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경
25 November 2012 · Seoul, South Korea ·
< 본회 연구위원 정혜경鄭惠瓊 >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뉴스레터 P's Letter(17호)에 실을 책 이야기: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와 천황의 시대』(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 지음, 정선태鄭善太 옮김, 2012년, 페이퍼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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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내린 밤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 그것은 자신의 신체를 몇 배까지든 확대한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虛像. 달빛에 비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인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가 평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인생이다.
‘도조의 조부와 부친, 그리고 도조 히데키가 걸어온 인생 편력(자신의 실력과 지원자의 힘만으로 마침내 성공에 다다랐을 때 시대의 파도를 만나 붕괴한 도조 집안의 공통점)은 바로 달빛에 드리운 그림자가 달이 구름에 가린 순간 사라져버린 것과 흡사’했다.
이 책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평전이다. 호사카 마사야스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도조 히데키에 대해 숨김없이 말하는 것이야말로 전후 일본의 궤적을 재검토하기 위한 필수요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 일본에서 도조 히데키에 대해 극히 피상적인 견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호사카 마사야스가 평전을 쓰기 위해 ‘도조에 관해 이야기되고 있는 사실을 하나씩 점검’하면서 이런 문제의식은 더욱 강해졌다. 도조가 재임 때 쓴 메모, 일기日記, 스가모巢鴨에서 생활하면서 소감을 적은 ‘도조일기東條日記’, 비서관과 부관이 적어둔 메모류 까지 모두 점검했다. 그 결과 그동안 이야기된 몇몇 부분은 허위 내지 과장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두 가지 문제를 제시하고자 했다.
하나는 도조 히데키와 육군의 중심인물들만이 쇼와 전사昭和前史에서 전적으로 부정적인 존재인가 여부이다. 또 다른 하나는 도조 히데키의 지도자로서 자질이나 성향을 교묘하게 근대의 정치·군사 형태의 부정적인 국면과 중첩시킴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은 도조 히데키와 그를 만든 시대, 제2장과 3장은 도조 히데키와 그가 만든 시대, 제4장에서는 도조 히데키와 그를 버린 시대의 의미를 담았다.[한국에서는 한권으로 번역 출간했지만, 2005년 일본에서 출간되었을 때에는 제1,2장을 상권에, 제3,4장을 하권에 수록]
이 책은 『쇼와 육군 연구』, 『지치부노미야』, 『요시다 시게루라는 역설』등 일본현대사연구 최고 전문가로 통하는 논픽션 저널리스트 저자(호사카 마사야스)의 작품답게 일본 군벌과 정계에 대한 분석이 탁월卓越하다. 4천여명에 대한 취재와 150여권의 저술이 바탕을 이룬 성과이다.
논픽션 저널리스트 답게, 도조 히데키가 ‘달빛에 비친 그림자’를 실상實像으로 착각하며 평생을 살다가 사형대에 올라서기 직전에 비로소 허상虛像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박진감 넘치는 문장은 700쪽의 책을 중간에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은 성지聖旨에 대한 맹목성 앞에서 무소신無所信으로 일관하며 살아온 도조의 허접한 실체를 그대로 드러내준다. 국가 지도자로서 능력은 물론 기본적인 인생철학, 국가관도 갖추지 못한 도조에게 일본의 운명을 내 맡긴 당대 지도자들의 역학관계와 서민 코스프레에 감동했던 일본 민중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일본의 국력과 물자로서는 도저히 세계대전을 치룰 수 없음에도 감행한 무모함, 바닥난 물자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정신력’으로 해결하려는 어리석음은 명심銘心해야 할 역사의 교훈敎訓이다.
그러나 저자는 도조에게 너무 몰입한 나머지 성지聖旨의 주인공 히로히토裕仁에게는 지나치게 큰 면죄부를 주었다. 이 점은 표지 디자인에서도 드러난다. 『히로히토 평전』이나 『패배를 껴안고』와 함께 읽어 균형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유려한 문체와 번역자의 참고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시하라와 이시와라(만주사변 주인공 石原莞爾) 등 유명인들의 잦은 일본어 독음 오류도 감점 요인이다.
< 본회 연구위원 정혜경鄭惠瓊 >
8Kim GwangYol, 서진영 and 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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