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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실성검증 문제는 내 전문분야이기도 한데, 도대체 이 기사 내용을 읽어봐도 램자이어 교수 논문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끽해봐야 sloppy work 수준 정도의 문제다.
일단 포주와 위안부간 실물 계약서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 램자이어 교수의 가장 핵심적인 연구부정행위라고 지적들을 하는 모양인데, 기본이 안된 개소리다.
가령, "램자이어 교수가 문제의 논문에서 특정한 계약서를 소개했고 그것을 결정적 증거로서 인용했지만 우리가 출처를 찾아보니 그런 계약서는 없었다", 만약 이런 식의 비판이면 그건 말이 되는 비판이다. 하지만 램자이어 교수가 논문에서 얘기한 것은 "'계약'이 존재했다"는 것이지 "'계약서'가 존재했다"는 것이 아니다. 두 주장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실제 계약서 실물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계약의 존재를 얘기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더구나 여러 간접증거들이 계약서 그 자체의 존재까지도 시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표준양식의 존재 등등).
계약의 존재는 계약서로만 확인되는게 아니다. 가령, 누가 누구와 결혼계약 관계를 맺고 있다면 제3자도 그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수많은 증거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동거, 예물, 자녀 등등.
"결혼증명서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그건 진짜 혼인이 아니다", "나는 인정할 수 없다"고 누가 우격다짐할 수야 있겠지만, 그건 딸을 편애하는 장인어른의 "난 이 결혼 반댈세!" 수준의 꼬장에 불과한 것이다.
계약서가 있네 없네 하는 것은 솔직히 아예 논문을 읽어보지도 않고 하는 소리라고 밖에 달리 들리지 않는다.
프로 학자라는 사람들이 뭔 언론인도 다 눈치챌 수 있는 수준 이하의 반박을 다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평소에 어떤 논문들을 쓰는 인간들인지 한번 조사를 해보고 싶을 정도다.
한편, 램자이어 교수가 블로그 내용을 인용했다고 문제시하는 것도 당최 이해가 안간다.
물론 연구에서는 통상 1차 문헌을 인용하는게 관례긴 하다. 연구자가 1차 문헌까지 접근을 못한 경우는 대략 2차 문헌 정도에서 재인용을 하곤 하는데, 이건 좀 나태한거 아니냐며 그냥 간단한 지적사항 정도 되는 문제에 불과하다.
중요한건 과연 인용이 잘못되어서 혹시라도 1차 문헌과 2차 문헌이 내용이 정반대냐는 것인데, 그게 아니고 2차 문헌 내용도 1차 문헌 내용을 대략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면, "왜 1차 문헌 인용 안했냐, 이건 연구부정행위다"고 하는건 미친소리다.
그리고 해당 내용이 120쪽에 있는데, 실은 240쪽에 있더라, 이러쿵 저러쿵, 이런건 솔직히 맞춤법 위반 수준의 문제다.
전부 sloppy work 이지, academic misconduct 문제가 전혀 아니다. 맞춤법 위반 여러 개 나왔다고 논문 취소되면 세상에 살아남을 논문 많지 않다.
기사 내용 보니까 자기들도 실은 내가 지적한 문제의 답을 다 알고 있구만.
“백번 양보해서 단편적이고 간접적인 증거를 근거로 일부 여성들이 계약 시스템을 통해 고용됐다고 결론 내릴 수는 있다”
“원칙적으로 익명의 블로그를 역사 연구에서 인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내 생각은, 굳이 백번 양보까지 안해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평소에 논문을 어떤 수준으로 잘 써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본인들 논문 검증 당해서 다 철회당하기 싫으면 이딴 생트집은 그만두는게 신상에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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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NAVER.COM
램지어 '위안부=매춘부' 논문 결함 최소 29건…"연구 진실성 심각한 위반" 비판 봇물
[경향신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자발적인 매춘부로 규정한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논문이 핵심 증거 부재, 자료의 오독과 선택적 인용 등 학술 논문으로서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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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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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이_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미진했던 90년대 초부터 대외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계기는 정대협 초기 멤버들이 미국에서 #급진페미니즘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와 페미니즘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왜 #유엔에서 위안부 성폭력 문제를 다룬 #쿠마라스와미_보고서가 나왔으며 #독일_미테구에서 소녀상 설치 반대하다 급기야 다시 설치되는 해프닝이 벌어졌고 #하버드대_렘지어 교수를 둘러싼 논쟁이 이토록 핫 이슈가 되는지..
그건 바로 30년 정대협 운동사를 통해 #해외_한인타운을 중심으로 #반일주의자들과 함께한 #정대협_제2중대가 포진해 있기때문입니다.
다음은 정대협의 간략한 연혁 입니다.…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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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韓國挺身隊問題對策協議會, 이하 #정대협으로 약칭함)는 1988년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해 오던 #37개_여성단체가 연합하여 1990년 11월 16일 결성되었다.
#정대협_활동에서_가장_주목할_것은_아시아_피해국_및_유엔_등_국제기구와의_연대활동이다. 1992년에 조직한 아시아연대회의의 활동, 1991년 9월 한국의 유엔 가입이라는 환경을 활용하여 유엔의 #인권위원회·#인권소위원회·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국제법률가협회·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위원회 등 인권 관련 국제기구와 #세계인권대회·#세계여성대회 등의 국제연대활동 등이 그것이다. 정대협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단순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하의 성폭력 문제의 하나임을 알리고, #세계의_여성단체와_더불어_일본정부를_압박하였다. 이러한 국제적 활동의 결과 유엔 인권위원회와 인권소위원회에서 쿠마라스와미 및 맥두걸 등의 보고서가 제출되고 채택되었다. 또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 등을 개최할 수 있었다.
현황
2000년대 이후 정대협은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건립하고, 국제기구와 각국 여성단체 및 인권단체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이 아니라 분쟁지역하의 여성 성폭력 문제를 알리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등 활동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2015년 12월 28일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들먹이며 피해 생존자 및 유족에 대한 위로금 지불과 '평화의 소녀상' 철거 합의를 주장하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맞서 피해자들과 함께 한일 정부의 졸속 합의 철회 운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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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효
19c tFdgcebSSumrSraplugueatryhn Saftf 2onso0r:05sued ·
[‘위안부 계약’의 증거] 무지의 소치에 대한 언급 / 주익종
“일본정부의 책임이 있죠. 위안소 설치를 요청하고, 그래서 위안소를 만들게 하고, 또 위안소 업주를 선정하고, 위안소 경영을 관리 감독한 일본정부의 책임이 왜 없겠습니까. 있죠. 일본정부가 관여한 책임이 있으니까, 1990년대 초 이래 지금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일본정부가 사과를 해온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는, 업주와 위안부 여성 간 관계가 계약관계라고 하면, 여성은 자발적으로 매춘부가 됐다는 말이냐,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거냐 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죠. 계약은 모집업자와 여성의 호주 친권자 간의 계약이에요. 여성 자신이 자기의 의사로 그렇게 한 게 아닌 거죠. 물론 그런 경우도 있어요. 성년의, 또 완전히 홀로 된 여자의 경우에는 스스로 자기 의사로 위안부가 된 여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나이 어린 10대 후반의 여성이 위안부가 될 때는 그 호주 친권자가 모집업자에게 여성을 자발적으로 넘겨준 거죠. 그 양자가 맺은 계약을 말한 겁니다.
그렇다면 여성에게는 자발적인 게 아니죠. 여성은 자기의 본인 의사가 아닌데도 강제로, 비자발적으로 가게된 거죠. 따라서 위안부 계약설을 주장하는 것은 곧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게 아닙니다. 계약에 의해서 여성이 위안부가 됐더라도 그 해당 여성은 어디까지나 비자발적으로, 강제로 위안부가 된 거죠.
또 하나는, 계약에 의해 한 여성이 위안부가 되었다고 하면, 그 여성이 입은 피해는 포주나 친권자의 책임이고, 일본정부는 면책이 되는 거 아니냐, 일본정부를 이렇게 면책할 수가 있느냐 이런 비난입니다.
그게 아니죠. 여성이 위안부가 되는 데는, 크게 보면 세 주체가 있어요. △일본군 일본정부 △위안소 업주 모집업자 △여성의 부모나 호주 친권자. 이 세 주체가 관여해서 한 명의 위안부를 만들어 냅니다.
일본정부의 책임이 있죠. 위안소 설치를 요청하고, 그래서 위안소를 만들게 하고, 또 위안소 업주를 선정하고, 위안소 경영을 관리 감독한 일본정부의 책임이 왜 없겠습니까. 있죠. 일본정부가 관여한 책임이 있으니까, 1990년대 초 이래 지금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일본정부가 사과를 해온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한 여성이 해외의 위안소에 가서 위안부가 되는 과정을 계약관계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 증거가 분명히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계약관계로 본다고 해서 그 여성이 자발적 매춘부라든가 또 일본정부는 책임이 없다든가 하는 게 아닙니다.
제발 그 무지에서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출처: 유튜브 [이승만TV] ‘위안부 계약’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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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rie Eleison
그런데 저희 할머니 증언으로는, 결혼하지 않은 처녀를 차출해간다는, 유언비어인지 루먼지 사실인지 지금 확인은 안됩니다만. 그 이유로 16살에 일찍 혼인을 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할머니 16살은 19년 생이시니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35년인데 정신대는 아니라하셨습니다. 그럼 그건 무엇이었을까요.
· Reply · 11 h
최덕효
이신영 루머가 돌았죠.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분하지 못한... 해서 조혼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전시 총동원체제라서 그랬을 겁니다.
· Reply · 9 h
In-Heung Hwang
도움 자료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 Reply · 9 h
Henry Bae
정신대는 공장에 일하러간 여성이고, 위안부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 Reply · 11 h
かねだ コトミ
아무리 딸 팔아먹은 부모들이
잘못인 거라고
위안부 할매들은 부모 탓은… See more
· Reply · 2 d
나수열
かねだ コトミ 무지 가난이 문제네요 그리고 전쟁요
조선부모도 브로커도 전쟁도 일본도
이건 책임이 어느쪽이다 묻고싶지않아요..인류역사.어느시점에서 벌어진 일...일본은 전쟁책임지고 사죄.보상을 한 것으로 충분히 됐다고 봅니다
· Reply · 2 d
Dongkyou Kim
일본통치시대 위안부와 현대의 강남 오피녀와의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오늘날은 부모가 딸래미를 팔아먹지 않는다는 거겠지요.
다른 시대를 판단할 때 벌어지는 전형적인 오류입니다. 더구나 이렇게 역사가 비뚤어진 시대에야 오죽할까요.
· Reply · 3 d
나수열
과거 집장촌 여성들의 경우 가난때문에 일단 일을 시작하는 경우 많았지요
그리고 부모들이 딸들이 벌어다주는 돈 받으러 집장촌 앞으로 가기도 하고..또는 송금하기도 했겠지요.
· Reply · 3 d
나수열
강남 성매매여성과 전쟁시 동원체제인 위안부 비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 Reply · 3 d · Edited
신현직
나수열 그래서 보상도 해준거지요.
· Reply · 2 d
かねだ コトミ
저는 강남성매매 여성과 위안부가
똑같다고 봅니다
· Reply · 2 d
나수열
신현직 네 그래서 보상을 해줬지요..
· Reply · 2 d
나수열
かねだ コトミ 속성은 비슷한 면이 있으나.. 강남성매매는 불법화에서 벌어지고 있고 전쟁시가 아닌거라 거의 자발적인면이 많지요..
그러나 위안부는 전시총동원체제하라는 시대적 배경이 다르지요
· Reply ·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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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rie Eleison
무튼 위안부중에 자기 부모에게 팔렸든 속아서 갔든 비자발적인 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른 시대였어도 그런일은 있을 수 있었겠지만 당시는 일본의 필요에 의해 그런 계약관계도 생기게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원천잘못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렇게 넓게 보면 식민시대 모든 이들이 피해자죠. 시대적 아픔은 위안부만 가진게 아닌데도 또 자발적 계약자들도 있었는데 너무 위안부만 강조되는 불편한 현실에, 거짓이 난무를 하니 말입니다. 시대적 아픔 배경에 일본이 있다와 일본의 손으로 납치,인신매매가 자행됐다는 완전히 다른 얘긴데 후자로 알려지고 있으니 문제인거죠.
· Reply · 2 d
나수열
이신영 그쵸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있었던거고..
· Reply · 2 d
나수열
그러게요 위안부 소환은 의미없는데..이 여성주의자들의 사기행각 때문에 한일간 전세계가 엉망진창이 됐네요...ㅠ
· Reply · 2 d
임병학
나의 부친께서도 돈벌러 일본 탄광노동자로 가셨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개월만에 옆구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해 치료후 귀국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끌려 가셨다는 말은 한번도 듣질 못했다.
· Reply · 2 d
임종훈
일본국가가 한반도를 통치하는데 조선인이 어디 있습니까 ? 조선은 망했는데 정확히 조선계일본인이 된거죠 (일본에선 내지인이라 불렀지만)
일제식민지전시책임론이 부각되면 정대협 정의연과 뭐가 다른건가요 ?
· Reply · 3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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