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비핵지대 돼야" 주장한 바이든...비핵지대의 '역사성'과 '보편성'에 주목
기사입력 2021.01.25.
[정욱식 칼럼] 평화, 다시 시작이다(3)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나는 앞선 글에서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 사이에 차집합이 크지만 교집합을 만들 수 있는 영역도 있다고 분석했다. 단계적 해법과 민생 중시 기조가 바로 그것들이다.
이 두 가지에 기초해 북핵 동결과 제재 완화를 골자로 하는 1단계 합의와 이행이 매우 시급한 과제라는 점도 강조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한미 양국이 조속히 연합훈련 취소 결정을 내려 협상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비핵화에 관한 최종상태에 대한 공론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실 김정은과 트럼프의 협상이 실패한 데에는 비핵화를 하기로 해놓고 이에 대한 정의와 최종 상태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뿐만 아니라 화학무기와 생물무기, 그리고 모든 탄도미사일 및 이중용도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이 비핵화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는 '너무 커서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것(Too big to grasp)'이었다.
반면 북한은 자신만의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의 대북 핵위협의 근원적인 해소"도 요구한다. 그런데 미국이 7000개가 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요구는 '너무 막연해서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것(Too vague to grasp)'이다. 이처럼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간의 동상이몽은 너무나도 크다. 비핵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절실히 요구되는 까닭이다.
바이든의 핵정책은?
바이든 행정부가 재검토에 착수한 북핵 대처 방안은 핵비확산 정책의 일부다. 동시에 한반도 비핵화의 향방은 미국 자신의 핵정책의 방향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이에 따라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관계를 제대로 전망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핵정책 방향을 살펴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이 핵 군비통제를 강력히 옹호해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와 관련해 불안한 요소(차집합)와 유망한 요소(교집합)를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부통령 재직시였던 2010년 2월에 "핵무기 확산은 미국과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라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핵 확산을 저지하고 점진적으로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라고 말했다. 또한 히로시마 원폭 투하 75년째였던 2020년 8월 6일에는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군비통제와 비확산에 관한 미국의 리더십 회복을 글로벌 리더십의 중추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바이든의 핵확산에 대한 위협 인식과 비확산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북핵 문제 대처에 있어서 '불안한 요소'를 품고 있다. 북한의 핵포기를 강제하기 위해 경제 제재와 군사적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중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거나 핵무력 증강이 가시화될 때 바이든 행정부는 강경하게 대응할 공산이 크다.
반면 바이든의 핵무기에 관한 철학과 정책 방향에서 '유망한 요소'도 찾을 수 있다. 타자의 핵무기는 악마화하고 미국의 핵무기는 신성시하는 일방주의적 핵 패권주의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부통령 퇴임 직전인 2017년 1월에 "미국의 비핵 능력과 오늘날 위협의 성격을 고려할 때, 미국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는 시나리오를 상상하기 어렵다"며 핵무기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핵실험 재개 가능성을 시사하자 "위험하고도 무모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이든은 미국의 안보 정책에 있어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것"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바이든의 미국 핵무기에 대한 일부 비판적인 인식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있어서 '유망한 요소'를 품고 있다. 북한에게 일방적인 핵포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위협 감소'의 방식으로 한반도 핵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북한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더라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핵포기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북 핵위협 해소 노력도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제부터 소개할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토론해볼 가치가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30년 전 북한의 제안을 역제안으로
30년 전의 일이다. 북핵 대처가 최대 현안으로 부상하자 한미 양국은 협의에 들어갔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김종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조지 H.W 부시 행정부에선 폴 월포위츠 국방부 차관이 수석대표로 나서 8월 6~7일 하와이에서 협의를 가졌다.
미국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월포위츠는 "북한이 제안해온 비핵무기지대(비핵지대)는 북핵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말했고 김종휘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월포위츠는 "비핵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미국은 왜 비핵지대를 거부하고 비핵화를 제시한 것일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당시 북한의 요구에는 주한미군 철수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한미 양국이 이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다음으로 일반적인 비핵지대 조약에는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 보유를 금지하지 않았던 반면에 미국은 남북한이 이들 시설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아울러 미국은 비핵지대로 갈 경우 미국의 핵전력과 핵전략에도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했던 것 같다.
온고지신의 지혜는 이러한 '역사성'에서 찾을 수 있다. 30년 동안 한 번도 진지하게 검토되지도 협상 테이블에 올라간 적도 없는 비핵지대를 한반도 핵문제의 해법으로 삼으면서 새로운 평화 로드맵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요구와 같이 뺄 것은 빼고(북한도 이미 뺐다),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 보유 금지와 같이 담을 것은 담으면서(이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공론화해보자는 것이다. 30년 전에 한미 양국이 거부했던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창의적으로 되살려 이번에는 북한에 역제안을 해보자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지대는 남북한이 "비핵지대 안" 당사자들로 조약을 체결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5대 공식적인 핵보유국들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비핵지대 밖" 당사자들로 이 조약의 의정서를 체결하는 구도를 일컫는다.
기본적인 내용은 남북한은 핵무기를 개발·생산·보유·실험·접수를 하지 않고,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핵보유국들은 남북한에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가하지 않고 핵무기 및 그 투발수단 배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형태로 보장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이에 동의할지는 불확실하다. 조약 방식으로 미국의 대북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것이고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 체결시 그 의정서를 미국 상원이 비준해줄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핵지대는 미국의 대북 핵위협 해소를 법적 구속력을 갖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방식보다는 우월하다. 또한 미국 상원 비준이 불분명하더라도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해 국제규범화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비핵지대는 북한이 주장해온 "조선반도 비핵화"와도 흡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비핵지대는 김정은 정권에 실질적인 '최대의 압박'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김정은에게 '명예로운 선택'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 창설은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의 유훈을 실현한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핵지대는 하나의 국제규범
시야를 세계로 넓혀보면 비핵지대가 하나의 국제규범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현재 세계 면적의 50%가 넘는 지역이 '비핵무기지대(nuclear weapon free zone)'인데, 여기에는 중남미, 아프리카, 남태평양,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이 속해 있다. 여기에 포함된 국가수도 116개국에 달한다.
비핵지대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담겨 있고, 유엔 군축위원회는 1999년 비핵지대 설치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바 있는데 유엔 총회도 이를 승인했다. 또한 2009년 9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으로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1887호에는 비핵지대에 대한 지지와 환영 입장이 담겼다.
그리고 바이든은 2020년 10월 22일 대선 TV 토론에서 "한반도는 비핵지대가 되어야 한다(The Korean Peninsula should be a nuclear-free zone)"고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이 유엔에서 권고하는 '비핵무기지대'를 염두에 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 지난 10월 22일(현지 시각) 테네시주 내슈빌의 벨몬트대 체육관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후보 TV토론회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상기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한반도 핵문제를 비핵지대로 문제를 풀자는 제안의 근거로는 삼을 법하다. 존재하지도 합의하기도 힘든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 상태를 두고 헤맬 것이 아니라 이미 국제적으로 존재해온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 상태로 삼는 것이 실사구시라는 뜻이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한반도 비핵지대화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자신의 핵전략에 차질을 야기할 수 있는 비핵지대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핵지대는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규범이 되어왔고 미국도 이에 동의했다. 또한 비핵지대 방식은 30년 동안 풀지 못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기에, 바이든 행정부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안보 정책에 있어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바이든의 공약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행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MLBD'와 한반도 비핵평화 로드맵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추구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나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되는 비핵화(FFVD)'가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해졌다.
또한 당사자들이 비핵화를 하기로 합의해놓고 그 최종 상태는 물론이고 정의조차도 합의하지 못해왔다는 것이 협상 실패의 주된 요인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온고지신과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 상태로 삼자는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구체적인 로드맵도 짜볼 수 있다.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 상태로 삼는 것을 '출발점'으로, 비핵지대 조약 체결을 '도착지'로 삼으면서 이 사이에 3단계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아래와 같은 로드맵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향후 협상을 통해 달성해야 할 합의는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합의와 단계적이면서 복합적인 이행'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 출발점: 당사자들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유엔 군축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 기초해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로 삼는데 합의한다. 유엔 안보리는 지지·협력 결의를 채택한다.
- 1단계: 북한은 타국 및 타 기관의 입회하에 모든 핵물질 생산 시설 폐기에 돌입하고 핵무기 생산을 중단한다. 또한 핵시설의 구체적인 내용을 신고하고 핵물질과 핵무기의 총량을 신고한다. 미국은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북미는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 남북미중은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을 개시한다. 남북한은 비핵지대 협상을 개시한다.
- 2단계: 북한은 모든 핵물질을 핵무기 제조가 불가능한 형태로 처리하고 핵무기 제조 시설 폐기 및 일부 핵무기 폐기에 돌입하며 NPT와 IAEA 안전조치협정에 복귀한다. 미국은 대북 제재를 추가적으로 완화하고 북미는 연락사무소를 대표부로 승격한다. 남북미중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남북한은 단계적 군축에 돌입한다.
- 3단계: 북한은 잔여 핵무기 및 핵탄두 장착 미사일을 폐기하고 IAEA 추가 의정서에 가입한다. 미국은 잔여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북미는 양국 관계를 대사급으로 격상한다.
- 종착지: 남북한은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을 체결한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한반도 비핵지대 의정서에 서명하고 유엔 안보리는 한반도 비핵지대 승인 결의를 채택한다.
한반도 비핵지대는 아직 낯선 제안이다. 다른 나라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도 아직 공식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국내외 시민사회와 국회,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먼저 공론화를 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과 소통이 가능한 행위자들은 이 아이디어를 북한에 전달할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도 한미 양국이 비핵지대 방식으로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협의하고 유용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북한과의 소통에 나서야 한다. 이를 통해 '다자적이고 법적 구속력을 갖춘 비핵화(MLBD, Multilateral Legally Binding Denuclearization)'를 공론화해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로 불린다. 비핵화 자체를 둘러싼 동상이몽이 너무나도 크고 이에 따라 제재 해결 등 상응조치들과 선순환적인 로드맵을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여 국제사회에선 이미 익숙한, 그러나 한반도 핵문제 해법으론 낯선 비핵지대를 주목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선 비핵지대가 하나의 '노멀(normal)'이다. 한반도 핵문제 해법으로는 '새로운(new)'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문제 해법의 '뉴 노멀(New normal)'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북핵의 중심지 영변'에 '영변 조약'이라는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에 따른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어떤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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