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창
2 hrs ·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한국의 독특한 지점 중 하나는, 특히 신천지와 일부 개신교회를 경로로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국가-방역-교회 간 역학관계가 급속히 재구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수십 만명의 신도들로 구성된 종파의 전체 인명부를 통채로 입수하고 종교단체에 집단예배 자제를 강력하게 권고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정치성향과 무관하게) 다수의 시민들이 지지하는 상황은 적어도 초기 근대 이후 기독교와 국가의 역사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예가 아니다.
심지어 평소에 정권에 비판적인 경향이 강한 네이버 기사 댓글에서도 집단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들에 대한 비판여론이 압도적인 편이다: 어느 베스트댓글의 "나라가 있어야 교회도 있지"라는 표현은 매우 시사적이다. 한국과 서구의 다른--특히 이번 코로나 감염에서 취약한 면모를 보인--민주주의 국가의 중요한 차이점 중에는 군사독재 시절부터 이어져내려온 막강한 행정력 외에도 교회와 같은 사적 집단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의 여부도 포함된다.
유럽과 북미의 여러 나라에서 그것이 '실현불가능한' 과제였다면, 한국은 '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안 했던' 과제였던 것이다.
"전광훈 교회 ‘다닥다닥’ 모여 매일 예배…부침개 나눠 먹기도"(KBS)
http://news.naver.com/main/read.nhn…
"중단 권고에도 현장 예배 '강행'...이 시각 연세중앙교회"(YTN)
http://news.naver.com/main/read.nhn…
[속보]'중단' 권고에도…전광훈 목사 교회 등 현장예배 강행(아시아경제)
http://news.naver.com/main/read.nhn…
물론 이런 '한국적' 전통이 언제나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보장은 없다. 만약 앞으로 보수-우파의 발언권이 유의미하게 늘어나게 될 경우, 과연 종교단체, 특히 개신교 교회에 대한 국가통제가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좋든싫든 보수우파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나는 보수지지층들이 다음과 같은 불안요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보수의 정치적 대표자들이 한국 개신교회, 특히 극단적인 보수 스탠스를 취하는 교회들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웃어넘기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종교적 광신enthusiasm은 서구 초기 근대의 정치사상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으며, 그 시기의 탁월한 사상가들에게 이 문제의 심각성은 널리 공유되어 왔음을 지적하고 싶다.
리버럴·진보·합리주의 정치의 너무나도 매끄러운 언어 속에서 세계는 이미 세속화된 장소이며 교회는 점점 사라져가는, 따라서 가끔 귀찮을 때도 있지만 결국 무시해도 좋을 골동품으로나 존재한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이래의 세속화 연구에서 누차 강조되었듯, 세계는 결코 전면적으로 세속화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교회는 한국만이 아니라 한국보다 더 '발전한' 사회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집단이며, 통제되지 않는 교회만큼 공포스러운 대상은 예나 지금이나 드물다. 특히나 '합리적 보수'를 주장하며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생각하는 이들이 이 사실을 잊어버릴 때, 심연은 당신들의 발 밑에서 입을 벌릴 것이다. 한국의 코로나 사태/대응을 바라보며 확인할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중국과 마스크 수출입 문제도, 가슴 벅찬 국가적 자부심의 확인도 아니다. 국가와 종교의 '한국적인' 관계가 우리에게 무엇을 불/가능하게 하는지, 그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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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Daham Chong, Hun-Joo Kim and 78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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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우
박재우 좋은 글 감사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뼈아픈 지적입니다.. 공유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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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창
이우창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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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h
김민수
김민수 딱 공감합니다.. 근대 정치사상사에서 종교적 광신의 문제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 중 번역된 게 혹시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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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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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m
Kee Hyun Ryu
Kee Hyun Ryu 보수-우파가 집권하면 한국교회의 대응방식도 다소 달라질 수 있을것 같습니다. 반공우파는 한국 교회 주류가 깊은 친연성을 느끼는 대상이기 때문에..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천지나 연세중앙교회같은 극단적 집단은 계속 존재하겠지요. 매체에서 특히 문제 삼는 두 교회- 신천지는 이미 널리 잘 알려진 이단 종파고, 연세중앙교회도 오랫동안 이단 시비를 겪었던 집단이라는 점은 흥미로운 관찰 지점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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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창
이우창 코멘트 감사합니다 ㅎㅎ 개신교 우파 목회자들의 세대교체가 되면서 파벌이 재편성되는 과정까지 고려하면 어떤 상황이 닥칠지 무척 궁금해지긴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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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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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욱
정선욱 첨부하면 유럽과 미국의 교회는 행정력으로 통제가 가능한 집단에 속하죠. 개인은 통제할 수 없으나 조직은 통제할 수 있는 풍토입니다.
한국은 특정 개인은 행정력으로 통제하기 쉬우나 조직은 통제하기 어려운 풍토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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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창
이우창 "유럽과 미국의 교회는 행정력으로 통제가 가능한 집단에 속하죠. 개인은 통제할 수 없으나 조직은 통제할 수 있는 풍토입니다." -> 제가 현대 기독교조직 연구 쪽은 잘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는 처음 접하는데요, 혹시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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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창
이우창 물론 유럽도 지금 전면적으로 봉쇄를 하면서 점차 그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한국에서 신천지에 했던 스타일의 행정조치까지 나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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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욱
정선욱 바로 링크를 제시하기는 어렵고요,
일단 유럽의 경우 신자들이 교회에 바로 헌금하는 방식이 아닌 종교세를 국가에 납부해서 정부에서 각 교회로 분배하는 제도를 가진 곳이 많습니다.…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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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욱
정선욱 1 - 독일 교회세
https://ko.wikipedia.org/wiki/%EA%B5%90%ED%9A%8C%EC%84%B8…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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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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