명하면서 이같이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마을에서 수백 년 쌓은 전통이 없다"면서 "남과 거리를 유지하고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 전혀 없다"고 거듭 말했다.
특히 "우리가 전통이 가르쳐준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나 인간에 대한 연민, 남의 고통에 동감하는 감수성을 상실하고, 천박하고 단명한 잔재주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우리 사회 특징은 악다구니, 쌍소리, 욕지거리"라며 "이걸로 날이 지고 샌다. 몇 년째 난리 치고 있다. 욕지거리 거짓말로. 하루도 안 빼고 매일 욕을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쓸데없는 소리를 너무 많이 한다"면서 "작년 여름 얼마나 더웠나. 영상 40도에 다들 더워서 허덕허덕하는데, 어떤 정치인에게 점이 있느냐, 점을 염색했느냐, 뺐느냐 하며 내내 TV에서 지지고 볶고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세상에 어떻게 이런 나라가 있을 수 있나 싶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여름 내내 했다. 지금도 점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면서 "이런 어수선하고 천박한 세상이 돼버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 점을 가지고 떠들 때도 봤더니 사람들이 혓바닥을 너무 빨리 놀린다. 그 혀가 생각을 경유해서 놀리는 게 아니라 온갖 상소리, 욕지거리, 거짓말"이라며 "나한테 침 뱉으면 너한테 가래침 뱉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훈 작가, 백두대간캠프 특강
김 작가는 안동 유림 문화와 같은 보수적 전통에서도 미래 지향적 힘이 있다고 했다.
그는 "전통의 힘, 보수적인 것의 힘 안에도 우리 미래를 열어젖힐 수 있는 힘의 바탕이 있다"면서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그 전통적인 힘의 바탕을 근대화 동력에 연결하는 일에 매우 소홀했거나 등한시했거나 접목하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는 혼란 속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했다.
김 작가는 우리 사회 특유의 즉물적이고 물질적인 관행을 벗어나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한 곳을 오래 바라보는 능력이 없다. 서애 선생처럼 몇 달 동안 고요히 앉아 글 쓰고 생각하는 능력을 (우리는) 상실했다"면서 "새가 알을 품듯 몇 달 기다리고 조용히 앉아있는 성품을 완전히 상실했다. 천박한 잔재주의 세계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서로 뜨려고 하는 세상이 됐다. 뜬다는 말이 아주 천박하고 더럽다"면서 "이런 오래된 마을이 수백 년간 함양해온 덕성과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다. 이런 덕성과 가치를 현대에 어떻게 접목할지에 대해 아무 대책이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러한 세태를 바로잡을 해법으로 "일상생활을 바로 유지하는 게 하나의 답이 되지 않을까"라며 "말을 바르게 하고 말을 너무 빨리 하지 말고, 남의 말을 듣고, 히어링(hearing) 능력을 길러야겠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그는 "내가 죽으면 굉장히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남들이 기억해줬으면 한다"면서 "글 잘 쓰고 나발이고 필요 없고, '그 사람 참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라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는 친절"이라고 말했다.
안동 방문한 김훈 작가
경북도청과 안동시청 등아 후원해 '비스듬히 외면한 존재의 품격'을 주제로 열린 이 날 행사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 권영세 안동시장, 김성조 경북관광공사 사장과 전국에서 온 김훈 작가 팬과 주민 등 700여명이 참석했다.
김 작가는 이철우 지사와도 공개 대담을 했다.
김 작가는 "안동은 엄청난 스토리가 있는데 텔링(telling)을 하지 못한다. 텔러(teller)를 길러야 한다. 배우나 이야기꾼이 캐릭터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얘기해줘야 하는데 그런 점이 아쉽다"면서 "갑질, 흙수저·금수저, 양극화, 국회에서 욕지거리 하는 것들, 이런 걸 하회탈 놀이에 넣어서 하면 얼마나 재미있겠느냐"고 말했다.
이 지사는 안동 스토리 텔링에 대해 조언을 구했고, 김 작가는 "도지사는 정책만 세우고 재능있는 젊은이를 발굴해야 한다"면서 "우리 같은 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하면 망친다. 젊은이들이 스스로 얘기하도록 하면 저절로 텔링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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