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1

동무생각 김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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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rd1tSponsohreld ·



이번에 창간된 <문학인> 잡지에 산문을 싣는 가문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알라딘에 주문하면 3월 3일에 도착한다고 나오던데 넉넉하게 잡은 날짜고. 담주면 도착할 거라네요!^^
발행인 Sung-mo Park샘의 허락을 득하야 전문을 이 곳에 옮겨봅니다.
읽다가 지겨우시면 스킵스킵!^^
**********
동무생각
김희숙
1.
발단은 호치민이었다. 페이스북에 영어로 올라온 호치민 이야기를 캡처해두었다가 전화로 새해 인사를 하는 친구에게 번역하면서 읽어준 게 시작이었다. 딱히 서로 용건이 있는 건 아니어서 그리 되었지만, 워낙 호치민을 좋아하던 친구이기도 했다.
내가 읽어준 글은 호치민 자신이 처음 레닌주의자가 된 배경을 설명한 1960년의 「나는 어떻게 레닌주의로 나아갔는가(The Path Which Led Me To Leninism)」였다.
"1차 대전 후 나는 파리 사진관에서 사진 리터치 작업을 하거나 ‘중국골동품(프랑스제인 중국골동품!)’에 그림을 그려 넣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베트남에서 저지르는 범죄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이렇게 시작하는 호치민의 글을 우리말로 대강 옮겨가며 읽어주는데 '컴레이드(comrade)'라는 단어가 나왔다.

"내가 프랑스 사회당에 가입한 이유는 이 “신사숙녀들”, 그때는 나의 동무들(comrades)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내게 공감해주었고 핍박받는 여러 민족의 투쟁에 공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당이 뭔지 노동조합이 뭔지 전혀 몰랐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뭔지도 몰랐다."

10월 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당 지구당 모임에 처음 나간 호치민은 당원들의 열띤 토론을 보게 된다. 레닌의 3차 인터내셔널에 참여할 것인가, 다른 나라의 사회주의자들과 따로 2.5차 인터내셔널을 새롭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2차 인터내셔널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호치민은 이들의 논쟁에 귀를 기울여보지만 그게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왜 중요한 토론거리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고민 끝에 그는 손을 들고 가장 알고 싶었던 질문을 던진다. 이 중에서 어떤 인터내셔널이 식민지 피지배 민족의 편입니까?

"몇몇 동무들(comrades)이 그건 3차 인터내셔널이지, 2차 인터내셔널은 아니라고 답변해주었다. 어떤 동무는 내게 ‘루마니떼 출판사’에서 출간된 레닌의 『민족과 식민지 문제에 관한 테제』를 읽어보라고 건네주기도 했다."

프랑스어로 된 정치용어들이 낯설었지만, 호치민은 좁은 자신의 방에서 읽고 또 읽는다. 그러다 레닌의 노선이야말로 전 세계 식민지 피지배민족의 해방을 도울 노선이라고 확신하게 된 호치민은 자신이 속한 지구당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지구당 회합에도 일일이 찾아다닌다.

“내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프랑스어 어휘가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닌주의와 제3인터내셔널에 대한 공격을 단호하게 받아치면서 열렬하게 토론한다. 그는 모든 자리에서 단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여러분이 만약 식민주의를 규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식민지의 피지배민족 편에 서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혁명은 대체 어떤 혁명이란 말입니까?”

2.
전화로는 제법 길었는데 친구는 ‘과연!’, ‘야, 멋지다!’, ‘그러니까 우리 독립 운동가들도 레닌 만나러 모스끄바까지 가고 그랬던 거겠지?’하고 감탄하면서 들어주었다.
물론, 지금 우리가 레닌과 3차 인터내셔널에 대해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러했다는 호치민의 마음을 서로 공감했을 뿐이다.

번역이 끝나자 친구는 잠시 침묵하다가 깜빡 잊었다는 듯이 덧붙였다.
-참, 아까 말이야, 네가 동무라고 번역했는데.
-응
-‘동지’나 좀 다른 단어로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동무’라고 하면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질 텐데.
-아,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이 번역을 발표할 일은 아마 없을 거야. 베트남 전공도 아니고 호치민 전공도 아닌데, 뭘.
컴레이드(comrade)를 내가 ‘동무’라고 번역한 게 친구는 꽤 거슬렸나보다. 설령, 동무가 원래는 ‘친구’라는 의미의 순 우리말이고 여러 동요나 가곡의 가사에도 나오고 분단 이전에는 누구나 사용했다는 걸 알고 있다 해도 말이다.
문득, 사회주의자들의 호칭이었던 컴레이드(comrade)를 한자문화권의 다른 나라에서는 무엇이라 부르는지 궁금했다.
 
일본과 중국, 베트남 모두 예상대로 ‘동지’였다. ‘도오시’, ‘퉁스/퉁즈’, ‘동치’.
 
공산당이 건재한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당원들만의 공식 호칭으로 ‘동지’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개혁개방 이후 일반인들 사이에서 ‘동지’란 호칭은 사라졌으나 하노이에 가면 옛 향수에 젖은 노인 분이 ‘동치’라고 호칭하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다.

또한, 식민지시대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일기나 편지를 보면 꼭 사회주의 계열에서만 ‘동지’라고 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중도파나 우파 쪽 인사들도 서로를 ‘동지’라 불렀고,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정당이건 진보정당이건 모두 ‘당원동지 여러분’이라고 한다.
일본 역시 공산당만이 아니라 다른 정당들과 우익단체에서도 ‘동지’라는 호칭을 쓰는 경우가 있다하니, 다당제인 한국과 일본에서는 정치적 결사를 같이 하는 사람들 간의 호칭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북녘은 특이하게도 베트남이나 중국, 일본에는 없는 ‘동무’라는 호칭이 있다.

1925년 조선공산당에서 ‘동지’라는 한자어를 쓰기 시작했고, 해방 전후 북녘에서 ‘동무’라는 호칭을 함께 쓰다가 60년대 중반 이후 동료나 아랫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는 ‘동무’, 윗사람을 부르거나 공식 직책을 가진 사람을 호칭할 때는 ‘동지’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한편, 북에서 우리 남녘 사람들을 부를 때는 ‘동지’도 아니고 ‘동무’도 아닌 ‘선생’이라고 하니 가까워질 듯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 남북관계와 상당히 어울려 보인다.

그렇다면 소련은 어떠했을까? 러시아어로는 ‘깜라드’와 ‘따바리쉬’가 있었다. ‘깜라드’는 서구의 컴레이드(comrade)를 그대로 차용한 호칭이고 ‘따바리쉬’는 러시아어다.
혁명 이후 ‘따바리쉬’라는 러시아어 호칭이 자리 잡는데, 중국과 일본의 러시아어사전을 보면 ‘따바리쉬’의 뜻풀이는 모두 ‘동지’로 나온다.
그런데 『조로대사전』에서 ‘따바리쉬’는 ‘동무’이거나 ‘동지’다. 북녘에서는 ‘따바리쉬’의 번역어에 ‘동무’를 추가한 셈이다. ‘동지’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일까.
3.
1989년이니 쏘비에뜨 연방이 해체되기 전에 모스끄바에 갈 기회가 있었던 선배의 이야기다.
거리에서 어떤 나이 지긋한 어르신에게 주소를 보여주며 길을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분이 자기를 따라오라면서 전철을 타고 어느 역에서 같이 내리자 하셨단다.
그 밖에도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선배의 노어가 시원찮다 보니 알아들은 말이 몇 문장 없었다.
같이 내린 역은 환승역이었는데 갑자기 플랫폼에 선 어르신이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따바리쉬!,
-여기 남한에서 온 이 따바리쉬가 어디를 가려고 하는데 혹시 이 방향으로 같이 가줄 따바리쉬가 여기 있겠습니까?
대략 이런 뜻으로 짐작했는데, 넓은 역사 저 쪽에서 어떤 남자분이 자신이 함께 가주겠다고 손을 들었단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했던 것은 물론이다.
선배가 나와 친구들을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 했던 1994년의 모스끄바는 이미 쏘비에뜨가 해체되었던 터라 누구도 서로를 ‘따바리쉬’라고 부르지 않았고 심지어 그 단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몇 년 앞서 겪었던 독특한 소련의 분위기를 어떻게든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선배는 만날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따바리쉬’라고 하면, 낯선 남한 청년을 데리고 지하방공호처럼 깊고 궁전처럼 화려한 장식을 한 모스끄바 어느 환승역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동무들, 이 이방의 동무를 도와주시지 않겠소, 하고 외치던 할아버지가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그 느낌을 그냥 ‘동지’라고 번역해버리면 어딘가 아쉽다. 길가다 만난 외국인, 그것도 한때 적국이었던 나라에서 온 외국인에게, 또는 전철역사에 있는 낯선 타인들을 호칭하면서 무턱대고 ‘동지’라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여기에는 어쩐지 사회주의의 이상을 향해 함께 가는 동지 따바리쉬에 지구별에서 함께 사는 인생의 길동무 따바리쉬까지 섞여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동지’라는 말이 있음에도 굳이 ‘동무’라는 말을 더하지 않았을까 싶다.
4.
‘동지’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면, ‘동무’는 뜻이 완전히 같지 않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넓게 아우르는 느낌이 든다.
『조로대사전』의 <동무> 항목에는 ‘길동무’, ‘동무 몰래 량식낸다’, ‘동무 따라 강남 간다’가 용례로 들어있고 ‘동무하다’라는 동사형이 ‘함께 일하다’, ‘함께 공부하다’의 의미로 나온다.
 
북녘에서는 평소 윗사람을 ‘동무’라 하면 혼쭐이 나지만 사상투쟁이나 생활총화를 할 때는 모두 서로 ‘동무’라고 부른다는 어느 새터민의 증언도 흥미롭다. 확실히 ‘동무’는 어쩐지 좀 더 평등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느낌이 있는 것이다.
 
물론, 같은 사전에 <친구>란 항목이 있고 러시아어 ‘드루그’, ‘빠드루가’가 해당어로 나오며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용례도 들어 있다. 그러니 북에서 ‘동무’는 ‘친구’를 삭제하고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라 ‘친구’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호치민과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관계를 굳이 ‘동무’라고 옮기면서 나는 ‘동지’와는 조금 다른 마음을 보태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관 리터처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작고 마른 베트남 청년이 프랑스 신사숙녀들이 모여 있는 지구당사에 와서 물었다. 우리 베트남인민이 프랑스에서 해방되려면 어떤 노선으로 가야합니까?
그러자 누군가 레닌의 책을 읽어보라고 건네준다. 다음 회합에 나온 그 청년이 서툰 프랑스어로 베트남이 왜 해방되어야 하는지 절절하게 호소하자 누군가는 박수를 치며 동조한다.
거기에는 정치적 ‘동지’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좀 더 친근하고 따뜻한 공감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더욱 ‘동무’라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사어(死語)가 되어 누구도 쓰지 않는 말로 번역하고 싶었다.
물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긴 했다.
2020년 들어 유난하게 친구는 외교, 과거사, 노동, 고위직 인사 개개인에 대한 평가 등 세상에서 굵직한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내 의견을 물었다. 말하다 보면 서로 관점이나 판단이 다른 경우가 제법 있었다.
알고 지낸 햇수가 얼마인데 굳이 낯붉힐 일 있나 싶어 일부러 정치 이야기를 안 하기도 하고 더러는 친구의 생각에 대충 맞춰주기도 했다. 나로서는 지금의 내 판단이 10년 후에도 과연 옳은 판단일지 확신하기 어려워 말을 아꼈지만, 친구로서는 얼른 동의해주지 않는 것이 못내 서운했을 지도 모른다.
‘동지’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일진대, 뜻이 달라지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살다보면 처음의 뜻이 달라질 수도 있고 하나였던 뜻이 여러 가지가 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동지와 동지가 아닌 관계로 매번 선을 그어야 한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와 함께 하며 공감할 수 있을까.
아마 그래서도 나는 호치민의 글을 굳이 ‘동무’라고 옮기고 싶었나보다.
5.
처음 ‘따바리쉬’라는 러시아어를 ‘동무’라고 옮겼을 누군가를 떠올려본다.
그 옛날, 과거 준비를 시작하는 도령들이나 오성과 한음 같은 양반들은 ‘관포지교’나 ‘지음’, 그 밖에도 서로를 부를 수 있는 멋진 한자어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자를 사용하지 않았을 농민이나 상인, 대장장이나 광대들, 천민계급의 아이들은 더러운 옷을 입고 들판을 뛰어다니고 참외서리를 하고 명절이면 모처럼 새로 맨 댕기머리에 어린 동생을 업고 다니면서 서로를 뭐라고 불렀을까.
또래끼리 어울려 소풀을 뜯기거나 지게를 진 작은 몸으로 어른들의 고된 노동을 나눠하다 산길에서 만나면 서로를 뭐라고 여겼을까.
‘따바리쉬’를 번역한 첫 조선인은 바로 그런 ‘동무’를 ‘따바리쉬’의 어딘가에 포개어놓았던 게 아닐까.
어쩌면 그가 생각한 동무는 혁명 이후에도 <밀고하지 아니하며 숙청하지 아니하며 배신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행치 아니해야> 하는 관계였을 것이다.
동무는 <모든 것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봐주면서 변치 않아야> 했을 것이다.
가족과 친지와 친구를 넘어서서 함께 세상을 바꾸자고 손잡은 ‘따바리쉬’들을 꿈꾸며, 뜻이 좀 달라도 넉넉하게 손을 잡는 ‘동무’를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물론, 남녘도 북녘도 그런 ‘동무’는 존재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나는 친구에게 새해를 맞아 ‘동무’라는 말을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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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이 글을 쓰면서
1. 우리말에서 동무와 동지를 구분한 건 어쩌면 쑨원이 ‘동지’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회주의자들끼리 comrade를 쓰는 서구와 다르게 동북아시아에서는 중도파나 우파까지도 정치결사가 같은 사람들끼리 ‘동지’라는 말을 쓰게 되어
북녘에서는 좀 더 사회주의적 동지관계를 구별하고 강조하려고 ‘동무’를 따로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제 나름의 의문이 있었는데요.
자료도 없고 전공자들도 모르겠다하고. 그래서 더는 무리하지 않았습니다.
장신샘께서 재미있는 가설이니 시간 날 때마다 천천히 자료를 보시다가 우연히라도 맥락을 더 파악하게 되면 언젠가 someday 밝혀보겠다고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앙망합니다.
2. 글에 나오는 탈북자 지인은 북한학대학원 박사인 노혜경샘의 동학 박사십니다. 한 다리 건너 지인이지만, 그냥 어떤 탈북자라고 하기엔 좀 아무나 인용한 거 같아 노쌤의 인맥에 슬쩍 걸쳤습니다.
3. ‘동무생각’은 다들 아시듯 이은상샘이 작사하신 노래죠.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노쌤이 답변주시다가 문득 링크 보내주신 ‘동무생각’ 노래에 착안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샘!^^
4. 북한의 ‘동무’가 ‘동지’와 구별되는 과정을 확인해주신 Donjip Lee 샘께도 감사드립니다.
5. 중국 공산당의 현재 용례를 확인해준 금진방님, 베트남 공산당의 현재 용례를 확인해준 권태두님, 일본의 현재 용례를 확인해준 Seokhee Kim 샘, Takeshi Fujii 샘께 감사드립니다.
6. 끝으로, 김명리샘, 권성우 샘, 오길영 샘. 창간호에 감히 함께 이름을 올릴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이름 링크는 감사인사 보시라고 붙인 건데 낼 오전에 링크 풀게용^^;)
나는 진짜 페이스북 동무들 없으면 어쩔 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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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khee Kim

축하드립니다 희숙 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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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Seokhee Kim 고마와용. 서키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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