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당 장일순, 물질 만능의 세태를 질타하다
장일순(1928~1994)은 평생 단 한 권의 저술도 남기지 않았다. 언어도단(言語道斷) 곧, 말로는 진리를 표현할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동서양의 종교와 고전에 두루 해박하였고 특히 노자(老子)를 믿고 따랐다. “아는 자는 말을 하지 아니하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노자의 이 말씀 따라서 그는 입을 다문 것이 아니었을까.
당호 ‘무위당(无爲堂)’이 상징하듯, 그는 돈과 명예와 지위를 얻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때인가는 자기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두문불출하고 살다시피 한 사람이다 보니, 뭐라고 붙일 딱지가 없어요.”
실은 일평생 그가 종사한 일이 여럿이었다. 약자를 구하는 일이라면 언제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그였다. 평화와 정의의 세상을 만들고자 그가 노심초사한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났던 재사였다.
장일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려우나, 굳이 말하면 ‘생명사상가’요 20세기 이 땅을 대표하는 ‘양심적 지성’이었다고 말해도 좋겠다. 식자들은 그의 사상을 요약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의 세 가지를 하나로 보았다고 말하곤 한다.
장일순의 가장 큰 매력은 언행일치에 있었다. 사소한 일상사부터 어렵고 복잡한 일에 이르기까지, 장일순은 언제나 함께 일하고, 더불어 나누며, 서로를 극진히 모시며 살고자 했다. 그는 세속(朝市)에 숨은 ‘대은(大隱)’이요, 난세의 ‘대현(大賢)’이었다.
교육사업과 민주화운동을 넘어
일제 말 그는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에 입학했다. 그런데 해방 직후 점령군인 일개 미군 대령을 서울대학교 총장에 임명한다는 내용의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국대안)’이 나왔다. 장일순은 이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제적되었다. 6ㆍ25전쟁 직후에는 도산 안창호의 구국정신을 본받아, 고향 원주에 ‘대성학원’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때아닌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교육자 장일순의 삶을 망가뜨렸다. 군부는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그를 3년간이나 옥에 가두었다. 평소 장일순은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중립화’론을 폈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형기를 마친 장일순은 1963년 대성학원 이사장직에 복귀하였는데, 이번에는 독재정권이 추진하던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정치활동 정화법’과 ‘사회안전법’에 걸려 사회활동이 금지되었다.
정권의 엄혹한 감시 아래서도 그는, 피폐해진 농촌과 광산촌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1968년에는 고향에서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다. 또 1971년 10월에는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와 함께 독재정권의 부정부패를 폭로하고 사회정의를 촉구하며 가두 시위를 벌였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흥기를 알리는 횃불이었다.
그 2년 뒤에는 홍수로 재난을 입은 강원도민을 구제하고자 지학순 주교와 함께 ‘재해대책사업위원회’를 조직했다. 또 ‘민청학련사건’의 구속자 석방을 위해 국제사회의 연대를 꾀했다. 장일순은 민주화운동의 숨은 대부였다.
생명 사상으로
그의 삶에 일대전환이 일어난 것은 1977년이었다. “종래의 방향만으로는 안 되겠다.” 그는 일체의 사회운동을 공생의 원리에 따른 ‘생명운동’으로 전환했다. 1983년에 그는 농촌과 도시의 직거래를 위한 ‘한살림’이 출범하였다. 그로부터 6년 뒤 그는 생명 사상의 원류였던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선생의 기념비를 원주에 세웠다.
말년의 장일순은 생명사상을 주제로 숱한 강연회를 열었다. 노자에 정통했던 그였기에 생명사상의 관점에서 ‘도덕경’을 풀이했다. 이현주 목사는 그 내용을 정리해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이 나오고 몇 달 지난 1994년 5월 22일, 67세를 일기로 장일순은 영영 눈을 감았다.
돈에 환장한 세상!
“지구 전체가 지금 온통 장삿속으로 돌고 있어요.” 장일순은 어느 강연에서 세태를 그렇게 비판했다. “돈이 기준이 돼 있는 세상이니까, 사람이 기본적으로 살아가는 데 적당한가, 알맞나 이러한 문제는 얘기도 안 되는 거라.”
“내 자식이 꼭 일등 해야 되고, 요놈이 꼭 출세해야 되고, 요놈이 꼭 돈 많이 모아야 되고. 그러니까 공해가 올 수밖에 없잖아요. 일등만이 가치 있고, 나머지는 무시되는 이건 엄청난 공해입니다.”
과학을 비롯한 일체의 학문이 인간의 오만과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장일순은 현대문명을 날카롭게 해부했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 심지어는 우리까지도 사람 죽이는 무기를 생산하고 있어요. 그게 지금 이익이 제일 많아요. 전부 무기장사라고….”
이런 사태는 종국적으로 “반(反)생명적이고, 반자연적이고, 반인간적”인 비극을 빚게 될 것이다. 한정된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고 말 것도 당연한 일이다. “도깨비도 이런 짓은 안 해요.” 장일순은 장차 현대문명과는 정반대되는 새 문명이 출현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밥 한 사발에 우주가 담겨 있다
“일체 현상은 유기적 공존체(有機的共存體)요, 서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 것이니, 개체와 전체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 이렇게도 말했다. “하나도 떨어져 있을 수가 없어. (만물이)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이 말이에요.” 그렇다면 관계의 회복이 본질적인 과제로 부각될 터다. 우리가 지나친 욕심을 버릴 때 비로소 생태계의 질서가 되살아날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장일순은 어디서 이런 확신을 얻었을까.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에게서 감화된 바가 있었을 것이다. “해월 선생은 ‘밥 한 사발을 알면, 세상만사를 다 아느니라’,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밥 한 사발이 되려면, 많은 농부가 땀을 흘려야 한다. 뿐만이 아니다. 하늘도 땅도 사람도 하나가 되어야만 밥 한 사발의 농사가 이뤄진다. 그러니까 그 밥 한 사발은 우주적인 만남이 있어야 한다.
생전에 장일순이 자주 언급했듯, 최시형은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以天食天)”고 일렀다. 이때 하늘은 사람을 비롯해 곡식 한 알, 돌멩이나 버러지 하나까지도 포함한다. 모두가 하늘이며, 그 하늘이 서로를 극진히 위해야 평화도 정의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것의 장일순 사상의 중심이다.
노자의 삼보(三寶)를 실천하며
우주 만물이 내 한 몸이라는 생각은 노자에게서도 발견된단다. 장일순은 그렇게 보았다. 하여, 그는 노자의 ‘삼보’를 실천하자고 주장했다. 그 첫째는 자애 곧 사랑이다. 어머니가 객지에 두고 온 자식 생각하듯 서로 사랑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검약이다. “하늘과 땅과 만물의 도움으로 생긴 모든 물건을 알뜰하게 모시고, (쓰고) 남는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자”고, 장일순은 주장했다. 물론 현대인의 삶은 이것과 거리가 멀다. 다들 빚 살림을 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나라도 가계도 부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더러 지하의 장일순은 과연 뭐라고 일갈할 것인가.
셋째는 겸손이다. “큰 나무가 이렇게 되자면, 그 밑에 수많은 잔뿌리가 있어야 해요. 잔뿌리 없이 큰 나무가 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대(大)와 소(小)는 하느님 아버지의 차원에서 보면 같은 거라.” 장일순의 비유는 곧 생명과 진리의 본바탕에서 사물과 나의 관계를 세우자는 뜻이다.
그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면, 어지러워진 남북문제도 우리는 풀 수 있겠다. “주인인 우리가 미국이나 소련, 그리고 그네들 욕심으로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에 관계 없이, 남북이 스스로 내왕하고 우리 전통, 우리 살던 방식대로 살겠다고 했더라면 분단이 되었겠어요?”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처음부터 우리 현대사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애초에 주판을 잘못 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털어야 된다, 이 말이에요.” 장일순의 쩌렁한 목소리가 아직 귓전에 남아 있다.
출처: 백승종 , <선비와 함께 춤을>(사우, 2018)
651강길모, Sunghwan Jo and 64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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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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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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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YsetSstetmrtdpodahoy rcnaildt 0rmrd7assn:o3r3eSd ·
무위당 장일순, 물질 만능의 세태를 질타하다
장일순(1928~1994)은 평생 단 한 권의 저술도 남기지 않았다. 언어도단(言語道斷) 곧, 말로는 진리를 표현할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동서양의 종교와 고전에 두루 해박하였고 특히 노자(老子)를 믿고 따랐다. “아는 자는 말을 하지 아니하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노자의 이 말씀 따라서 그는 입을 다문 것이 아니었을까.
당호 ‘무위당(无爲堂)’이 상징하듯, 그는 돈과 명예와 지위를 얻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때인가는 자기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두문불출하고 살다시피 한 사람이다 보니, 뭐라고 붙일 딱지가 없어요.”
실은 일평생 그가 종사한 일이 여럿이었다. 약자를 구하는 일이라면 언제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그였다. 평화와 정의의 세상을 만들고자 그가 노심초사한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났던 재사였다.
장일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려우나, 굳이 말하면 ‘생명사상가’요 20세기 이 땅을 대표하는 ‘양심적 지성’이었다고 말해도 좋겠다. 식자들은 그의 사상을 요약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의 세 가지를 하나로 보았다고 말하곤 한다.
장일순의 가장 큰 매력은 언행일치에 있었다. 사소한 일상사부터 어렵고 복잡한 일에 이르기까지, 장일순은 언제나 함께 일하고, 더불어 나누며, 서로를 극진히 모시며 살고자 했다. 그는 세속(朝市)에 숨은 ‘대은(大隱)’이요, 난세의 ‘대현(大賢)’이었다.
교육사업과 민주화운동을 넘어
일제 말 그는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에 입학했다. 그런데 해방 직후 점령군인 일개 미군 대령을 서울대학교 총장에 임명한다는 내용의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국대안)’이 나왔다. 장일순은 이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제적되었다. 6ㆍ25전쟁 직후에는 도산 안창호의 구국정신을 본받아, 고향 원주에 ‘대성학원’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때아닌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교육자 장일순의 삶을 망가뜨렸다. 군부는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그를 3년간이나 옥에 가두었다. 평소 장일순은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중립화’론을 폈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형기를 마친 장일순은 1963년 대성학원 이사장직에 복귀하였는데, 이번에는 독재정권이 추진하던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정치활동 정화법’과 ‘사회안전법’에 걸려 사회활동이 금지되었다.
정권의 엄혹한 감시 아래서도 그는, 피폐해진 농촌과 광산촌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1968년에는 고향에서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다. 또 1971년 10월에는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와 함께 독재정권의 부정부패를 폭로하고 사회정의를 촉구하며 가두 시위를 벌였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흥기를 알리는 횃불이었다.
그 2년 뒤에는 홍수로 재난을 입은 강원도민을 구제하고자 지학순 주교와 함께 ‘재해대책사업위원회’를 조직했다. 또 ‘민청학련사건’의 구속자 석방을 위해 국제사회의 연대를 꾀했다. 장일순은 민주화운동의 숨은 대부였다.
생명 사상으로
그의 삶에 일대전환이 일어난 것은 1977년이었다. “종래의 방향만으로는 안 되겠다.” 그는 일체의 사회운동을 공생의 원리에 따른 ‘생명운동’으로 전환했다. 1983년에 그는 농촌과 도시의 직거래를 위한 ‘한살림’이 출범하였다. 그로부터 6년 뒤 그는 생명 사상의 원류였던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선생의 기념비를 원주에 세웠다.
말년의 장일순은 생명사상을 주제로 숱한 강연회를 열었다. 노자에 정통했던 그였기에 생명사상의 관점에서 ‘도덕경’을 풀이했다. 이현주 목사는 그 내용을 정리해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이 나오고 몇 달 지난 1994년 5월 22일, 67세를 일기로 장일순은 영영 눈을 감았다.
돈에 환장한 세상!
“지구 전체가 지금 온통 장삿속으로 돌고 있어요.” 장일순은 어느 강연에서 세태를 그렇게 비판했다. “돈이 기준이 돼 있는 세상이니까, 사람이 기본적으로 살아가는 데 적당한가, 알맞나 이러한 문제는 얘기도 안 되는 거라.”
“내 자식이 꼭 일등 해야 되고, 요놈이 꼭 출세해야 되고, 요놈이 꼭 돈 많이 모아야 되고. 그러니까 공해가 올 수밖에 없잖아요. 일등만이 가치 있고, 나머지는 무시되는 이건 엄청난 공해입니다.”
과학을 비롯한 일체의 학문이 인간의 오만과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장일순은 현대문명을 날카롭게 해부했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 심지어는 우리까지도 사람 죽이는 무기를 생산하고 있어요. 그게 지금 이익이 제일 많아요. 전부 무기장사라고….”
이런 사태는 종국적으로 “반(反)생명적이고, 반자연적이고, 반인간적”인 비극을 빚게 될 것이다. 한정된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고 말 것도 당연한 일이다. “도깨비도 이런 짓은 안 해요.” 장일순은 장차 현대문명과는 정반대되는 새 문명이 출현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밥 한 사발에 우주가 담겨 있다
“일체 현상은 유기적 공존체(有機的共存體)요, 서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 것이니, 개체와 전체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 이렇게도 말했다. “하나도 떨어져 있을 수가 없어. (만물이)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이 말이에요.” 그렇다면 관계의 회복이 본질적인 과제로 부각될 터다. 우리가 지나친 욕심을 버릴 때 비로소 생태계의 질서가 되살아날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장일순은 어디서 이런 확신을 얻었을까.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에게서 감화된 바가 있었을 것이다. “해월 선생은 ‘밥 한 사발을 알면, 세상만사를 다 아느니라’,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밥 한 사발이 되려면, 많은 농부가 땀을 흘려야 한다. 뿐만이 아니다. 하늘도 땅도 사람도 하나가 되어야만 밥 한 사발의 농사가 이뤄진다. 그러니까 그 밥 한 사발은 우주적인 만남이 있어야 한다.
생전에 장일순이 자주 언급했듯, 최시형은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以天食天)”고 일렀다. 이때 하늘은 사람을 비롯해 곡식 한 알, 돌멩이나 버러지 하나까지도 포함한다. 모두가 하늘이며, 그 하늘이 서로를 극진히 위해야 평화도 정의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것의 장일순 사상의 중심이다.
노자의 삼보(三寶)를 실천하며
우주 만물이 내 한 몸이라는 생각은 노자에게서도 발견된단다. 장일순은 그렇게 보았다. 하여, 그는 노자의 ‘삼보’를 실천하자고 주장했다. 그 첫째는 자애 곧 사랑이다. 어머니가 객지에 두고 온 자식 생각하듯 서로 사랑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검약이다. “하늘과 땅과 만물의 도움으로 생긴 모든 물건을 알뜰하게 모시고, (쓰고) 남는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자”고, 장일순은 주장했다. 물론 현대인의 삶은 이것과 거리가 멀다. 다들 빚 살림을 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나라도 가계도 부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더러 지하의 장일순은 과연 뭐라고 일갈할 것인가.
셋째는 겸손이다. “큰 나무가 이렇게 되자면, 그 밑에 수많은 잔뿌리가 있어야 해요. 잔뿌리 없이 큰 나무가 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대(大)와 소(小)는 하느님 아버지의 차원에서 보면 같은 거라.” 장일순의 비유는 곧 생명과 진리의 본바탕에서 사물과 나의 관계를 세우자는 뜻이다.
그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면, 어지러워진 남북문제도 우리는 풀 수 있겠다. “주인인 우리가 미국이나 소련, 그리고 그네들 욕심으로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에 관계 없이, 남북이 스스로 내왕하고 우리 전통, 우리 살던 방식대로 살겠다고 했더라면 분단이 되었겠어요?”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처음부터 우리 현대사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애초에 주판을 잘못 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털어야 된다, 이 말이에요.” 장일순의 쩌렁한 목소리가 아직 귓전에 남아 있다.
출처: 백승종 , <선비와 함께 춤을>(사우,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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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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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선
교수님! 오늘도 좋은 글 감사드리고 노자의 삼보 정신을 생각하겠습니다 흥이 나시고 행복하신 오늘이 되세요
· Reply · 1 d
유택주
제가 유신고교생임에도 지학순 주교님 편에 섰던 일도 장일순 선생의 영향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
· Reply · 1 d
이동순
그 깊은 울림이 가슴에 고동쳐 옵니다.
· Reply · 1 d
Sua Lim
이런 어른이 계셨음을 지금 알았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Reply · 1 d
김종헌
아하 이런 분이 계셨군요
뉴스에 안나오는 사람
그분들께 감사드리고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 Reply · 1 d
안광덕
생전에 자택에서 인사드리고 한 수 가르침 받아게 영광입니다. 어른을 기억하며 그 뜻을 깊이 새깁니다.
· Reply · 1 d
지승곤
장일순이 아인슈타인과 두차례나 서신을 주고받은 이유
출처 : 오마이뉴스 | 네이버
- http://naver.me/F4NetWnm
May be an image of 1 person and text that says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좋한 조 글죄성현 글최성현 알 なと 일 순 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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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장일순 선생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습니다. 김지하와 박경리 등의 글을 통해 그분의 삶의 모습을 접하고 젊은 시절에 찾아가 뵐까하다가 못한것이 후회스럽네요. 저에게는 마음속으로 사숙하는 스승님입니다.
· Reply · 1 d
백승종
직접 뵙지 못해도 좋지요. 뜻이 중하지 모습이 제일은 아니니까요.
· Reply ·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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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수
청빈과 겸손 ,하늘을 아는 혜자의 아이콘이네요
존경스런분이에요
그 분을 기록하는 교수님도 존경!
이 분 신문에 났던가 .. 흐리게 기억날듯 합니다
· Reply · 1 d · Edited
백승종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Reply ·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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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희
나락 한알속의 우주 란 책을 풀꽃세상 책읽기방에서 읽고 이런분이 계시다니 ... 하고 만나보고싶다 했는데 이미 돌아가셨단 걸 알고 그때 넘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 Reply · 1 d
백승종
글이 곧 그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뜻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 Reply ·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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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희
요즘은 <선비와 함께 춤을> 읽고 있습니다.
· Reply · 1 d
백승종
감사합니다, 한 시인님!
· Reply ·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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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영
주제를 모르고 겉넘어 중2때 접한 어른. 일생의 어른이시죠. 잘 읽었습니다.
· Reply · 1 d
백승종
용감하셨군요. 청소년에게는 그런 용기가 있어야 하겠는데요. 드문 일이지요.
· Reply · 1 d
김창영
백승종 이현주 선생님 덕분이죠. 어린 시절에 적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ㅎㅎ
· Reply ·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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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kyeung Baig
원주의 무위당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한 시대의 큰 어른이셨죠. 시대의 사표로 삼을 분이죠.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Reply · 1 d
Jeong Ae Cho
‘밥 한 사발에 우주가 있다 ‘ 다시 새겨봅니다
· Reply · 1 d
방제선
몇년전 장일순평전을 읽으며 엄청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다시금 일깨워주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일부러 원주시 들러서 조촐했던 장일순기념관 문앞까지 가봤습니다. 노자이야기도 조금씩 보면서 대단한 사상가셨구나 느꼈습니다. 그분과 권정생, 리영희, 김민기, 김지하? 여러분들과의 만남도 흥미로웠습니다. 한가지 놀라운 점은 장일순 선생님의 그 사상이 최근 관심갖게된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들의 생명사상 하늘경외사상과도 맥이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See more
· Reply · 1 d
Iljoon Cho
오랜만에 책장에서 책을 꺼내봤습니다. 지금 보니, 책 표지엔 대담자의 이름이 실명 대신 이아무개라고 겸손하게 쓰여 있네요! 표지 디자인과 색깔도 아무런 꾸밈없이 무위자연하고요.. 삼인출판 홍승권 대표께서 책을 출판하신 것도 어울리십니다 ㅎ
May be an image of book
· Reply · 1 d
백승종
예, 책도 출판사도 참 좋아요!
· Reply ·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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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수
저두 이 지역 원주에서 알게되었어요.
· Reply · 1 d
백승종
그렇군요, 감사한 일입니다!
· Reply ·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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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섭
자애,검약,겸손ᆢ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May be an image of 1 person, flower and text that says "좋은 아침 입니다! 봄처녀 제 오시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뇌를 찾아 오셨는가?! 오늘은 당신에게 봄처녀를 보냅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Reply · 1 d
박인혜
잘 읽었습니다
장일순 선생님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 Reply · 1 d
이성로
좋은 글 감사합니다
· Reply · 1 d
윤경희
선생님
글 공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Reply · 1 d
백승종
얼마든지요. 좋은 하루 되세요!
· Reply · 1 d
윤경희
백승종 ^^
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Reply ·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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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Il Jeon
덕분에 다시 장일순 선생님 말씀을 새깁니다~
· Reply · 1 d
백승종
감사드립니다!
· Reply ·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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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Shin
...네. 한살림. 그것만은 실천하고 있습니다. 고작 필요물품 구매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나, 마음만큼은 따뜻해지는 곳이라서요. 개인적으로 용인처인 지역에서 작은 농장 일구어 소박하게나마 한살림생산자되는 것이 제 노년의 꿈이랍니다. 아직 준비는 다 되지는 않았지만요. 또 습성도 넘 개인적이기는 하지만요. 제가 단 둘 존숭하는 곳, 박노해 나눔문화와 함살림 생활문화^^이겠네요~ 감사합니다.
· Reply · 1 d
백승종
맞습니다. 박노해 시인도 중요한 일을 합니다.
· Reply ·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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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훈
몇년 전 장일순 선생 묘역을 참배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20년 넘게 한살림, 생협 회원으로 생활해왔습니다. 지금은 여러 협동조합 조합원이네요. 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 Reply · 1 d
백승종
아, 그렇게 오래요. 대단하십니다!
· Reply ·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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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
감사합니다.
· Reply · 1 d
김재유
뜻 깊게 잘 읽었습니다.
· Reply · 1 d
박준우
이현주 목사님이 펴낸 책을 통해 장일순 선생님을 알게되었는데 그 분의 실천적삶에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ㆍ감사합니다ㆍ
· Reply · 23 h
Sang-Hyun Lee
이현주 목사님과 장일순 선생님이 조곤조곤 나누시는 대화 속에서 노자가 살아나오셨지요.
장 선생님 일대기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Reply · 23 h
원혜덕
장일순 선생님 같은 분이 이 시대에 계셨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그 분의 삶을 다시 새겨볼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 Reply · 22 h
김종배
· Reply · 22 h
최성숙
감사합니다.다시 한번 장일순선생님 떠오루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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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오
젊은 날의 장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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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행윤
무위당 선생님은 제 고향 친구의 아버님이십니다. 어려서부터 자주 뵙던 어른이셨습니다. 중학교도 선생님께서 설립하신 대성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이 창립하신 신협을 고향 후배들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백 교수님의 자상하신 소개글 잘 읽었습니다. 제 고향이 무위당 선생님의 고향이신 원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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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그래서 우리 허 선생님에게 남다른 풍모가 더욱 강하게 느껴졌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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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행윤
백승종 교수님 과찬이십니다. 암튼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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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ng Soo Cho
밥 한 사발이 우주의 만남이다. 감사합니다. 늘 일깨워주시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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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곽대원
백기완선생과 같은 분이신데 서로 교우는 잘 않하신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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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오늘도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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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 Kim
장일순 선생님은 성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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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련
강산이 이미 바뀌었지요~~
십년하고도 몇해가 지난거같습니다
원주로 장일순선생님의 숨결을 찾아서~~…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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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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