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3

드라마가 사회를 앞서갈 때 따라붙는 질문들 - 교수신문

드라마가 사회를 앞서갈 때 따라붙는 질문들 - 교수신문

드라마가 사회를 앞서갈 때 따라붙는 질문들

김효진 서울대 일본연구소 HK조교수
승인 2021.02.1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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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서울대 일본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최근 한국의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것이 성소수자(sexual minority)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다. 일본의 경우, ‘가부키’나 ‘다카라즈카 가극’ 등 예술의 영역에서 다양한 섹슈얼리티가 인정받아 왔고, 최근에는 ‘2020도쿄올림픽’의 핵심 가치로 ‘다양성과 포용’을 내걸면서 지방자치체 차원에서 ‘동성파트너십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일견 ‘성소수자 친화적’인 사회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일본사회에서 성소수자의 가시성은 매우 낮으며,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2018년 후반기에 방영된 지상파 TV드라마 「아재‘s 러브(おっさんずラブ)」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인 팬덤을 만들어내며 큰 인기를 끌었다. 30대 중반 ‘아재’ 주인공 하루타와 그를 둘러싼 남자들, 50대 쿠로사와 부장, 20대 후배 직원 마키 사이 삼각관계를 다룬 러브코미디다.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 지상파에서 배제되어왔던 남성 간의 동성애 서사를 직접적이고 본격적으로 그려냈다는 점, 사회적 현상으로 불릴 만큼 시청자 반응이 뜨거웠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2018년 TV아사히에서 방영된 드라마 「아재‘s 러브」 속 장면. 사진=도라마코리아



‘성소수자 친화적’인 일본?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남성 간 로맨스를 그리면서도 '남성 동성애 서사'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강조하지 않은 덕분에 큰 인기를 얻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제작진과 일반 시청자, 그리고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평가도 일치한다. 실제로 키지마 사리 프로듀서는 “남성 간의 연애라는 자칫 잘못하면 어려운 테마를 소녀만화같은 ‘퓨어한 연애드라마’로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사회적 소수자를 다루고 있는데도 그들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강조하지 않은 이야기에 왜 성소수자 당사자들까지 호응했을까? 이 드라마는 대중매체에서 소수자를 재현할 때 수반되는 다양한 논점을 제기한다.


「아재‘s 러브」의 가장 큰 특징은 일종의 ‘가상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동성애와 이성애가 동등하게 수용되고 존중되는, 즉 현재의 일본보다 ‘조금 더 앞선 세계’다. 드라마의 '히로인'인 50대 부장 쿠로사와는 부하 직원 하루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하루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강지처에게 이혼을 청한다. 한편, 주인공 하루타는 존경해왔던 부장이 자신을 짝사랑한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당혹해하지만, 그의 친구들과 동료들이 그 사실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하루타도 마음을 열게 되고, 이는 이후 직장 후배이자 게이인 마키와 사랑에 빠지는 전개로 이어진다.
「아재‘s 러브」 포스터. 사진=도라마코리아



소수자 판타지가 부여하는 해방감


이런 남성 로맨스를 주인공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게이로서 자신을 정체화하지 않은 하루타와 쿠로사와 또한 ‘동성애혐오(homophobia)’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분명히 실제 일본사회의 현실과 거리가 있다. 이것은 재현의 문제와 연결된다. ‘현실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실제 성소수자 당사자 간에도 의견이 갈린다. ‘동조압력’이 강한 일본 사회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운 성소수자들의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면, 동성애자를 묘사하는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비극이 되기 쉽다.


사회적으로 스스로를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들에게 ‘비극적 현실을 재차 묘사해 보여주는 일이 과연 윤리적인가’, ‘이 반복적인 묘사가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아재‘s 러브」에 대해 성소수자들은 호평했다. 비록 현실을 앞서간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주류 매스미디어에서 자신들의 성정체성이 수용되고,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이 그 자체로 해방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성소수자 시청자들에 이입 창구가 된 것은 게이 캐릭터 마키를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된 성소수자 차별과 동조압력이 팽배한 일본의 사회상이었다. 이에 대한 논의가 제작진이나 주류 시청자 사이에서는 생략되거나 배제된 채 ‘사랑의 순수함과 진정성’을 강조하는 주제로만 수렴되고 있다는 점은 주의해서 살펴야 하는 부분이다.







김효진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HK조교수
하버드대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타쿠 문화’를 중심으로 한 현대 일본대중문화 및 젠더 정치학, 한일문화교류를 연구하고 있다. 『원본없는 판타지: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공저, 2020)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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