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0

쿠바한인 헤로니모 임의 생애와 쿠바 한인들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헤로니모'

Ok-kyung Pak Ok-kyung Pak

재미 페친 이철호님 글입니다.


쿠바한인 헤로니모 임의 생애와 쿠바 한인들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헤로니모'를 봤다. 영화가 주는 울림이 작지 않아, 영화를 본 감상을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한국을 떠나 타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자녀들을 위해 꼭 같이 보면 좋을 영화이다. 미국 여러 지역에서 공동체 상영을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S3z3pzSE34

쿠바 한인 2세대인 '헤로니모 임 (임은조)'은 자신의 조국인 쿠바를 위해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이룬 인물이다. 혁명 후 그는 쿠바 정부에서 산업부 차관을 지냈으며 은퇴 후에는 쿠바 한인들을 위해 남은 인생을 바쳤다.

영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인의 쿠바 이민의 배경과 인물 소개는 간단하게라도 해야할 것 같다.

미국으로의 한인 이민은 1903년 한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로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반노예의 신분으로 미국에 발을 디뎠다. 1903년에서 1905년 사이 7천 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났다. 그 중 1천 여명을 실은 배 한 척은 멕시코에 도착했고, 이 배에 탔던 조선인들은 멕시코 각지의 22개 농장으로 '팔려'나갔다.
 
1910년 일제 강점으로 이들은 돌아갈 나라가 없어졌다. [?}

1920년대가 되면서 쿠바 경제가 설탕가격 상승으로 호황을 맞았다. 멕시코에서 반노예 생활을 하던 한인 288명이 새로운 터전을 찾아 1921년 쿠바 마나티라는 항구도시에 도착했다. 헤로니모의 아버지 임천택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열 여섯에 쿠바에 온 임천택은 다른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애니깽 (선인장의 일종으로 밧줄과 카펫의 원료로 재배되는데, 가시가 많고 독소가 있어서 애니깽 농장은 노동자에게는 고난의 장소이다) 농장에서 일하며 어려운 생활을 했다.

헤로니모는 장남으로 태어나 쿠바 한인 중 최초로 대학에 진학했다
. 하바나 법대에 진학한 그의 동급생 중에는 피델 카스트로가 있었다. 쿠바 혁명 투쟁 기간 중 카스트로와 게바라가 산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있을 때, 헤로니모는 도시에 있던 비밀조직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했다. 헤로니모가 쿠바 혁명에 뛰어든 것은 단지 카스트로와의 인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이미 학생대표로 두각을 나타냈고,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섰다. 이로 인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혁명 후에는 정보국의 핵심인물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이며, 여러 아이들의 학교'가 생각났다. 삶이 위협받는 환경 속에서도 한인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별 어려움 없이 이민자로 살아가는 내게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

영화는 헤로니모의 일생과 쿠바 한인들의 역사, 한반도와 세계 현대사를 적절히 빚어냈다.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로 쿠바 배낭여행 중 우연히 헤로니모의 딸을 만나 이 영화를 만든 전후석 감독은, 미국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하던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였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생업을 접었다.

전후석 감독이 질의 응답시간을 마치며 관객들에게 당부하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한다.

"한인 디아스포라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디아스포라의 시작은 고통이었지만, 고통은 혁신으로 승화된다. 디아스포라는 고통을 혁신으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여러 문화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과정에 동참하시고 여러분들의 후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다."
[헤로니모]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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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니모]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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