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30
사랑 (수필) -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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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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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저자: 이광수
출전:영대 창간호(1924년 8월)
人生[인생]은 苦海[고해]라고 한다. 쓴 바다·고생 바다·고통의 바다·苦悶[고민]의 바다·勞苦[노고]의 바다·苦亂[고난]의 바다라는 뜻이다. 어떤 팔자 좋은 사람에게는 이 人生[인생]이 樂園[낙원]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多數人[다수인]에게는 人生[인생]은 苦海[고해]다. 나는 人生[인생]을 苦海[고해]로 보지 않지 못하는 不幸[불행]한 사람이다. 나는 落地[낙지] 以來[이래]로 일찍 幸運[행운]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 不幸兒[불행아]어니와, 지금도 不幸[불행]한 사람이다. 貧窮[빈궁]·不健康[불건강]·世上[세상]의 逼迫[핍박]·事業 [사업]의 先敗[실패]·民族的 [민족적] 苦悶[고민]·나 自身[자신]의 人格[인격]과 能力[능력]에 對[대]한 不滿足[불만족], 모두 不幸[불행] 거리이다. 이러한 것을 生覺[생각]하면 앞이 캄캄해지고 죽고 싶게 괴롭다.
『아아 人生[인생]은 苦海[고해]로구나!』
하고 長太息[장태식]을 아니할 수가 없다. 萬一[만일] 未來[미래]도 過去 [과거] 같은 줄을 分明[분명]히 前知[전지]한다 하면 나는 죽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神[신]은 나 같은 人生[인생]이 自殺[자살]하여 버릴 것이 두려워서 여러 가지 豫防策[예방책]을 쓴다. 첫째는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 하는 希望[희망]을 나 같은 人生[인생]의 精神 [정신] 속에 심어 둔다.
이것은 眞實[진실]로 生命樹[생명수]다. 이것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내 일이나 내일이나」하고 傷[상]한 「하아트」와 疲困[피곤]한 다리를 끌고, 허덕허덕 數[수]없는 生[생]의 고개를 넘어 가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 父母[부모]를 여의고 無依無家[무의무가]하게 돌아 다닐 때에 흔히 老人[노인]들에게서,
『初年[초년] 苦生[고생]은 末年樂[말년 낙]의 根本 [근본]이니라. 네가 자라면 五福[오복]이 具備[구비]하고 남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되리라.』
하는 말로 慰勞[위로]하여 주는 말을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어린 맘에도 「참말 그랬으면」, 「아마 그럴 것도 같다」,「꼭 그럴 것이다」하고 혼자 이 말을 믿고 將來[장래]만 바라보고 왔다. 그러나 살아 가면 살아 갈수록 이 믿음이 漸漸[점점] 薄弱[박약]하여진다.
『어디 幸運[행운]이 오나? 밤낮 마찬가진데.』
하고 歎息[탄식]을 하게 된다.
그런데도 왜 아직도 속아 사나? 응, 分明[분명]히 나는 속아 산다. 더우기 저 공동 묘지에 無數[무수] 한 총총한 무덤을 볼 때에 그 무덤 속에 누운 사람도 다 나와 같이 「初年[초년]苦生[고생]은 末年藥[말년낙]의 根本[근본]」이라는 慰勞[위로]를 받고 五福[오복]의 俱全[구전]하다는 祝福[축복]을 믿고 나 모양으로 「來日[내일]이나 來日[내일]이나」하고 怨讐[원수]의 「希望[희망]」에게 속아서 허덕허덕 人生[인생]의 數[수]없는 고개를 넘어가다가 마침내 「希望[희망]」의 約束[약속]하던 幸福[행복]은 求景[구경]도 못하고 죽어 버린 者[자]들이라고 生覺[생각]할 때, 나는 저들과 같이 공연히 「來日[내일]」을 믿고 속아 사는 어리석은 人生中[인생중]의 하 나라고 生覺[생각]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어디를 보고 아무리 따져 보아도 幸運[행운]이 올 길이 없지 아니하나.
그러면 왜 사느냐? 왜 곧 죽어서 이 苦海[고해]를 벗어나지 아니하느냐?
이 人生[인생]에 무슨 잊히지 못한 束縛[속박]이 있어서 傷[상]한 「하아트」와 疲困[피곤]한 다리를 끌고 허덕거리는 數[수] 없는 人生[인생]의 고개를 넘느냐.
거기는 理由[이유]가 있다. 나는 인제는 「來日[내일]의 希望[희망]」에 속아 살지를 아니하련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 가는 것은 이 苦海[고해]라는 人生[인생]에도 맛들일 데가 있는 까닭이다. 우리는 마치 여름날 시원한 산마루터기 바람을 暫間[잠간] 얻어 쐬일 양으로 여러 時間[시간] 동안 땀을 흘리며 四肢[사지]를 勞役[노역]하여 山[산]에 오르는 모양으로 人生[인생]의 苦海[고해] 속에 여기저기 숨어 흐르는 甘泉[감천] 한 모금을 얻어 마실 양으로 알뜰히 허덕거리고 살아 가는 것이다. 『이놈아 네가 어리석다』고. 어리석어도 좋다. 人生[인생]에게 내가 求[구]할 것이 그것 밖에 없는 것을 어찌하랴. 돈을 원하는 者[자]는 마음껏 돈을 모아 쌓으라. 事業 [사업]을 願[원]하거든 灰天[회천]의 雄圖[웅도]라도 이루려무나. 名譽[명예]가 願[원]이냐? 天下[천하]에 이름을 빛내어라. 마는, 나는 이 모든 것도 다 귀찮다. 내가 이 人生[인생]에게 求[구]하는 것은 오직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 無心[무심]히 반짝이는 사랑의 閃光[섬광]이다.
人生[인생]을 暗黑[암흑]이라 하면, 사랑은 唯一[유일]한 光明[광명]이다.
人生[인생]을 氷世界[빙세계]라 하면, 사람은 唯一[유일]한 暖氣[난기]다.
人生[인생]을 惡臭[악취]라 하면, 사랑은 唯一[유일]한 香氣[향기]다. 그런데 이 情[정] 떨어질 만한 人生[인생]에게도 아직 사랑은 滅[멸]하지 아니 하였다. 이 險惡[험악]한 利己主義[이기주의] 世代 [세대]에도 人形[인형]을 쓴 사람 치고는 그 靈魂[영혼]의 어느 구석에 愛[애]의 一片[일편]을 發 [발]하지 아니한 者[자]는 없다. 그것이 醜惡[추악]한 爭鬪[쟁투]와 猜忌 [시기]와 殺戮[살육]의 人生[인생]에 流星[유성] 모양으로 간간히 閃光[섬 광]을 발한다. 이것 때문에 나는 이 苦海[고해]의 人生[인생]을 허덕거리고 살아 가는 것이다. 萬一[만일] 어느 時刻[시각]에나 이것까지 人生[인생]에서 消滅[소멸]되는 때가 있다면 나도 그 即刻[즉각]에 땅바닥에 엎더져 죽어 버릴 것이다.
내가 그 不幸[불행]한 지금까지의 一生[일생]의 經驗[경험]한 人生[인생]의 香氣[향기] 몇몇 가지를 적어 보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붓을 잡을 때에 내 腦中[뇌중]에 無數[무수]한 記憶[기억]이 솟아 오르거니와, 어느 때 「루소」모양으로 人生[인생]의 懺悔[참회]를 쓰게 되는 날이면 될 수 있는 대로 내 모든 것을 힘 및 는 데까지는 다 써보려니와 지금에는 그러할 수가 없다. 지금에는 다만 그 中[중]에서 가장 간단한 것 몇 가지 예만 들 어 내가 不幸中[불행중]에서도 허덕허덕 살아가는 理由[이유]의 證明[증명] 의 一端[일단]이니 삼아 볼까 한다.
(一九二四年 八月[일구이사년 팔월] 《靈臺[영대] 》 創刊號 [창간호] 所載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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