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 <생명평화>와 <생명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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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도 관심 거리인 질문입니다. 그런데 “생명평화”라는 말에는 아무래도 “평화”보다는 “생명”이 중요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건 소위 “한국의 생명사상 전통”이란 개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 전통은 수운-해월-함석헌-김지하-한살림, 등으로 흐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생명평화”의 “평화” 부분의 역활이 뭔가 궁금합니다. 도법스님은 “평화”는 자주 “상생”과 같이 쓰시는 것을 봅니다.
Sunghwan Jo
dost23oc cSFeptulooSberuanry dtslor20e1dd9f ·
[개벽일지 2019.02.23]
최근에 우연히 <생명평화>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이 말이 한국사회에서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지 검색해 본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전쟁경험이 있어서 '평화'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평화학'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도 10년 전의 일본에서이다), 중국에서는 도교사상 등의 영향으로 '생명'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일본이든 중국이든 '생명평화'라는 식으로 붙여서 말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물론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이 말을 쓰고 있는 것 같지만-).
반면에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종교, 모든 영역에서 이 말이 일상어처럼 쓰이고 있다. 특히 2011년에는 진보적 기독교 진영에서 생명평화 담론이 급증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조사해 본 바로는 이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은 도법 스님인 것 같다. 2001년부터 쓰기 시작해서 "생명평화탁발순례"로 본격적으로 정착되었다.
생명과 평화를 붙여서 사용한 데에는 한국인의 사상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장일순의 한살림철학도 한만디로 말하면 생명평화사상이다. <생명평화>라는 개념에는 '평화'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명이 실현된 '살림'의 상태를 말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한반도에서 일어난 개벽운동의 핵심사상은 지금으로 말하면 '생명평화'에 다름 아니다. 지난 촛불혁명도 이런 생명평화사상이 시민사회에 스며들어 비폭력혁명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개벽포럼>의 오프닝을 도법스님께 부탁드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갑작스런 부탁에 흔쾌히 응해주신 도법스님과, 중간에서 연결해주신 수지행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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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수경스님과 걷다]생명평화 탁발순례 동행기(6)
지리산은 국내 생태민주주의의 발원지를 넘어 21세기 생명평화운동의 메카로 발돋움하고 있다. 생명평화 탁...
[도법·수경스님과 걷다]생명평화 탁발순례 동행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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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4.04.08 19:05인쇄글자 작게글자 크게
지리산은 국내 생태민주주의의 발원지를 넘어 21세기 생명평화운동의 메카로 발돋움하고 있다. 생명평화 탁발순례가 이곳에서 시작된 것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실상사와 도법·수경 스님 역시 지리산과의 인연에 닿아 있다. 왜 지리산인가. 그 연원은 3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범종교계는 2001년 2월16일 ‘좌우익 희생자와 뭇생명의 해원상생을 위한 100일 기도’를 시작한다. 이 기도는 그 해 5월26일 지리산 달궁에 5,000여명이 모여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를 올린 것을 계기로 ‘생명평화 민족화해 평화통일 지리산 1,000일 기도’로 확대된다. 당시 대표 기도를 올린 사람이 실상사 주지였던 도법 스님이다. 그는 하루에 4번씩 1,000일간 기도를 올렸다.
2002년 5월25일에는 ‘지리산생명연대’가, 2003년 8월3일에는 ‘지리산 평화결사 추진위원회’가 각각 발족된다. 1,000일 기도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 2003년 11월15일에는 이번 탁발순례를 주최한 ‘지리산 생명평화결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리산 위령제’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리산살리기운동’과 대면하게 된다. 이 운동은 현대사의 아픔과 질곡의 상징인 지리산의 생태적·민족사적 가치를 바로 보게 되는 본격적인 단초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지리산을 통해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는 길이 화해와 용서이며 이해와 배려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 가르침은 21세기 생명평화의 패러다임으로 자연과 인간,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나라와 나라의 문제를 바라보게 하는 데 이른다.
도법·수경 스님은 각자 탁발순례에 앞서 1,000일 기도와 새만금 삼보일배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이들은 그간의 생명평화운동에 대한 반성과 모색, 그리고 확대재생산이라는 공동의 화두를 짊어지고 끙끙대고 있던 터다.
지역환경공동체운동의 발전소 역할을 해오고 있던 실상사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선불교의 핵심 도량인 실상사는 최근 작은학교, 생명문화교육원, 지역생태농업센터 등을 잇달아 개설해 세상 일에 깊숙이 참여한다. 실상사는 지리산 권역의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를 연대해내면서 ‘실상사공동체’의 큰 형님 역할을 떠맡고 있다.
지리산, 도법·수경 스님, 실상사 이들 삼위일체가 길을 걷고, 길에서 얻으며, 희망의 길을 내는 탁발순례까지 밀고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순례가 그간 지리산을 중심으로 일었던 지역환경운동의 도저(到底)한 확장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탁발순례 37일째인 4월5일 아침 순례단은 함양군 함양읍을 출발해 휴천면의 1001번 도로를 따라 산자락 고갯길을 뚜벅뚜벅 오르고 있었다. 날씨는 화창했다. 엇그제 지리산 골곡에 눈발까지 뿌리던 꽃샘추위는 자취를 감춘 듯했다.
이날 순례단은 여느 때와는 사뭇 달랐다. 식목일을 맞아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부설 불교귀농학교 학생 50여명이 동참했다. 60명이 넘는 무리는 순례단 출발 이래 가장 많은 규모이다.
경기도 등지에서 가족 단위로 온 이들은 지리산과 걷기를 통해 자연과 농촌을 배우려 했다. 이들은 지역귀농자로부터 귀농체험을 듣고 전통염색도 한다. 이 공동체 역시 순례단을 이끄는 도법 스님이 상임대표로 있는 만큼 환경운동과 생면부지는 아닌 셈이다.
이날 순례 무리는 부모를 따라나선 귀농학교 아이들의 재잘거림 때문에 더욱 풍성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인지라 “걸으니깐 어때. 힘들지 않아” 등의 질문에 “아저씨, 얼마나 가야 돼요. 점심은 언제 먹어요”라고 묻는 등 연방 딴청이다. 스님은 그런 정경에 빙그레 웃기만 하고 무념으로 앞길을 선다.
순례단 출발 이후 줄곧 지팡이를 들고 도법 스님 뒤에서 걷던 수경 스님이 이날은 보이질 않았다. 이원규 시인은 수경 스님이 쌀쌀한 날씨속에 몸살이 걸린 데다 무릎도 시큰거려 전날 함양읍에서 병원에 갔다고 말했다. 이원규 시인은 “오늘 저녁에는 합류하신다고 하니 걱정 말라”고 했다. 수경 스님은 삼보일배 때 다친 무릎 수술을 연기한 채 순례에 나선 터여서 주위에서 걱정이 많았다.
처음부터 순례단을 동행하고 있는 박남준 시인은 “수경 스님이 빠진 자리가 허전해 순례 재미가 반은 없어졌다”고 걱정했다. 도법 스님은 “(수경 스님을) 30여년을 알고 지내지만 그리 아픈 것은 처음이야”라며 이네 말을 닫았다. 재차 “길동무가 없어 적조하시지요”라고 묻자 “아니야. 그런 경지는 진작 넘어섰어”라며 웃고 만다.
도법과 수경 스님은 종교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적으로도 30여년 도반이다. 두 스님을 아는 사람들은 이들이 전생에 부부였을 것이라고 한다. 두 도반이 이심전심으로 어깨동무하고 3년여 산하를 훑자고 다짐한 것도 이런 인연이 작용한 것이리라.
순례단은 휴천면 고갯길을 내려서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을 탁발했다. 점심에 앞서 이날 무리에 처음 참여한 양재성 함양제일교회 목사(42·지리산생명연대 상임대표)가 인사말을 했다.
양목사는 “생명을 죽이는 죽임의 세력과 맞서는 힘이 평화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순례길이 우리 심성속에 잠들어 있던,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의 역사와 돌아섬(전환)의 역사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되기를 그는 간구했다.
이번 순례의 특징 중 하나는 종교의 벽을 넘어선 순례문화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도법 스님은 지난 4일 함양읍에 있는 함양성당에서 신자 200여명에게 생명평화에 대해 강론했다. 이미 함양 등 지리산 일대에서는 종교적 넘나듦과 소통이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당에서 보리비빔밥 점심공양을 받은 순례단은 이날 저녁 함양제일교회에서 먹거리와 잠자리를 탁발했다. 양목사는 “길을 걷는 사람은 실해야 한다”며 메기탕을 내놓았다.
저녁을 먹은 뒤 교회에서는 지리산권역의 환경문제에 대한 토론회가 밤늦게까지 있었다. 함양시민연대, 지리산생명연대, 섬진강과 지리산사람들, 다음카페 지리산동호회, 함양옥동교회 등이 참여했다. 도법 스님이 “지리산 일대 지역이 환경생태학적 측면에서 대안적 삶에 기초한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데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고 자임한 것이 빈말은 아니었다.
도법 스님은 점심을 마친 뒤 귀농학교 학생들에게 생명평화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특히 황폐화되는 농촌문제를 도시민들이 내팽개치면 그 화가 도시와 나라 전체에 미치게 된다고 역설했다.
“밥 김치 된장이 모두 땅에서 나온다. 이것이 망가지는 것을 방관하면 파렴치한에 불과하다. 생명의 안전, 지속, 건강을 지키는 일에 관심과 열정을 쏟아야 한다. 사람의 목숨줄을 지키는 일이 어찌 남의 일이겠는가.” 도시인들은 스님의 말을 듣고 이날 오후 1시쯤 대절한 버스를 타고 귀경길에 올랐다.
함양읍에서 출발해 9㎞ 남짓을 걸은 순례단은 유림면 서주마을까지 4㎞를 내쳐 걸어 이날 오후 5시쯤 걷기를 마감했다. 저녁 탁발은 지리산 칠선계곡 입구의 칠선산장식당에서 있었다. 도법·수경 스님을 존경하던 식당 주인 선시영씨(44)가 공양을 한 것이다. 순례단은 그동안 모두 40여차례 정도 음식과 잠자리 공양을 받았다. 순례단은 먹거리와 잠자리를 제공한 곳에 ‘생명평화의 등’을 선물한다. ‘빈자의 일등(一燈)’이리라.
식당에는 치료를 받고 온 수경 스님이 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여여(如如)했다. “괜찮으시냐”는 물음에 “들것에 실려서라도 순례를 마치겠다고 했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의 말이 밤이 깊을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지리산 계곡 물 소리에 실려오는 듯했다.
◇탁발순례 다음 일정=10일 남원시 아영면-운봉읍/11일 운봉읍-주촌리-안터-주천면 육모정/12일 주천면 육모정-주천면-주천초등학교-수지면/13일 수지면-남창-송동면 신촌-금지면 호산마을-주생면 주생초등학교/14일 주생초등학교-만인의총
문의:지리산 생명평화결사 (063)636-1950 www.lifepeace.org
〈박흥신/지리산 함양/산업부 부장대우〉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404081905261&fbclid=IwAR2jMvFSWZH9ALqPcqhn3irLBAZX9zAg9NH_qp_fHC-8eZTcvfSzX6GpZ30#csidx4915748240e9abc96e623f8d96b0d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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