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한인회 홍일송 회장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3-07-12
2011년 미군 참전 용사 보은 행사에서 홍일송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버지니아 한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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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도 워싱턴 인근 도시에 버지니아 한인회가 있다. 버지니아 한인회 홍일송 회장은 1.5세의 한인회 회장이다. 그의 꿈은 1세와 1.5세 2세가 미국사회에서 성장하는데 1.5세가 주축 돌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추구한 사업은 한인들 위한 직업학교와 한인회 차원의 참전용사초청 보은의 밤 행사를 하는가 하면, 지방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후보자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한인회 위상도 높여가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버지니아 한인회 홍일송 회장으로부터 버지니아 한인회의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홍일송 버지니아 한인회장에게 한인회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720만 세계 한인들의 보금자리인 한인회가 330여 개 있고, 미국에도 160여 개 한인회가 있는데 버지니아 한인회는 미국 정치 1번지 워싱턴 인근에 소재해 자랑스럽다며, 지역 정치 참여에 앞장서고 있다고 들려준다.
홍일송: 한인회는 그 지역이나 한인사회의 크기에 따라 한인회 역할이나 명분이 틀려질 수 있는데요. 버지니아 한인회는 역사가 길어서 특히 한인들이 처음 이민 와서 정착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들을 미주 최초로 개발하고, 또 나름대로 한인회 종합학교나 취업박람회를 통해서 활성화하고 있어요. 또 지방 정치인들과의 주류정치 참여를 통해서 나름대로 소수민족의 이권과 위상을 드높인다는 것에 중점이 두었고요. 다른 소수민족들과의 연대를 통해서는 서로 간 상부상조하는 큰 의의를 두고 있기도 합니다.
버지니아 한인회는 한인들이 미국에 정착하는데 큰 희망을 주는 버지니아한인회 종합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전 미주지역에서도 칭송을 받고 있다. 홍 회장은 십수 년 전에 영어 반과 시민권 반으로 시작한 학교는 이제 다른 한인회에 학교 운영에 관해 지도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설명해준다.
홍일송: 이제 명실공히 30개 학과에 걸쳐서 기본 언어학과와 자격증 취득학과 컴퓨터, 때에 따라서는 취업준비를 위해서 양재 반, 옷 수선, 시계, 주얼리, 보석 수리 등 또한 미국에서 운전하다가 운전 포인트가 높을 때 운전 재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버지니아 한인회 종합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학교 운영뿐만 아니라 이 학교를 벤치마킹(BENCHMARKING, 학교 운영에 관한 정보제공) 하고 싶어하는 다른 한인회에 무료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그 내용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힘들었던 점은 타 한인회에서는 일단 하드웨어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학교를 운영하기 위한 건물이나 훌륭한 선생님들이 갖추는 것을 우선해야 하는데 초기 단계에서는 영세한 한인회들은 어려운 점이 있었고요.
홍 회장은 이곳 가까운 지역에 사는 한인들이 교육을 받지만, 멀리는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직업교육을 받고 있다고 자랑하고 7천여 명의 한인들이 버지니아 종합학교를 졸업했다고 말한다.
홍일송: 저희는 다행히 카운티가 운영하던 학교가 폐쇄되면서 주 정부와 카운티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는 부분이 있고요. 그래 지방 정부와 교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교류는 한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라 10여 년에 걸쳐서 계속 KNOW HOW(어떻게 하는 방법)가 축적되면서 성장하여 가고 있고요. 이제는 명실공히 자격증 취득 반으로 냉난방, 건축, 소방기술, 전기기술, 식품위생, 약사보조 같은 경우는 100% 한국말로 교육을 하고 있고, 자격증 취득 합격률이 높은 관계로 꼭 워싱턴 일원 지역뿐만 아니라 때로는 뉴욕과 LA에서도 이 학과 취득을 위해서 이곳을 방문해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학과마다 거의 200-300명씩 1년에 한 500-600명씩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는데요. 아마 혜택을 받은 한인이 한 7,000여 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버지니아 한인회는 한인 2세들을 위한 취업박람회를 갖고 있단다. 올해부터는 한인과 아시안 미국인들에게도 문호를 열어 취업박람회를 개최한다고 들려준다.
홍일송: 저희가 직업학교를 운영하는 맥락과 마찬가지로 한인 2세 1.5세 또는 1세들까지 포함해서 버지니아 취업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는데요. 올해가 10회가 되는데 처음 8회까지 특히 한인들의 취업 알선을 위한 주목적으로 취업박람회를 해 왔고요. 2012년부터는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다른 소수 민족과의 MOU(양해각서)를 통해서 아시안 계 연대를 이루고, 이 아시안 계 연대라는 것은 미국 주류 정치에 큰 영향력으로서 새로운 정치변화를 시키고 있다는 점들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에, 그 같은 맥락으로 2010년부터는 취업박람회를 아시안 계 전체에 문을 열어서 아시안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요. 특이한 점은 올해 2013년 10주년을 맞아서 저의 JOB FAIR(취업박람회)는 아시안 계를 뛰어넘어서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누구나 백인, 흑인, 동양인 관계없이 참여해서 취업 알선을 할 수 있도록 성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저희가 미국에 와서 소수민족이라는 부분도 있지만, 위상들이 커지면서 이제는 우리가 미국 내에 이바지해야 하는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해서 10주년 맞아 미국 사회 전체에 문을 여는 것입니다.
버지니아 한인회는 미국사회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행사를 하고 있다. 함께 들어보자!
홍일송: 매년 8.15 기념 한국문화행사를 하는데요. 이 행사에는 한국인 만 오는 게 아니라 이 지역 모든 사람이 다 참여할 수 있도록 해서 패어팩스 카운티 공원 국과 공동 주최로 8.15 문화행사를 하는데요. 보통 850명 정도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패어팩스 카운티 공원국에서 최다 인원동원 되어서 상을 받은 적도 있는데요. 이 행사에는 8.15가 무엇이고 한국문화가 무엇이고 한국 음식이 어떤 것이 있는가를 지속적으로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알린다는데 의의가 있고요.
버지니아 한인회가 지방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홍일송: 연방정부나 대통령 선거도 중요하지만 사실 거기에는 영향력을 크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지역 안에 지방선거 참여인데요. 저희는 매년 꾸준하게 지방 선거를 위해서 유권자 독려 캠페인을 하고 있고요. 유권자 등록이 된 사람들에 한해서 선거 한 달 전부터 전화로 선거 참여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선거에 참여를 높이면서 우리들의 목소리가 미국 선거에서 훨씬 영향력이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선거에 즈음하여 후보자 토론회를 개최해서 후보자들 군수부터 시작해 주 상원 하원의원 등 대부분의 후보자를 불러서 후보자 토론회를 개최한 적도 있고요. 그 후보자 토론회 자체가 패어팩스 카운티에서 지난 20년간 제일 성공적이고 잘 됐다고 할 정도로 짜임새 있는 행사를 진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을 통해서 우리 자체적으로 주류사회에 정치에 직간접적인 참여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버지니아 한인회가 2011년에 625전쟁 발발 61주년을 맞아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은의 밤 행사를 개최했다.
홍일송: 초청 대상자를 미국 전체 규모로 했습니다. 멀리서는 하와이에서 오셔서 돌아가신 다음에 사탕 쿠키 같은 것을 보내준 적도 많고요. 많은 감사의 편지를 받았는데요. 참전용사들이 참석해 항상 하는 말이 미군이 참전한 세계 나라 가운데서 유일하게 한국인들이 감사하더라고, 그것이 잊혀진 전쟁이 아니고 한국인들에게는 잊혀지지 않은 전쟁인 것 같고 그분들 스스로도 한국이 어딘지도 모르고 참전했다가 이제 나이가 많이 드셔서 많이들 돌아가고 계시는데, 감사의 마음을 서로 전달하고 서로 감격하고 서로 감사해야 하는 행사들을 매년 지속적으로 해 왔고요. 이제 올해는 휴전협정 60주년 행사를 양국 정부 차원에서 큰 행사를 하기 때문에 올해는 참전 용사를 위한 행사는 안 하고 내년부터 다시 해왔던 데로 625 노병들을 위한 행사는 계속할 것이고요.
홍 회장은 북한인권과 탈북자 구출을 위한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홍일송: 북한인권에 대해서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인권이 있고,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인권이 없어서 굶어 죽거나 탈북하면서 온갖 악행들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 같은 한국인으로서의 아쉬움이 있어서 지난해 초부터 중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도 했었고, 백악관 앞에서도 시위했으며, 최초로 북한인권영화 상영 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탈북자 출신 조명철 의원을 모시고 북한인권법을 위한 세미나도 개최했었고요. 이제는 이쪽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한 미주 촉진위원회를 만들어서 아마 조만간 발족식을 할 예정입니다.
홍일송 회장에게 한인회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많은 상을 받았는데 상의 종류와 상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홍일송: 그동안 여러 상을 받았는데요. 제가 의미가 있다고 하는 상은 2007년도 7월 30일 미 하원 종군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마 미국 하원의원들 435명의 만장일치 결의를 이뤄 냈는데 그때 미국 정치인들은 깜짝 놀랐어요. 한인들의 풀뿌리 정치력이 이렇게 강하고 이렇게 깊을 수가 있었던가! 처음에 저희는 약하게 시작했지만, 나름대로 워싱턴과 뉴욕, LA에 끈끈한 서로 인맥과 나름대로 인권활동을 하고 있던 지인들의 연대를 통해서 미국 하원들 한 명 한 명을 설득했느냐는 과정이었고요. 그걸 통해서 마이클 혼다 의원에 의해서 작년에 받았던 상이 기억에 나고요. 2년 전에 매년 6월이면 한국에서 세계 한인회장 대회가 있습니다. 세계 현직 한인회장들이 모여서 성공사례에 의해서 모범상을 주는데 그때 저희 버지니아 한인회가 세계 한인회장 대회 모범상을 받았던 것이 기억에 나고요. 2년 전인데요. 버지니아 주는 상원 40명과 하원 100명이 있습니다. 상, 하원 만장일치로 이 지역에 업적이나 아니면 공헌을 인정받아서 받은 상이 기억이 나고요. 북한인권 영화제를 상영하면서 한국에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한 단체에서 상을 준 적이 있었고요. 2007년도에 종군위안부 결의안은 통과한 후에 한국에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이라는 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홍일송 회장은 1985년에 워싱턴지역 대학 한인 총학생회장을 했다고 들려준다.
홍일송: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왔었기 때문에 미국사회에 적응하느냐 힘들다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그때 같은 한인 학생들 간에 차이점을 느꼈어요. 막 한국에서 온 사람, 미국에 오래되어 한국말을 못하는 사람, 그리고 중 고등학교 때 미국에 온 사람, 그때 저희 학생회에서 이것을 구분해서 1세와 1.5세 2세로 나눴습니다. 제가 기억하기에는 1.5세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이 워싱턴 총학생회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 당시 지금 같은 소셜네트워크 등이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미국에 오면 한국문화를 다시는 접할 수 없고, 편지로 보내거나 아니면 녹음한 내용을 화물로 보내거나 한국에서 녹음한 내용이 오면 온 가족이 들러 앉아서 육성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하는 그런 시대였는데
홍 회장이 1985년에 워싱턴지역 대학 한인 총학생회장 시절 거북선을 만들어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참가했다는 이야기는 한인 1.5세들의 큰 위상도 찾아보게 된다.
홍일송: 저희가 한국을 빛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1985년도에 학생들의 힘으로 거북선을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그 거북선을 트럭에 실어서 매년 7월 4일에 독립기념이 퍼레이드를 하는데 그 퍼레이드에 참여해서 아마 미주 한인사회 최초로 연방정부 최 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나뭇값만 3,000달러였는데 3천 달러라는 돈을 학생들이 기금을 모으고 30명의 학생이 동원됐는데 15명은 한국말을 못하는 학생이었고, 한 20명은 거북선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하나하나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 무더운 날, 워싱턴은 6월과 7월은 상당히 덥습니다. 망치 한번 잡지 않은 손으로 거북선 완성의 단계에서 짜릿한 희열의 한국인 DNA를 느꼈던 참여한 학생들은 아마 지금 저희들이 펼치는 한인회에 일들에 대해 이해를 할 겁니다. 그 느낌 그대로 그 다음 세대에게 전해 주고자 저희들은 노력하고 있고요. 꼭 1.5세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은 1세가 강하고요. 1.5세 장단점이 있고 2세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단 1.5세 역할을 분명히 이해하는 사람이 1세와 2세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버지니아 한인회 홍일송 회장으로부터 버지니아 한인회의 이모저모를 알아봤다.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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