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북한의 시장화와 비핵화 - 중앙일보
북한의 시장화와 비핵화
[중앙일보] 입력 2019.06.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의 북한 변화를 생생히 말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으로 표류해 온 북한 어부와 어선을 조사하던 일본 공무원은 놀랬다고 한다. 선장은 자신이 돈을 주고 그 배를 구입했으며 선원도 자신이 모집했다고 한사코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경제에서 어선은 국가 소유며 개인이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된다고 알고 있었던 공무원이 계속 캐물었지만 그의 진술은 한결 같았다. 결국 북한 경제전문가의 설명을 듣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어선을 국가 기관에 등록만 하면 개인이 살 수 있고 선장이 선원까지 모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시장은 삶의 터전 독립심의 학교
시장화, 비공식 사유화 및 제재로
핵의 정치·경제적 기회비용 급증
시장은 삶의 터전 독립심의 학교
시장화, 비공식 사유화 및 제재로
핵의 정치·경제적 기회비용 급증
핵 개발은 가장 어리석은 투자
북한의 지방 고위관료를 만난 외국 공무원도 놀랬다고 한다. 논의하기로 한 주제는 별로 꺼내지도 않고 출장 기간 내내 돈 벌 궁리로 사업 이야기만 하더라는 것이다. 제재를 회피하면서 이윤 마진도 높은 아이템을 찾기만 하면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며 이런 저런 사업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한다. 그 적극성을 보니 세계에서 기업하려는 열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북한 같다며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방정부를 비롯해 중앙의 재정 지원을 받기 어려운 기관은 자력갱생할 수밖에 없다. 기관 소유 기업을 통해 각종 사업을 벌이고 여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월급도 준다. 물론 수입의 상당 부분은 권력층의 몫이다.
이런 변화는 당연히 주민들의 생각을 바꾼다. 북한 중앙당 강연회의 한 연설은 ‘인민들이 돈맛에 물들어간다’며 비판하고 있다. 다음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 주민에게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시대 중 가장 살기 좋았던 때가 언제냐’라고 물었더니 배급이 잘 나왔던 김일성 때가 제일 좋았다는 것이다. 그럼 그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지 물었더니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면서 ‘시장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좋다’고 답했다 한다. 이와 같이 북한 주민에게 시장은 경제생활의 터전이자 자신을 독립된 개인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학교다.
시장화와 이에 따른 주민 의식 변화는 김정은의 권력 유지에 큰 도전이다. 애덤 스미스는 18세기 영국을 ‘상점 주인의 나라’라고 불렀다. 정치권력이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이제 인구 대비 비공식 상인이 가장 많은 나라는 북한일 듯하다. 제재 이전엔 북한 전역이 장사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국유기업과 국가 기관이 소유하던 재산도 암암리에 개인에게 팔렸다. 돈주는 아파트를 신축하여 개인분양하고 소규모 광산까지 매입하여 광물을 채굴, 수출했다. 또 이들은 뇌물을 고리로 관료와 이익 카르텔을 만들었다. 국가와 나를 분리하기 시작한 주민, 그리고 돈주와 관료의 관경(官經)유착은 김정은의 권력에 심각한 부담이 됐다.
김정은은 마음이 급했다. 속히 핵과 미사일을 완성하고 경제도 살리면 자신의 권력이 공고해 질 것으로 판단했을 법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실용적인 경제정책을 폈다. 장세를 부과하여 일부 시장을 공식화하고 기업 경영의 자율권도 더 부여했다. 협동농장에 포전담당제도 도입했다. 이전처럼 모든 농장원이 공동으로 경작하고 공동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2~5가구가 한 분조가 돼 배분받은 토지를 경작한 다음 수확물 중 일정 비율을 그 분조가 가져간다. 그러나 이 정책들도 사회주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기업의 소유권은 여전히 국가에 있으며 협동농장의 가족농화도 도입되지 않았다. 개혁 초기에 헌법을 수정하여 사(私)경제를 인정한 중국·베트남과 대비되며 바로 이것이 북한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정은의 가장 큰 실책은 시장과 무역이 북한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한 채 핵 개발을 추진한 것이다. 대북 제재는 이 아킬레스건을 파고들어 핵과 경제를 완전한 대체재로 만들었다. 북한이 핵·미사일 폐기를 거부하면 경제가 망하고 경제를 살리려면 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정은은 하노이 회담에서 부분적 핵 폐기와 완전한 제재 해제를 교환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앞으로도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제재를 풀려 할 것이다. 북한은 제재 해제보다 체제 보장을 더 중시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젠 이 둘을 분리할 수 없다. 경제를 살리지 않고선 돈맛을 본 권력층과 주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고 그러면 체제 안전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핵을 일부 보유한 상태로 제재 해제에 성공한다 해도 거기가 끝은 아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시장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가 설파한 대로 상업과 자유는 함께 자란다. 시장은 사회주의 제도를 잠식하며 주민의 가치관을 바꾸고 관료를 포섭한다. 시장과 무역은 함께 커지면서 국제 경제와 얽혀진다. 이 상황에선 핵이 있어도 별 쓸모가 없다. 핵사용의 대내외적 기회비용이 너무 높아진 까닭이다. 제재가 있는 상태에서 핵·경제 병진은 전쟁과 평화의 병진처럼 불가능하다. 제재가 풀리면 시장이 핵을 무력(無力)하게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 시장이 들어간 북한에 핵 개발만큼 어리석은 투자는 없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북한의 시장화와 비핵화
이런 변화는 당연히 주민들의 생각을 바꾼다. 북한 중앙당 강연회의 한 연설은 ‘인민들이 돈맛에 물들어간다’며 비판하고 있다. 다음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 주민에게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시대 중 가장 살기 좋았던 때가 언제냐’라고 물었더니 배급이 잘 나왔던 김일성 때가 제일 좋았다는 것이다. 그럼 그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지 물었더니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면서 ‘시장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좋다’고 답했다 한다. 이와 같이 북한 주민에게 시장은 경제생활의 터전이자 자신을 독립된 개인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학교다.
시장화와 이에 따른 주민 의식 변화는 김정은의 권력 유지에 큰 도전이다. 애덤 스미스는 18세기 영국을 ‘상점 주인의 나라’라고 불렀다. 정치권력이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이제 인구 대비 비공식 상인이 가장 많은 나라는 북한일 듯하다. 제재 이전엔 북한 전역이 장사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국유기업과 국가 기관이 소유하던 재산도 암암리에 개인에게 팔렸다. 돈주는 아파트를 신축하여 개인분양하고 소규모 광산까지 매입하여 광물을 채굴, 수출했다. 또 이들은 뇌물을 고리로 관료와 이익 카르텔을 만들었다. 국가와 나를 분리하기 시작한 주민, 그리고 돈주와 관료의 관경(官經)유착은 김정은의 권력에 심각한 부담이 됐다.
김정은은 마음이 급했다. 속히 핵과 미사일을 완성하고 경제도 살리면 자신의 권력이 공고해 질 것으로 판단했을 법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실용적인 경제정책을 폈다. 장세를 부과하여 일부 시장을 공식화하고 기업 경영의 자율권도 더 부여했다. 협동농장에 포전담당제도 도입했다. 이전처럼 모든 농장원이 공동으로 경작하고 공동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2~5가구가 한 분조가 돼 배분받은 토지를 경작한 다음 수확물 중 일정 비율을 그 분조가 가져간다. 그러나 이 정책들도 사회주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기업의 소유권은 여전히 국가에 있으며 협동농장의 가족농화도 도입되지 않았다. 개혁 초기에 헌법을 수정하여 사(私)경제를 인정한 중국·베트남과 대비되며 바로 이것이 북한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정은의 가장 큰 실책은 시장과 무역이 북한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한 채 핵 개발을 추진한 것이다. 대북 제재는 이 아킬레스건을 파고들어 핵과 경제를 완전한 대체재로 만들었다. 북한이 핵·미사일 폐기를 거부하면 경제가 망하고 경제를 살리려면 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정은은 하노이 회담에서 부분적 핵 폐기와 완전한 제재 해제를 교환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앞으로도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제재를 풀려 할 것이다. 북한은 제재 해제보다 체제 보장을 더 중시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젠 이 둘을 분리할 수 없다. 경제를 살리지 않고선 돈맛을 본 권력층과 주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고 그러면 체제 안전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핵을 일부 보유한 상태로 제재 해제에 성공한다 해도 거기가 끝은 아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시장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가 설파한 대로 상업과 자유는 함께 자란다. 시장은 사회주의 제도를 잠식하며 주민의 가치관을 바꾸고 관료를 포섭한다. 시장과 무역은 함께 커지면서 국제 경제와 얽혀진다. 이 상황에선 핵이 있어도 별 쓸모가 없다. 핵사용의 대내외적 기회비용이 너무 높아진 까닭이다. 제재가 있는 상태에서 핵·경제 병진은 전쟁과 평화의 병진처럼 불가능하다. 제재가 풀리면 시장이 핵을 무력(無力)하게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 시장이 들어간 북한에 핵 개발만큼 어리석은 투자는 없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북한의 시장화와 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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