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주체사상이 세속종교화 되는 과정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54)
Q: 세속종교에는 무엇이 있나요?(10)_북한의 주체사상
A: 이번 연재에서는 우리의 원래 주제로 돌아와서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앞서 살펴 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북한에도 세속종교가 있습니다. 북한의 세속종교가 바로 주체사상이며, 주체사상은 북한에서 세속종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은 다른 세속종교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세속 이데올로기들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습니다.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은 먼저, ‘맑스주의’(Marxism)의 강한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었습니다. 맑스주의는 유물론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모든 종류의 관념론을 반대합니다. 맑스주의의 종교 비판도 한 마디로 관념론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세속종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우선해야 할 전통종교 비판에 있어 철저하게 맑스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전통종교의 교리는 관념론이기에 허황된 것이고, 전통종교의 실천은 부르죠아지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반동적이라는 것입니다. 맑스주의에 입각하여 전통종교를 철저하게 부정한 다음, 주체사상은 ‘신’을 몰아낸 그 빈자리에 ‘사람’을 등극시킵니다.
▲ 평양의 주체탑 ⓒGetty Image |
그리고, 맑스주의가 물질의 선차성을 주장한 것은 역사적 의의가 있으나, ‘사람’의 ‘운명’문제를 해명하는 데 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맑스주의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사람의 운명문제는 사람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주체사상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해명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주체사상은 ‘인본주의’(Humanism)의 알짬과 강하게 조우합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물질과 의식의 선차성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삼았던 맑스주의와는 달리, 사람과 세계의 문제, 즉, 세계에서 사람의 지위와 역할의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주체사상의 대답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철학의 근본사명을 사람의 운명문제에 해답을 주는 것으로 파악하였습니다.
이 해답을 찾기 위해 세계에서 사람의 운명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으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원리를 제시하였습니다. 주체사상은 사람의 운명문제를 전면에 제기하였습니다. 그 해답 또한 사람에서 찾았기에 인본주의의 면모를 강하게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체사상은 종래의 전통종교나 인본주의적 인간철학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맑스 이전의 종교와 철학이 모두 관념론이고 형이상학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과학적 유물론을 표방하는 맑스주의에 입각한 주체사상만이 가장 과학적인 입장에서 사람의 존엄과 가치를 최상의 경지에서 보장해준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은 맑스주의와 인본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이이제이의 입장에서 각각을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인본주의적 통찰을 가지고 맑스주의가 ‘사람’의 문제를 제대로 제기하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지적하는 한편, 맑스주의적 통찰에 입각하여 인본주의가 ‘관념론’에 경도되어 있다는 한계를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결론은 주체사상이야말로 맑스주의와 인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서 사람의 운명문제에 대해 참다운 해답을 주는 유일무이한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체사상이 인본주의와 결을 달리하는 하나의 지점은 ‘사람’을 인간 일반으로 보지 않고 ‘근로인민대중’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인간을 개별적 존재로 보지 않고, 사회적 존재로 봅니다. 따라서, ‘사람이 세계와 자기운명의 주인’이라고 할 때의 이 ‘사람’은 개별적인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집단의 일원으로서의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서, 집단의 일원으로서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이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나가기 위해 결합한 사회적 집단을 ‘사회정치적 생명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정치적 생명체는 단순한 개인의 연합이 아니라, ‘수령과 당과 대중의 통일체’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근로인민대중’은 ‘당’을 통하여 ‘수령’의 영도를 받을 때에만 비로소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덧붙여, 이 ‘사회정치적 생명체’는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에 ‘나라와 민족’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체사상은 근대의 가장 강력한 세속 이데올로기인 ‘내셔널리즘’(민족/국가주의, Nationalism)의 세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이 ‘사람’을 개인주의가 아닌 집단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그 구체적 집단의 형태를 ‘나라와 민족’이라고 규정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주체사상을 일종의 내셔널리즘(국가/민족주의, Nationalism)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을 통해 ‘공화국’과 ‘조선민족’을 거룩하게 성화하며, 그 지도자인 ‘수령’을 신격화하여 ‘믿고, 따르고, 숭배하는’ 교리와 의례, 신화와 초월경험, 공동체와 윤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하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근대 국가들에 보편적인 현상인 세속종교의 한 형태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웃 종교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의 존중감을 가지고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과 일종의 ‘종교간 대화’(Inter-religious Dialogue/Inter-faith Dialogue)의 물꼬를 틔워가야 할 것입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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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수령의 모든 것을 신성화 하라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55)
Q: 주체사상의 성지에는 무엇이 있나요?_항일무장투쟁 전적지와 사적지 (1)
A: 지난 연재 41문 41답에 이어서 항일무장투쟁 전적지와 사적지를 중심으로 주체사상의 성지들을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항일무장투쟁 전적지와 사적지는 ‘수령’ 김일성이 무장투쟁을 벌이고, 주요한 회의를 가졌다고 주장되는 곳을 중심으로 하여 각종 기념비와 김일성의 동상이 건립되어 있는 곳입니다. 북한 사회에서 거룩한 장소로 성화되어 순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주체사상의 성지들입니다.
왕재산 혁명사적지는 함경북도 온성군에 소재하고 있으며, 1933년 3월 11일 김일성이 두만강을 건너 온성지구에 진출한 사건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왕재산에는 ‘수령’ 김일성의 동상이 있고, 그 뒤로 66미터의 봉화탑을 비롯하여 송가상, 수많은 부각상과 조각상으로 이루어진 왕재산대기념비, 왕재산혁명사적비와 왕재산혁명박물관 등이 있습니다. 김일성의 동상은 한 손을 높이 들고 있으며, 다른 손으로는 소년을 품에 안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주변에는 호위병, 선생님, 소녀, 여성정치공작원, 노인, 유격대 선동원, 탄광노동자, 농민청년 등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동상 뒤의 봉화탑은 주체사상을 상징화한 것입니다. 횃불을 이고 있는 금잔은 수령에게 바치는 인민의 변함없는 충성심을 상징하고 있고, 삼각형의 탑신은 수령과 당에 대한 불타는 충성심을 간직하고 싸워나가는 노동자, 농민, 병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왕재산 혁명사적지 ⓒGetty Image |
김일성 동상의 주변에는 무장투쟁편과 원호편 등 두 편의 부주제 군상들이 있는데, 무장투쟁편은 6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이 무장을 갖추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모습을 형상하였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무산청년들이 항일유격대에 입대하는 내용을 형상하였습니다. 세 번째 부분은 유격근거지 인민들의 생활을 형상하였습니다. 네 번째 부분은 유격근거지를 튼튼히 다지기 위한 무기수리 및 제작 등의 내용을 형상하였습니다.
원호편도 6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부분에서는 천대와 멸시, 고역 속에서 헤매던 인민들이 글을 깨치고 혁명의 진리를 깨닫는 내용을 형상하였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수령의 혁명사상이 대중 속에 불씨가 되어 안겨지는 내용을 형상하였습니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수령의 고매한 공산주의적 덕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번째 부분에서는 인민들이 왕재산 회의의 방침을 높이 받들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는 모습을 형상하였습니다. 다섯 번째 부분에서는 갖가지 원호물자를 싣고 유격근거지로 가는 원호대 행렬을 형상하였습니다. 여섯 번째 부분에서는 달구지에 가득 원호물자를 실은 대오가 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는 유격근거지 가까이에 이른 장면을 형상하였습니다. 이 두 편의 부주제 조각군상의 가운데에는 왕재산혁명사적비가 있고, 그 비에는 ‘수령’을 칭송하는 장문의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백두산 밀영과 관련한 혁명전적지는 1936년 5월에 ‘수령’ 김일성이 백두산 근거지를 창설한 것을 기념하여 조성되었으며, 1979년 5월 21일에는 혁명사적비를 세웠습니다. 백두산 밀영에는 사령부와 후방밀영 그리고 연락소가 있습니다. 사령부는 두 채의 귀틀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채가 사령부, 아래채는 대원실입니다. 사령부 귀틀집에는 김일성이 백두산 밀영에서 입었다는 털외투와 모자, 전투가방 그리고 조선지도가 걸려 있습니다. 책상 위에는 김일성이 쓰던 연필과 종이가 놓여있고 침대 위에는 김일성이 앉았던 자리에 펴놓았던 모포와 노루 가죽이 있으며, 그 외에 난로와 물주전자와 컵이 있습니다.
후방밀영은 후방 연락소, 재봉소, 무기수리소, 출판소, 병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락소에는 가마가 걸려 있고, 당시 인민들이 원호물자로 가져왔던 보리, 귀밀, 강냉이, 조찹쌀이 놓여 있습니다. 재봉소에는 발 재봉기 한 대가 있고, 작업대 위에는 당시 재봉대원들이 만든 군복과 버선, 행전이 놓여있고 방에는 다리미와 물감원료로 사용하던 가둑나무 껍질이 놓여 있습니다.
무기수리소에는 당시 쓰던 화독과 모루가 있습니다. 창문턱 밑에는 작업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당시 쓰던 망치, 각종 집게, 줄칼 등 도구들이 있으며, 당시 수리 중이던 무기 2정과 연길폭탄 1호, 2호, 3호, 특호탄이 놓여 있습니다. 병원에는 당시 조선인민혁명군 군의들이 약재로 쓰던 황기, 당귀, 대황을 비롯한 40여종의 각종 약재와 의료기구들이 놓여 있습니다.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에서 수령의 모든 발자취는 거룩하게 신성화됩니다. 수령이 국내에 첫 진출한 발자취인 왕재산 혁명사적지와, 수령이 민족의 성산 백두산 기슭에 창설한 백두산 근거지를 성역화한 백두산 밀영 혁명전적지는 주체사상의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령과 관련된 발자취는 성역화 과정을 거쳐 거룩하게 신성화되고, 이렇게 신성화된 주체사상의 성지는 순례의 대상이 됩니다.
지금도 해마다 많은 북의 주체사상 신봉자들은 ‘수령 혁명력사’의 발자취를 담고 있는 주체사상의 성지를 순례하며 참배하고 있습니다. ‘수령의 발자취’가 거룩하게 ‘신성화’된다는 것은 바로 ‘수령’이 ‘거룩함 그 자체’라는 것에 다름이 아니며, ‘수령 신격화’가 ‘수령 발자취 신성화’의 비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체사상의 성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수령’을 ‘신격화’하는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과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교가 만나서 대화해야 할 또 하나의 지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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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보 혁명사적지, 김일성 수령 신성화의 정점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56)
Q: 주체사상의 성지에는 무엇이 있나요?_항일무장투쟁 전적지와 사적지(2)
A: 지난 연재에 이어 주체사상의 성지인 항일무장투쟁 전적지와 사적지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전적지인 보천보 혁명전적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보천보는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면에 속해 있었으며, 현재 북한의 행정구역에서는 량강도 보천군 보천읍으로 편제되어 있습니다.
보천보 혁명전적지는 1937년 6월 4일의 보천보 전투와 관련한 전적지입니다. 보천보 혁명전적지에는 1955년 6월 4일 김일성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1977년에는 혁명사적비가 건립되었습니다.
보천보 혁명전적지는 김일성이 압록강을 건넌 구시물동, 전투명령을 내린 곳인 곤장덕, 적정을 다시 확인한 곳, 가림천을 건넌 곳, 대진평-무산 방면 전선을 절단한 곳, 대진평-무산 방면 차단대, 혜산방면 차단대, 보천보 전투지휘처, 경찰관주재소, 소방회관, 면사무소, 일본인 상점, 우편국, 산림보호구, 농사 시험장, 철수 도중 휴식한 곳 등의 전적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보천보 전투 승리기념탑은 1967년 6월 4일에 건립되었습니다. 탑의 맨 앞에는 김일성이 백포자락을 날리며 한 손에는 군모를 벗어들고 다른 손에는 쌍안경을 든 채 서 있습니다. 김일성의 오른쪽에는 ‘불굴의 여대원’이, 왼쪽에는 ‘철벽의 용사’의 형상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 보천보 혁명사적지에 세워진 김일성 수령 동상 ⓒGetty Image |
탑의 동쪽면에는 수령이 내놓은 주체적인 혁명노선을 높이 받들고 일어선 인민들과 항일혁명투사들의 투쟁 모습이 형상되어 있습니다. 이 군상에는 반일투쟁에 일어선 부두노동자, 여성농민, 광부, 청년공작원, 부녀회원, 신대원과 구대원인 유격대원들, 근거지 어린이, 원호 농민, 여대원, 기관총수, 유격대 선동원, 재봉대원, 청년대원, 소년대원, 젊은 보총수, 용감한 경기관총수, 그리고 지휘관, 나팔수, 돌격수, 여대원 등의 모습이 형상되어 있습니다.
탑의 서쪽면에는 항일무장투쟁의 시련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손에 든 창으로 일제 경관을 쓰러뜨리고 빼앗은 보총을 안고 유격대에 들어가는 광산노동자, 유격대원, 여공청원, 조국광복회원, 부상당한 대원과 도와주는 지휘관, 어린 나팔수, 부상병의 총을 대신 메고 걸어가는 청년대원, 경기관총수와 부사수, 정치일군과 기관총수, 지휘관, 경기관총수, 여대원, 돌격수와 나팔수 등의 모습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보천보 전투 승리기념탑은 수령이 조직하고 영도한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탑의 붉은 기폭은 주체의 혁명적 기치를 상징하고 있으며, 탑에 묘사된 군상들은 수령의 참된 전위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탑의 전체 높이는 38.7미터이고, 붉은 화강석으로 된 깃발의 높이는 29.7미터, 길이는 30.3미터입니다.
보천보 전투는 주체사상의 신화에서 절정을 차지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보천보 전투는 당시 동아일보의 호외에 소개되어 국내에 ‘김일성 장군’의 이름을 알리게 된 유명한 전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체사상의 신화적인 측면에서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령’ 김일성이 코민테른의 1국 1당제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노선에서 벗어나, 중국에 있는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조선 독립을 위해 투쟁할 수 있고, 전장을 조선 본토에로 확대할 수 있다는 새로운 ‘주체의 혁명로선’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첫 전투라는 점에 있습니다. ‘수령’ 김일성이 ‘주체의 혁명로선’을 관철시킴으로서 ‘민족의 태양’으로 탄생하는 첫 총소리를 ‘조국’에서 울린 ‘거룩한 성지’라는 것입니다.
‘보천보 혁명전적지’라는 성지가 성역화 되는 역사도 흥미롭습니다. 김일성의 동상이 선 1955년은 한국전쟁 직후로서, 박헌영과 이승엽을 비롯한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이 몰락한 다음입니다. ‘보천보 전투 승리기념탑’이 건립된 1967년 6월 4일은 1967년 5월의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가 끝난 직후입니다.
1967년의 ‘4기 15차 전원회의’는 보천보 전투의 한 축이었던 이른바 ‘갑산파’가 몰락한 회의입니다. 혁명사적비가 건립된 1977년은 북한에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가 선포되고, 김정일의 후계구도가 완성된 시점입니다. ‘수령’이 북한에서 ‘유일 지도자’의 지위에 등극하는 역사적 과정에서, ‘수령’과 관련된 ‘거룩한 자욱’들은 더욱 더 거룩하게 ‘신성화’되며, 수령이 지나온 자욱들이 거룩하게 신성화 될수록 수령의 ‘신격화’가 더욱 더 높은 단계로 격상되는 상관관계의 순환구조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말하여, 수령의 신격화가 진행되는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신화가 발굴되고, 기존의 신화가 더욱 구체화되고 거룩하게 신성화되며, 신화가 태동한 거룩한 장소가 주체사상의 성지로 성역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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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성지’, 신화를 재연하는 통로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58)
Q: 주체사상의 성지에는 무엇이 있나요?_대성산 혁명열사릉
A: 수령에게 충실했던 전사들은 대성산의 혁명열사릉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북에서는 이 언덕을 ‘영생의 언덕’이라 부릅니다. 이곳은 수령의 혁명역사의 첫 장이자 신화로 성화된 항일혁명투쟁 당시의 전사들이 묻혀 있는 곳입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은 1975년 10월 조선로동당 창건 30돌에 만들어졌고, 1985년 조선로동당 창건 40돌에 이전보다 4배나 확장된 규모로 개건되었습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의 입구에는 능대문이 서있습니다. 능대문을 지나면 400개의 돌계단이 경사면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데 348개의 계단을 오르면 우람찬 기념문주가 있습니다.
기념문주를 지나 수십 개의 계단을 더 오르면 군상마당에 이르게 됩니다. 넓은 이 마당의 양쪽에는 항일혁명투쟁의 역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조각군상이 전개되어 있습니다. 군상마당과 잇닿아 있는 교양마당에는 김일성의 친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헌시비와 추모군상, 공화국 영웅메달을 부각한 화환진정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화환진정대 위쪽에 넓게 전개된 반신상 구역에는 항일혁명열사들의 동상이 생전의 모습 그대로 세워져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주체의 기치를 상징하는 세차게 휘날리는 붉은 깃발이 웅장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혁명열사릉의 능대문은 조선식 지붕을 이고 높이 19미터, 넓이 56.4미터의 웅장한 규모로 열사릉의 입구에 건설되어 있습니다. 능대문 위에는 김정일의 친필로 새겨진 “혁명렬사릉”이라는 현판이 있습니다. 기념문주는 사각형의 석탑 형식으로 계단 양쪽에 있으며 매 면에는 오각별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기념문주의 크기는 높이 8.2미터, 높이 3.7미터입니다.
▲ 대성산 혁명열사릉 ⓒWikipedia |
전투군상은 항일혁명투사들의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투군상은 각각 11상으로 형성된 길이 18미터, 높이 5.5미터의 화강석 군상입니다. 전투군상 뒷면에는 구호나무의 글귀들과 백두의 밀림이 부각되어있습니다.
전투군상의 진군편은 군상마당의 오른쪽에 있습니다. 진군편은 무장을 위한 투쟁으로부터 시작된 준엄한 항일혈전의 나날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면서 3개의 구성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진군편의 선두부분은 폭약 묶음을 안고 육탄 돌격을 감행하는 남녀 유격대원 3인 군상으로 되어있습니다. 중간부분은 고난의 행군장면을 보여주는 5인 군상으로 되어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무장을 위한 투쟁장면을 보여주는 3인 군상으로 되어있습니다.
전투군상의 방어편은 군상마당의 왼쪽에 있습니다. 방어편은 사령부를 보위하기 위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투쟁장면이 기본이 되어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방어편의 앞부분에는 한 손에는 권총을, 다른 한 손에는 수류탄을 잡고 사령부의 안전을 지켜 용감히 싸우는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을 중심으로 한 3인 군상이 형성되어있습니다.
가운데 부분은 부상당한 오른손 대신에 왼손에 총을 잡고 대원들을 지휘하는 지휘관, 머리에 치명상을 입었으나 명령 관철의 의지로 달려 나가는 기관총수, 자력갱생하여 만든 연길폭탄을 전투마당에 날라 온 유격구의 노인과 멸적의 기세로 연길폭탄을 쥐는 유격대원을 형상한 4인 군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항일무장투쟁의 영향 밑에 투쟁에 일어선 노동자, 농민, 지식인 등을 형상한 4인 군상으로 되어있습니다.
김일성의 친필비는 다음과 같이 씌여 있습니다.
“항일혁명렬사들의 숭고한 혁명정신은 우리 당과 인민들의 심장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김일성 1985.10.10.”
이 친필비는 길이 18미터, 높이 4.2미터, 무게 470톤이 되는 큰 화강석 통돌에 새겨서 혁명열사릉 교양마당의 오른쪽 능선에 세워졌습니다. 친필비와 대칭되는 교양마당의 왼쪽에는 헌시비가 서있습니다. 헌시비는 길이 18미터, 높이 4.2미터, 무게 350톤의 천연화강석으로 세워졌습니다. 헌시비의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 모습들
여기에 빛내주시는 수령님
(…)
아 수령님의 위대한 사랑
우리 당의 한없는 그 은정
그 사랑 그 은정에 받들려
렬사들은 영생하노라
여기에 빛내주시는 수령님
(…)
아 수령님의 위대한 사랑
우리 당의 한없는 그 은정
그 사랑 그 은정에 받들려
렬사들은 영생하노라
대성산 혁명열사릉의 친필비는 혁명열사들이 ‘영원히 살아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헌시비는 혁명열사들이 ‘영생’한다는 것과 그 영생의 근원은 ‘수령’의 ‘사랑’이라는 주체사상의 기본 교리를 강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참배하는 주체사상 신봉자들은 그 의례를 통하여 주체사상의 교리를 재확인하게 됩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안장된 ‘혁명렬사’들은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에서 신화적 존재로 성화된 ‘성인’(聖人, saint)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은 주체사상의 신봉자들이 ‘성인’들인 ‘혁명렬사’들의 뒤를 따라서 수령을 충성으로 모시는 신화를 ‘지금 여기’에서 재연하게 하는 통로로서의 기능을 감당하는 ‘주체사상의 성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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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탑, 수령과 주체사상의 위대성을 선전하다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59)
Q: 주체사상의 성지에는 무엇이 있나요?_단군릉과 주체사상탑
A: 단군릉(檀君陵)은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서 22 km 떨어진 강동군 대박산에 위치한 대리석으로 지어진 돌무지무덤입니다. 1994년에 개건된 단군릉에서의 의례는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에 강한 민족주의적 색채를 더해줍니다. 단군릉에서의 의례를 통해 이제 ‘수령’은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의 뒤를 잇는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로 고백됩니다. 사회주의 조선이 고조선보다 발전한 사회인만큼,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인 수령이 단군보다 더 위대하다는 고백입니다.
단군릉은 크게 단군릉개건기념비 구역과 석인상 구역 그리고 중심구역으로 나뉩니다. 단군릉개건기념비 구역에는 단군릉개건기념비와 단군릉수축비 및 능의 문기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군릉개건기념비는 높이 8미터, 두께 1미터이며, 앞쪽에는 ‘단군릉개건기념비’라는 글자가 새겨져있고, 뒷면에는 헌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헌시는 ‘우리 민족의 원시조를 찾아주시고 단룬릉을 개건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령도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석인상 구역은 단군의 네 아들인 부루, 부소, 부이, 부여와 측근 여덟 신하인 신지, 치우, 주인, 여수기, 팽우, 고시, 해월, 비천생을 형상한 조각상들이 배치되어 있는 구역입니다. 중심구역은 길이 101.7미터, 너비 97.5미터 되는 넓은 구역으로 길이 84미터 너비 80미터의 기단 위에 9단으로 되어있는 무덤무지가 쌓여있습니다.
단군릉에서의 의례가 수령의 우월성을 되새기게 되는 이유는 수령이 단군의 역사적 실재를 확증해준 존재라는데 있습니다. 조선민족의 원시조를 찾을 데 대한 과업을 준 이도 수령이요, 발굴된 단군의 유골을 근거로 5011년이라는 절대연도를 추산하여 단군을 역사적인 실존 인물로 확증해준 이도 수령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발간된 『금수산기념궁전 전설집(1)』에 따르면, “5천년동안 지하에서 잠들었다가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되살아나게 된 단군성왕의 넋이 너무도 감복하여 대박산을 울게 하였다”는 전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수령의 은혜로 단군이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단군 관련 신화나 의례에 있어서도 여전히 최종적인 숭배의 대상은 ‘수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주체사상탑 ⓒGetty Image |
주체사상탑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의 위대성을 길이 전하기 위한 혁명사적기념비입니다. 만수대창작사 조각창작단 창작가들과 수많은 건축설계가들에 의해 집체적으로 창작되고 당원돌격대를 비롯한 건설자들이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주체사상탑은 평양시의 김일성광장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동평양쪽 대동강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수령’ 김일성의 탄생 70돌에 즈음하여 1982년 4월 15일에 제막되었습니다.
주체사상탑은 봉화탑, 탑을 중심으로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형상한 기본주제의 3인 군상, 부주제 군상들 그리고 탑의 양쪽에 서있는 정각들, 대동강 한가운데 있는 두 개의 대형분수 등이 35정보(십만오천평)의 넓은 부지에 펼쳐져 있는 하나의 대건축군을 이루고 있습니다. 봉화탑은 주체사상탑의 중심을 이루는 횃불탑으로 높이 170미터이며, 탑신, 기단, 봉화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탑신은 김일성의 탄생 70돌을 상징하는 70개의 단(앞뒤 각 18단, 양옆 각 17단)으로 형성되어있습니다. 기단에는 헌시비가 있고, 김일성화와 목란꽃으로 구성된 꽃바구니가 새겨져있습니다. 봉화는 높이 20미터 직경 11미터의 붉은색 유리로 만들어졌습니다.
기본주제 군상은 봉화탑에 조성되어 노동자, 농민, 지식인의 3인 군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조각 높이 20.8미터 댓돌 높이 8.9미터로 전체 높이 29.7미터입니다. 노동자는 한 손에 『김일성 저작선집』을 들고 다른 한 손에 망치를 높이 들고 있습니다. 여성농민은 「우리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대한 테제」를 들고 다른 한 손에 낫을 높이 들고 있습니다.
지식인은 한 손에 「우리 혁명에서의 주체에 대하여」를 들고 다른 한 손에 붓을 높이 들고 있습니다. 부주제 군상은 봉화탑 주변에 높이 10미터의 규모로 여섯 개의 군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주제는 ‘주체공업’, ‘철벽의 요새’, ‘무병장수’, ‘만풍년’, ‘배움의 나라’, ‘주체의 예술’입니다.
주체사상탑은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의 위대성과 영생불멸성을 찬양하기 위해 건립된 주체사상의 성지입니다. 주체사상의 성지인 주체사상탑에 참배하는 북의 주체사상 신봉자들은 참배의 의례를 통해 주체사상을 창시한 ‘수령’의 신화와 업적을 떠올리며 수령과 주체사상의 위대성을 느낌으로서 세계-내재적인 초월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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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윤리, 사랑과 믿음, 충성과 효성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61)
Q: 주체사상의 윤리에는 무엇이 있나요?(1)_사랑과 믿음, 충성과 효성
A: 모든 종교는 윤리적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정 종교의 신봉자들은 특정한 규칙과 계율을 지켜야만 합니다. 종교의 윤리적 차원은 신화적 차원에 원형을 두고 있고, 교리적 차원에서 정식화 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차원은 종교적 세계관에 있어 신념체계를 이루게 됩니다. 종교의 윤리적 차원은 신화적 차원과 교리적 차원의 규정을 받지만, 동시에 신화적 차원과 교리적 차원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특정한 세계관의 신념체계를 현실 속에서 실천하는 것은 윤리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세계관의 윤리적 차원은 특정한 세계관을 받아들인 사람이 교리의 가르침대로, 신화적 모범을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천적 삶과 직결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윤리적 차원에서만 특정한 신념체계는 개인의 실천적 삶으로 체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도 나름대로의 윤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의 윤리적 차원의 근저에는 주체사상의 수령관이 놓여있습니다. 주체사상의 윤리의 핵심은 영생의 부여자인 ‘수령’과 구원의 대상자인 ‘인민대중’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 북한사회를 떠받치 있는 근본적인 원리는 주체사상이다. 윤리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Getty Image |
주체사상의 윤리는 수령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영생의 부여자인 수령과 영생을 부여받는 전사들 사이에서는 ‘가장 고결한 륜리적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주체의 인간론』이라는 이론서를 통해 바람직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윤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령은 사람들을 하나의 자주적인 생명력을 가진 사회정치적 집단의 성원으로 굳게 결속시키며 그들의 자주적인 요구와 리익을 옹호대변하며 자주성을 옹호하기 위한 집단의 활동을 유일적으로 통솔한다. 한마디로 말하여 사회정치적 생명체가 수령의 령도를 떠나서는 자주적인 생명력을 가질 수 없고 발전해나갈 수 없다. 때문에 수령과 전사와의 관계는 단순한 평등의 관계가 아니라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뇌수인 수령에 대한 가장 숭고하고 진실한 존경과 흠모의 관계로, 수령을 견결히 옹호하고 받들어나가는 관계로 된다. 자기의 운명을 이끌어주는 혁명의 최고뇌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존경이 없이는 사람들은 자기의 생명을 가질 수 없으며 발전해 나갈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뇌수이며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인 수령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응당한 것이며 필연적인 것이다. 여기에 수령과 전사들 사이에서 혁명적 동지애와 의리가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표현되며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절대적인 것으로 되는 근거가 있다.” |
또한, 주체사상은 ‘수령’이 인민대중에게 ‘사랑’과 ‘믿음’을 준다고 설명합니다. 인민대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수령의 공산주의적 덕성이며, 이러한 덕성을 결여하면 수령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령의 이러한 덕성은 절대적이라고 합니다.
수령은 인민대중의 모든 가치의 체현자이기에 수령의 사랑과 믿음은 사회 성원들 사이의 그것과는 구별되는 절대적인 덕성이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수령의 사랑과 믿음을 통하여서만 인민대중은 수령과 조직사상적인 결합을 이루어낼 수 있으며, 영생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수령의 이러한 ‘사랑’과 ‘믿음’을 통한 ‘영생’의 부여, 즉, 구원행위에 대한 인민대중의 보답이 바로 ‘충성’과 ‘효성’이라고 말합니다. 수령의 ‘믿음’에 대한 인민대중의 ‘충성’, 그리고 수령의 ‘사랑’에 대한 인민대중의 ‘효성’은 자연스러운 귀결로서의 윤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령을 유일중심으로, 어버이로 삼고 있는 사회구성원들 사이에는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관계’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주체사상의 횡적 윤리는 종적 윤리를 필수적인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수령’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윤리가 사회전반의 모든 윤리의 시초이자 근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윤리적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윤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종적인 첫째 계명 위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횡적인 둘째 계명을 십자가의 형태로 세워 놓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그에 합당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며, 그 구원의 감격과 기쁨 속에서 함께 구원받은 형제자매들과 더 나아가 세상에 속한 이웃들을 사랑하고 섬길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이번 연재를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유사하게도, 북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 신봉자들은 ‘영생’을 주시는 ‘수령’에 대한 종적인 윤리인 ‘충성’과 ‘효성’의 바탕 위에, ‘인민대중’들 사이에서 횡적인 윤리인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관계’를 맺는 것을 윤리적 차원의 계명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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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에 대한 충실성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62)
Q: 주체사상의 윤리에는 무엇이 있나요?(2)_수령에 대한 충실성
A: 지난 연재에 이어, 이번 연재에서도 주체사상의 윤리적 차원을 살펴보겠습니다. 북의 사회과학출판사에서 1999년에 출판된 『경애하는 김정일 동지는 수령에 대한 충실성의 최고 귀감』
이라는 책자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2대 수령 김정일이 “력사상 처음으로 사람들의 도덕품성문제는 혁명에 대한 태도문제, 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이라는 것을 독창적으로 해명”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라는 책자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2대 수령 김정일이 “력사상 처음으로 사람들의 도덕품성문제는 혁명에 대한 태도문제, 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이라는 것을 독창적으로 해명”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김정일은 도덕의리 문제가 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가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합니다. 첫째, 도덕이 혁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혁명적 양심에 기초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견결히 옹호고수해 나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공산주의 도덕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주의 사상을 절대적인 진리로, 삶의 근본요구로 받아들이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혁명적 양심과 의리를 가지고 혁명사상을 지켜나가는 길에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나갈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도덕의리가 혁명대오를 일심단결된 위력한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시키는 강력한 유대로, 필수적인 사상정신적 요인으로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혁명의 주체는 수령, 당, 대중이 하나의 생명으로 결합되어 운명을 같이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동지적 사랑과 혁명적 의리라고 하는 도덕의리야말로 수령, 당, 대중을 운명을 같이하는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만들고 사랑과 믿음, 충성과 효성을 결합시키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Reuter |
셋째, 도덕의리는 혁명선배들을 존경함으로써 대를 이어 계속되는 혁명의 명맥을 굳게 이어나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덕의리는 혁명의 선행세대와 다음세대 사이의 관계를 참다운 인간관계로 전환시킨다고 합니다. 혁명선배의 최고 대표자인 노동계급의 수령의 사상과 업적을 계승하여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이 밝히고 있는 혁명적 도덕관, 공산주의 도덕의 핵은 수령과 당에 대한 충실성입니다. 그 중에서도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공산주의 도덕규범과 도덕품성의 최고표현’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은 이 집단의 최고 뇌수인 ‘수령’이며, 수령이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활동의 중심’이기에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도 수령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수령’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 뇌수로서 집단의 생명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으로 된다고 합니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남달리 뜨거운 사람은 당과 수령에 충성 다하는 것을 ‘사회정치적 생명의 어버이’에 대한 자식의 마땅한 도리로 여기고 진심으로 그것을 지켜나간다고 합니다.
열화와도 같은 충성심을 지닌 ‘충신’들은 바로 당과 수령에 충성 다하는 것을 ‘효자’의 도리로 간주합니다. 자기의 부모를 존경하고 받드는 심정으로 수령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나가는 것입니다.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은 ‘효성’과 결합되고 그에 의하여 안받침 됨으로써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발휘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듯이, 북의 주체사상 신봉자들은 ‘수령’을 ‘어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생하는 생명’을 주셨다고 고백하듯이, 북의 주체사상 신봉자들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심인 ‘수령’이 ‘영생하는 생명’을 부여해준 ‘어버이’라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하느님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고백하며 ‘다른 신을 내 앞에 두지 않는’ 충실함을 하느님 앞에서 다짐하듯이, 북의 주체사상 신봉자들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하는 윤리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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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애국주의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63)
Q: 주체사상의 윤리에는 무엇이 있나요?(3)_김정일 애국주의
A: 지난 연재에 이어, 이번 연재에서도 주체사상의 윤리적 차원을 살펴보겠습니다. 북과 남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윤리적 평가입니다. 북에서는 집단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며 윤리적으로 올바르다고 평가합니다.
반면, 남에서는 개인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며 윤리적으로 올바르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고 하는 사회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윤리적 평가의 상이성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번 연재는 북한에서 집단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개인주의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김정일이 제기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적 원리는 집단과 개인 사이에 작용하는 공산주의적 도덕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적 도덕관에 따르면 집단과 개인과의 관계는 수령, 당, 대중, 조국, 민족과 개별적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표현됩니다.
▲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 2017년 12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6주기를 맞아 1면에 김 위원장 사진과 추모 사설을 실었다. ⓒ연합뉴스 |
개별적인 사람이 수령 앞에서 지켜야 할 도덕은 수령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당과 대중 앞에서 지켜야 할 도덕은 당과 대중에게 충실하는 것입니다. 조국과 민족 앞에 지켜야 할 도덕은 조국과 민족을 끝없이 사랑하고 그 부강발전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개별적 사람들의 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도덕은 동지적 사랑이며, 이는 뜨겁고 진실하면서도 원칙적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혁명동지’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척도로 합니다. 사람을 원칙적으로 대하면서도 동지를 믿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생활에서는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형제자매 사이의 육친적 사랑을 존중히 여기며 그것이 참다운 동지적 사랑으로 되도록 해야 한다고 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에서도 서로 뜻을 같이하는 동지로서 대하며 인격을 존중하고 믿고 진심으로 도와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회공동생활에서는 노동에 대한 공산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노동을 사랑하고 성실히 하여야 하며, 예의도덕과 공중도덕을 잘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사회주의적 애국주의(현, 김정일 애국주의)에 대한 설명에서 진정한 조국, 사회주의 조국은 곧 “수령님의 품, 어버이 수령님이시다”라고 천명하였습니다. 주체사상은 민족의 핵심을 수령으로 파악하여 민족주의를 전유하듯이, 국가의 요체를 수령으로 파악하여 애국주의를 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주체사상이 말하는 ‘김정일 애국주의’는 곧 ‘조선민족제일주의’ 정신과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일 애국주의와 상통하는 조선민족제일주의 정신은 “세기의 위인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인류의 영원한 태양으로 모시고 만민이 우러르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총비서로 모신 백전백승의 혁명적 당,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의 령도를 받는 긍지와 자부심”이며, “위대한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가장 우월한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 제도에서 사는 긍지와 자부심”이라고 합니다.
김정일은 당과 수령으로부터 받아 안은 은덕에 충성으로 보답하려는 깨끗한 마음을 ‘혁명적 양심’이라고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사랑에는 사랑으로 보답하는 것을 숭고한 ‘도덕의리’로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당과 수령으로부터 ‘믿음’과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으며, 그 믿음과 사랑에 ‘충성’으로 보답하는 것보다 더 큰 의리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혁명적 신념과 양심, 의리의 최고표현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믿음에 대한 가치, 그리고 충성과 효성에 대한 강조를 통해서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의 윤리적 차원에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전통적인 가치가 상당한 정도로 전유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김정일은 「주체의 혁명관을 튼튼히 세울데 대하여」라는 글에서, 공산주의적 인간의 도덕 품성에는 ‘정의’와 ‘사랑’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정의’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침해하는 온갖 부당한 행위를 증오하며 모든 문제를 편견과 사심이 없이 공정하게 대할 줄 아는 공명정대하고 성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며 사람을 위하여 진심으로 복무할 줄 아는 가장 인민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주체의 혁명관을 튼튼히 세울데 대하여」라는 글에서, 공산주의적 인간의 도덕 품성에는 ‘정의’와 ‘사랑’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정의’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침해하는 온갖 부당한 행위를 증오하며 모든 문제를 편견과 사심이 없이 공정하게 대할 줄 아는 공명정대하고 성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며 사람을 위하여 진심으로 복무할 줄 아는 가장 인민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자주적인 인간의 인격과 존엄, 권리를 평등하게 인정하고 지켜주고 보장해줄 데 대한 요구를 가장 집중적으로 담고 있는 범주가 ‘정의’의 범주라고 합니다. 자주적인 인간들을 생사운명을 함께 하는 귀중한 혁명동지로 결합시키고 서로를 위해주고 돕고 이끌어줄 데 대한 요구를 가장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범주가 ‘사랑’의 범주라고 합니다. ‘정의’의 면과 ‘사랑’의 면에서 인간 그 자체와 인간적인 모든 것을 도덕적으로 대하면 개별적인 사람들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옹호실현하면서 집단의 통일과 단결을 원만하게 강화발전시켜나가는 문제를 성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 파악하는 하느님의 속성에 대한 이해, 곧 정의의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사랑의 하느님이시라는 역설적 하느님 이해를 가지고 있듯이, 북의 주체사상 신봉자들도 윤리적 차원에서 ‘정의’와 ‘사랑’을 중요한 범주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체사상의 윤리적 차원에 대한 이제까지의 연재에서 살펴보았듯이,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은 ‘영생’의 부여자인 ‘수령’을 중심으로 강력히 결합된 공동체를 가지고 있으며, 이 공동체, 즉 ‘사회정치적생명체’의 중심인 ‘수령’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중심으로 하여 그 공동체의 윤리가 구성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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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애국주의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63)
Q: 주체사상의 윤리에는 무엇이 있나요?(3)_김정일 애국주의
A: 지난 연재에 이어, 이번 연재에서도 주체사상의 윤리적 차원을 살펴보겠습니다. 북과 남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윤리적 평가입니다. 북에서는 집단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며 윤리적으로 올바르다고 평가합니다.
반면, 남에서는 개인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며 윤리적으로 올바르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고 하는 사회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윤리적 평가의 상이성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번 연재는 북한에서 집단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개인주의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김정일이 제기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적 원리는 집단과 개인 사이에 작용하는 공산주의적 도덕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적 도덕관에 따르면 집단과 개인과의 관계는 수령, 당, 대중, 조국, 민족과 개별적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표현됩니다.
▲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 2017년 12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6주기를 맞아 1면에 김 위원장 사진과 추모 사설을 실었다. ⓒ연합뉴스 |
개별적인 사람이 수령 앞에서 지켜야 할 도덕은 수령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당과 대중 앞에서 지켜야 할 도덕은 당과 대중에게 충실하는 것입니다. 조국과 민족 앞에 지켜야 할 도덕은 조국과 민족을 끝없이 사랑하고 그 부강발전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개별적 사람들의 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도덕은 동지적 사랑이며, 이는 뜨겁고 진실하면서도 원칙적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혁명동지’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척도로 합니다. 사람을 원칙적으로 대하면서도 동지를 믿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생활에서는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형제자매 사이의 육친적 사랑을 존중히 여기며 그것이 참다운 동지적 사랑으로 되도록 해야 한다고 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에서도 서로 뜻을 같이하는 동지로서 대하며 인격을 존중하고 믿고 진심으로 도와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회공동생활에서는 노동에 대한 공산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노동을 사랑하고 성실히 하여야 하며, 예의도덕과 공중도덕을 잘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사회주의적 애국주의(현, 김정일 애국주의)에 대한 설명에서 진정한 조국, 사회주의 조국은 곧 “수령님의 품, 어버이 수령님이시다”라고 천명하였습니다. 주체사상은 민족의 핵심을 수령으로 파악하여 민족주의를 전유하듯이, 국가의 요체를 수령으로 파악하여 애국주의를 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주체사상이 말하는 ‘김정일 애국주의’는 곧 ‘조선민족제일주의’ 정신과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일 애국주의와 상통하는 조선민족제일주의 정신은 “세기의 위인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인류의 영원한 태양으로 모시고 만민이 우러르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총비서로 모신 백전백승의 혁명적 당,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의 령도를 받는 긍지와 자부심”이며, “위대한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가장 우월한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 제도에서 사는 긍지와 자부심”이라고 합니다.
김정일은 당과 수령으로부터 받아 안은 은덕에 충성으로 보답하려는 깨끗한 마음을 ‘혁명적 양심’이라고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사랑에는 사랑으로 보답하는 것을 숭고한 ‘도덕의리’로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당과 수령으로부터 ‘믿음’과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으며, 그 믿음과 사랑에 ‘충성’으로 보답하는 것보다 더 큰 의리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혁명적 신념과 양심, 의리의 최고표현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믿음에 대한 가치, 그리고 충성과 효성에 대한 강조를 통해서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의 윤리적 차원에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전통적인 가치가 상당한 정도로 전유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김정일은 「주체의 혁명관을 튼튼히 세울데 대하여」라는 글에서, 공산주의적 인간의 도덕 품성에는 ‘정의’와 ‘사랑’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정의’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침해하는 온갖 부당한 행위를 증오하며 모든 문제를 편견과 사심이 없이 공정하게 대할 줄 아는 공명정대하고 성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며 사람을 위하여 진심으로 복무할 줄 아는 가장 인민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주체의 혁명관을 튼튼히 세울데 대하여」라는 글에서, 공산주의적 인간의 도덕 품성에는 ‘정의’와 ‘사랑’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정의’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침해하는 온갖 부당한 행위를 증오하며 모든 문제를 편견과 사심이 없이 공정하게 대할 줄 아는 공명정대하고 성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며 사람을 위하여 진심으로 복무할 줄 아는 가장 인민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자주적인 인간의 인격과 존엄, 권리를 평등하게 인정하고 지켜주고 보장해줄 데 대한 요구를 가장 집중적으로 담고 있는 범주가 ‘정의’의 범주라고 합니다. 자주적인 인간들을 생사운명을 함께 하는 귀중한 혁명동지로 결합시키고 서로를 위해주고 돕고 이끌어줄 데 대한 요구를 가장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범주가 ‘사랑’의 범주라고 합니다. ‘정의’의 면과 ‘사랑’의 면에서 인간 그 자체와 인간적인 모든 것을 도덕적으로 대하면 개별적인 사람들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옹호실현하면서 집단의 통일과 단결을 원만하게 강화발전시켜나가는 문제를 성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 파악하는 하느님의 속성에 대한 이해, 곧 정의의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사랑의 하느님이시라는 역설적 하느님 이해를 가지고 있듯이, 북의 주체사상 신봉자들도 윤리적 차원에서 ‘정의’와 ‘사랑’을 중요한 범주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체사상의 윤리적 차원에 대한 이제까지의 연재에서 살펴보았듯이, 북한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은 ‘영생’의 부여자인 ‘수령’을 중심으로 강력히 결합된 공동체를 가지고 있으며, 이 공동체, 즉 ‘사회정치적생명체’의 중심인 ‘수령’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중심으로 하여 그 공동체의 윤리가 구성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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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종교비판, “종교는 허위와 독으로 가득차 있다””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64)
Q: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은 어떻게 변하여 왔나요?(1)_반종교 운동 초기(1945~1970)의 종교 인식 (1)
A: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북의 주체사상 신봉자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체사상이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종교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여 왔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를 아는 것을 통해 상대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재부터 몇 회에 걸쳐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근대 내이션(국민/민족국가)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이념을 바탕으로 삼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한마디로 어떤 이념을 그 민족의 내셔널리즘(국가/민족주의)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경쟁하는 여러 이념들 간의 인정투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정부수립 초기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북의 정권은 내셔널리즘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할 수도 있는 이념의 한 형태인 ‘종교’를 강력히 배제했습니다. 이에 따라 ‘주체사상’이 배타적으로 ‘내셔널리즘’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북의 정권은 헌법 상으로 ‘신앙의 자유’와 함께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명시함으로써 반종교 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습니다.
▲ 북한인권정보센터, ‘2013 북한 종교자유백서’ |
북의 초대 내각 수상인 ‘수령’ 김일성은 1949년 7월 내각 제21차 전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습니다.
“물론 국가에서는 종교를 믿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며 신앙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를 믿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종교를 믿지 말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하여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의 비과학성을 깨닫고 스스로 례배당에 가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종교의 해독성과 허위성을 폭로하는 것과 함께 세계는 어떻게 발생 발전하였는가, 인간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것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담화와 강연을 자주 조직하며 자연과 사회발전의 법칙을 통속적으로 해설한 도서를 많이 출판하여 근로자들 속에 널리 보급하여야 합니다. 문화선전성에서는 과학서적을 많이 출판하여 보급하기 위한 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하겠습니다.”
이 발언은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수령’ 김일성의 당시 종교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종교 인식은 북의 ‘내셔널리즘’으로 기능하고 있었던 세속종교인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이기도 합니다. ‘종교’는 그 교리가 ‘관념론’으로서 ‘허위적’이고, 그 실천이 ‘반동적’이기에 ‘해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959년에는 주체사상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종교에 대한 입장을 보다 명확히 드러내주는 『우리는 왜 종교를 반대하여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단행본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정하철은 ‘종교’란 ‘자연이나 사회적 힘에 대한 인간의 무력성으로 하여 사람들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현실에 대한 무관심성, 현실도피적인 사상, 노예적 복종의 사상을 설교하고 있으며, 식민주의자들이 약소국가들을 침략하고 약탈하는 데 흔히 이용하여 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종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종교의 허망성, 그의 본질과 반동적인 역할, 그의 해독성을 철저히 인식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허망성, 반동성과 해독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해서는 이와 관련된 신문, 기타 서적들을 자주 읽으며 영화, 연극, 기타 써클 공연들을 자주 관람하며, 특히 강연회 등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동시에, ‘우리들 속에 아직 남아있는 종교 미신적인 환상들’ 뿐만 아니라 낡은 사회에서 물려받은 ‘온갖 낙후한 사상잔재들’을 극복 청산하는 가장 중요한 방도로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실천적인 로력 투쟁’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가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여, 이 책은 종교가 ‘과학적인 세계관’인 맑스-레닌주의와는 반대되는 ‘관념론’의 일종이라는 것과, 역사적으로는 지배층과 제국주의의 입장을 옹호하여 왔다는 것을 지적하며, 종교가 ‘허망성’과 ‘반동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질타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에 대한 주체사상의 이러한 입장은 1966년에 발간된 『남조선에 류포되고 있는 현대부르죠아철학 및 사회학 비판』이라는 단행본에서 계속 확인됩니다. 이 책의 저자인 조중학은 ‘남조선에 류포되고 있는 현대부르죠아철학’의 예로 실존주의, 실용주의, 논리적 실증주의, 신토마스주의를 열거한 뒤,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남조선에 류포되고 있는 현대부르죠아철학은 특히 종교와 밀접하게 결합되고 있다. 그들은 저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종교에 내맡긴다. 오늘 남조선에서 잡다한 종교류파들과 서로 엉키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여러 가지의 사상조류들은 거의나 다 세계관의 최종문제를 결국 종교에 귀착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현대부르죠아철학은 세계의 객관적 합법칙성을 거부하고 종교적 비합리주의를 설교하고 있다.”
즉, 저자는 ‘종교’의 문제를 ‘세계관’의 문제로 파악하고, 결국은 ‘관념론’ 철학이 비과학적 세계관인 ‘종교’로 귀착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종교의 세계관이 허망하다는 점과 함께, ‘제국주의’와 관련된 종교의 실천적인 ‘반동성’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제는 이미 19세기 하반기부터 조선에 대한 침략을 개시하였고 그들이 사상침략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삼은 것은 종교였다. 조선에 파견된 기독교선교사들은 자기들을 <하느님의 사도>로 가장하고 교회와 병원, 신학교들을 설립하고 그것을 통하여 조선인민들에게 미국에 대한 <숭배>사상을 부식시키는데 골몰하였다. 미제는 해방 후 더욱 발광적으로 종교를 남조선에 부식시키고 자기들이 조종하는 12개의 신학대학 및 신학교를 비롯하여 158개의 중고등학교 및 국민학교, 6개의 방송국, 5개의 신문사, 700여개의 병원, 고아원, 양로원, 4개의 출판사들을 운영하면서 <반공> 숭미사상을 고취하고 있다.”
결국 1966년에 출판된 이 책도 1959년에 출간된 정하철의 책과 마찬가지로 맑스-레닌주의의 종교관에 기초하여 ‘종교’의 교리적 ‘허구성’과 실천적 ‘반동성’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종교 선전과 관련한 책자들을 통해 주체사상의 반종교 담론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주체사상의 반종교 담론의 논지는 종교는 비과학적인 ‘관념론’이기에 이론적으로 ‘허구적’이며, 착취계급에 복무하기에 실천적으로 ‘반동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반종교 운동 초기의 시기에 북의 정권은 강력한 반종교 정책을 통해 종교의 부정적인 면모를 ‘폭로’해나갔으며, 그 결과 북에서의 ‘종교’는 북의 국가건설에 있어 ‘내셔널리즘’의 자리를 두고 경쟁할 수 있는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였습니다. ‘종교’는 ‘미신’과 짝을 이루어 ‘타파’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주체사상은 종교비판을 통해 ‘종교적 세계관’이 그 기반이 된 ‘잡다한’ 사상조류가 뒤섞여 돌아가는 ‘남조선’보다 ‘위대한 주체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 ‘공화국’이 훨씬 더 우월한 국가라는 체제 우위의 논리도 도출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성찰의 지점을 얻게 됩니다. 주체사상의 종교비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항상 ‘나의 신앙이 관념적이지 않은지’, ‘나의 실천이 반동적이지 않은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구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그리스도교가 관념화, 반동화 된 시기가 존재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다만, 오늘 날의 그리스도교 교회가 지난 시기의 교회가 범한 잘못을 되풀이하여 지금에서도 주체사상의 종교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반드시 실천적인 개혁의 과제를 수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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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반종교 운동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65)
Q: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은 어떻게 변하여 왔나요?(2)_반종교 운동 심화기(1970~1980)의 종교 인식(1)
A: 지난 연재에 이어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번 연재에서 살펴 볼 시기는 1970년에서 1980년에 이르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북에서 반종교 운동이 심도 있게 진행되던 시기입니다.
1972년 세계적인 해빙무드 속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남북교류의 가능성이 대두되었습니다. 남의 종교와 북의 주체사상이 실제로 대면해야 할 상황이 닥쳐온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은 이른바 ‘사회주의 헌법’으로의 헌법 개정을 통해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여 보장하는 한편, 종교에 대한 비판을 심화시켜 나갑니다.
1948년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 규정에서 “공민은 신앙 및 종교의식 거행의 자유를 가진다”라고만 명시한데 비하여, 1972년에 제정된 ‘사회주의 헌법’에서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여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종교 비판에 있어서도 반종교 운동 초기에는 맑스주의 유물론에 입각하여 원론적 차원에서 종교의 허구성과 반동성을 지적한 반면, 1970년대 중반부터는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반종교 운동 심화기의 종교비판은 그 논조가 반종교 운동 초기의 철학적이고 사상적인 비판으로부터 인생관적 측면의 비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에 따라 종교 비판도 종교 전반에 대한 도식적인 비판보다는 개별 종교의 역사나 상황, 교리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한 비판으로 심화되어 전개됩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반종교 운동 심화기’라고 명명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심도 깊은 반종교 운동이 전개된 배경에는 북의 주체사상이 남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종교들과 직접 대면하고, ‘내이션’(국가/민족)의 정체성을 규정할 ‘내셔널리즘’(국가/민족주의)의 지위를 두고 경쟁하여야 할 가능성에서 비롯된 절박성과 진지성이 놓여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지난 2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주교들이 평양 장충성당을 방문해 미사를 봉헌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 시기는 북에서 종교인들과의 통일전선적 협조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크게 강화된 시기입니다. 이러한 노력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습니다. 그 요인들 중 첫째는 종교영역에서도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료되어 북의 종교인들이 확고하게 사회주의를 지지하게 되었다는 자신감입니다.
둘째는 미중 관계 개선으로 인한 한반도 주변 정세의 호전과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대표되는 남북대화의 급진전입니다. 셋째는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와 바티칸, 남미를 중심으로 한 진보적 신학의 대두, 체코의 신학자 요세프 흐로마드카를 필두로 한 유럽에서의 그리스도교-맑스주의 사이의 대화, 각국 공산당들의 통일전선 구축에로의 종교정책 수정 등 국제적 종교정세의 변화입니다. 넷째는 한국기독교장로회를 필두로 한 남의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반독재 투쟁에의 참여입니다.
이상의 요인들은 서로 맞물려 주체사상의 종교 이해에 있어 일정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가 종교인들과의 통일전선적 협조관계 구축을 위한 노력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북이 구축하고자 한 통일전선적 협조관계란 어디까지나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한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측면은 종교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며, 다른 한 측면은 종교와 대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 모순적인 것 같지만, 북이 통일전선 구축을 위한 과정에서 같은 편으로 ‘묶어세워야’ 할 종교와의 협조를 위해서는 종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동시에 북이 구축할 이 통일전선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기 위해서는 주체사상과는 다른 사상체계로서 ‘잡사상’의 일종인 종교와 반드시 ‘대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에 주체사상의 종교이해가 심화되고 종교 인식이 변화하였다는 사실은 1975년 사회과학출판사에서 출판된 허종호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리론』이라는 단행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허종호는 ‘종교’가 역사적으로 ‘억압과 착취의 도구’였으며 ‘남조선’에 대한 미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 침략의 주요한 수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남조선’에는 1,795만 여명의 ‘종교인’이 있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군사파쇼통치’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조선의 종교계’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종교문제를 신중히 다루어야 하며 종교 인사들과의 사업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허종호는 ‘종교인들을 무조건 나쁘다고 보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수령’ 김일성의 ‘교시’를 바탕으로, “종교와 종교 신도를 같이 보아서는 안 되며 종교 신도도 개별적으로 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의 이러한 입장은 종교 전반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태도는 ‘종교’ 자체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극복 대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 태도는 ‘종교 신도’에 대해서는 정치적 목표를 위해 협력하고 연합해야 할 대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수령’ 김일성으로부터 비롯된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이 시기 북의 당국이 펼친 종교정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시기 북의 당국이 펼친 종교정책도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측면은 ‘유화책’입니다. 이는 북의 당국이 종교인들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각종 종교단체들의 활동을 허락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다른 한 측면은 ‘대결책’입니다. 이는 북의 당국이 주체사상을 사상적 무기로 삼아 개별 종교들의 사상과 행태를 조목조목 연구하고 그 허위성과 반동성을 구체적으로 폭로하는 ‘반종교 선전’으로 드러납니다. 여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북의 주체사상과 대화함에 있어 두 가지 태도를 겸하여야 하며, 따라서 그리스도교-주체사상 사이의 대화도 두 가지 측면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사이의 대화의 한 측면은 ‘협력적 대화’로 서로의 이해를 증진하고,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려는 노력 속에서 상호 인정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대화라는 측면입니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사이의 대화의 다른 한 측면은 ‘대결적 대화’로 종교의 허구성을 주장하는 주체사상의 견해에 맞서 종교의 진리성을 변증하려는 대화라는 측면입니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력적 대화’와 ‘대결적 대화’가 각각 다른 대화가 아니며,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라는 하나의 대화가 가지고 있는 양 측면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체사상 신봉자들과 협력적 대화를 하면서도 그리스도교의 진리성을 변증하려는 노력을 늦추지 않아야 하며, 주체사상 신봉자들과 그리스도교의 진리성을 변증하는 대결적 대화를 하면서도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포용하려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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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남한 진보신학 비판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66)
Q: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은 어떻게 변하여 왔나요?(3)_반종교 운동 심화기(1970~1980)의 종교 인식(2)
A: 이번 연재에서는 지난 연재에 이어, 북에서 반종교 운동이 심도 있게 진행되던 ‘반종교 운동 심화기’에 있어서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 변화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 연재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시기의 특성은 주체사상의 반종교 담론이 기존의 맑스-레닌주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에 입각한 반종교 담론의 특징은 맑스-레닌주의 유물론 철학의 입장에 따른 도식적 관념론 비판에서 벗어나, 해당 종교의 교리나 상황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전제로 매우 구체적인 비판을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1975년에 북의 사회과학출판사는 「철학연구소」가 집필한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사상적 침투의 반동적 본질』이라는 제목의 종교관련 이론서를 출판하였습니다. 이 이론서는 주로 당시 남의 그리스도교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비판이 단지 일반적인 그리스도교의 교리적 측면의 허구성을 지적하거나,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 교회에 의해 자행되어온 실천적 반동성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 이론서는 동시대 ‘남조선’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흐름을 인지한 바탕 위에서 매우 구체적인 비판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으로 비추어 볼 때, 당시 「철학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이 상당한 정도로 남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학습을 진행한 이론가 집단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비록 대결적 입장을 고수하였지만, 북의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나름대로의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를 시도한 집단이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 경북 상주 천주교 신앙고백비 |
「철학연구소」는 이 이론서를 통하여 남의 그리스도교의 ‘토착화 신학’과 ‘종교간 대화의 신학’, ‘에큐메니칼 운동’, ‘세속화 신학’, ‘평신도 운동’ 등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는 「철학연구소」의 이론가 집단이 당시 남의 그리스도교계의 신학적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비록 남의 그리스도교계의 신학적 동향에 대해 대결적인 논조로 일관하고 있지만, 상당한 정도의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철학연구소」는 이 책에서 남의 그리스도교의 ‘토착화 신학’에 대해 “기독교의 <토착화>란 <서양화된 기독교>를 남조선이라는 지역과 풍토, 그리고 주민의 감정에 맞게, 말하자면 이른바 <한국화>된 기독교로 고쳐만든다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시 남의 그리스도교계에서 토착화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남조선 인민들 속에서 민족자주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인민들 속에서 기독교를 통한 미제의 사상문화적 침략에 대한 반항 기세가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토착화’의 주요 내용에 대해서는 “<한국적 신학>의 수립과 기독교와 토착종교와의 <대화>”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철학연구소」는 ‘한국적 신학의 수립’에 대해서는, “놈들은 까다로운 외래어들과 고어들로 엮어진 종래의 <성서>를 현대적인 조선말로 번역하는 것과 함께 <종교의식의 한국화>에 대해 떠들면서 <성모>상을 조선처녀로 묘사하고 <찬송가>를 남조선 시인들의 시편들로 보충하는 것과 같은 광대놀음을 벌리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적 신학’을 수립하려는 ‘저의’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외래적 성격과 침략적 본질을 가리우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토착종교와의 대화’에 대해서는, “놈들은 <한국사상풍토>와 <한국의 전통적 종교에서 기독교를 찾는다>고 하면서 조선의 고유민속신앙, 불교와 유교, 천도교 등과 기독교와의 <대화>에 대해 떠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로 “놈들은 우선 <단군신화>와 <률곡사상> 그리고 <정감록>에 <한국의 전통사상>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들과 기독교 교리와의 <공통성>을 증명해보려고 책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례컨대 놈들은 단군신화의 <환인>, <환웅>, <환검>이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설>과 일치한다느니 단군신화가 <고급종교>인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에 기초하여 발생하였다느니 하는 식의 가소로운 궤변을 거리낌 없이 늘어놓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도는 “민속신앙에 대한 기독교의 <우월성>을 론증하고 <하나님>의 개념을 단군신화와 같은 민속신앙을 빌어 <토착화>함으로써 그 어떤 <전통사상> 즉 민속적인 것과 인연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기 위한 교활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남조선 기독교’의 ‘저의’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철학연구소」는 이 책을 통해,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토착화’와 마찬가지로 ‘에큐메니칼 운동’도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사상문화적 침투’의 일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철학연구소」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놈들은 기독교의 <토착화>를 들고 나오는 것과 함께 1960년대에 이르러 <기독교계의 최대의 운동은 에큐메니칼 운동>이라고 떠들면서 <국경과 주의를 초월하는 교리보급>, 세계교회의 <하나의 교회에로의 통일>에 대해서 지껄여대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세계주의>의 종교적 표현으로서 본질상 미국식 기독교를 <가장 위대한 종교>로 내세우고 모든 교회와 교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하며 종교계에 대한 제놈들의 지배를 더욱 강화하려는 시도이다.”
「철학연구소」는 ‘세속화’와 ‘평신도 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세속화’와 ‘평신도 운동’이 ‘적극적인 현실참여’와 ‘정치의 신학, 행동의 신학’을 제창하고 있다고 제창하지만 그 숨겨진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 숨겨진 목적은 “사람들을 더 많이 기독교의 영향 밑에 끌어들이고 종교 활동을 일반 신자 자신의 사업으로 전환시켜 종교몽매주의자들의 대렬을 더 많이 늘이자는데 있다”고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연구소」는 이 책을 끝맺으면서,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할 때만이 미제의 사상적 영향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온갖 부르죠아 반동사상을 짓부셔버릴 수 있다”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를 ‘주체사상’과 같은 ‘사상’의 일종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하기에 주체사상은 ‘그리스도교’라는 ‘사상’과의 ‘대결적 대화’를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상에서 살펴 본 내용을 통해, ‘반종교 운동 심화기’에 있어 북의 주체사상 이론가들의 종교 인식과 종교 이해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비록 ‘대결적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주체사상의 이론가들이 우리 그리스도교에 대해 ‘대화’의 지점을 모색하는 노력을 진지하게 지속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8~90년대에 이르러 주체사상이 종교를 전향적으로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는 데에 일정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 진영의 진보적 신학자들 및 목회자들이 8~90년대에 북미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주체사상’간 ‘협력적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에큐메니칼 운동’을 그다지도 심하게 비판했던 1970년대 주체사상 이론가들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결적 대화’가 놓여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주체사상’간 대화의 양면적 속성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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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은 왜 민족주의를 강조했나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67)
Q: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은 어떻게 변하여 왔나요?(4)_민족 복권기(1980~1990)의 종교 인식(1)
A: 이번 연재에서는 북에서 ‘민족’이 재발견되고 그 가치가 ‘복권’되던 시기인 1980년~1990년에 걸쳐 주체사상의 종교인식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은 1980년에 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북은 이 대회에서 새로운 통일방안인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안하였습니다.
이 통일방안을 통해 주체사상은 ‘민족’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함으로서 ‘민족’을 ‘복권’시킵니다. 1980년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 토론에서 당시 대남비서였던 김중린은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습니다.
“김일성 동지께서 이번 대회에서 내놓으신 통일방안은 바로 민족문제에 관한 우리 당의 이러한 근본입장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 민족문제의 해결은 계급해방이나 인간해방 문제의 해결에 앞서야 하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여야 합니다. 민족이 있고서야 혁명과 건설도 있을 수 있고 사상과 리념도 있을 수 있으며 민족을 떠나서는 그것이 다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주의를 하든 공산주의를 하든 그 어떤 사상과 리념을 신봉하든지 간에 무엇보다 먼저 민족을 찾아야 하며, 나라의 자주성을 지켜야 합니다.” |
주체사상이 ‘민족주의’를 ‘부르죠아 반동사상’의 한 조류로 파악했던 당시까지의 평가에 비추어보면, ‘민족주의를 하든 공산주의를 하든’ 간에 무엇보다 먼저 ‘민족’을 찾아야 한다는 이 발언은 주체사상의 ‘민족’ 이해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북의 사회과학원은 1985년에 『철학사전』을 출판하면서 ‘민족’ 항목에 대해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해나가는 혁명과 건설의 기본단위’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이는 곧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기본 단위가 민족이라는 설명입니다.
▲ 민족을 전면에 내세운 북한의 선전 포스터 ©Getty Image |
즉, ‘수령과 당과 대중의 삼위일체’라는 내포를 지닌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개념이 현실 속에서 역사적 실체로 드러날 때에는 ‘민족’이라는 외연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 주체사상은 ‘민족’을 ‘영생의 기본단위’로 이해하고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시기 주체사상에서 ‘민족’은 완벽하게 복권되어 최상으로 격상되고 있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이 민족을 강조하고 민족주의를 복권하게 되는 이 시기에, 북한의 종교인식은 급격한 변화를 보이게 됩니다. 이 시기 직후인 1991년에 출판된 『조선말대사전』은 이 시기 초기인 1981년에 출판된 『현대조선말사전』과 비교해 볼 때, 종교관련 항목의 설명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1981년에 출판된 『현대조선말사전』은 1970년대 반종교운동 심화기의 종교에 대한 주체사상의 입장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1991년에 출판된 『조선말대사전』은 1980년대 민족 복권기의 종교에 대한 주체사상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현대조선말사전』에 드러난 주체사상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입장에서 강력한 비판을 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조선말대사전』에 드러난 주체사상은 사상과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용인하는 방향에서, 종교의 잘못을 지적하기 보다는 종교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1년에 출판된 『현대조선말사전』은 ‘종교’ 항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 <하느님>등과 같은 자연과 사람을 지배하는 그 어떤 초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존재나 힘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맹목적으로 믿고 그에 의지해서 살게 하며 이른바 저승에서의 ‘행복한’ 생활을 꿈꿀 것을 설교하는 반동적인 세계관 또는 그러한 조직. 믿는 대상과 방식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이것은 자연적 힘이나 사회적 힘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환상적인 것으로서 력사적으로는 지배계급이 인민을 속이고 억압, 착취하는 도구로 리용되었으며 근대에 와서는 제국주의자들이 뒤떨어진 나라들을 침략하는 사상적 도구로 리용되고 있다. 종교는 인민대중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고 착취와 억압에 무조건 굴종하는 무저항주의를 고취하는 아편이다.” |
1991년에 출판된 『조선말대사전』은 ‘종교’ 항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인간의 지향과 념원을 환상적으로 반영하여 신성시하며 받들어 모시는 초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 또는 그 믿음을 설교하는 교리에 기초하고 있는 세계관. <신>이나 <하느님>과 같은 거룩한 존재를 믿고 따르며 그에 의지해서 살아갈 때만 온갖 소원이 성취될 뿐만 아니라 래세에 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설교한다. 원시종교로부터 시작하여 불교, 기독교, 회교 등 수많은 종교와 크고 작은 류파들이 있다.” |
이 두 사전을 비교해볼 때, 출판년도의 차이는 10년이지만, 종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가히 상전벽해라고 일컬을 만 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1980년대의 주체사상이 크게 인식의 변화를 보이는 두 가지 대상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 하나는 ‘민족’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입니다. 이 두 가지 대상에 대해 주체사상은 기존의 맑스-레닌주의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입장의 전환을 이루어내었습니다.
기존의 맑스-레닌주의가 민족의 소멸성을 지적하며 종교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였다면, 1980년대를 거친 주체사상은 민족의 실체성을 인정하고 종교에 대해서는 포용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민족 복권기인 1980년대에 도대체 북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기에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을 변화시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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