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 1급 설계원.보위부 비밀요원의 자유.인권.민주주의 향한 여정
한원채 (지은이)행복에너지2019-06-25
9.2100자평(3)리뷰(7)
312쪽
146*216mm
47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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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 번째 북조선 탈출에 성공한 한원채가 연길에서 북조선으로 강제 송환된 뒤 구류장에서의 경험을 적나라하게 쓰고 북한의 비인도적 인권 무시, 부패 타락한 사회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싶은 강한 의지로 쓴 원고이다. 원제는 ‘광명을 찾아서: 나의 감방생활 수기’이다.
원고는 대한민국으로 오는 관문인 중국 대련으로 이동하기 직전에 탈고, 2부를 복사해 원본과 사본 1부는 일본으로, 사본 1부는 연길시 신풍교회에 전달했으나 교회에 침투해 있던 북한 공작조에게 넘어간 모양이다. 대련에서 중국 공안에 세 번째 체포 돼 북송된 한원채는 3일 만에 고문을 받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끝내 탈북하지 못한 탈북자의 수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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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사: 태영호, 이영환
머리말
1장 시련
정치보위부 지하 감방
회령시 안전부 감방으로
이 잡이와 꽃제비 참상
2장 탈출
보위사령부 백산초소
머나먼 길주로의 호송
살인 소굴 재탈출
3장 만장
중국 장백에서 만장까지
인정 깊은 파출소 소장
감방에서 사귄 친구
4장 량강도
정취보위부 재수감
안전부 집결소의 하루
뽐뿌와 직승기 처벌
5장 광명
함경남도 안전부 호송
친인척 상봉과 결별
다시 중국 연길로 재탈출
맺는말
일본어판 후기: 이산하
자녀 후기: 한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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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내가 중국 연길시 장백향파출소에 연행된 것은 1999년 8월 11일 오전 10시경이다.
집결소의 하루하루는 강제 로동으로 시작되며 심문과 고문, 노예적 굴욕과 인권 유린, 인권 침해, 강제 로동으로 끝난다. 이른 아침부터 정복 입은 승인된 도적놈들의 채찍 밑에 들볶이며 일터로 떠나는 죄수들의 몰골은 참으로 측은해 보인다. 살 빠진 어깨 우에 푹 움츠러든 가느다란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안전원 선생님들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는 그들은 모두가 생기 잃은 얼굴로 삶을 귀찮아한다.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사는 비참한 노예의 운명을 지닌 인간들의 집단이다. 접기
감방 안에서 죄수들 호상끼리 허물없이 하는 말이었다. 비좁은 감방 안 조용한 곳에서 죄수 동료끼리만 할 수 있는 공통된 말이다. 이 좁은 살창 안이 아닌 그 밖의 어느 공간에서든지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자기 생각을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세상, 자유로운 남의 말을 자기의 귀로 자유롭게 들을 수 없는 세상, 남의 좋은 것을 자기의 밝은 눈으로 자유롭게 볼 수 없는 세
상, 이것이 오늘의 북조선이다. 아 세상이여, 자유의 공간은 이다지도 좁단 말인가! 접기
“야, 이 새끼야, 너 왜 중국에 갔댔어?” “야, 이 새끼 솔직히 말해라. 다 알고 묻는데 왜 거짓말을 해?” 그렇게 말하며 나의 아랫도리를 발로 마구 차며 행패를 부린다. 나는 처음으로 구타당했다. 내가 신음을 내자 또 주먹으로 두 뺨을 엇바꿔 가면서 강타를 들이댄다. 내가 두 팔꿈치로 얼굴을 가리면서 그자의 주먹 강타를 피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금방 가지고 들어온 몽둥이로 몸의 아무 부위나 관계하지 않고 마구 두들겨 패는 것이다. 나는 불의에 가해지는 예상치 않았던 매질 앞에서 어쩔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몸을 돌리면서 피하려고 했으나, 수쇠 찬 몸이다 보니 두들겨 주는 대로 맞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접기탈북 후 1년 만에 다시 돌아오는 조선의 지리와 마을, 사람과 자연, 숨 막히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그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길가에서는 1년 전 내가 조선을 떠날 때와 다름없는 백성들의 참상이 펼쳐졌다. 기름때 반들거리는 꽃제비 아이들의 정기 잃은 눈동자, 휘청거리며 방랑하는 거지 옷차림의 중년 사나이들과 로인들, 무거운 짐을 두 어깨에 걸머진 배낭꾼 행인들, 허약에 걸린 젊은 병사의 무질서한 움직임. 그런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접기
그 누가 맨 처음 신선한 꽃과 제비의 이름을 따내 ‘꽃제비’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아마 처음에는 불쌍한 어린이를 동정해서 꽃 같은 제비로 칭했으리라. 옛날에는 말조차 없었던 꽃제비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그 이름의 주인공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전국 도처에 나다니고 있다. 이제 갓 말을 배우는 젖먹이 어린애들도 꽃제비의 참뜻을 알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큰 민족의 수치인가! 허 씨의 눈물겨운 인생학 강의를 들으며 지금은 비록 목숨 붙어 살아가고 있으나 얼마 있지 않으면 또 새로운 꽃제비로 태어날 수많은 조선의 꽃제비 세상을 그려 보면서 또 하루 감방 속에서의 밤을 지새웠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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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애써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 복지의 혜택을 북녘으로 확산하는 것이 통일운동이다. 과거 군사정부가 그러하듯 북조선은 해체·해방의 대상이다. 독재자와 평화를 논하는 것은 평화에 대한 모독이고, 민족문제를 논하는 것은 민족에 대한 반역이다.
- 조정진 (세계일보 논설위원. <누가 국새를 삼켰는가> 저자)
지금 대한민국에는 수천만 북한 노예들의 운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예주와 사이좋게 지내려는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평범한 인텔리 한원채 씨가 남긴 이 글을 통해 북녘 주민들의 절규에 대한민국이 과연 어떻게 응해야 할지 그 해답을 찾길 바란다.
- 태영호 (전 북한외교관)
질식할 것 같은 고통과 당장 닥칠 것만 같은 죽음의 공포가 배인 저자의 거친 숨결이 행간마다 강렬하게 녹아있다. 목숨과 바꾼, 중국과 북한의 감방에서 절규하며 피로 쓴 이 수기가 노예공화국 북한의 폭정 종식을 앞당기는 강력한 무기가 되길 소원한다.
-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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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한원채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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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1943생. 함경남도 흥남시 회상구 역회 상동
주거지: 함경북도 길주군 영북구 68반
1951~1956년 함남 함주군 흥남인민학교 졸업
1956~1959년 함북 길주군 영북중학교 졸업
1959~1961년 함북 길주군 철도운수학교 졸업
1961~1963년 함북 길주군 팔프전문학교 졸업
1963~1967년 함남 함흥화학공업대학 졸업(기계공학사)
직장: 조선인민군 후방총국 직속 길주팔프련합기업소 설계원
표창: 국기훈장 2급 2개, 국기훈장 3급 3개
자격증: 과학기술발명권 3개, 신기술등록증 3개, 창의고안증 35개
특수임무: 1974년부터 길주팔프련합기업소 설계실 당세포 부서기(정치보위부 비밀공작원)
저서: <脫北者>(李山河 譯, 東京: 晩聲社, 2002) 접기
최근작 :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저 어둠의 세계, 북조선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북녘 주민 모두가 자유를 찾고, 노예에서 해방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내가 대한민국에 못 가더라도 이 글만은 반드시 출판되어 북조선 사람들이 김일성 부자의 잔인한 독재체제에서 얼마나 많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얼어 죽고, 맞아 죽고, 신음하며 살고 있으며,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지 알려야 한다.”
-저자가 3번째 체포돼 북으로 강제 송환되기 직전 차녀에게 남긴 말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1급 설계원․보위부 비밀요원의 자유․인권․민주주의 향한 여정>은 세 번째 북조선 탈출에 성공한 한원채가 연길에서 북조선으로 강제 송환된 뒤 구류장에서의 경험을 적나라하게 쓰고 북한의 비인도적 인권 무시, 부패 타락한 사회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싶은 강한 의지로 쓴 원고이다. 원제는 ‘광명을 찾아서: 나의 감방생활 수기’. 원고는 대한민국으로 오는 관문인 중국 대련으로 이동하기 직전에 탈고, 2부를 복사해 원본과 사본 1부는 일본으로, 사본 1부는 연길시 신풍교회에 전달했으나 교회에 침투해 있던 북한 공작조에게 넘어간 모양이다. 대련에서 중국 공안에 세 번째 체포 돼 북송된 한원채는 3일 만에 고문을 받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끝내 탈북하지 못한 탈북자의 수기인 셈이다.
한원채의 세 자녀는 이 원고를 담보로 받은 출판 선인세로 2001년 한국행을 성사시켰다. 책은 2002년 일본에서 일본어로 번역돼 <脫北者>(李山河 譯, 晩聲社)라는 제목으로 출간됐고, 이번에 원본인 한글판으로 처음 빛을 보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작가 무라카미 류(村上龍)는 2005년 노마문예상과 마이니치문화예술상을 받은 장편소설 <반도에서 나가라>(윤덕주 역, 스튜디오본프리, 2006)가 한원채의 이 수기집이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다고 고백했다.
저자 한원채는 머리말에서 “차마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3개월간의 감방 수기를 공개하면서, 북조선 사회를 제대로 알기 위한 운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책을 펴낸 동기를 밝혔다.
북조선 인텔리의 자유‧인권‧민주주의 향한 목숨 건 여정!
세 번 탈북, 세 번 체포…中 연길 감옥, 北 보위부‧안전부 감옥 수기
희망 잃은 조선 땅을 떠나며 피로 쓴 원고…폭정 종식 앞당기는 무기되길
북한 체제에 충실하게 살던 인텔리 한원채는 1998년 7월 30일 아내와 자녀 3명(2녀1남)과 함께 정든 고향 집을 떠나 8월 1일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했다. 숱한 백성이 굶어 죽어도 관심도 대안도 없는 체제와 6‧25 월남민 가족이라는 출신 성분의 멍에를 벗어날 수 없는 연좌제의 굴레, 봉건 세습과 선군정치로 표방된 군국주의 김일성 일가 독재에 불복하겠다는 반발심이 탈북을 결심하게 했다. 노력과 능력만으로는 출세에 한계가 있는 자기 자신의 처지와 대학을 졸업한 두 딸, 고등중학교(고등반)에 재학 중인 외아들의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강력한 탈북 동기로 작용했다.
조선인민군 후방총국 직속 길주팔프련합기업소에서 설계원이자 설계실 당세포 부서기(정치보위부 비밀공작원)로 30년 이상 근무한 한원채는 “옹근 반세기 동안 공화국 공민으로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창조하며 참답게 살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평범한 인텔리 가장이다. 아내는 철도국병원 내과의사였다.
그는 “내가 타고 앉아 사는 지구촌이건만 이 지구촌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다 알 길 없는 나로서는 오직 내가 살고 있는 조선이야말로 세계 제일의 보금자리인 양 싶었고, 조선 경외에 사는 모든 인간은 최악의 생활 조건에서 조선이라는 리상촌을 부럽게 바라보며 건국해 살아가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토로한다. 이어 “조선의 당과 조선의 모든 국가 관저, 행정기관은 백성들에게 그렇게만 선전하였고 그렇게만 교육하였으니 달리 생각할 리 만무하다”고 고백한다. 속으며 살아온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죽어라 일을 해도 부가 없는 세상, 부를 창조한 사람이 그 부를 소유하지 못하고 부를 가로채는 자가 부의 향유자가 되는 사회, 사회악의 쓰레기통에서 사회 악취를 숨 쉬며 사느니 차라리 그 속을 탈출하는 거기에 바로 나의 인생철학이 있었다. 하여 나는 정든 고향 땅과 고향 집, 손때 묻은 가장집물을 그대로 남겨두고 이국의 하늘 아래로 서슴없이 달려온 것이다.”
“사람들은 못살고 권세 없고 자유 없고, 인간다운 생활이 마비된 그 근본이 누구의 탓인지와 전 세계 사회주의 대진영이 송두리째 무너진 원인도 다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성과 열악성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나, 수많은 조선의 인민들은 체제와 정면으로 맞서기에는 너무나도 아름차고 힘겨우니 어쩔 수 없이 탈북하는 것으로써 당국과 맞서고 있는 것이다.”
“6·25동란이 끝난 지도 어언 반세기가 다 되었건만, 인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에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서 살게 하겠다고 염불처럼 외우던 말버릇이, 지금은 그 말조차 사라지고 계급투쟁이라는 창끝같이 예리한 말만이 온몸을 오싹오싹 자극하는 랭혹한 사회주의 조선에서, 억눌리고 짓밟혀 살기보다 자유롭게 열린 환한 세상에서 잠시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을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는 것이 나의 장기라고 생각되었다.”
“오늘의 조선 사회는 이밥에 고깃국에 비단옷이 아니라, 헐벗고 굶주림과 고역에 시달려 만백성이 아우성치며 살아가고, 또 죽어가고 있으니 평백성이나 간부나 할 것 없이 빈민을 구제하지 못하고 강 건너 불 보듯 하니, 조선 안에 사는 백성의 아픈 랭가슴 어디서 풀 수 있으랴! 당국자들은 입만 열면 전쟁 준비를 잘해서 무자비한 전쟁으로 전 남녘땅을 타고 앉아 불로 다스리며 잘 살아가자는 야망만 설교하니, 이제는 듣기도 거북하여 귀에서조차 신물이 날 지경이다.”
“나는 사회주의 조선의 비현실적 존재를 깊이 인식했고, 오늘의 조선과 래일의 조선에 대한 전도를 어렵지 않게 판단했었다. 오늘의 조선은 존재하나 래일의 조선은 희미해지다가 점점 어두컴컴해지고 나중에는 영영 사라지는 모습이다. 사회악의 범람과 무능 무례한 당국의 처사, 실천과 현실을 외면한 허망한 주체사상은 나로 하여금 탈북의 길을 재촉했다. 사회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나도 힘이 약하고, 대항하다 쓰러지면 모든 것이 허사이고 끝장이며 무모한 죽음뿐이다. 하기에 그 사회 안에서가 아니라 그 사회를 등지고 탈북하는 것으로써 당국과 맞서는 것이 추세로 된 것이다.”
중국에서 1년 간 체류하며 한국행을 추진하던 한원채는 1999년 8월 아들과 함께 누군가의 신고로 중국 장백향파출소 공안에 체포돼 10월까지 3개월 동안 중국과 북한에서 지옥을 연상하는 지독한 감옥 생활을 하였다. 처음엔 중국 연길 감옥에서 룡정변방대 감옥으로, 거기에서 다시 조선 회령시 정치보위부 감옥과 회령시 안전부 감옥을 거쳐 회령 백산초소 감방 맛을 보았다. 다시 호송되어 함경북도 길주 보위부에 감금되었다. 그곳에서 탈출하여 중국 장백현을 거쳐 만장까지 갔다가, 만장변방대에 다시 체포되어 구류장 생활을 하다가, 북조선의 량강도 보위부 감방과 도안전부 집결소 감옥을 거쳐 함경남도 안전부에까지 호송되었다.
중국과 조선 감방 생활 3개월 동안 한원채는 강제 로동에 시달리며 온갖 악형과 고문, 심문을 받았다. 특히 장작과 고무몽둥이, 칼고리줄을 이용한 폭행을 비롯해 목 뒤에 두 손가락을 끼고 수백 번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는 뽐뿌 처벌, 오토바이 탄 자세로 오래 서 있게 하는 오토바이 처벌, 사지를 잡고 위로 던졌다 놓는 직승기(헬리콥터) 처벌, 전기봉 고문 등 듣도 보도 못한 온갖 고문과, 밥도 제대로 보장 안 하며 매질과 함께 새벽까지 이어지는 강제 로동, 죄수 상호간 비판과 폭력을 조장하는 감방 내 사상투쟁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인권 유린을 직접 당하거나 목격했다. 3달 새 체중이 20kg(75→55kg)이나 빠졌다. 중국에 어떤 정보를 빼돌렸느냐, 남한 안기부나 교회와 접촉하지 않았느냐를 집중 추궁받았다.
태영호 전 공사는 추천사에서 “90년대 중반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떼죽음 나던 시기, 그들의 소망은 중국으로 건너가 식량을 얻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뿐이었다. 굶어 죽게 된 인간이 배를 채우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가는 것은 일종의 본능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는 굶주림을 피해 살아남으려는 평범한 인간의 본능조차 허용되지 않았다”며 “북한은 중국으로 건너간 탈북민을 발견할 경우 그들에게 모진 고문을 가했다. 중국으로 식량을 구하러 갔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먹을 것을 찾아 철창 밖으로 나가는 일조차 금하는 것이 바로 북한 체제이다. 이런 반인륜적인 체제는 아직 역사가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이어 “4·27 판문점 선언 이후 이 땅에는 북한의 수천만 노예들의 운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김 씨 일가라는 노예주들과 사이좋게 지내려는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며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를 외면하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간접 비판했다.
북한인권 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이영환 대표도 추천사에서 “한원채 님의 수기를 읽는 내내 감정의 격랑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감수성 풍부한 독자라면 읽는 내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있을 것이다. 행간마다 강렬하게 배어있는 저자의 거친 숨결이 바로 그것이다. 끝까지 정독하려면 의식적으로라도 저자와 호흡을 맞추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자가 겪은 질식할 것 같은 고통과 당장 닥칠 것만 같은 죽음의 공포를 고스란히 느끼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영환 대표는 이어 “이 수기는 분노와 무력감,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끝없는 폭력과 잔혹한 고문, 강제노동과 거듭된 이송, 숨소리 내기조차 두려운 탈출길. 그 속에서도 저자는 북한 주민들과 아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잔인한 체제를 통렬히 비판하고 세상에 알리려는 필사적인 기록 작업 중에도 고통받는 처지에 놓인 다른 이들의 삶까지 들여다보려고 애쓰는 저자의 인간애가 느껴진다”며 “이 참혹하고 귀중한 기록은 세계의 인권운동가들과 자유를 받드는 언론인, 출판인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19년 전 저자가 든 ‘자유의 필봉’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여하한 행동으로 이어져 폭정의 종식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응원했다.
미국 국무부는 2019년 6월 20일(현지시간) 발표한 ‘2019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북한과 중국 등 21개국을 최하위인 3등급(Tier3) 국가로 지정했다. 3등급은 한 국가의 인신매매 감시와 단속수준을 평가하는 1∼3단계 가운데 가장 낮은 최악의 단계다. 이는 정부가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최소한의 기준과 규정도 미흡한 것으로 판정 받았다는 의미다. 북한은 2003년부터 17년째 ‘최악의 인신매매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국무부 보고서는 “북한 정부는 인신매매를 다루기 위한 어떤 노력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성인과 아동의 집단 동원을 통한 강제 노역ㆍ수용소 훈련ㆍ외국 기업으로의 강제 노역 수출 등을 통해 국가가 후원하는 인신매매를 지속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국무부는 또 북한은 잠재적 인신매매 피해자가 중국 등 타국서 송환됐을 때 그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며, 북한과 중국을 묶어 거론했다. 이는 중국으로 건너간 탈북민들이 현지 공안 당국에 적발될 경우 대부분 강제 북송되고 있는 현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원채의 세 자녀는 2001년 8월 대한민국으로 무사히 입국했다. 큰딸은 결혼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고, 둘째 딸은 한의대를 나와 한의원을 개원해 어머니의 뒤를 이어 의료인의 길을 걷고 있다. 직장에 다니는 막내인 외아들은 지난해 결혼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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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지은이는 동토의 왕국을 탈출하려다 결국 잡혀서 눈을 감았다. 저자의 세 자녀가 이 책의 원고 덕분에 한국행의 소원을 이뤘다고 한다. 북한을 앞에 두고 무엇이 진정한 평화인지, 민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된다.
쎄인트saint 2019-07-09 공감 (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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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이런 기록을 남겨두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탈북민 저자 한원채 씨의 정신이 한권으로 책으로 나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탈북민들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낙타 2019-07-11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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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명이 넘는 탈북인들의 사연들은 한결같이 가슴저리다. 사람이 먼저라느니 인권변호사라던 문통이 집권하고 난 뒤에는 오직 김정은뿐이어서 한국으로 오는 탈북인들이 크게 줄었고 아예 북한으로 강제송환되기도한다. 며칠전에는 국제인권단체들의 공개적인 비판서한까지 받는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알라딘탄압 절필 2019-12-2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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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1999년 8월부터 10월까지의 기간에 중국 연길 감옥에서 룡정변방대 감옥으로, 다시 조선 회령시 정치보위부 감옥과 시안전부 감옥을 거쳐 회령 백산초소 감방 맛을 보았다.거기서 호송되어 함경북도 길주 보위부에 감금되었고, 그곳에서 탈출하여 중국 장백현을 거쳐 만장까지 갔다가, 만장 변방대에 다시 체포되어 구류장 생활을 하다가, 조선의 량강도 보위부 감방과 도안전부 집결소 감옥을 거쳐 함경남도 안전부에까지 호송되었다. (-7-)
북조선에서 이런 것을 모르는 것쯤은 희귀한 일이 아니다.너무나도 파렴치한 당과 정부의 인민에 대한 기만과 우롱, 파쇼적인 독재정치의 산물에 대하여 단죄하게 되는 것이다.세 명의 감방객은 시간가는 줄도 모른 채 오랫동안 정치체제와 사회 ,경제 관리에 대한 비화를 나누었다.(-113-)
집결소의 하루하루는 강제로동으로 시작하며 심문과 고문, 노예적 굴욕과 인권 유린, 인권 침해, 강제로동으로 끝난다.이른 아침부터 정복 입은 승인된 도적놈들의 채찍 밑에 들볶이며 일터로 떠난느 죄수들의 몰골은 참으로 측은해 보인다.살 빠진 어깨 우에 푹 움츠러든 가느다란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안전원 선생님들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는 그들은 모두가 생기 잃은 얼굴로 삶을 귀찮아한다.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사는 비참한 노예의 운명을 지닌 민간들의 집단이다. (-190-)
우리는 한 씨가 내민 이력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한 씨는 조선인민군 후방총국 직속 길주팔프련합기업소 설계실 설계원으로서 과학기술 발명권 3개, 신기술 등록증 3개, 창의 고안증 35개를 가지고 있었다.국기훈장 2급, 3급을 수여받는 영광도 있는 등 국가에 대한 충성심 기여도가 큰 인물이었다.(-300-)
북한은 폐쇄적인 국가이다.김일성 -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구조이다.한원채씨가 쓴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은 북한의 엘리트 계층에 속해 있었던 조선인민군 후방총국 직속 길주팔프련합기업소 설계원 한원채씨가 1999년 이후 탈북과 재압송 과정에서 생겨난 고문과 심문,그리고 고통스러운 기록이다. 자칭 북한의 노예노동자로서의 현실, 탈북하고, 중국에서 다시 북한으로 압송되면서,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된다.죽음과 사투 속에서 보위부, 감옥에서 노동을 하면서 ,실제 북한 사회에서 죄수로 살아가면 어떤 고초를 겪게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탈불하고, 중국에 심어 놓은 북한 감시원에 의해 압송되었으며, 다시 정치보위부에 끌려가면서,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된다.북송 이후 북한 내부에서 고문과 심문,고초를 겪으면서, 그들은 죄수들과 함께 하였으며,그들과 동등한 일을 학레 된다.밭을 갈고, 감자를 심고, 감자를 캐는 과정들은 죄수들에게 또다는 노예생활이다.썩은 감자들은 죄수 몫이었고, 멀쩡한 감자는 북한 고위층 몫이었다.이러한 과정들은 저자에게 또다른아픔이었으며, 북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이 책은 아버지 한원채 씨는 탈북하지 못하였지만, 그가 남겨놓은 기록은 딸 한봉희씨를 통해서 남한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또한 북한 도발에 대해서 남한 사람은 알지만 북한 주민은 모르는 현실,그것이 북한과 남한의 단절의 또다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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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9-09-0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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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오늘 뉴스에서 탈북민 모자가 아사됐다는 기사를 봤다.
북한에서 굶지 않으려고 남한에 왔는데 그 끝은 아사다.
나도 로스쿨스터디를 할 때 탈북민남자아이를 봤다.
말투가 좀 이상해서 지방에서 올라왔냐고 하니까 탈북민이라고 했다.
북한에서 엄마가 의사이고 걔는 아파트도 좋은데 살았고 차도 SUV를 탔다.
이전 정권에서는 지원이 잘 돼서 잘 살고 있는 거라고 했다.
걔말로는 북한에 핸드폰으로 전화도 친적들한테 할 수 있고 돈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항상 전화번호를 자주 바꿔서 연락을 계속 하기는 힘들었다.
탈북민들은 교회를 거의 다 다녔다.
하지만 인터넷상으로 돌아다니는 북한인권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진짜인지 믿어지지 않는 얘기들이 많았다.
항상 진실은 무엇인지 바로 믿으면 안되고 책도 읽고 질문도 거듭거듭해서 검증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뉴스와 외국 뉴스, 유튜브는 차이가 나는 얘기들이 확실히 많다.
북한이 노예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 공화국과 친해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사람들은 못 살고 권세 없고 자유 없고, 인간다운 생활이 마비된 그 곳이 바로 북한이다.
전 세계 사회주의 대진영이 송두리째 무너진 원인도 다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성과 열악성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나 수많은 조선의 인민들은 체제와 정면으로 맞서기에는 너무나도 아름차고 힘겨우니 어쩔 수 없이 탈북을 하는 것으로써 당국과 맞서고 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봉건 세습적 정권이 신물이 나고, 군국주의 군사독재에 불복하겠다는 반발심이 머리에 들어 탈북을 시도했다.
저자는 중국에 일시적으로 머물면서 온 가족이 마음의 기둥인 대한민국으로 망명하기 위한 굳은 마음을 안고 21세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저자는 떠돌이 세상살이를 하다보니 참 말 기막힌 일도 있었다.
이름도 낯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걸려서 1999년 8월 11일 오전 10시, 중국 길림성 연길시 장백향 파출소 공산원 들에게 체포되었다.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호송되었으며 3개월간 갖은 악형과 강제 노동, 심문을 받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소생하게 되었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분노에 분노가 지독하게 치솟았다.
어떻게 인간에게 그런 극형을 적용할 수 있고 자유가 좋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대신 인간이하의 대우를 할 수 있는건지 도저히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장백향 파출소 공안들에게 체포 되던 날, 다행히도 아내와 큰딸은 외출중이라 잡히지 않았고 저자와 막내 아들은 집에 있다가 그들에게 붙잡혀 온갖 고생을 다 당하게 되었다.
저자는 탈북하기 이전에 함경북도 청진화학섬유연합기업소 길주 펄프 공장에서 35년간 설계원으로 일했다.
아내 역시 30년간 철도국 병원에서 내과의사로 일했다.
저자와 아내는 물론 두 딸도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막내는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단란한 인텔리 북한가정이다.
하지만 북쪽에선 소용이 없다.
저자의 딸이 차마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감방 수기를 공개하는 것은 북조선 사회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이다.
죽어라 일을 해도 부가 없는 세상, 부를 창조한 사람이 그 부를 소유하지 못하고 부를 가로채는 자가 부의 향유자가 되는 사회, 사회악의 쓰레기통에서 사회 악취를 맡으며 사느니 차라리 그 속을 탈출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태영호공사의 얘기다.
태영호공사는 어느 날 탈북민 집에 갔다가 그 집에 놀러온 단아(옹골진) 하면서 괜찮은 여성을 만났다고 한다.
주변에서 하는 말을 들으니 북한에서 한국으로 내려와 서울 한복판에서 한의원까지 차려놓은 성공한 탈북민이라는 것이다.
정말 대단한 여성이다.
한국 정착을 어렵게 여겨 살고 있는 사람도 많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국에서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의사가 된 그녀의 성공스토리는 탈북민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아버지 한원채와 어머니는 북한에서 인텔리 계급인 지식인으로서 북한 체계를 위해 수 십년 동안 양심적으로 살아온 분들이다. 4.27판문점 선언 이후, 이 땅에는 이상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위정자들이 북한의 수천만 노예들의 운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김씨 일가라는 노예주들과 사이좋게 지내려는 이상한 움직임 말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참혹하고 귀중한 기록은 세계의 인권운동가들과 자유를 바라는 언론인, 출판인들이 꼭 읽어야 한다.
그래야 19년전 저자가 쓴 자유의 필본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폭정의 종식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인들에게 널리 읽혀졌으면 너무너무 좋겠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너무나 불의해서 정의의 편에선 의인들이 전 세계로 알렸으면 좋겠다.
자기 생각을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세상, 이것이 오늘날 북조선이다.
왜, 왜, 왜, 왜, 자기입으로 말을 못해야 해,,,,,
왜!!!!!!!!!!!!!!!!!!!!!!!!!!!!!!!!!!
도대체 북녘 땅 국민들의 절규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김정은만 바라보고 거짓평화만 외치고 있다.
저자는 1999년 초 2차에 걸쳐 북경 주재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하는 전화를 걸었다.
박한남이라는 가명을 썼는데 대사관 승인을 얻지 못했다.
소원을 이루지 못해서 정신적인 문제도 왔다.
그러나 저자는 다시 힘을 내어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했다.
저자는 꼭 광명을 찾아 남한으로 갈 생각은 확고했다.
하지만 또 보위원에 체포되었다.
초롱에 갇힌 신세가 되었으니 연길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은 얼마나 비애속에서 힘들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고 한다.
보위부에서 개인 정보를 물었다.
이름, 성별, 연령, 출생지, 거주지, 직장, 직위, 학력, 이력은 바로 적고 이름은 역시 가명을 썼다.
오래전에 해삼 2Kg을 가지고 나간 아내가 집에 오지 않았다.
저자는 다시 탈출해서 중국에 있는 친척집을 찾아 가다가 이틀을 굶어 목도 마르고 배도 곯아서 개울물을 먹었는데 대장염이 생겼다.
겨우 친척집은 찾았는데 아내는 거기에 없었다.
친척집에서 1년을 지내다가 건강이 나아져 아내가 집에 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결심을 말했다.
다시 보위부에 끌려갔다.
보위지도원이 말없이 한참이나 묵묵히 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중국에서 있던 모든 일을 쓰게 했다.
보위부 지하 감방에 밀어 넣었다.
어마어마한 고문이 치러질 것이라는 것을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게 사람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두컴컴한 회형시 보위부 지하 감방 안에 맥없이 쓰러져 있었다.
경멸에 찬 보위원의 호령소리가 끝나기 바쁘게 주먹쥔 두 손목을 수쇠로 잠궜다.
어디론가 호송하려는 의도가 보였다고 한다.
흙묻은 구둣발로 엉덩이를 힘껏 찼다고 한다.
사람을 왜 차?
자유만을 원한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죄지?
정치보위부 취급 대상 죄인들은 재판도 없이 임의의 시간에 정치범 수용소로 실려가 거기서 영원히 인간 세상과 격리되어 소, 말과 같은 노예로 노동을 하다가 인생을 종말한다.
글만 읽어도 너무너무 슬프다.
자루를 다 잘라버린 숟가락으로 밥 아닌 밥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고 한다.
밥이 짐승들 사료용 강냉이였다고 한다.
그것도 양은 충분히 주지 않는다.
북조선은 이 우주에서 제일 빈국이다.
내가 아프리카도 CNN을 통해서 보면 좋은데가 많았다.
평양은 광고용이다.
안전부 감방에서 주는 짐승 사료같은 매식을 조금씩이라도 먹으려고 애썼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며칠은 매번 끼니를 다 먹을 수 없었다.
조금 먹었는데 배가 아프고 설사를 심하게 했다.
온몸이 불편했다고 한다.
감방 안의 모든 수인들은 적은 양의 거친 강냉이밥을 먹으며 배고픈 설움을 안고 끓임 없이 폐인으로 변질돼어 가는 것이 오늘날의 북조선이다.
절호의 기회만 있으면 탈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직 탈출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죽음의 순간까지 감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는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할 때 감방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환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안전원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가 탈출기회라고 생각하고 저자는 집결소 정문에 가서 빗장을 밀어 버리고 출입문을 연 다음 캄캄한 마을 속을 달렸다고 한다.
성공한 탈출의 기쁨으로 하여 눈물이 끓임 없이 흘렀다고 한다.
저자를 구원하신 것은 고마우신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달 동안 감방의 철장 속에서 강제 노동의 힘겨운 시련 속에서 지친 몸으로 위기를 무사히 모면한 저자는 열차를 타려고 했지만 탈출한 죄인이라 결국 열차 지붕으로 탔다.
열차 지붕?
열차 위를 말하는 건가?
도대체 뭐지?
도대체 사람으로서 이런 경험도 해야 하는 건가?
저자는 청진역이 가까워지니 또 근심이 생겼다고 한다.
청진 역 구내를 빠져 나갈 방도가 없는 것이다.
열차는 송평역 구내에 들어가기 전에 서서히 정차한다.
지붕위에서 들은 이야기다.
구내에 들어가기 전에 뛰어 내리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열차에서 그냥 내리는 것도 아니고 열차지붕에서 뛰어 내린다니,,,,,
저자는 결국 뛰어 내려서 산기슭 잡관목을 헤치고 나와 눈에 익힌 지형물을 따라 두만강에 몸을 숨겼다.
저자를 죽음에서 구해준 하나님께 또 감사했다고 한다.
저자는 자유와 인권을 찾아 대한민국으로 가리라고 다짐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자유와 삶을 찾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찾아 한국으로 가리라고 했다.
6.25동란때 저자의 아버지가 월남한 그 길이 자유와 민주주의 길이었고 새 삶을 창조하는 행복의 길이었다.
한원채 씨와 그 가족을 한국으로 망명시키고자 한 한국인 사업가 이 모 사장이 상담에 나섰다.
한씨 가족은 다섯 명이다.
하지만 안전을 고려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가족중의 누군가 한명이라도 반드시 한국에 도착하기 위해서이다.
대부분의 탈북자가 그러하듯이 한 씨의 가족도 불법 입국자로 중국 공안과 북한 국가보위부로부터 쫓기는 몸이었다.
어떤 상황에서 망명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사연을 이사장에게 말했다.
이사장은 한씨가 내민 이력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한씨는 조선인민군 후 방총국 직속 길주 펄프연합기업소 설계실 설계원으로 과학기술발명권3개, 신기술등록증3개, 창의 고 인증 35개를 가지고 있었다.
국가훈장 2급, 3급을 수여 받은 영광도 있는 등 국가에 충성심 기여도가 큰 인물이었다.
주요 경력을 보면 철도 운수학교를 다녔고, 함흥 화학공업대학 기계공학과를 마치고 기계공학사 자격증을 받았다.
저자는 스펙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철도 운수 학교는 간첩 양성 기관이다.
이 학교에 입학하려면 성적이 우수할 뿐아니라 판단도 명석하다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북한에서는 한씨에 대한 추적이 은밀히 시작 됐다.
두 번째 탈출이기 때문이다.
거액의 현상금을 붙여 놓고 가족까지 잡아오라고 했다.
생포하지 못하면 목을 잘라 가져 오라고 했다.
한 씨는 세 번째 북송이 되면 사형이다.
2000년 9월 15일 한씨 가족은 중국 탈출을 서둘렀다.
한씨부부는 연길시를 떠나 대련으로 이동했다.
둘째 딸은 부모보다 먼저 이동했다.
두 번째 탈출한 한씨는 구류장에서 경험을 적나라하게 쓰고 북한의 비인도적 인권 무시, 부패 타락한 사회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싶은 강한의지로 장문의 원고를 대련으로 이동하기 직전에 탈고했다.
원본은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제본했다.
그리고 복사본 중에서 1부를 연길시 신풍교회 에 맡겼다.
한씨의 체험에는 김모 담임목사가 부재했기 때문에 남 모 전도사에게 전달 되었다.
이것이 한 씨의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이 교회는 한국에서는 탈북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북한과 내통하고 있어 북한의 교회라는 소문이 있었다.
2000년 9월 15일 예정대로 대련행 열차를 탄 한 씨 부부는 6시경 대련 역에 내려 장녀와 아들이 사는 아파트에 가서 가족 다섯 명이 오랜만에 재회했다고 한다.
거기서 망명할 준비를 해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갑자기 9명의 중국공안과 4명 변방대원이 들이 닥쳤다고 한다.
한 씨의 두 딸과 아들, 탈북자 원일우등 네 명은 한 씨와 전혀 관계없다고 우기면서 조선족이라고 해명했다.
이틀 동안 조사를 받는 와중에 한 씨의 아들과 원일우는 7층 외벽에 설치되 있던 수도관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 도주했다.
열차 지붕을 타고 수도관을 타고 정말 처참하다.
두 딸은 석방 되었지만 한 씨 부부는 체포된 당일 호송되어 돌아 올 수 없었다.
한 씨부부는 심양의 북한 영사관으로 이송되어 상당히 심한 고문을 받은 후 수면제 주사를 맞고, 북한 영사관 외교번호가 달린 차로 단둥으로 이동해 북한 신의주로 보내졌다.
부부의 신변은 거기에서 평양으로 보내졌다는 여러 목격자의 증언을 통해 전해졌다.
한씨는 북한의 고문에 이기지 못해 자백하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북한의 고문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는데 도저히 미어지지가 않았다.
한씨 가족의 구원에 관여한 이 사장, 박 모부장, 강 모비서를 체포하면 한화 5000만원과 벤츠 한 대에 해당하는 현상금이 걸렸다는 소식 전해졌다.
한 씨는 사흘 만에 죽었고 부인 신씨는 지나친 고문을 견디다 발광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마음이 너무 무겁다.
한채원씨와 그 가족이 북한의 공안 관계자 국가보위부 요원에 의해 박해와 억압 고문을 당한 것은 인도주의와 인권에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범죄로 규탄되어야 하는 성격의 문제이다.
조속히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과 동시에 유엔 인권위원회에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그후 한 씨의 세 자녀는 많은 사람의 헌신으로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고, 한 씨가 목숨을 걸고 쓴 원고는 우여곡절 끝에 2001년 4월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어머니의 생존을 바라는 자녀들의 간절한 마음을 존중하여 출판을 보류하다가, 2002년 5월 일본에서 ’탈북자‘ 란 제목으로 먼저 출판하게 됐다.
북한에서 자유를 누리고 사는 자는 김씨 일가 밖에 없다.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하나님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유를 누리게 했는데, 북쪽의 사람들은 자유를 찾아 떠나는 길이 너무나 험난하다. 거기서의 모든 사람들은 노예와 다름없다.
사람들은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자유를 원한다.
최근에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외교관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전자 팔찌를 채운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성범죄자가 차는 전자 팔찌로 감시를 하는 것이다.
한씨의 자녀들은 2001년에 자유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지금까지 어느 순간도 부모님을 떠올려 보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는 수기를 다 쓰고 펜을 놓으며 차녀에게 유언처럼 말씀했다. 저 어둠의 세계인 북조선의 현실을 알리고 북녘주민 모두가 자유를 찾고, 노예에서 해방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한씨가 대한민국에 못가더라도 이 글만은 반드시 출판되어 북조선 사람들이 김일성 부자의 잔인한 독재체제에서 얼마나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얼어 죽고, 신음하며 살고 있으며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지 알려야 한다.
한씨부모님을 잡아가면서 저 사람들 속에 자식이 있느냐고 물었고, 부모님은 저기에는 우리 자식이 없다.
부부만 왔다고 끝까지 우기셔서 간신히 자식들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차녀는 부모님의 목숨을 바쳐 자식을 구해준 부모님의 은혜를 평생 잊을 수 없어 가슴에 묻고 산다.
한국에 온 후에도 살아있는 것이 죄가 되는 것 같아 몇 번이고 자살기도를 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부모님이 목숨 바쳐 구해준 자식이 자살하는 것은 큰 불효이며, 혼자 편하겠다고 죽는게 더 큰 죄가 될 것 같았다고 한다.
차녀는 겨우 마음을 가다듬어 의사였던 어머니의 뒤를 이어 의료인이 되어 더 많은 생명을 구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대한민국에서의 적응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모든 일은 차녀 스스로의 꿈을 이루는 길이다.
그 누구의 관섭과 통제, 감시가 없이 자유롭게 마음껏 날개를 펴고 날 수 있는 천국 같은 사회였다고 한다.
한국은 노력한 만큼 삶의 질이 높아지는 기회의 땅이었다.
목숨을 바쳐 자식을 구해준 부모님의 기대에 꼭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차녀로 하여금 한순간도 헛되이 살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여러 의인을 만나 도움을 받았고,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 한의대를 졸업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재학 중에 두 딸이 태어났고, 졸업 후 아들이 태어났다.
지금은 같은 한의사인 남편과 함께 각자 한의원을 운영하며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차녀가 살아 온 삶이 너무 눈물겹고 멋지다.
이 책을 읽는데 가슴 턱턱 막혔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그냥 누렸던 자유를 북한 주민들은 목숨을 바쳐야지 얻을 수 있다는 게 충격이다.
홍콩도 지금 시위를 하는데 중국의 체제를 홍콩이 이겨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눈이 낫고 체력이 더 좋아지면 공부를 미친 듯이 하고 싶고 나중에 북한주민의 인권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
천국인 우리나라를 지옥을 만들 수 없게 연대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지독하게, 열렬히 증오하고 미워하고 반대한다.
민주주의만 진정으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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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로스쿨러 2019-09-0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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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1급 설계원. 보위부 비밀요원의 자유, 인권, 민주주의 향한 여정
"아빠는 북송됐지만 아빠 글은 탈북시켰죠." 한의사 한봉희 원장의 인터뷰 중에서 한 말인데 이 말만 들어도 너무나 가슴아프게 느껴지네요.
모란봉클럽을 통해서 탈북을 해서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만나보면서 정말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할 정도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자유를 찾기 위한 그들의 이야기가 가슴먹먹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의 한원채 저자의 수기를 읽으면서 사람이 어느정도까지 악랄할 수 있는지 분노감이 치밀어 오르게 되네요. 저자가 격었던 고통과 공포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지 상상해 보게 되네요.
불시에 들이닥친 공안원들은 둘째 딸과 막내아들과 함께 장백향파출소에 억류되고 심문을 받게 되고 연행된 직후 아내와 맏딸은 외출해서 위험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되요. 다행히 둘째 딸은 호송도중 해방되고 아들과는 부자지간의 마지막 생이별을 앞두며 슬픔을 감출 수가 없어요. "감방에서 무조건 단식하면 10일 이내로 죽겠으니, 그리 알고 너만은 꼭 살아서 탈옥하거라." 비장한 결심히 느껴지며 아들과 이별을 하게 되요. 끝도 없는 폭력과 잔인한 고문, 강제노동, 인간으로써의 인권은 찾아볼 수 없는 지옥같은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냈을지...
북한에서 남부럽지 않은 인텔리 계급인 지식인으로 중국 연길 감옥에서 룡정변방대 감옥 다시 조선 회령시 정치보위부 감옥과 시안 전부 감옥을 거쳐 회령 백산초소 감방에 이어 길주 보위부에 감금되어 탈출하여 중국 장백현을 거쳐 최후의 탈출에 성공해서 다시 중국에 들어오게 된 감방 생활 이야기 자유를 위한 탈출 다시 발각되 자국으로 송환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한국행을 하기 위한 그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많은 울림을 전해주네요.
탈북민들의 한국 정착 또한 쉽지가 않고 모진 고생끝에 맞게 되는 자유지만 결국 안타까운 사연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어요. 자유를 갈망하며 노예에서 해방되어 사람답게 살수 있는 인간다운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네요. 북조선의 비참한 현실과 생생한 그들의 절규를 느끼게 해주는 노예 공화국 북조선 탈출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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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인 2019-09-0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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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하고 봤는데도 너무 참혹한 북한 현실
탈북에 성공하여 대한민국에서 무사히 자리를 잡은 딸, 한의사 한 원장은
목숨 걸고 아버지가 남긴 '북한의 실상과 탈출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어디서도 받으려 하지 않았던 원고는 2001월 일본어로 번역되었으나 부모님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녀들의 바람이 있어 1년 보류 후, 2002년 출판되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북한 주민의 실상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감옥과 수용소를 넘나들며 받은 고문과 끔찍한 폭력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의 고문 수위가 상상을 초월해서 읽기 힘들었다.
이전에도 북한의 꽃제비와 굶주림, 정치범 수용소에 관한 책들을 읽었었기에
각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나 심적으로 괴롭지 않은 페이지가 없었다.
언론을 통해 보는 평양의 모습은 일부 특권층의 보여주기식이 아닐 수 없다.
북한으로 보낸 식량과 비료 지원은 대체 어디로 다 갔을까... ㅠ
실로 이가 이렇게 많은 장소는 난생처음 체험한다. 이 잡이는 밤에도 낮에도
끊임없이 진행되나 위생 사업이 없는 감방의 생육 조건에서 이는 나날이 증식만 한다.
어떤 죄수는 머리에 이의 알인 서캐가 너무 많이 껴서 머리 자체가 검은색이 아니라
흰색을 띠고 있다.
- 4장 량강도 _211
추운 날 콘크리트 맨바닥은 감옥의 기본이고 베게, 이불은 당연히 없다.
여름에 얇은 옷만 입고 왔다면 복장 역시 그대로 겨울을 난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감시관의 고의적인 괴롭힘에 고통에 찬 비명은 밤새 이어진다.
잠도 못 자고, 하루 종일 밥은 한두 끼 먹을까 말까다. 소금 간도 없는 맹물 같은 국에 건더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루 종일 꼼짝 않고 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하며 조금만 움직여도
감방 인원 전체가 죽을 만큼 맞거나 고통을 당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
이유 없는 매질과 무차별 발 차기는 예사다. 갈비뼈가 잘못되어도 그대로 강제 노동을 해야 한다.
이제 1시간 후면 내 운명의 종점에 도착할 것이며, 거기서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
신음하다가 가족도 친척도 모르게 생죽음을 당할 것을 생각하니 소름 끼치는 마음을
진정할 길 없다. 함남도 안전부 감방에서 한 죄수가 너무나도 악형이 참기 어려워
철도 기관차 대가리를 통짜로 훔쳐다가 팔아먹었다고 진술했다는 이야기로 이곳 안전부의
악랄성을 말해주는 교형리들 곁으로 호송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할 뿐이다.
- 5장 광명 _267
살아남기 위해 일가족이 중국으로 넘어간 후, 어떻게든 한국으로 오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으나
대사관과 방송국 모두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는 장면에서는 정말 답답했다.
수많은 탈북민들이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넘어와도 피난할 길이 막막한 현실에 가슴 아팠다.
이루다 표현 못 할 내용이 들어있어서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도 사실 막막하다.
북한 내에서 행해지는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까지
원고를 남기고 간 아버지 '한 씨'의 울분과 한이 내 마음에도 깊게 전해졌다.
무슨 말로도 대신할 길이 없어서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이 책을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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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좋아서 2019-08-2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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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을 작가가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쓴 소설이 아니라 실제 작가가 북한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경험한 것을 쓴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한원채 씨는 1943년에 함경남도 흥남시 출생해 인생의 대부분을 함북 길주팔프련함기업소에서 일하며 살았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북한에서 발생한 대기근으로 인해 한 씨 일가족은 중국으로 탈북을 감행하게 되었다. 한 씨 일가족이 중국에서 보낸 1년 반가량의 생활은 상당히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한 씨 일가족이 굶어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년 정도 지난 후에 한 씨는 중국에서 불시에 붙잡혀 강제북송을 당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구타와 폭행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한 비참한 상황에서 한 씨는 기적적으로 다시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며칠 있다가 다시 중국공안에 붙잡혀 강제북송 되고 말았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한 씨가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시 북한을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 탈출 이후에 한 씨는 자신이 북한의 감옥과 수용소에서 경험했던 것을 글로 옮겨 적었는데 그 글이 바로 ‘노예공화국 복조선 탈출’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전체 5장으로 되어있는데, 1장은 시련, 2장은 탈출, 3장은 만장, 4장은 량강도, 5장은 광명이란 제목이 각각 붙어 있다. 책의 말미에는 한 씨의 딸인 한봉희 씨가 쓴 자녀 후기가 간략하게 실려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든 생각은 참으로 북한의 권력층이 같은 동족에게 몹쓸 짓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우리민족을 압제한 것은 민족이 달라서라고 말하겠지만, 북한에서 같은 민족끼리 이토록 사람을 억압하고 노예화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북한에서 수감되고, 폭행을 당하고, 사형에 처해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누구의 죄로 인해 그러한 처우를 받아야 하는지 책에서 울분을 토한다.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살기 위해, 먹기 위해, 부모처자를 살리고 내가 살기 위해, 삶의 원천을 찾아 월경을 했고, 장사도 했고, 외국의 친척을 찾아간 것인데, 이게 왜 죄가 된단 말인가! 감방 안에 감금되어 죄수 밥 먹으며 살아야 할 자들은 바로 다름 아닌 정부와 당국자 너희들이다. 일을 해도 식량 배급을 주지 않았고, 로임도 주지 않으니, 백성들은 앉아서 죽으란 말인가! 차라리 식량 배급 제도를 폐지하라. 주변 나라들처럼 경제 제도를 개방하라. 감방 생활은 너희들 몫이다.” (62쪽)
이 책을 읽으며 북한주민의 처참한 인권을 외면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남한답방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현 정부의 행태에 화가 났다.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핵무기와 독재체제를 전혀 포기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status quo)하는 것이 과연 정의인가? 그렇다면 현 정부는 북한이 전혀 변화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한반도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최근에 탈북모자가 관악구에서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도의적 책임이 없나? 북한을 배신하고 남한에 온 배신자는 남한에서 굶어죽어도 되는 것인가? 탈북자가 삼 만 명이 넘어가는 이 시대에 남한에 온 탈북자와 북한주민의 인권은 외면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운명공동체를 맺으려하는 현 정부의 행태에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이것은 정의도 아니고 평화도 아니다. 독일의 본회퍼 목사가 말한 것처럼 "악에 맞서지 않는 것은 악에 동의하는 것이며 악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탈북자의 아픔과 북한주민의 고통에 동참하고자 하는 남한의 국민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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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혁 2019-08-3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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