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비밀 원전? 짓고 싶어도 못 짓는다!
입력2021.02.01. 오전 11:57
[정욱식 칼럼] '진화하는 보수'를 보고 싶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헛웃음이 나온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등 보수 야권이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비밀리에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며 연일 정치 공세를 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들은 "경천동지"니 "이적행위"니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정치적 논쟁을 키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특검과 국정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목청도 높인다.
간단한 팩트체크로 소모적인 논쟁을 수습해야 할 보수언론도 부화뇌동하고 있다. 팩트는 아주 간단하다. 보수진영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재인 정부가 비밀리에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북한은 유엔과 미국의 촘촘한 제재를 받고 있다. 외부에서 주사바늘 하나 들어가는 것도 유엔 제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이다. 핵 관련 기술과 물자 통제는 더욱 엄격하다.
실질적인 대북 제재는 2006년 10월 북한의 최초 핵실험 직후부터 시작되었는데, 핵 관려 기술과 물자는 가장 엄격한 제재 대상으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북한에 핵발전소를 제공하려면 유엔 및 미국의 독자적인 제재도 완전히 해제되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마저도 '충분조건'이 아니다. 제재가 해제되어도 북미 간에 원자력협정이 체결되지 않으면 한국형 원자로를 북한에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과거 경수로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정부는 북미 협상을 한사코 반대했다가 미국의 요구로 40억 달러가 넘는 경수로 사업을 떠안게 되었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는 "한국형 경수로"가 되어야 한다며 이를 관철시켰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한국형 원자로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던 미국이 북한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경수로가 완공되기 전에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휩싸여 있었고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에선 원자력협정을 비롯해 제네바 합의의 미국측 의무 사항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결국 신포에 건설 중이던 경수로는 원자로도 들어가지 못한 채 2006년 종료되고 말았다.북한에 한국형 원전을 건설하려면 북미원자력협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이명박 정부 때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사례를 보면 거듭 확인할 수 있다. UAE는 미국의 수교국이자 사실상의 동맹국이다. 이런 UAE마저도 원전을 수입하려면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해야 했다. 한국이 UAE 원전 수주 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데에는 열흘 전에 미국과 UAE가 체결한 '123 원자력 협정'이 발효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한국이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고 싶어도 거기까지 가는 데에는 산 너머 산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가시권에 들어오거나 완료되어 모든 대북 제재가 풀려야 하고 북미 원자력협정도 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이 이 간단한 팩트조차 무시하고 한 건 잡았다는 식의 정치 공세를 계속 펴는 것이 극히 한심한 까닭이다. 씨름에서도 헛다리를 짚었으면 빨리 다리를 빼는 게 상책이다. 계속 헛다리를 짚으면 되치기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북한에 원전을 비밀리에 지어주려고 했다는 '유령 논쟁'에 휩싸여 있는 사이에 북한은 자체적인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김정은 총비서가 8차 당대회에서 전력 산업의 중추로 "핵동력"은 언급한 것이다.
북한이 밝힌 "핵동력산업"이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과거 건설을 추진했다가 제네바 합의에 따라 중단한 중규모·대규모의 흑연감속로 사업을 재개할 수도 있고, 영변에 건설한 실험용 경수로를 본격 운영하거나 더 큰 규모의 경수로 사업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경로이든 북핵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흑연감속로에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에선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이 용이하다. 경수로 운영 경험은 북한이 당대회에서 추진 계획을 밝힌 핵잠수함 건조의 기술적인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좌초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되살리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보수의 역할도 찾을 수 있다. 국민의힘 전신인 노태우 정권은 북핵 초기 단계에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한미연합훈련인 '팀 스피릿' 중단을 결정했었다. 이는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그리고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 가입의 밑거름이 되었다. 북한이 이들 합의를 모두 어기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유감스러운 행동에는 중단키로 했던 '팀 스피릿' 재개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엄중함은 보수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3월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를 두고 좌고우면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향해 연합훈련 중단을 통해 비핵화 협상 재개를 도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보수 정권이었던 '노태우-조지 H.W 부시'도 결단했던 것을 왜 진보 정권이라는 '문재인-바이든'이 결심하지 못하느냐고 압박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북풍의 유혹'에서 벗어난 '진화하는 보수'를 보고 싶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헛웃음이 나온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등 보수 야권이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비밀리에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며 연일 정치 공세를 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들은 "경천동지"니 "이적행위"니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정치적 논쟁을 키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특검과 국정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목청도 높인다.
간단한 팩트체크로 소모적인 논쟁을 수습해야 할 보수언론도 부화뇌동하고 있다. 팩트는 아주 간단하다. 보수진영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재인 정부가 비밀리에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북한은 유엔과 미국의 촘촘한 제재를 받고 있다. 외부에서 주사바늘 하나 들어가는 것도 유엔 제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이다. 핵 관련 기술과 물자 통제는 더욱 엄격하다.
실질적인 대북 제재는 2006년 10월 북한의 최초 핵실험 직후부터 시작되었는데, 핵 관려 기술과 물자는 가장 엄격한 제재 대상으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북한에 핵발전소를 제공하려면 유엔 및 미국의 독자적인 제재도 완전히 해제되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마저도 '충분조건'이 아니다. 제재가 해제되어도 북미 간에 원자력협정이 체결되지 않으면 한국형 원자로를 북한에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과거 경수로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정부는 북미 협상을 한사코 반대했다가 미국의 요구로 40억 달러가 넘는 경수로 사업을 떠안게 되었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는 "한국형 경수로"가 되어야 한다며 이를 관철시켰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한국형 원자로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던 미국이 북한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경수로가 완공되기 전에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휩싸여 있었고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에선 원자력협정을 비롯해 제네바 합의의 미국측 의무 사항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결국 신포에 건설 중이던 경수로는 원자로도 들어가지 못한 채 2006년 종료되고 말았다.북한에 한국형 원전을 건설하려면 북미원자력협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이명박 정부 때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사례를 보면 거듭 확인할 수 있다. UAE는 미국의 수교국이자 사실상의 동맹국이다. 이런 UAE마저도 원전을 수입하려면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해야 했다. 한국이 UAE 원전 수주 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데에는 열흘 전에 미국과 UAE가 체결한 '123 원자력 협정'이 발효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한국이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고 싶어도 거기까지 가는 데에는 산 너머 산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가시권에 들어오거나 완료되어 모든 대북 제재가 풀려야 하고 북미 원자력협정도 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이 이 간단한 팩트조차 무시하고 한 건 잡았다는 식의 정치 공세를 계속 펴는 것이 극히 한심한 까닭이다. 씨름에서도 헛다리를 짚었으면 빨리 다리를 빼는 게 상책이다. 계속 헛다리를 짚으면 되치기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북한에 원전을 비밀리에 지어주려고 했다는 '유령 논쟁'에 휩싸여 있는 사이에 북한은 자체적인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김정은 총비서가 8차 당대회에서 전력 산업의 중추로 "핵동력"은 언급한 것이다.
북한이 밝힌 "핵동력산업"이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과거 건설을 추진했다가 제네바 합의에 따라 중단한 중규모·대규모의 흑연감속로 사업을 재개할 수도 있고, 영변에 건설한 실험용 경수로를 본격 운영하거나 더 큰 규모의 경수로 사업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경로이든 북핵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흑연감속로에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에선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이 용이하다. 경수로 운영 경험은 북한이 당대회에서 추진 계획을 밝힌 핵잠수함 건조의 기술적인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좌초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되살리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보수의 역할도 찾을 수 있다. 국민의힘 전신인 노태우 정권은 북핵 초기 단계에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한미연합훈련인 '팀 스피릿' 중단을 결정했었다. 이는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그리고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 가입의 밑거름이 되었다. 북한이 이들 합의를 모두 어기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유감스러운 행동에는 중단키로 했던 '팀 스피릿' 재개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엄중함은 보수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3월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를 두고 좌고우면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향해 연합훈련 중단을 통해 비핵화 협상 재개를 도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보수 정권이었던 '노태우-조지 H.W 부시'도 결단했던 것을 왜 진보 정권이라는 '문재인-바이든'이 결심하지 못하느냐고 압박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북풍의 유혹'에서 벗어난 '진화하는 보수'를 보고 싶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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