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
이바라기 노리코 (지은이),박선영 (옮긴이)
뜨인돌2010-10-05
저자 및 역자소개
이바라기 노리코 (茨木 のり子) (지은이)
192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46년 도호대학 약학부를 졸업했다. 1950년 무렵부터 시작詩作을 시작하여, 잡지 『시학詩學』 독자투고란에 시를 투고하기 시작해 같은 잡지 신인특집호에 게재되었다. 1953년 가와사키 히로시와 둘이서 동인시지同人詩誌 『노櫂』를 발간했다. 전후戰後, 군국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던 시기에 청춘을 보낸 시인은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시선으로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격렬함과 반골 기질이 내포된 날카로운 시풍을 견지했다. 1976년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여 한국 현대시를 일본에 소개했고, 1991년 『한국현대시선韓國現代詩選』으로 요미우리 문학상(연구·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의 반열에 올랐고, 에세이집 『한글로의 여행』, 시집 『대화』 『보이지 않는 배달부』 『진혼가』 『제 감수성 정도는』 『기대지 않고』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시의 마음을 읽다>,<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여자의 말> … 총 30종 (모두보기)
박선영 (옮긴이)
홍익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현재 출판 기획 및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한글로의 여행》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12종 (모두보기)
Editor Blog
2010년 10월 3주_ 한발 앞서 만나는 인문교양 신간 l 2010-10-11
알라딘 인문, 사회, 과학 분야에서는 '한발 앞서 만나는 인문교양 신간'이란 이벤트를 상시 진행합니다. 매주 담당 MD가 10권 이내의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자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판단으로 누구보다 먼저 좋은 책을 알아보시는 독자께 조금이나마 혜택을 드리고자 마련한 자리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책으로 페이지가 바뀌고 도서별 구매자 선착순 50분께 다음 ...
출판사 소개
최근작 : <나의 문구 여행기>,<나는 미디어 조작자다>,<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등 총 226종
대표분야 : 청소년 인문/사회 8위 (브랜드 지수 76,819점), 청소년 소설 12위 (브랜드 지수 93,77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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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영어도 불어도 아니고 왜, 하필 한글이야?”
잘 나가던 그녀가 한국어에 탐닉하게 된 이유는?
전후 일본 시단을 대표했던 최고의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이바라기 노리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후 세대의 무력감과 상실감을 노래한「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일본의 여성 시인이다. 세계 각국의 문학 교과서에도 수록된 이 시는 2년 전 국내에서 공선옥 소설의 표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전후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몇 안 되는 여성 시인으로, 살아생전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시인으로도 유명했다. 남편과 사별 한 뒤, 자기 치유의 일환으로 한국어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한국문학과 민중예술,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1995년, 윤동주 시인에 관한 그녀의 에세이(본문 214p)가 일본의 국정 교과서(국어 과목)에 실리게 되고, 이를 소재로 한 <윤동주 특집> 프로그램이 NHK TV를 통해 연이어 방송되면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본래는 희곡작가로 문단에 데뷔했던 노리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본격적인 시인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그녀는 일본의 동아시아 식민 지배와 일본 본토에서 일어난 관동대지진 등 각종 비인간적 사건들을 몸소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각인하고 지나친 우경화를 경계하는 민주시인으로서 체제 반성적 시들을 치열하게 쏟아냈다. 특히, 63세가 되던 1999년에 출간한 시집『기대지 말고倚りかからず』는 일본 사회의 반민주적인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강렬하게 환기시키며 기록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체제 반성적 지식인으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한국문학의 소개와 번역에도 힘을 쏟아 1970년대부터 김지하와 안우식, 홍윤숙 시인 등 한국 문단의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1995년에는 『한국현대시선』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명시들을 번역 소개했는데, 이 공로로 요리우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에 출간된『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은‘한글’을 소재로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그녀의 칼럼을 모은 것으로, 1986년 최초 출간되어 지금까지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그녀가 들려주는 한국어, 한국문화, 한국인 이야기
이 책은 그녀가 한글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시인으로서 감응하게 된 한국문화 전반에 관한 에세이다. 언어를 다루는 시인으로서 느끼게 된 한글의 매력과 그 저변에 깔린 한국인의 정서와 습속, 풍토들을 감수성 넘치는 필체로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언어를 다루는 장인답게‘딸기코’와‘치맛바람’,‘바람둥이’등등 신선한 상상력과 재기가 넘치는 한국의 일상어들을 수집해 가며 그 매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단어의 뜻에 담긴 문화적인 맥락들을 더듬어 보며 일본의 사례와 견주어 보기도 한다(본문 107~119p). 그렇게 한국어에 탐닉하던 시인의 욕심은 어느 순간 취향을 넘어 전문적인 분야에까지 나아간다. 무심코 흘려들었던 일본 사투리에서 한국어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 쓰임새를 메모해 고서를 뒤적이기도 한다(본문 90~94p).
언어에 탐닉하던 시인의 욕심은 한국 본토 여행을 통해 한국의 문화 전반으로 보폭을 넓혀 들어간다. 단어를 매만지던 섬세한 시선은 일상 곳곳에까지 스며들어가고, 한국인의 눈에는 별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풍경도 시인의 눈에는 하나의 문화적 기호로 포착된다. 자기 그릇이 아닌 스테인리스 식기가 유행하는 한국의 식당 풍경에서 외세의 침략에 빈번히 시달렸던 한반도의 역사를 읽어내고(본문 156~157p), 할머니들이 모여 앉은 고즈넉한 농촌 풍경에서 경어체 사용에 관한 사회적 배경과 관습을 읽어내는 식이다(본문 78~81p).
한국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탓일까. 다소 감상적인 느낌도 없지 않지만, 타자의 눈에 비친 한국문화의 일상 풍경을 훑어보는 맛이 쏠쏠하다. 시인이 묘사하는 한국인들은 뜨거움과 호방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일본인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특유의 정열적인 모습, 이를테면 박력 있으면서도 붙임성 좋은 한국의 사내들을 한껏 추켜세우거나, 노랫소리 그득한 가정집의 저녁 만찬을 묘사하며 그 독특한 호기로움을 예찬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이 지닌 한국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일본에서 온 이방인을 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매번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저자는 한국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이따금 일본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계심과 거부감, 선입견을 맞닥뜨리고 섭섭해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섭섭함을 스스로 희석시켜 가는 과정에서 일본 일방의 역사적 과오를 복기한다. 저자의 이런 반성적 사유는 전후 한국문학의 지형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이어지고 이는 곧 한국과 한국문화, 한국인에 대한 통찰력 있는 관찰로 연이어진다. 독자들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된 시인의 한국어 배우기가 역사적인 디테일을 섭렵해 가며 한층 더 공적인 차원으로 그 결을 확대해 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8.0
한글과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느낌을 적은 책. 한글의 매력을 소개하고 한국의 몇 가지 문화를 알린다. 윤동주 시인과 최승희를 좋아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hsislee 2013-10-04 공감 (0) 댓글 (0)
작가가 풀어내는 한글 이야기에 작가가 갖고 있는 정성과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프르네피 2015-04-20 공감 (0) 댓글 (0)
우리말을 배워줘서 고마워요
왜 하필 한국어야?
저자인 이바라기 노리코가 한국어를 배운다고 했을 때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왜 하필 한국어냐고.
질문을 받은 때 저자가 딱히 할 수 있는 대답은 없었다고.
한두 가지가 아닌 복합적인 동기에서였기 때문이기에 요즘에는 이렇게 답한단다.
“이웃나라 말이잖아요.” 그런데 답을 들은 대다수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니
그들에겐 아직도 우리가 참으로 먼 나라이기만 한가보다.
한글이 있어 행복한 일본인 작가,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시로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으며 그 입지를 굳건히 한
여류시인 이바라기. 약학부를 졸업한 그녀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연극을 보고 문학의 길을 걸었다는 것도 참 이색적이다.
아마도 저자에게 있어 문학은 그녀 자신의 운명이지 않았을까?
그녀가 한국어, 한글에 관심의 싹이 튼 것은 참으로 오래전 일이라고 한다.
아마도 열다섯 쯤? 본격적으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그 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1974년. NHK 국제국 아나운서이자 재일 한국인 김유홍 선생이 가르치는
야학에서라고 한다. 대학원 교육도 아니고 야학에서 조선어 강좌를 가르치는 이에게
「내 인생 최고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을 걸었다면 저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내게도 이런 스승이 있었다면 외국어 하나쯤은
정말 잘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김유홍 선생을 만나 한글을 배운 이후로도 10여년의 시간동안 한글을 공부했다면
얼마나 깊이 한글을 사랑하고, 그로 인해 저자가 행복해했을 그 심정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다. 감동할 지경으로.
우리말을 배워줘서 고마워요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나서인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마주친
한국인 아주머니가 저자가 한국어를 배운다는 걸 알고 그녀에게 한 말이다.
그 아주머니의 마음에 공감 한 표를 던진다. 나 또한 한국어를 잘 하는
외국인들을 보면 마냥 기특(?)하고 흐뭇해서 고맙다고 말하고픈 심정이니까.
뜨개질처럼 재미있고 따뜻한 말, 한글
저자와 함께 한글을 배우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글을 마치 편물(뜨개질)기호 같은 문자야.”
코 늘림, 코 줄임, 교차뜨기 등 뜨개질처럼 한글도 모음에 막대기가 하나인가
둘인가, 왼쪽을 보는가, 오른쪽을 보는가에 따라 전혀 뜻이 달라지기도 하니
그럴 만도 하겠다. 갑자기 가요의 노래가사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참 센스 있는 표현이다. 그리고 한국의 우리, 정이라는 말은 독특한 의미라고 했다.
물론 외국에도 our가 있고, 정은 한자로 情이지만 그 뉘앙스는 외국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이라고 하니 한국, 한글만의 정서가 담겨서이지 않을까.
우리가 더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말, 한글
한국 사람들은 외국어에 참 열정적으로 시간과 노력, 자금을 들여 투자한다.
특히 영어를. 그 다음으로는 중국어, 일본어가 주 대세를 이룬다.
나 또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왜 하필 일본어냐고.
아니 요즘 일본어를 배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이고
일본어 학원은 북새통을 이루며, 일본어 교재는 불티난 듯 팔린다.
씁쓸하다. 어디 일본어뿐이랴.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 사이에는
각종 어학원 전단지가 가득 끼워져 있다. 성인은 물론 유아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상대로 한 학원까지. 한글은 등한시 된 지 오래다.
얼마 전 버스에 함께 탄 학생들의 입에선 욕지거리와 함께 외계어, 신조어가
난무해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글을 제대로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요즘 어린 학생들 사이에선
일본인 작가마저도 사랑한 우리의 언어가 그렇게 짓밟히고 있다.
저자는 단순히 호기심에 의해 오랜 시간 한글을 배운 것이 아니다.
한글은 우리 한국이라는 그릇에 담긴 우리 고유의 것이며, 그 얼이 담긴
한글을 그리고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한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책을 읽는 내내
자숙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고마웠다. 개인적으로 한글을 참 좋아하고
나름대로 한글을 제대로 알기 위해 사전까지 찾아가며 열심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처럼 열심이었냐고 물으면 머뭇거려진다.
이제 이바라기 노리코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언어, 한글을
더 깊이 그리고 더욱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겠다.
나도 이 가을 한글로의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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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 2010-11-05 공감(5) 댓글(0)
금서지정요망 - 친일파(?)가 될 수 있으니ㅋㅋ
일본의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그녀는 한국을 사랑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시를 번역했다. 그의 책 「한글로의 여행」을 통해, 일본어와 한국어, 일본 문화와 한국 문화에 대해 섬세한 비교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일본인이 나쁜 게 아니라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 위정자가 나빴을 뿐이라는 묘한 친일(?)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모국어(일본어)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의 언어(한국어)를 사랑하는 일본시인을 만나는 건 흔치 않은 기쁨이다.
* 1917년생 윤동주가 1926년생 이바라기 노리코와 사귀었다면 혹시 변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본다ㅋㅋ
<밑줄>
한국의 여류 시인 홍윤숙 씨가 일본에 와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와 긴자에서 뵌 적이 있다. 나와 거의 같은 세대의 분으로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고 내 시도 많이 읽으셨는데, 내 쪽에서는 홍씨의 시를 전혀 몰랐다.
“일본어를 정말 잘하시네요!”
그 유창함에 감탄하자, 그녀가 이렇게 대꾸했다.
“학창시절에 줄곧 일본어 교육을 받았으니까요.”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내 불찰이 부끄러웠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했던 36년간, 언어를 말살하고 일본어 교육을 강제한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 청초하고 아름다운 한국 여인과 직접 연결 짓지 못한 것은, 내가 아직 그 아픔까지 함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홍씨 역시 1945년 이후, 자신들의 모국어를 다시 배운 세대이다. 그녀를 보면서 새삼 일본인으로서의 죄책감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일본사람들이 나서서 식은땀, 진땀 뚝뚝 흘리며 일심불란하게 한글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차례라고 통감했던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한글을 배우자, 홍씨와의 이런 경험도 한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 중 하나이다.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어의 이런 특징을 역이용, 수상한 자를 불러 세워 “55전이라고 말해 봐”하고 시키고선, “코쥬 고젠 [kozyuu-gozen]”이라고 대답한 자를 붙잡아 학살한 일은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불쾌한 기억이다.
‘關係’라는 한자는 ‘관계’라고 읽는다. 일본에서도 옛날에는 ‘관케이’라고 발음했던 모양으로, 미키 다케오 전 수상 같은 사람은 뻔질나게 연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으로 ‘칸케이’라고 발음하는 등 음의 구조가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
원조인 중국에서도 한자의 극단적인 약자화가 진행되고 있는 터라 이러다가는 자국의 고전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될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건 아닐까, 깊이 우려될 정도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중국과 조선 모두 과거제도에 오랫동안 시달려 한자가 덜덜 떨릴 정도로 싫어져 버린 것일까? 근대화에 뒤쳐진 원인이 번거로운 한자 공부 때문이라고 오해한 것일까. 일본은 한자를 받아들였으되, 과거제도는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거부 반응에서 한결 자유로운 것일까?
가혹한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자신들의 언어를 지켜 냈다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훌륭한 일이다. 내세워도 될 일임이 틀림없다. 만주족을 보라. 만주족은 이제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그것은 만주어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청을 세운 만주족은 한문화, 한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동화되었고, 만주어도 완전히 그 속으로 흡수되면서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전후 얼마 되지 않아 일본에서도 “일본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를 쓰자”거나 “한자와 가나를 버리고 로마자를 쓰자”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섬나라였기 때문에 그리 고생을 하지 않고 언어를 순도를 유지해 올 수 있었지만, 만약 이웃 나라처럼 기원전부터 대국에게 직접 대습격을 받는 입장이었다면 과연 일본어는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고생하지 않았던 만큼 모국어를 생각하는 마음은 일본이 이웃 나라에 비해 훨씬 덜할지도 모른다...... 이 지구 어딘가에 ‘모국어의 날’을 만들어 기념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사실 내가 윤동주의 시를 읽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의 사진에 있다. 이렇게 맑고 단아한 얼굴의 청년이 어떤 시를 썼을까에 대한 흥미, 고백하자면 조금은 불순한 동기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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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 2016-11-15 공감(0) 댓글(0)
순수한 시선으로 한글을 본 어느 일본인
저자 이바라기 노리코씨는 고인이 되었지만 책 속의 그녀는 왠지 소녀같이 느껴진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향한 조선의 한글.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읽자니 역시 나도 부끄러워진다.
이 책은 그녀가 아사히신문에 기고했던 칼럼들을 모아서 엮은 것이다.
그녀가 한글을 배우게 된 동기는 여러 가지이다. 약 30~40년 전만해도 일본에서 한글을 배우는 이는 매우 드물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기관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절 일본에선 대한민국, 남한, 한국을 제치고 '조선'이란 국명이 많이 쓰였다고 한다. 시대상을 반영한 신문의 칼럼들이라 그런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어렸을 적 김소운 씨의 '조선민요선'에 반해버린 노리코씨. (나는 김소운씨를 모른다.)
그녀는 한글에만 푹 빠진 게 아니라 한국이란 나라의 모든 것에 반한 일본인이다. 음식부터 시작해 불상, 도자기, 떨어지는 낙엽까지도 사랑할 것 같은 그녀의 이야기의 핵심은 한국을 여행할 때의 이야기이지만 이 책에선 그것도 전부는 아니다. 한글을 소개하는 칼럼답게 일본어와 한글을 여러 각도로 살펴보는 부분도 많이 있다. 일본어는 명사의 천국, 한국어는 의성어와 의태어의 천국. 한글의 유난한 존칭어들. 그 속에서 빠뜨리지 않는 한글의 독특한 매력들을 그녀의 꼼꼼한 시선으로 살펴본다. 또 일본인이기에 외국인의 입장에서 본 한글의 오묘함을 지적한 것도 재미있었는데 '네'와 '예'의 차이와 그 구별은 나도 아하~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여행길에서 겪은 갖가지 에피소드들도 풋풋했고 늦깍이 한글에 대한 그녀의 눈부신 열정이 지금 나의 나태한 삶을 뒤돌아보게 하였다.
아.. 그녀는 시인이였다.
그래서 이 글들이 그토록 섬세하였고 작가는 소녀였구나.
아마도 노리코씨는 한글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이토록 섬세하고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좋은 기회가 생겨 (노력하면 생기겠지만...) 외국어를 배우는데 강력한 멘토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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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텔 2010-11-02 공감(0) 댓글(0)
Thanks to
공감
특별한책~^^*
새로운 책일것 같아 아주 기대했던..^^* 사실 일본 여성이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여행한 여행기일까?? 했었는데~~ 아름다운 한글에 대한 감탄을 적은책이더라~~ 우리 한글이 아름다운건 알고 있었지만.. 더 깊이 알게되어 너무 좋았던 책!!!!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보는 우리나라에 대한 느낌을 살짝 알게되어 재미있었다~
나!! 2010-11-12 공감(0) 댓글(0)
원제 : ハングルへの旅
8.0100자평(2)리뷰(4)
232쪽
ハングルへの旅 (朝日文庫) (文庫)
책소개
공선옥 소설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시로 전후 일본 문단을 사로잡은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그녀의 눈에 비친 한국인, 한국문화, 한국어 이야기.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이 흔치 않던 시절. 시인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던 한국어 배우기에 나서고, 윤동주 시인과 무용가 최승희 · 까치 · 무궁화 · 장독대 등 한국 문화를 이루는 갖가지 아이콘들을 섭렵해 가며 한글의 매력과 풍취에 빠져든다.
아직 한국 곳곳에 반일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던 시절. 그녀가 타자로서 보고 느낀 한국의 언어와 문화, 풍속은 어떤 모습일까? ‘반갑지 않은 일본인’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표정은? 근대와 현대의 풍경이 상존하던 한국의 70년대, 다듬어지지 않은 한국인 특유의 풍취와 멋, 다감한 모습들이 시인의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진다.
목차
1. 한글과의 행복한 씨름
왜 하필 한국어냐고요?
‘조선이냐 한국이냐’, 나라 명칭에 대한 인식 차이
내 인생 최고의 스승, 김유홍 선생님
한국어 학당의 1세대 개척자들
한국어를 배우는 ‘유별난’ 일본인
2. 일본어와 한글 사이
한글의 독특한 매력과 저력
한국어는 일본어에 비해 억양이 단조롭다?
삼국 삼색, 한자 독음의 삼국지
‘밥’과 ‘진지’의 차이
일본어는 명사의 천국
한국어는 의성어와 의태어의 천국
일본 사투리와의 묘한 앙상블
‘이모’, 연인의 다른 이름
‘당신’일까 ‘선생님’일까
3. 일상 속 한국어 염탐기
“북두칠성이 앵돌아졌다?”
깜찍하고 기발한 생활 속 일상어들
가을날의 언어 축제, 한글날
4. 여행길에 마주친 풍경
대전에서 만난 한 군
부여의 참새
“지금 몇 시예요?”
스트레스 해소에도 남녀유별!
식사는 ‘푸짐하게, 절도 있게, 신명나게’!
마늘과 김치, 잡채의 비밀
5. 역사에 깃든 한국문화의 표상들
그칠 줄 모르는 스테미나의 꽃, ‘무궁화’
칠석의 전설, ‘까치’
생활에 스민 미학 정신, ‘멋’
8.15와 6.25
한국의 흙이 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비운의 청년 시인,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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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젊어 요절한 시인에게는 특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 젊음이나 순결을 그대로 동결시킨 것 같은 맑고 깨끗함이 후세의 독자까지 매료시켜 항상 수선화와 같은 좋은 향기가 풍긴다. 요절이라고 하지만, 윤동주는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 바로 반 년 전, 만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처음에는 릿쿄대학 영문과에 유학, 이윽고 도지샤대학 영문과로 적을 옮겼고, 독립 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시모가모 경찰에 붙잡혀 후쿠오카로 보내졌다.
거기서 매일 정체 모를 주사를 맞다가 죽기 직전, 모국어로 어떤 말을 큰 소리로 외친 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 말이 무엇인지, 일본인 간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동주 씨는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큰 목소리로 외치다가 절명하셨습니다” 라는 증언은 남았다. 말하자면 일본 검찰의 손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통한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 시인 가까이에 다가설 수 없을 것이다. 윤동주는 일본인 스스로 그 죽음의 전모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에 나도 조금씩 윤동주의 시를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9년째가 되는 1984년에 이취향 씨에 의해 그의 시 전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완역되었다.
내 의욕은 꺾였지만, 이취향 씨의 훌륭한 번역과 연구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스러운 동요까지 일본어로 읽을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뻤다. 윤동주의 원시를 아는 사람은 예사가 아닌 노작(勞作)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윤동주의 배경을 알기 위해 철저하게 발로 걷고 조사한 그 정열에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그가 유학했던 도쿄, 교토, 후쿠오카 형무소 등 그 족적을 거슬러 올라가며 80대가 된 전직 특별 고등 형사와도 만나는 등 모든 노력을 동원했지만 끝내 옥사의 진상을 밝혀낼 수 없었다고 적고 있다. 안타깝지만, 전모를 밝히고자 했던 그 실증 정신은 신뢰할 수 있다. 언젠가는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증거를 찾아 명료해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다. 이취향 씨가 보았던 곳, 조사하는 과정에서 느낀 일본 검찰의 높은 벽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윤동주의 죽음은 40여 년 전의 일이다. 왜 그렇게 비밀주의, 은폐주의로 일관하는 것일까.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진지한 연구자에게는 자료를 더욱 많이 공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5장. 역사에 깃든 한국문화의 표상들, 「비운의 청년 시인, 윤동주」 中에서
- 215~217p 접기
고대어가 남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고대어 그 자체가 이웃 나라 말과 자매어였다고도 할 수 있다. 언제 분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 조몬 시대라고도 야요이 시대라고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확실히 알 수 없는 모양이다. 그저 쇼나이 지방뿐 아니라 이즈모, 호쿠리쿠, 에치고, 데와, 아키타, 쓰가루 등 동해 부근의 지방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이웃 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는 듯하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지만, 의외로 보수적인 측면도 있다. 특히 방언에서 그 보수성을 찾아볼 수 있는데, 도호쿠의 쇼나이 사투리를 벗어나, 다른 지방과 대비한 부분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한글 일본 방언 일본어 의미 사용 지역
-줘 얏테, 쵸 해줘 나고야
벌다 보루, 봇타나 (돈을) 벌다 각지
달리다 타리이, 후다루이 기력이 없다, 따분하다 나가노, 기후, 아이치
마려워 시코마루, 시코마리따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 아이치, 시즈오카, 나가사키, 이와테
안기다 안키다 마음이 편하다 미카와
총각 총가아 젊은 독신남 머리 모양인 ‘총각(?角)’의 음. 방언이 아 닌 공통어인지도 모른다.
바보 아호 바보 각지
언어학의 엄밀한 음운 법칙에 비춰 보면, 일본어와 이웃 나라 말이 대응되는 경우는 거의 200개 정도밖에 없다고 해서, 그 적은 수에 놀라게 되지만, 일본 각지의 방언을 포함한 대비라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규슈 사투리나 간사이 사투리에서도 많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귀에 익숙한 말이 아니라 아무래도 내 안테나에는 걸리지 않고, 내가 자란 미카와 지방, 어머니 쪽 고향인 도호쿠 사투리만이 삐, 삐, 삐 하고 반응해 왔다. 상당수가 우연의 일치,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같은 뿌리라고 짐작하게 하는 것들도 있다.
초보의 방담을 겁도 없이 적는 것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 언어는 곧 모두의 공유물이며, 언어학자만이 다룰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좀 더 제멋대로 떠들기도 하고 논하기도 해도 된다, 하는 생각이 잠복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 나라 말에도 사투리가 있고, 사전에도 실리지 않은 이들을 포함해서 생각하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에메랄드 광맥을 어렴풋하게나마 발견한 것 같은 두근거림을 느낀다.
-2장. 일본어와 한글 사이,「일본 사투리와의 묘한 앙상블」 中에서
- 93~94p 접기
한국의 여자들은 밥상에 앉을 때, 무릎을 세우고 앉는 것이 정식이기 때문에,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밥을 먹는다. 치마 아래에는 바지 모양의 속옷을 입고 있고, 치마는 풍성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조금도 지장이 없지만, 청바지를 입고서도 무릎을 세운 자세로 식사를 한다. 롱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성이 많은데, 이것도 평소의 식사 양식과 ... 더보기
불고기가 워낙 유명한 탓에 한국 요리는 고기 요리가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상 메뉴는 채소 요리가 중심이고, 요리 방법도 다양하다.
김치는 절임 음식인데, 마늘, 고춧가루, 새우젓, 멸치젓, 생굴, 배, 채 썬 무, 밤, 대추 등을 함께 버무려 배춧잎 사이에 이 양념을 채워 만든다. 자연의 발효 작용을 이용해 각종 비타민과 유산균이 합성되는 구조이다. 소금이나 된장에 살짝 절인 것과는 전혀 다른, 복잡한 맛의 하모니를 이룬다.
가정마다 김치를 담그는 방법이 제각각이고 그만큼 맛도 천차만별인 모양인데, 고춧가루의 강력한 펀치에 정신을 빼앗겨 버리는 까닭일까, 먹어보고 그 특징이나 차이를 판별하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김치 맛에 까다로운 사람들도 많아서 제 어머니가 담가야 진짜 김치, 다른 건 가짜 김치라고 호언하는 남성도 많았다. 어머니의 손맛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잡곡의 활약도 눈부시다. 밤, 수수, 피, 보리, 대두, 팥 등은 밥이나 죽, 떡, 과자 등에 풍부하게 쓰인다. 대용식의 하나로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맛을 조화롭게 활용해 밥을 짓는다. 오곡밥이 그 예로, 쌀로만 밥을 받드는 것이 아니라 오곡을 골고루 집어넣어 영양과 풍미를 배가시킨 게 특징이다.
서울에는 동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이라는 큰 시장이 있고, 이곳의 활기는 압도적이어서 눈이 핑핑 돌 정도다. 오곡을 비롯해 어패류, 건어물류, 육류, 돼지머리, 채소류, 의류, 생활에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춰져 있다. 말하는 가격대로 사는 건 바보인 듯, 가격 흥정은 필수이다. “깎아주세요” 하고 에누리를 시도하면 대개는 값을 깎아준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그렇게 비싸면 사지 않겠어요” 하는 표정으로 손님이 떠나려 하면 가게 주인이 먼저 에누리를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은 꽤 볼 만한데, 쌍방이 서로 이 과정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럭비처럼 서로 부딪치고 에누리를 하는 동안 시장에는 활기가 넘쳐흐르고 사람 냄새 자욱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 4장. 여행길에 마주친 풍경, 「마늘과 잡채, 김치의 비밀 」中에서
- 159~161p 접기
˝어학을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슬픔의 밑바닥에서 재기하려 했어요. 덕분에 이럭저럭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단어 하나를 외우는 데도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대상을고를 때 독어로 할까, 한글로 할까 고민했는데 지금은 이웃 나라의 언어를 선택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쉰 살에 남편과 사별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답하기도 하는데 이 말에도 거짓은 없다. 접기 - nwi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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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르한 울림을 안겨주는 외국어 공부
- 이미령 (번역가, 책 칼럼니스트)
8.0100자평(2)리뷰(4)
232쪽
ハングルへの旅 (朝日文庫) (文庫)
책소개
공선옥 소설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시로 전후 일본 문단을 사로잡은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그녀의 눈에 비친 한국인, 한국문화, 한국어 이야기.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이 흔치 않던 시절. 시인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던 한국어 배우기에 나서고, 윤동주 시인과 무용가 최승희 · 까치 · 무궁화 · 장독대 등 한국 문화를 이루는 갖가지 아이콘들을 섭렵해 가며 한글의 매력과 풍취에 빠져든다.
아직 한국 곳곳에 반일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던 시절. 그녀가 타자로서 보고 느낀 한국의 언어와 문화, 풍속은 어떤 모습일까? ‘반갑지 않은 일본인’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표정은? 근대와 현대의 풍경이 상존하던 한국의 70년대, 다듬어지지 않은 한국인 특유의 풍취와 멋, 다감한 모습들이 시인의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진다.
목차
1. 한글과의 행복한 씨름
왜 하필 한국어냐고요?
‘조선이냐 한국이냐’, 나라 명칭에 대한 인식 차이
내 인생 최고의 스승, 김유홍 선생님
한국어 학당의 1세대 개척자들
한국어를 배우는 ‘유별난’ 일본인
2. 일본어와 한글 사이
한글의 독특한 매력과 저력
한국어는 일본어에 비해 억양이 단조롭다?
삼국 삼색, 한자 독음의 삼국지
‘밥’과 ‘진지’의 차이
일본어는 명사의 천국
한국어는 의성어와 의태어의 천국
일본 사투리와의 묘한 앙상블
‘이모’, 연인의 다른 이름
‘당신’일까 ‘선생님’일까
3. 일상 속 한국어 염탐기
“북두칠성이 앵돌아졌다?”
깜찍하고 기발한 생활 속 일상어들
가을날의 언어 축제, 한글날
4. 여행길에 마주친 풍경
대전에서 만난 한 군
부여의 참새
“지금 몇 시예요?”
스트레스 해소에도 남녀유별!
식사는 ‘푸짐하게, 절도 있게, 신명나게’!
마늘과 김치, 잡채의 비밀
5. 역사에 깃든 한국문화의 표상들
그칠 줄 모르는 스테미나의 꽃, ‘무궁화’
칠석의 전설, ‘까치’
생활에 스민 미학 정신, ‘멋’
8.15와 6.25
한국의 흙이 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비운의 청년 시인, 윤동주
---------------------------
책속에서
젊어 요절한 시인에게는 특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 젊음이나 순결을 그대로 동결시킨 것 같은 맑고 깨끗함이 후세의 독자까지 매료시켜 항상 수선화와 같은 좋은 향기가 풍긴다. 요절이라고 하지만, 윤동주는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 바로 반 년 전, 만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처음에는 릿쿄대학 영문과에 유학, 이윽고 도지샤대학 영문과로 적을 옮겼고, 독립 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시모가모 경찰에 붙잡혀 후쿠오카로 보내졌다.
거기서 매일 정체 모를 주사를 맞다가 죽기 직전, 모국어로 어떤 말을 큰 소리로 외친 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 말이 무엇인지, 일본인 간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동주 씨는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큰 목소리로 외치다가 절명하셨습니다” 라는 증언은 남았다. 말하자면 일본 검찰의 손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통한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 시인 가까이에 다가설 수 없을 것이다. 윤동주는 일본인 스스로 그 죽음의 전모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에 나도 조금씩 윤동주의 시를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9년째가 되는 1984년에 이취향 씨에 의해 그의 시 전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완역되었다.
내 의욕은 꺾였지만, 이취향 씨의 훌륭한 번역과 연구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스러운 동요까지 일본어로 읽을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뻤다. 윤동주의 원시를 아는 사람은 예사가 아닌 노작(勞作)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윤동주의 배경을 알기 위해 철저하게 발로 걷고 조사한 그 정열에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그가 유학했던 도쿄, 교토, 후쿠오카 형무소 등 그 족적을 거슬러 올라가며 80대가 된 전직 특별 고등 형사와도 만나는 등 모든 노력을 동원했지만 끝내 옥사의 진상을 밝혀낼 수 없었다고 적고 있다. 안타깝지만, 전모를 밝히고자 했던 그 실증 정신은 신뢰할 수 있다. 언젠가는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증거를 찾아 명료해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다. 이취향 씨가 보았던 곳, 조사하는 과정에서 느낀 일본 검찰의 높은 벽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윤동주의 죽음은 40여 년 전의 일이다. 왜 그렇게 비밀주의, 은폐주의로 일관하는 것일까.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진지한 연구자에게는 자료를 더욱 많이 공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5장. 역사에 깃든 한국문화의 표상들, 「비운의 청년 시인, 윤동주」 中에서
- 215~217p 접기
고대어가 남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고대어 그 자체가 이웃 나라 말과 자매어였다고도 할 수 있다. 언제 분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 조몬 시대라고도 야요이 시대라고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확실히 알 수 없는 모양이다. 그저 쇼나이 지방뿐 아니라 이즈모, 호쿠리쿠, 에치고, 데와, 아키타, 쓰가루 등 동해 부근의 지방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이웃 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는 듯하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지만, 의외로 보수적인 측면도 있다. 특히 방언에서 그 보수성을 찾아볼 수 있는데, 도호쿠의 쇼나이 사투리를 벗어나, 다른 지방과 대비한 부분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한글 일본 방언 일본어 의미 사용 지역
-줘 얏테, 쵸 해줘 나고야
벌다 보루, 봇타나 (돈을) 벌다 각지
달리다 타리이, 후다루이 기력이 없다, 따분하다 나가노, 기후, 아이치
마려워 시코마루, 시코마리따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 아이치, 시즈오카, 나가사키, 이와테
안기다 안키다 마음이 편하다 미카와
총각 총가아 젊은 독신남 머리 모양인 ‘총각(?角)’의 음. 방언이 아 닌 공통어인지도 모른다.
바보 아호 바보 각지
언어학의 엄밀한 음운 법칙에 비춰 보면, 일본어와 이웃 나라 말이 대응되는 경우는 거의 200개 정도밖에 없다고 해서, 그 적은 수에 놀라게 되지만, 일본 각지의 방언을 포함한 대비라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규슈 사투리나 간사이 사투리에서도 많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귀에 익숙한 말이 아니라 아무래도 내 안테나에는 걸리지 않고, 내가 자란 미카와 지방, 어머니 쪽 고향인 도호쿠 사투리만이 삐, 삐, 삐 하고 반응해 왔다. 상당수가 우연의 일치,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같은 뿌리라고 짐작하게 하는 것들도 있다.
초보의 방담을 겁도 없이 적는 것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 언어는 곧 모두의 공유물이며, 언어학자만이 다룰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좀 더 제멋대로 떠들기도 하고 논하기도 해도 된다, 하는 생각이 잠복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 나라 말에도 사투리가 있고, 사전에도 실리지 않은 이들을 포함해서 생각하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에메랄드 광맥을 어렴풋하게나마 발견한 것 같은 두근거림을 느낀다.
-2장. 일본어와 한글 사이,「일본 사투리와의 묘한 앙상블」 中에서
- 93~94p 접기
한국의 여자들은 밥상에 앉을 때, 무릎을 세우고 앉는 것이 정식이기 때문에,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밥을 먹는다. 치마 아래에는 바지 모양의 속옷을 입고 있고, 치마는 풍성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조금도 지장이 없지만, 청바지를 입고서도 무릎을 세운 자세로 식사를 한다. 롱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성이 많은데, 이것도 평소의 식사 양식과 ... 더보기
불고기가 워낙 유명한 탓에 한국 요리는 고기 요리가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상 메뉴는 채소 요리가 중심이고, 요리 방법도 다양하다.
김치는 절임 음식인데, 마늘, 고춧가루, 새우젓, 멸치젓, 생굴, 배, 채 썬 무, 밤, 대추 등을 함께 버무려 배춧잎 사이에 이 양념을 채워 만든다. 자연의 발효 작용을 이용해 각종 비타민과 유산균이 합성되는 구조이다. 소금이나 된장에 살짝 절인 것과는 전혀 다른, 복잡한 맛의 하모니를 이룬다.
가정마다 김치를 담그는 방법이 제각각이고 그만큼 맛도 천차만별인 모양인데, 고춧가루의 강력한 펀치에 정신을 빼앗겨 버리는 까닭일까, 먹어보고 그 특징이나 차이를 판별하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김치 맛에 까다로운 사람들도 많아서 제 어머니가 담가야 진짜 김치, 다른 건 가짜 김치라고 호언하는 남성도 많았다. 어머니의 손맛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잡곡의 활약도 눈부시다. 밤, 수수, 피, 보리, 대두, 팥 등은 밥이나 죽, 떡, 과자 등에 풍부하게 쓰인다. 대용식의 하나로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맛을 조화롭게 활용해 밥을 짓는다. 오곡밥이 그 예로, 쌀로만 밥을 받드는 것이 아니라 오곡을 골고루 집어넣어 영양과 풍미를 배가시킨 게 특징이다.
서울에는 동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이라는 큰 시장이 있고, 이곳의 활기는 압도적이어서 눈이 핑핑 돌 정도다. 오곡을 비롯해 어패류, 건어물류, 육류, 돼지머리, 채소류, 의류, 생활에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춰져 있다. 말하는 가격대로 사는 건 바보인 듯, 가격 흥정은 필수이다. “깎아주세요” 하고 에누리를 시도하면 대개는 값을 깎아준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그렇게 비싸면 사지 않겠어요” 하는 표정으로 손님이 떠나려 하면 가게 주인이 먼저 에누리를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은 꽤 볼 만한데, 쌍방이 서로 이 과정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럭비처럼 서로 부딪치고 에누리를 하는 동안 시장에는 활기가 넘쳐흐르고 사람 냄새 자욱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 4장. 여행길에 마주친 풍경, 「마늘과 잡채, 김치의 비밀 」中에서
- 159~161p 접기
˝어학을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슬픔의 밑바닥에서 재기하려 했어요. 덕분에 이럭저럭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단어 하나를 외우는 데도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대상을고를 때 독어로 할까, 한글로 할까 고민했는데 지금은 이웃 나라의 언어를 선택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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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바라기 노리코 (茨木 のり子) (지은이)
192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46년 도호대학 약학부를 졸업했다. 1950년 무렵부터 시작詩作을 시작하여, 잡지 『시학詩學』 독자투고란에 시를 투고하기 시작해 같은 잡지 신인특집호에 게재되었다. 1953년 가와사키 히로시와 둘이서 동인시지同人詩誌 『노櫂』를 발간했다. 전후戰後, 군국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던 시기에 청춘을 보낸 시인은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시선으로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격렬함과 반골 기질이 내포된 날카로운 시풍을 견지했다. 1976년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여 한국 현대시를 일본에 소개했고, 1991년 『한국현대시선韓國現代詩選』으로 요미우리 문학상(연구·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의 반열에 올랐고, 에세이집 『한글로의 여행』, 시집 『대화』 『보이지 않는 배달부』 『진혼가』 『제 감수성 정도는』 『기대지 않고』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시의 마음을 읽다>,<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여자의 말> … 총 30종 (모두보기)
박선영 (옮긴이)
홍익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현재 출판 기획 및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한글로의 여행》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12종 (모두보기)
Editor Blog
2010년 10월 3주_ 한발 앞서 만나는 인문교양 신간 l 2010-10-11
알라딘 인문, 사회, 과학 분야에서는 '한발 앞서 만나는 인문교양 신간'이란 이벤트를 상시 진행합니다. 매주 담당 MD가 10권 이내의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자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판단으로 누구보다 먼저 좋은 책을 알아보시는 독자께 조금이나마 혜택을 드리고자 마련한 자리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책으로 페이지가 바뀌고 도서별 구매자 선착순 50분께 다음 ...
출판사 소개
최근작 : <나의 문구 여행기>,<나는 미디어 조작자다>,<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등 총 226종
대표분야 : 청소년 인문/사회 8위 (브랜드 지수 76,819점), 청소년 소설 12위 (브랜드 지수 93,77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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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영어도 불어도 아니고 왜, 하필 한글이야?”
잘 나가던 그녀가 한국어에 탐닉하게 된 이유는?
전후 일본 시단을 대표했던 최고의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이바라기 노리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후 세대의 무력감과 상실감을 노래한「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일본의 여성 시인이다. 세계 각국의 문학 교과서에도 수록된 이 시는 2년 전 국내에서 공선옥 소설의 표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전후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몇 안 되는 여성 시인으로, 살아생전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시인으로도 유명했다. 남편과 사별 한 뒤, 자기 치유의 일환으로 한국어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한국문학과 민중예술,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1995년, 윤동주 시인에 관한 그녀의 에세이(본문 214p)가 일본의 국정 교과서(국어 과목)에 실리게 되고, 이를 소재로 한 <윤동주 특집> 프로그램이 NHK TV를 통해 연이어 방송되면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본래는 희곡작가로 문단에 데뷔했던 노리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본격적인 시인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그녀는 일본의 동아시아 식민 지배와 일본 본토에서 일어난 관동대지진 등 각종 비인간적 사건들을 몸소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각인하고 지나친 우경화를 경계하는 민주시인으로서 체제 반성적 시들을 치열하게 쏟아냈다. 특히, 63세가 되던 1999년에 출간한 시집『기대지 말고倚りかからず』는 일본 사회의 반민주적인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강렬하게 환기시키며 기록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체제 반성적 지식인으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한국문학의 소개와 번역에도 힘을 쏟아 1970년대부터 김지하와 안우식, 홍윤숙 시인 등 한국 문단의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1995년에는 『한국현대시선』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명시들을 번역 소개했는데, 이 공로로 요리우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에 출간된『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은‘한글’을 소재로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그녀의 칼럼을 모은 것으로, 1986년 최초 출간되어 지금까지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그녀가 들려주는 한국어, 한국문화, 한국인 이야기
이 책은 그녀가 한글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시인으로서 감응하게 된 한국문화 전반에 관한 에세이다. 언어를 다루는 시인으로서 느끼게 된 한글의 매력과 그 저변에 깔린 한국인의 정서와 습속, 풍토들을 감수성 넘치는 필체로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언어를 다루는 장인답게‘딸기코’와‘치맛바람’,‘바람둥이’등등 신선한 상상력과 재기가 넘치는 한국의 일상어들을 수집해 가며 그 매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단어의 뜻에 담긴 문화적인 맥락들을 더듬어 보며 일본의 사례와 견주어 보기도 한다(본문 107~119p). 그렇게 한국어에 탐닉하던 시인의 욕심은 어느 순간 취향을 넘어 전문적인 분야에까지 나아간다. 무심코 흘려들었던 일본 사투리에서 한국어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 쓰임새를 메모해 고서를 뒤적이기도 한다(본문 90~94p).
언어에 탐닉하던 시인의 욕심은 한국 본토 여행을 통해 한국의 문화 전반으로 보폭을 넓혀 들어간다. 단어를 매만지던 섬세한 시선은 일상 곳곳에까지 스며들어가고, 한국인의 눈에는 별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풍경도 시인의 눈에는 하나의 문화적 기호로 포착된다. 자기 그릇이 아닌 스테인리스 식기가 유행하는 한국의 식당 풍경에서 외세의 침략에 빈번히 시달렸던 한반도의 역사를 읽어내고(본문 156~157p), 할머니들이 모여 앉은 고즈넉한 농촌 풍경에서 경어체 사용에 관한 사회적 배경과 관습을 읽어내는 식이다(본문 78~81p).
한국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탓일까. 다소 감상적인 느낌도 없지 않지만, 타자의 눈에 비친 한국문화의 일상 풍경을 훑어보는 맛이 쏠쏠하다. 시인이 묘사하는 한국인들은 뜨거움과 호방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일본인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특유의 정열적인 모습, 이를테면 박력 있으면서도 붙임성 좋은 한국의 사내들을 한껏 추켜세우거나, 노랫소리 그득한 가정집의 저녁 만찬을 묘사하며 그 독특한 호기로움을 예찬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이 지닌 한국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일본에서 온 이방인을 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매번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저자는 한국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이따금 일본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계심과 거부감, 선입견을 맞닥뜨리고 섭섭해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섭섭함을 스스로 희석시켜 가는 과정에서 일본 일방의 역사적 과오를 복기한다. 저자의 이런 반성적 사유는 전후 한국문학의 지형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이어지고 이는 곧 한국과 한국문화, 한국인에 대한 통찰력 있는 관찰로 연이어진다. 독자들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된 시인의 한국어 배우기가 역사적인 디테일을 섭렵해 가며 한층 더 공적인 차원으로 그 결을 확대해 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8.0
한글과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느낌을 적은 책. 한글의 매력을 소개하고 한국의 몇 가지 문화를 알린다. 윤동주 시인과 최승희를 좋아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hsislee 2013-10-04 공감 (0) 댓글 (0)
작가가 풀어내는 한글 이야기에 작가가 갖고 있는 정성과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프르네피 2015-04-20 공감 (0) 댓글 (0)
우리말을 배워줘서 고마워요
왜 하필 한국어야?
저자인 이바라기 노리코가 한국어를 배운다고 했을 때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왜 하필 한국어냐고.
질문을 받은 때 저자가 딱히 할 수 있는 대답은 없었다고.
한두 가지가 아닌 복합적인 동기에서였기 때문이기에 요즘에는 이렇게 답한단다.
“이웃나라 말이잖아요.” 그런데 답을 들은 대다수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니
그들에겐 아직도 우리가 참으로 먼 나라이기만 한가보다.
한글이 있어 행복한 일본인 작가,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시로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으며 그 입지를 굳건히 한
여류시인 이바라기. 약학부를 졸업한 그녀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연극을 보고 문학의 길을 걸었다는 것도 참 이색적이다.
아마도 저자에게 있어 문학은 그녀 자신의 운명이지 않았을까?
그녀가 한국어, 한글에 관심의 싹이 튼 것은 참으로 오래전 일이라고 한다.
아마도 열다섯 쯤? 본격적으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그 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1974년. NHK 국제국 아나운서이자 재일 한국인 김유홍 선생이 가르치는
야학에서라고 한다. 대학원 교육도 아니고 야학에서 조선어 강좌를 가르치는 이에게
「내 인생 최고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을 걸었다면 저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내게도 이런 스승이 있었다면 외국어 하나쯤은
정말 잘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김유홍 선생을 만나 한글을 배운 이후로도 10여년의 시간동안 한글을 공부했다면
얼마나 깊이 한글을 사랑하고, 그로 인해 저자가 행복해했을 그 심정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다. 감동할 지경으로.
우리말을 배워줘서 고마워요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나서인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마주친
한국인 아주머니가 저자가 한국어를 배운다는 걸 알고 그녀에게 한 말이다.
그 아주머니의 마음에 공감 한 표를 던진다. 나 또한 한국어를 잘 하는
외국인들을 보면 마냥 기특(?)하고 흐뭇해서 고맙다고 말하고픈 심정이니까.
뜨개질처럼 재미있고 따뜻한 말, 한글
저자와 함께 한글을 배우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글을 마치 편물(뜨개질)기호 같은 문자야.”
코 늘림, 코 줄임, 교차뜨기 등 뜨개질처럼 한글도 모음에 막대기가 하나인가
둘인가, 왼쪽을 보는가, 오른쪽을 보는가에 따라 전혀 뜻이 달라지기도 하니
그럴 만도 하겠다. 갑자기 가요의 노래가사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참 센스 있는 표현이다. 그리고 한국의 우리, 정이라는 말은 독특한 의미라고 했다.
물론 외국에도 our가 있고, 정은 한자로 情이지만 그 뉘앙스는 외국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이라고 하니 한국, 한글만의 정서가 담겨서이지 않을까.
우리가 더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말, 한글
한국 사람들은 외국어에 참 열정적으로 시간과 노력, 자금을 들여 투자한다.
특히 영어를. 그 다음으로는 중국어, 일본어가 주 대세를 이룬다.
나 또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왜 하필 일본어냐고.
아니 요즘 일본어를 배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이고
일본어 학원은 북새통을 이루며, 일본어 교재는 불티난 듯 팔린다.
씁쓸하다. 어디 일본어뿐이랴.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 사이에는
각종 어학원 전단지가 가득 끼워져 있다. 성인은 물론 유아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상대로 한 학원까지. 한글은 등한시 된 지 오래다.
얼마 전 버스에 함께 탄 학생들의 입에선 욕지거리와 함께 외계어, 신조어가
난무해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글을 제대로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요즘 어린 학생들 사이에선
일본인 작가마저도 사랑한 우리의 언어가 그렇게 짓밟히고 있다.
저자는 단순히 호기심에 의해 오랜 시간 한글을 배운 것이 아니다.
한글은 우리 한국이라는 그릇에 담긴 우리 고유의 것이며, 그 얼이 담긴
한글을 그리고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한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책을 읽는 내내
자숙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고마웠다. 개인적으로 한글을 참 좋아하고
나름대로 한글을 제대로 알기 위해 사전까지 찾아가며 열심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처럼 열심이었냐고 물으면 머뭇거려진다.
이제 이바라기 노리코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언어, 한글을
더 깊이 그리고 더욱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겠다.
나도 이 가을 한글로의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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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 2010-11-05 공감(5) 댓글(0)
금서지정요망 - 친일파(?)가 될 수 있으니ㅋㅋ
일본의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그녀는 한국을 사랑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시를 번역했다. 그의 책 「한글로의 여행」을 통해, 일본어와 한국어, 일본 문화와 한국 문화에 대해 섬세한 비교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일본인이 나쁜 게 아니라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 위정자가 나빴을 뿐이라는 묘한 친일(?)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모국어(일본어)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의 언어(한국어)를 사랑하는 일본시인을 만나는 건 흔치 않은 기쁨이다.
* 1917년생 윤동주가 1926년생 이바라기 노리코와 사귀었다면 혹시 변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본다ㅋㅋ
<밑줄>
한국의 여류 시인 홍윤숙 씨가 일본에 와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와 긴자에서 뵌 적이 있다. 나와 거의 같은 세대의 분으로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고 내 시도 많이 읽으셨는데, 내 쪽에서는 홍씨의 시를 전혀 몰랐다.
“일본어를 정말 잘하시네요!”
그 유창함에 감탄하자, 그녀가 이렇게 대꾸했다.
“학창시절에 줄곧 일본어 교육을 받았으니까요.”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내 불찰이 부끄러웠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했던 36년간, 언어를 말살하고 일본어 교육을 강제한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 청초하고 아름다운 한국 여인과 직접 연결 짓지 못한 것은, 내가 아직 그 아픔까지 함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홍씨 역시 1945년 이후, 자신들의 모국어를 다시 배운 세대이다. 그녀를 보면서 새삼 일본인으로서의 죄책감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일본사람들이 나서서 식은땀, 진땀 뚝뚝 흘리며 일심불란하게 한글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차례라고 통감했던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한글을 배우자, 홍씨와의 이런 경험도 한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 중 하나이다.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어의 이런 특징을 역이용, 수상한 자를 불러 세워 “55전이라고 말해 봐”하고 시키고선, “코쥬 고젠 [kozyuu-gozen]”이라고 대답한 자를 붙잡아 학살한 일은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불쾌한 기억이다.
‘關係’라는 한자는 ‘관계’라고 읽는다. 일본에서도 옛날에는 ‘관케이’라고 발음했던 모양으로, 미키 다케오 전 수상 같은 사람은 뻔질나게 연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으로 ‘칸케이’라고 발음하는 등 음의 구조가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
원조인 중국에서도 한자의 극단적인 약자화가 진행되고 있는 터라 이러다가는 자국의 고전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될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건 아닐까, 깊이 우려될 정도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중국과 조선 모두 과거제도에 오랫동안 시달려 한자가 덜덜 떨릴 정도로 싫어져 버린 것일까? 근대화에 뒤쳐진 원인이 번거로운 한자 공부 때문이라고 오해한 것일까. 일본은 한자를 받아들였으되, 과거제도는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거부 반응에서 한결 자유로운 것일까?
가혹한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자신들의 언어를 지켜 냈다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훌륭한 일이다. 내세워도 될 일임이 틀림없다. 만주족을 보라. 만주족은 이제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그것은 만주어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청을 세운 만주족은 한문화, 한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동화되었고, 만주어도 완전히 그 속으로 흡수되면서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전후 얼마 되지 않아 일본에서도 “일본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를 쓰자”거나 “한자와 가나를 버리고 로마자를 쓰자”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섬나라였기 때문에 그리 고생을 하지 않고 언어를 순도를 유지해 올 수 있었지만, 만약 이웃 나라처럼 기원전부터 대국에게 직접 대습격을 받는 입장이었다면 과연 일본어는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고생하지 않았던 만큼 모국어를 생각하는 마음은 일본이 이웃 나라에 비해 훨씬 덜할지도 모른다...... 이 지구 어딘가에 ‘모국어의 날’을 만들어 기념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사실 내가 윤동주의 시를 읽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의 사진에 있다. 이렇게 맑고 단아한 얼굴의 청년이 어떤 시를 썼을까에 대한 흥미, 고백하자면 조금은 불순한 동기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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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 2016-11-15 공감(0) 댓글(0)
순수한 시선으로 한글을 본 어느 일본인
저자 이바라기 노리코씨는 고인이 되었지만 책 속의 그녀는 왠지 소녀같이 느껴진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향한 조선의 한글.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읽자니 역시 나도 부끄러워진다.
이 책은 그녀가 아사히신문에 기고했던 칼럼들을 모아서 엮은 것이다.
그녀가 한글을 배우게 된 동기는 여러 가지이다. 약 30~40년 전만해도 일본에서 한글을 배우는 이는 매우 드물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기관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절 일본에선 대한민국, 남한, 한국을 제치고 '조선'이란 국명이 많이 쓰였다고 한다. 시대상을 반영한 신문의 칼럼들이라 그런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어렸을 적 김소운 씨의 '조선민요선'에 반해버린 노리코씨. (나는 김소운씨를 모른다.)
그녀는 한글에만 푹 빠진 게 아니라 한국이란 나라의 모든 것에 반한 일본인이다. 음식부터 시작해 불상, 도자기, 떨어지는 낙엽까지도 사랑할 것 같은 그녀의 이야기의 핵심은 한국을 여행할 때의 이야기이지만 이 책에선 그것도 전부는 아니다. 한글을 소개하는 칼럼답게 일본어와 한글을 여러 각도로 살펴보는 부분도 많이 있다. 일본어는 명사의 천국, 한국어는 의성어와 의태어의 천국. 한글의 유난한 존칭어들. 그 속에서 빠뜨리지 않는 한글의 독특한 매력들을 그녀의 꼼꼼한 시선으로 살펴본다. 또 일본인이기에 외국인의 입장에서 본 한글의 오묘함을 지적한 것도 재미있었는데 '네'와 '예'의 차이와 그 구별은 나도 아하~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여행길에서 겪은 갖가지 에피소드들도 풋풋했고 늦깍이 한글에 대한 그녀의 눈부신 열정이 지금 나의 나태한 삶을 뒤돌아보게 하였다.
아.. 그녀는 시인이였다.
그래서 이 글들이 그토록 섬세하였고 작가는 소녀였구나.
아마도 노리코씨는 한글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이토록 섬세하고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좋은 기회가 생겨 (노력하면 생기겠지만...) 외국어를 배우는데 강력한 멘토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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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텔 2010-11-02 공감(0) 댓글(0)
Thanks to
공감
특별한책~^^*
새로운 책일것 같아 아주 기대했던..^^* 사실 일본 여성이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여행한 여행기일까?? 했었는데~~ 아름다운 한글에 대한 감탄을 적은책이더라~~ 우리 한글이 아름다운건 알고 있었지만.. 더 깊이 알게되어 너무 좋았던 책!!!!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보는 우리나라에 대한 느낌을 살짝 알게되어 재미있었다~
나!! 2010-11-1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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