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8

강화도 조약 140주년, 한·일 화해를 말하다 - 경향신문 AMP



강화도 조약 140주년, 한·일 화해를 말하다 - 경향신문 AMP




강화도 조약 140주년, 한·일 화해를 말하다



백철 기자2016.08.13 18:49 입력


“죄송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동양철학자인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종합인간학부 교수(57)는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 학자다. 한국어 학습서를 펴내고, NHK에서 한국어 강좌 강사로 활동해온 오구라 교수는 20일 예정된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의 목소리’ 2회 심포지엄에서 ‘일본인은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가’란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발표문에서 오구라 교수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마음속에 ‘죄송하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평범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전했다. 또한 오구라 교수는 “가해자와 피해자, 또는 그 자손들의 관계는 절대적으로 모순되는 것인지, 어떤 접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지 우리 자신이 스스로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오구라 교수의 발표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8월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도 특별한 달이다. 일본인들에게 8월은 전쟁과 죽음을 기억하는 달이다. 매미소리가 요란할수록 저는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1945년 8월의 패전을 이야기할 때 ‘일본인은 원폭 피해자로서의 입장만 기억하고 가해자 측면은 망각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부 맞는 지적이지만 일본인이 가해자로서의 입장을 완전히 외면하는 건 아니다. 일본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긴 시간 동안 상복을 입은 채 생활해 왔다. 피해자로서뿐만 아니라 가해자로서도 자숙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일본은 군국주의적이다’라는 문항의 답변율이 높지만 이는 실상과 다르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평화주의를 관철한 ‘조용한 시대’를 보내 왔다. 일본의 조용함을 ‘기만’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전후 일본이 조용히 지내 왔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2차 대전 이후 ‘조용히 있는 것’은 일본의 기본 태도였다. 이 조용함의 의미에 대해 저는 일종의 판단정지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다른 나라에서 일본에 ‘입장을 명확히 하라’고 짜증과 조바심을 낼 때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의 복상(服喪)과 판단정지가 동아시아의 안정에 기여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일본에서 ‘복상은 끝났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타성에 젖은 평화와 무기력한 복상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한 우파가 ‘가짜 평화주의와 거짓 자숙에서 벗어나자’고 외치고 있다. 이에 대해 저는 일본은 계속해서 복상을 해야 하고, 과거 일본이 피해를 준 나라 국민들의 아픔이 아물 때까지 상복 입은 생활을 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마음속에 ‘죄송하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한국인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 한국인들에게 많은 일본인과 직접 만나서 대화해 보는 게 좋겠다는 말도 드리고 싶다. 미디어를 통해서는 일본인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다. 많은 일본인들은 한국 미디어가 그리는 것처럼 오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이 역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다거나, 명확한 죄책감을 느끼진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인은 조용히 복상하며 살아가는 겸손한 사람들이다. 물론 상당수의 평범한 일본인들은 ‘올바른 역사인식’이라는 표현에는 거부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일본의 가해자성은 부정할 수 없고, 고통받은 이들에게 깊이 사죄해야 한다는 정서가 있다.


일본인의 가해행위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점은 ‘우린 피해자들의 아픔에 진정으로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가해자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일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복상하는 생활을 지속하고 한편으로 기원하는 것이다. 기원한다는 말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순화하지 않고, 죽은 자와 산 자, 앞으로 살아갈 이들의 넋을 자신 안에 엇갈리고 뒤섞이게 한다는 뜻이다. 교황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아 15분간 침묵 속에 기도드리는 것,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은 행위처럼 말이다. 제가 한국을 만나온 과정은 한국의 무수하고 다양한 넋을 제 안에 소생시키고 기원시키는 과정이었다. 타자를 공격하는 것은 기원의 정반대 행위다.


1945년까지 대일본제국이 행한 일들에 대해 일본은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1회적으로 돈을 지급하거나 재판의 승패로 마무리할 일이 아니다. 일본인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생을 영위해 나가는 동안은 계속해서 기원해야 한다. 또한 과거 종주국-식민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한반도의 평화통일 등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공헌한다는 의지를 키워나가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또는 그 자손들의 관계는 절대적으로 모순되는 것인지, 어떤 접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지 우리 자신이 스스로 깊이 생각해야 한다. 기원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지금은 가볍고 표면적인 말이나 감정적인 격앙보다도 조용한 복상과 깊은 기원이 필요한 시기다.


오는 20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출판문화회관에서 한·일 화해를 말하는 심포지엄(학술토론회)이 열린다. 이번 토론회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해 민간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이해를 넓히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토론회를 주최하는 단체는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의 목소리’(이하 ‘목소리’)다. 지난해 6월 20일 창립한 ‘목소리’는 창립취지문에서 “국적과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대화와 우애의 공간을 만드는 일은 가능하다. 제국주의와 냉전주의의 상흔을 극복한 평화로운 미래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한 시도를 시작하자”고 밝혔다. 발기인들을 보면 한·일 간 화해와 교류를 추구하는 탈민족주의 성향의 학자들이 중심이 된 모임이라 할 수 있다.



“평범한 일본 사람들 제대로 알자”
애초 ‘목소리’가 창립된 직접적인 계기는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에 대한 나눔의집의 고발사건이었다. 박 교수는 현재도 ‘목소리’의 일원으로 20일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일부의 비판과 달리 나는 일본의 우파로부터는 ‘일본의 전쟁범죄를 들춰냈다’며 비판받고 있다. 그런데 급진 진보 쪽에서도 ‘일본 우익과 동조하고 있다’고 비판받는다”며 “합리적인 합의점이 많은 사회일수록 안정된 사회다. 좌우 극단으로부터 오는 분노와 대립보다는 합의와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대화의 장을 열자는 차원에서 이번 심포지엄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의 제목은 ‘조·일수교 140주년, 만남과 현재를 생각한다’이다. 여기에 나오는 조·일수교는 다름아닌 강화도조약이다. 1876년 2월 27일 맺어진 강화도조약은 일본의 함포외교로 체결된 조약이었다. 일본이 조선의 해양을 마음대로 측량할 수 있고, 일본인에 대한 치외법권을 인정하는 등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이다. 박유하 교수는 “조·일수교는 당연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맺어진 불평등한 조약이었다. 하지만 근대 시기 양국의 만남이 시작된 계기이기 때문에 이런 명칭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심포지엄 포스터의 배경 사진은 일본 지바현의 나기노하라라는 곳을 찍은 것이다. 1923년 9월, 나가노하라에서 최소 15명의 조선인들이 관동대지진 이후 방화와 약탈을 일삼았다는 혐의로 학살당한 뒤 파묻혔다. 6000여명에 달하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의 일부다. 박 교수는 “조·일수교나 관동대지진 등 한·일 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 만나서 화해를 도모하자는 취지를 포스터에 담았다”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조관자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종합인간학부 교수, 도쿄 특파원을 지낸 선우정 <조선일보> 논설위원 등이 참여한다.


참여자들의 기본 인식은 ‘일본을 제대로 알자’는 것이다.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일본의 모습은 주로 아베 신조 총리 등 일본 정치인들이 일본의 과거사에 반성하지 않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이지만, 실제 일본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목소리’에서는 한국인들의 막연한 반일감정이 일본 내의 혐한 여론을 부추기는 경향도 있다고 진단한다.


7월 17일 일본 오사카시 한국 총영사관 근처에서 혐한 시위대와 혐한 반대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다./연합뉴스

심포지엄 발표자인 조관자 교수는 “최근에 한·일관계를 일본의 우경화로 인한 변화로만 인식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런 대중적인 이해를 넘어서 일본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한다”며 “일본은 왜 변하지 않느냐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서로 상생하는 미래를 위해 서로가 변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번 심포지엄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한국에서 논의되는 ‘일본의 우경화’는 혐한 등 배외주의 성향 강화와 평화헌법 개정 시도를 들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실제로 과반수 일본인은 평화헌법 개정에 찬성하지 않는다. 또한 평범한 일본인들은 평화헌법 개정 문제를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보통국가의 문제로 본다. 보통국가로 가자는 일본인들의 생각을 무조건 우경화라고 말하는 인식이 오히려 평화헌법 개정 찬성자들을 늘리는 효과도 있다”고 봤다. 일본인들이 평화헌법개정에 반대하면서도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 개정 시도를 ‘우경화’라고 보지 않는다는 점은 일견 모순이다. 하지만 이것이 일본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일본의 혐한론은 2012년 한·일관계 악화가 불러온 사회적 현상이라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조 교수는 심지어 일본 우익 내부에서도 혐한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과거 일본의 우익들은 동아시아가 힘을 합쳐 서구 열강에 맞서자는 아시아주의를 설파했다. 일본 우익 중에는 기타 잇키처럼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토지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국가사회주의자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혐한론자들은 과거 우익들과 사상적으로도 인적으로도 관련이 없다”며 “스즈키 구니오처럼 과거 우익단체의 대표적인 인물도 혐한 현상을 비판하는 등 일본인의 대다수가 혐한 성향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인 과반수 평화헌법 개정 반대”
물론 그가 혐한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니다. 조 교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세력을 키워오던 넷우익이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해 일본 왕에게 일제강점기에 대한 사죄를 요구한 사건 등으로 인해 그 세력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진단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친근감(일본 내각부 여론조사)은 2011년 62.2%에 달했다. 하지만 같은 조사를 보면 2012년엔 39.2%, 2014년엔 31.5%의 일본인만이 한국을 친근하게 보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혐한’이 일본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류 붐이 꺾였다고는 하나 일본 TV에서는 여전히 한국 드라마를 쉽게 접할 수 있고, K팝 아티스트들의 일본 콘서트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조 교수는 한국인의 반일감정이 일본의 혐한감정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기는 하나, 반일감정을 실제보다 과장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조 교수가 소개한 일본 정부 관광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일본 방문자 수는 2014년 275만명에서 2015년 400만명으로 늘었다. 반면 같은 자료에서 일본인의 한국 방문자 수는 2012년 352만명에서 2014년 228만명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온다. 조 교수는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한국인들이 감정적으로 반응한다고 해서 일본 사회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나. 진짜 일본의 모습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세계인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게 내 생각”이라며 “그동안 학자들끼리는 교류와 소통이 있었지만 이제는 대중들에게 일본의 정확한 모습을 알리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가 속한 서울대 일본연구소의 경우 일본의 지식인들을 초청해 강연을 열고, 강연 내용을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11년부터 올해 6월까지 총 21권의 책이 나왔다. 그 중에는 ‘목소리’ 심포지엄 발표자이기도 한 오구라 기조 도쿄대 교수의 강연 내용도 있다. 2014년 11월 오구라 교수의 발표 내용의 주된 내용은 혐한 현상 비판이었지만, 혐한 비판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입장에서 곱씹을 만한 대목도 많이 이야기했다. 이를테면 일본 내부의 한류 열풍과 혐한의 관계다.


NHK 한글 강좌에서 강사를 지낸 오구라 교수는 일본의 한류 팬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한 역사적인 반성을 하지 않는다고 보는 풍조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마치 혐한세력이 ‘한국을 제대로 알면 좋아할 수 없다’고 보는 것처럼, 일부 한류 극성 팬들 중에는 상대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의 생각을 계몽하려고만 드는 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막연한 반일감정은 일본의 반한감정을 부추길 뿐이라는 주장과도 이어진다.


제4차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세계연대집회 및 제124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가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맞은편 소녀상 앞에서 열리고 있다. 참석자들이 평화의 박 터트리기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인 감정적 대응으로 일본 안 변해”
지난해 ‘목소리’는 창립총회 소식을 알리면서 “한국 사회는 해방 70년을 맞으면서도 여전히 ‘일본’이라는 이름의 주술적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인 아내와 살고 있다는 한 참가자는 한·일관계에 대해 “증오가 사실을 가공하고, 가공된 사실이 증오를 양산하며, 다시 증오를 재생산하는 순환구조에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목소리’ 참가자들의 진심과 무관하게 이들의 한·일 화해론은 역사수정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한·미·일 삼각동맹의 이론적 근거가 될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일 화해론에 회의적인 대표적 학자로는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과 교수를 들 수 있다. 박노자 교수는 기본적으로 ‘반일이 혐한을 부추긴다’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의 한국인들은 일상에서 일본을 의식하고 살지 않는다”며 “오히려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에 관심이 있으면 있었지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서 일본은 큰 변수는 아니다”라고 봤다. 박 교수는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한국 지배자들이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봤다. 그는 “한국인의 반일감정은 과거 일제시절 억압받은 트라우마가 아직까지 이어지는 것인데, 과연 한국의 지배자들이 과거 청산을 제대로 했나. 일제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친일파들이 계속 나라를 다스렸고, KBS에서 친일 장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상황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노자 교수는 한·일 양국의 지배집단이 양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서로 화해할 기회를 사실상 박탈하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한국 지배층이 과거사 청산을 외면해 왔기 때문에 반일감정이 계속되는 것처럼, 일본 지배층은 일본인들이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반성할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민중이 과거사를 제대로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는 화해가 이뤄지기 어렵다. 일본 지배층이 역사교과서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고치고, 오사카 평화박물관은 일본인들이 전쟁 기간 동안 고통받은 부분 위주로 전시 내용을 바꿨다”고 말했다. 일본 민중이 전쟁 기간 한국인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 제대로 알 기회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 시민 사이의 화해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한·일 화해’보다 ‘한·일 민중연대’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일본 내부에도 일본군 성노예 실태를 알린 요시미 요시아키 같은 학자, 한국의 정대협과 뜻을 같이하는 시민단체가 있다. 핵발전소 폐기를 외치는 활동가들이 밀양 송전탑 문제 등 핵발전소 관련 이슈가 생겼을 때 한국에 날아오기도 한다. 그는 “위안부 소녀상을 찾아온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고 말하는 것처럼, 한·일 민중연대의 과정 속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오해와 편견도 줄어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재일 학자인 정명환 메이지가쿠인대 교양교육센터 교수는 “일반론으로 말하자면 민간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모색하고 학술교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움직임”이라면서도 “궁극적으로 가해의 주체인 일본 정부가 피해자인 한국인들에게 피해보상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민간의 움직임도 큰 반향은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차원에서 한·일화해 모색 바람직”
정 교수는 최근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하는 저서를 펴냈다. 또한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화해가 필요한 게 아니라 진상 규명과 피해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일본의 변화를 무조건 우경화로 볼 것은 아니라는 화해론자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그는 “일본은 확실히 우경화하고 있는데, 일본의 지식인들도 우경화하고 있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국제적인 시각에서 보면 아베 신조 정권은 극우파들을 채용한 극우적인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며 “오히려 일본 언론에서 극우 정권을 ‘보수 정권’이라고만 부르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물론 정 교수도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봤다. 예를 들어 일본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의 경우 한국에서는 조선 식민지배에 앞장선 정치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 헌법을 만든 총리로서의 면모라든지, 비교적 온건파 제국주의자라는 점도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인들이 이토 히로부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아는 것과 일본인들의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며 “한국에서 한·일 화해를 말하는 분들은 주로 일본에서의 ‘상식’ 기반 위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면이 조금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한·일 민중연대’를 위해서도 일본의 시민사회가 좀 더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지난 20년간 일본 내에서도 일본인 위안부 문제에 반성하고 사죄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한·일 화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이 과거 일본제국의 연속성을 끊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일본의 민중들과 시민사회의 과제다”라고 말했다.


한편, ‘목소리’의 박유하 교수는 한·일 화해론자들의 노력이 결과적로 한·미·일 삼각동맹의 이론적 뒷받침이 된다는 주장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위안부 화해치유재단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저는 어떠한 토론 과정도 없는 한·일 밀실 합의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었다”며 “저는 한·미·일 군사동맹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그동안 주로 진보진영 사람들과 함께 활동해 왔는데 일본 우익과 한편이라는 식의 비판은 온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박 교수는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의 목소리’는 한·일 화해를 넘어서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고민하는 시민모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화해는 결국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들 사이의 화해와 궁극적으로 남북 화해와도 다 연결된 주제다. 지금은 ‘목소리’ 내에 북한이나 중국 전문가가 없을 뿐, 그들이 참여한다면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모색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토론회를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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