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이현우 (지은이)추수밭(청림출판)20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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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352쪽
책소개
서평가 '로쟈'로 활동해온 이현우가 최초로 '한국현대문학'을 주제로 진행한 강의를 묶어 펴낸 책이다. 그간 세계문학과 러시아문학을 주제로 다양한 강의를 펼쳐온 저자가 세계문학의 흐름에 바탕을 두고 한국문학을 읽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교과서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작가부터 그동안 문학사에서 외면해왔지만 새로이 발굴한 작가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전후 한국문학을 이끌었던 대표 작가 10인의 소설을 읽어나가며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정체를 탐구한다. 단순히 각 작품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시대의 문제의식을 포착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들여다보는 이 책은 세계문학이라는 더 넓은 지도에서 한국문학을 조망함으로써 우리의 삶과 역사를 이해하는 안목을 한 단계 더 높여준다.
목차
서문
세계문학의 바다를 건너 다시 만난 한국현대문학
1장 1950년대: 손창섭 《비 오는 날》
한국전쟁의 폐허가 낳은 ‘너절한 인간’들의 한계와 가능성
1950년대를 대표하는 동시에 가장 이례적인 작가 / ‘제로’에서 다시 시작한 한국현대문학 / 손창섭 문학의 특징과 그에게 영향을 준 작품들 / 등단작 《공휴일》을 통해 보는 ‘동물화된 인간’ / 《신의 희작》에 등장하는 ‘손창섭’은 작가 자신인가 / 작가 손창섭의 작품세계를 결정한 ‘원체험’ / 문학의 ‘사생아적 기원’과 ‘업둥이적 기원’ / 정신분석학으로 바라본 《신의 희작》 / 《비 오는 날》에서 손창섭이 말하고 싶었던 것 / 장편소설이 미흡한 한국현대문학의 특징 / 손창섭의 문학이 장편으로 나아갔다면 / 《잉여인간》이 제시하는 전후 한국 사회의 인물형 / 《잉여인간》에서 ‘새로운 인간형’은 가능한가
2장 1960년대 1: 최인훈 《광장》
남한과 북한 체제 모두를 거부하는 ‘회색인간’의 의미와 한계
전후문학과 한글문학 사이에서, 최인훈의 탄생 / 북한에서 남한으로, 회색인간 최인훈의 여정 / 《광장》의 어떤 판본을 ‘정본’으로 삼을 것인가 / 《광장》 이후 뛰어난 작품이 나오지 못한 이유 / 《광장》이 지속적인 개작을 거쳐 온 과정 / ‘지식인 작가’ 최인훈이 자부했지만 퇴색한 것들 / 그럼에도 최인훈의 《광장》이 성취한 것들 / ‘광장 대 밀실의 이분법’은 과연 옳았는가 / ‘아버지’라는 대타자와 주체의 탄생 / 《광장》에서 등장하는 ‘아버지 비판’ / ‘밀실’은 이명준을 어떻게 구원하는가
3장 1960년대 2: 이병주 《관부연락선》
전혀 다른 문학의 길을 제시한 ‘한국의 발자크’ 이병주의 세계
한국의 발자크가 되고자 했던 이병주 / ‘실록소설’이라는 정체불명의 장르를 개척하다 / 감옥생활과 세계여행이 바탕이 된 《소설·알렉산드리아》 / 《소설·알렉산드리아》에서 나타난 이병주 문학의 특징 /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이병주를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 / 이병주는 최인훈과 어떻게 다른 길로 갔는가 / 《관부연락선》 이후 이병주가 개척한 길 / 작가의 체험으로부터 나온 《관부연락선》의 리얼리티 / 《관부연락선》이 보여주는 전후 역사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 / 허무주의자이자 회색인간 이병주의 선택
4장 1960년대 3: 김승옥 《무진기행》
순수에서 세속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포착한 현대인의 증상
1960년대의 신화가 된 작품 《무진기행》 / 주인공 윤희중이 제약회사에 다니는 이유 / 한국에서 모더니즘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 4·19세대의 등장과 근대적 개인의 탄생 / 문학적 신화가 된 김승옥, 신앙으로 귀의하다 / ‘순수’에서 ‘세속’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부끄러움 / 여성화된 인물 윤희중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 / 현대인의 전형 윤희중과 한국인들의 무의식 / 《무진기행》이 참고할 만한 장편소설의 길 / 《무진기행》이 만들어낸 ‘비겁함’과 ‘부끄러움’의 공동체 / 아내의 ‘전보’와의 타협, 그리고 무진과의 완
전한 작별
5장 1970년대 1: 황석영 《삼포 가는 길》
황석영은 ‘방랑자문학’을 넘어 ‘비판적 리얼리즘’에 도달했는가
황석영이 나아간 문학적 여정 / 문학사에서 바라본 황석영의 의의 / 황석영이 선택할 수 있었던 ‘막심 고리키’의 길 / 김승옥이 다룰 수 있었던 ‘부르주아 문학’ / 황석영은 왜 막심 고리키로 나아가지 못했는가 / 《객지》 이후 황석영이 갈 수 있었던 길 / 황석영의 초기 작품들이 보여준 성취와 한계 / 황석영은 ‘비판적 리얼리즘’에 도달했는가 / 역사의 증언자 황석영이 쓰고 싶어 했던 것 / 검열로 상처받은 한국영화의 역사 / 돌아갈 곳 없는 부랑자들의 여행기
6장 1970년대 2: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살아 있는 권력을 겨냥했던 가장 비판적인 소설로 다시 읽기
이청준의 작품과 함께 시작된 1970년대의 문제의식 / 한국 사회의 권력 문제를 다룬 희소한 소설 / 르포 기사를 바탕으로 쓰인 한국현대사의 축소판 / 《당신들의 천국》을 읽는 세 가지 독법 / 마지막 장면에서 이상욱의 웃음이 의미하는 바 / 《당신들의 천국》이 성취한 ‘사회소설’로서의 의의 / 관념소설의 대가 이청준의 ‘복수로서의 소설론’ / ‘조백헌들의 천국’에 대한 반론 / 이청준 작가가 추구해온 이념은 현실과 잘 맞았는가 / 조백헌 원장 배후에 숨은 실체는 무엇인가
7장 1970년대 3: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하층계급과 상층계급을 가리지 않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왜 중요한 작품인가 / 리얼리즘의 주제를 표방하는 모더니즘 소설 / 자본의 노동자 관리를 위한 최적의 시스템 / 세계문학의 흐름에서 바라본 노동문학의 발전단계 / 작품의 서사와 작가의 우화가 서로 다른 이유 / 중간층 사람들이 보이는 분열적 태도 /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두 가지 형태 / 현실의 공포를 상기하는 소재의 활용 / 자본주의는 내부로부터 붕괴할 것이다
8장 1980년대 1: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중산층이 되려는 독자들의 열망을 자극한 이문열의 교양주의
이문열과 함께 시작된 ‘한국식 교양주의’ 소설 / 이문열의 삶을 지배했던 교양주의의 특징 / 진영을 가리지 않고 이문열의 교양주의에 반응했던 독자들 / 이문열의 교양주의가 성취한 것과 놓친 것들 / 이문열의 문학과 행보에서 발견되는 현실과 관념의 불일치 / 1부 〈하구〉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분열적 현실 인식 / 2부 〈우리 기쁜 젊은 날〉이 보여주는 실패의 여정 / 3부 〈그 해 겨울〉이 들려주는 절망에서 길을 찾는 방법 / 10년 전에 부친 편지였던 《젊은 날의 초상》
9장 1980년대 2: 이인성 《낯선 시간 속으로》
아버지의 그늘을 넘어 ‘탈주’를 모색하는 실험적 소설의 탄생
한국현대문학사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작가 / 이인성 문학이 난삽하고 난해한 이유 / 소설에서는 해결됐지만 작가에게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 / 프랑스문학의 흐름을 적극 흡수한 김현의 문학그룹 / 《낯선 시간 속으로》의 이전과 이후, 이인성의 행보 / 이인성에게 주어진 ‘주체되기’의 두 가지 방향 / 네 편의 연작들이 서로 잘 들어맞지 않는 이유 / 혼란스러운 작품임에도 실존적 무게감이 있는 이유 / 이인성이 아버지와의 대결을 끝맺지 못한 이유
10장 1990년대: 이승우 《생의 이면》
아버지와 어머니 없이 ‘텅 비어 있는’ 현대인을 위로하는 문학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사랑받는 한국작가 / 작가 이승우의 경험 그 자체인 이야기 / 자전소설을 쓰는 작가 이승우의 과제 / ‘주체 형성’이라는 과제의 세 가지 유형 / 자신만의 오이디푸스 신화를 만들어나가는 이승우 / 신화 속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실패 / 자기 치료이자 독자 치료로서의 이승우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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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20세기 후반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작가로 꼽히는 손창섭은 195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P. 20 1장 1950년대: 손창섭 《비 오는 날》
한국현대문학을 주도해온 작가들은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세대가 구분된다. ‘분단 세대’라고도 불리는 1950년대 ‘전쟁 세대’, 그다음이 1960년대 4ㆍ19세대다. 1936년생인 최인훈은 둘 사이에 끼어 있긴 하지만 4ㆍ19세대에 속한다. 1941년생인 김승옥 역시 어릴 때 전쟁을 겪긴 했지만 막 성년이 된 시기에 찾아온 4ㆍ19가 더욱 압도적인 체험이었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시대와 세대를 규정하고 그들은 시대의 틀 안에서 판단하고 사고한다. 손창섭에게는 한국전쟁이 가장 압도적인 경험이므로 거기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전쟁은 그 자체로 ‘가치의 영도’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빼앗는 동시에 회색의 공백지대를 창조한다. 이러한 역사의 등가물에 해당하는 문학이 바로 손창섭의 단편소설들이다. 접기
P. 68 2장 1960년대 1: 최인훈 《광장》
최인훈의 《광장》에 대한 흔한 독해는 남한에는 밀실만 있고 북한에는 광장만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둘 다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남한에는 광장이 없으니 제대로 된 밀실도 없고, 북한에는 밀실이 없으니 제대로 된 광장도 없다. 오히려 남한에 있는 것은 ‘유사밀실’이고, 북한에 있는 것은 ‘유사광장’이다. 이처럼 광장과 밀실을 서로 얽혀 있는 것으로 봐야 문제를 보다 정확히 짚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해법은 광장과 밀실을 둘 다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접기
P. 98~99 3장 1960년대 2: 이병주 《관부연락선》
《관부연락선》은 해방 전 5년과 해방 이후 5년인 1940년부터 1950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 작품이다. 이병주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주인공 유태림이 마지막에 빨치산에게 납치되어 행방불명되는 것을 결말로 그리고 있다. 이것은 《광장》에서 나타난 이명준의 결말과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중립국을 선택해서 인도로 가는 도중에 배에서 투신자살하는 이명준과 비슷하게 유태림도 좌파와 우파 중 어느 편도 들지 않다가 양쪽에서 비난을 받고 행방불명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둘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 결말을 비교해 보면 이명준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자기를 따르는 갈매기 두 마리와 합하겠다고 투신하면서 이명준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최인훈이 《광장》 이후 더 큰 규모의 장편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반면에 이병주는 어떻게 장편을 쓸 수 있었는지에 대한 중요한 차이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관부연락선》에서 유태림은 교사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이 남아 있다. 접기
P. 148 4장 1960년대 3: 김승옥 《무진기행》
김승옥은 이 작품의 메시지에 대해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서울에서의 경쟁적 삶을 구가하기보다는 한 번쯤 무진과 서로 왕복하면서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경험하는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작품을 보면 그렇게 쓰지 않았다. 무진에서 작별을 고한 것이 마지막인데 무엇을 더 왕복한다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한 번 무진을 긍정하고, 편지를 썼지만 찢어버리고, 이제 서울로 올라가면 전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진에 다시 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진귀향’이 아니고 ‘무진기행’이다. 고향으로 다시 갈 수도 없고 더 이상 고향이라는 공간도 없다. 작가 김승옥은 다시 올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인공 윤희중은 다시 올 일이 없다. 무진에 있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접기
P. 163 5장 1970년대 1: 황석영 《삼포 가는 길》
소설이 근대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양식으로 여겨지는 것은 근대사의 핵심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을 묘사하고 그 문제점을 짚어내기 때문에 중요하게 대우해주는 것이다. ‘이야기’로서 대우해주는 것이 아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소설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황석영에게 함정이 있는데 그가 워낙 달변이라는 것이다. 소설은 이야기와 다른데 황석영은 소설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럼 실패를 면치 못하게 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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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현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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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쟈’라는 필명을 가지고 매일 새롭게 출간되는 책들을 소개하는 서평가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대학 안팎에서 러시아문학과 세계문학, 한국문학, 인문학을 강의하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책에 빠져 죽지 않기』 『아주 사적인 독서』 『로쟈의 인문학 서재』 『... 더보기
최근작 :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책에 빠져 죽지 않기> … 총 5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문학에서 ‘현대’는 완성되었는가?”
로쟈와 함께 읽는 한국소설의 흐름과 현대문학의 조건
“우리의 삶과 역사는 어떻게 소설이 되었는가”
전후 한국사를 들여다보는 가장 중요한 소설 10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은 서평가 ‘로쟈’로 활동해온 이현우가 최초로 ‘한국현대문학’을 주제로 진행한 강의를 묶어 펴낸 책이다. 그간 세계문학과 러시아문학을 강의해온 저자가 세계문학의 흐름에 바탕을 두고 한국문학을 읽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교과서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작가부터 그동안 문학사에서 소외돼왔지만 새로이 발굴한 작가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전후 한국문학을 이끌었던 대표 작가 10인의 소설을 읽어나가며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정체를 탐구한다. 한국전쟁 직후 아무것도 없던 폐허에서 오늘날 이른바 ‘선진국’의 지위에 올라서기까지 ‘한국현대문학’ 작가들은 화려한 성장의 이면에 감춰진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다. 단순히 각 작품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시대의 문제의식을 포착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들여다보는 이 책은 세계문학이라는 더 넓은 지도에서 한국문학을 조망함으로써 우리의 삶과 역사를 이해하는 안목을 한 단계 더 높여준다.
1950년대 손창섭부터 1960년대 이병주까지
역사적 격변 속에서 혼란을 겪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다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은 한국문학의 흐름과 문학사조의 발전을 10년의 주기로 구분한다. 1950년대부터 한국현대문학 작가들은 역사적 격변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고자 했다. 모든 것을 핏덩이로 만드는 전쟁의 후유증을 반영하여 인간을 동물의 형상으로 전락시킨 손창섭은 《비 오는 날》 등의 작품을 통해 암울한 시대적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자 했다. 이어서 등장한 4?19세대 작가들은 좌우 이념의 대립 속에서 혼란을 겪는 인물들을 내세우며 어떤 체제에도 포섭되지 않는 개별적 인간의 형상을 탐구했다. 남북한 체제의 실상을 과감하게 비판한 최인훈의 《광장》은 주인공 이명준이 중립국을 선택하고 ‘자살’로 결말을 맺는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장편소설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이병주는 《관부연락선》을 통해 해방 이후 동아시아를 무대로 활약하고 제자들까지 양성한 주인공 유태림의 일대기를 그려냄으로써 한국적인 장편소설을 내놓았다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1960년대 김승옥부터 1970년대 조세희까지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인간상과 사회적 모순을 파헤치다
한국현대문학은 1960년대부터 나타난 자본주의의 인간상과 사회적 모순의 실체를 파헤치고자 했다. 김승옥은 《무진기행》에서 고향을 떠나 속물이 되어가는 무기력한 도시인 윤희중을 통해 거대한 사회적 변화 앞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와 비슷하게 산업화에 따른 고향 상실을 주제로 하면서도 하층계급의 실상을 묘사하며 전혀 다른 풍경을 제시한 작품이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이다. 이후 1970년대 중반부터 나타난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를 소록도 한센병 환자촌의 실화를 바탕으로 우회적으로 비판한 소설이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다. 또한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하층계급과 상층계급 사이에 일어나는 첨예한 갈등을 묘사한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있다.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은 이들 각 작품의 주제에 대응하는 세계문학의 흐름까지 보여주며 한국소설이 에밀 졸라나 막심 고리키의 문학과 같은 ‘비판적 리얼리즘’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한계까지 지적한다.
1980년대 이문열에서 1990년대 이승우까지
‘자전소설’을 통해 개인의 삶을 문학적 과제로 승화시키다
한국소설은 당대의 역사적 상황을 짚는 것을 넘어 ‘개인’이 겪는 삶의 문제에 주목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1980년대부터 등장한 한국의 ‘교양소설’들은 작가의 개인적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자전소설’의 형식을 많이 띠었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은 고시 공부를 거쳐 대학 생활을 하는 한 개인의 이야기를 펼쳐내며 괴테나 헤세의 문학에 버금가는 ‘한국식 교양소설’로서 평가를 받았다. 중산층으로 도약하려는 주인공의 열망을 보여준 이 소설은 그러나 작가의 자의식이 비참한 사회적 현실에 조응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인성은 《낯선 시간 속으로》를 통해 막강한 아버지 앞에 주눅 든 아들의 형상을 난해하지만 개성 있는 문체로 그려내며 한국소설에서 모더니즘의 길을 개척했다. 그러나 제임스 조이스의 ‘성공하는 서사’와 카프카와 베케트의 ‘실패하는 서사’ 사이를 오가며 이인성은 완성된 작품세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승우의 《생의 이면》은 작가가 자신의 삶에 비추어 오이디푸스 신화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이 공감과 치료의 문학으로 평가 받았다는 점에서 해외의 독자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다”
문학의 본질로 돌아가 다시 묻는 ‘현대소설의 조건’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은 단순히 한국문학의 역사를 조망하는 것을 넘어 각 작품을 다른 분야의 텍스트와 함께 읽어나가며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가령 최인훈의 《광장》에서 제기된 문제의식(광장 대 밀실의 이분법)에 대한 해답을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서 얻기도 한다(광장과 밀실의 얽힘). 또한 저자는 세계문학의 흐름에 비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취약한 한국문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그 원인으로 ‘장편소설의 결여’를 제시한다. 소설을 하나의 잘 짜여진 ‘장르’나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이해해왔던 우리에게 이 책은 한국문학에 부족했던 ‘현대소설의 조건’이란 무엇인지 제시한다. 신화나 서사시, 고전문학과 구분되는 현대소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근대성에 대한 탐구’다. 한국소설의 한계와 성취를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하는 이 책은 다가올 시대정신과 그에 걸맞은 위대한 작품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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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높은 수준의 reference라면 언제나 환영. 로쟈선생의 강의를 들으면서 문학사를 공부하면 참 즐거울 듯. 한국문학에 대한 깔끔한 정리와 의견으로 더욱 한국문학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이병주/이청준 전집을 비롯해서 다양한 책을 더 많이 구해야 할 듯.
transient-guest 2020-03-20 공감 (8) 댓글 (0)
Thanks to
공감
로쟈 이현우 선생님의 강의와 책은 믿고 듣고,믿고 읽게 된다. 한번도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다. 이 책은 더구나 기대 이상이었다. 한국현대문학의 흐름과 구성을 세계문학과 견주며 예의 그 날카로움으로 명쾌하고 매끄럽게 꿰어주었다. 작가와 작품에 더해진 정신분석학적 해석은 선물인 듯하다.
밍기뉴 2020-02-04 공감 (2) 댓글 (0)
한국 현대소설 강의
한국 현대 소설에서 다룰 만하다고 여기는 작가 10명을 선정해 그의 소설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나타난 작가가 꽤 많은데 그 중 10명을 추리는 것도 일일텐데, 그들의 소설에 대해서 세계 문학과의 관련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더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 책에 나와 있는 작가들이 우리나라 현대 소설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작가는 많고 좋은 작품도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소설가들은 한 시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한 시대를 대표한다는 말이 좀 그렇다면 소설의 경향을 대표하거나 주도한 사람이라고 하면 되겠다. 그런 작가와 작품들을 선별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으니, 로쟈, 이현우의 설명을 따라가면 우리나라 현대소설의 흐름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황석영 편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로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대의 핵심적인 모순에 대해서, 본질에 대해서 파악하고 그 문제를 파고드는 소설을 써야 한다. 그것이 현대소설이고 소설가의 역사적 책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은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에 소설과는 다른 것이다. 소설가가 아니더라도 잘 쓰는 사람들은 많다. 굳이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면 시대의 핵심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여러 제약 때문에 단편으로는 곤란하고 장편으로 확쟁돼야 한다. (173쪽)
이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10명의 소설가와 소설을 골랐다고 생각하는데, 여덟 번째인 이문열까지는 평가나 생각이 조금 다르더라도 그래도 한 시대의 대변하는 그런 작가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인성과 이승우에 대해서는 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이문열과 비교하기 위해서 작가와 작품을 선정했다고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1950년대에서 시작한다. 소위 전후문학이라고 하는 소설들... 손창섭을 다루고 있다. 이견이 없다. 손창섭이 전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암담한 생활을 잘 그리고 있다는 데는 동의하니까. 이 시작부터 로쟈는 장편소설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말 그대로 단편은 삶이나 시대의 어느 한 면만을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 그 시대의 핵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장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손창섭은 장편소설을 쓰지 못했다고...
이런 한계는 다음 작가들에게서도 이어진다. 60대를 열어젖힌 최인훈에게서도 같은 한계를 그는 발견한다. [광장]은 장편이라기보다는 중편에 해당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하여 이런 시대적 상황을 잘 드러내는 작품을 쓰는 작가가 필요한데, 로쟈가 다루고 있는 작가는 이병주다. 사람들 사이에서 저평가된 작가라는. 그의 작품 [관부연락선]을 대상으로 해방전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책의 내용은 그것보다는 이병주라는 작가를 재조명하는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새로운 감수성을 개척했다는 김승옥, 리얼리즘 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 황석영을 다루면서 1960-7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이들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때 나온 소설들은 단편이라서 한계가 있다고 하고, 장편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김승옥은 기독교로, 황석영은 역사소설로 나아간 것이 아쉽다고 하고 있다.
독재자를 비판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는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이 부분의 해석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리고 이런 [당신들의 천국]만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우리 사회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같은 소설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선진국으로 진입해야 한다고, 경제개발을 해야 한다고 강한 독재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결과 경제성장은 이루었지만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던가. 자본주의가 정착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이 드러나고, 그것을 표현하는 소설이 필요해진 것.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 내용은 리얼리즘이지만 표현은 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후 자본주의 모순을 다룬 장편소설이 나와야 하는데...
성장소설로 넘어가게 된다.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지식인 계층이 된 것. 교양이 필요한 시대. 소위 교양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성장소설이 등장하고 많이 읽히게 된다. 이런 흐름을 주도한 것이 이문열이고 [젊은 날의 초상]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떠난 관념에서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다음 두 소설가는 이런 이문열의 성장소설과 비교하기 위해 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인성의 아주 낯선 소설 [낯선 시간 속으로]와 이승우의 [생의 이면]
아버지 부재의 이문열이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한 성장소설을 썼다면 이인성은 살아있는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해 썼고, 이승우는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없는 부재 상태에서 성장하는 소설을 썼다고.
이렇게 로쟈는 넓은 의미의 사회 속에서 개인의 자리를, 사람들의 삶을 추구하는 소설들에서 이제는 가정에서 자아를 형성해가는 소설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세계문학과의 연관성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점이 한국문학을 세계문학 속에서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가령 성장소설이라는 부류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는 이문열, 이인성, 이승우를 예로 들면 이문열에게서는 괴테이야기를, 이인성에게서는 제임스 조이스와 카프카를, 이승우에게서는 헤세와 지드의 이야기를 함께 하고 있다. 그밖에 황석영에게서는 고리키를, 김승옥에게서는 토마스 만,이병주에게서는 발자크를 함께 언급하고 있다.
로쟈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문학을 세계문학과 연결지어 우리들 시야를 더 넓혀주고,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소설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소설(소설가)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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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20-02-27 공감(1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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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시대‘의 거울 앞에 서 있다.
“해방이후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서
주체 성립 문제가 문학사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 책의 첫 화두다.
한국현대소설 속 당당한 삶을 살았던 인물을 각자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더 넓혀 세계문학 속 주인공을 대치해 본다면 한국현대소설 속에 그려진 개인은 과연 주체적이었던가, 질문하게 된다. 20년 넘게 러시아, 세계문학을 강의해 온 저자는 “세계문학의 흐름”이라는 포괄적 시선으로 한국현대문학 (1950년부터 1990년까지)을 살펴보며, 시대적 맥락에서 작가는 사회 전체의 모습을 담고 있는지, 소설 속 인물은 자기 정립에 이르렀는지 되짚는다.
손창섭은 한국 전쟁 후 폐허된 현실을 암울한 분위기와 무능력한 인물로 그려냈다. 정신적 가치가 없어진 시대이기에 인간을 동물처럼, 어머니로부터 홀대받고 내버려진 소년으로 묘사한다. 저자는 손창섭의 1960년대 초기 작품에 주목하며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그 현실을 담으려면 장편소설의 등장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서 결말 이후 동옥이가 어디로 갔는지, 몸을 팔러 갔는지, 자살을 한 것인지 이야기가 더 전개되어야 하고 《잉여 인간》에서는 전쟁의 허무에서 벗어나 신분상승을 향한 길로 갔어야했다. 하지만 손창섭은 그곳에서 멈췄다.
4.19혁명과 5.16군사 정변, 본격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졌던 1960년대는 변화와 혼란의 시기였다. 개인이 주체적 인물로 살아가기 힘든 때였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남한과 북한 체제 사이에서 자신을 타협하지 않았던 이명준은 주체되기를 포기한 인물이다. 이에 반해 학병시절 체험과 해방 이후 정국을 자세히 담고 있는 이병주의 《관부 연락선》에서 주인공 유태림은 미래를 제시했던 인물이다. 저자는 소설의 말미에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태림의 제자들 이름을 작가가 제시하였기에 《광장》보다 더 나아갔다고 보았다.
유럽의 산업화, 근대화 시기와 함께 등장한 부르주아 계층의 이야기는 당시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소설 《적과 흑》에서는 주인공 소렐이 시골에서 도시로 가서 부르주아로 출세하는 과정을 담았고 《고리오 영감》에서는 상경한 라스티냐크가 파리를 향해 외친 ”이젠 너와 나의 대결이다”라는 저항과 대결의 목소리가 있었다. 토마스 만은 《부덴부르크 가의 사람들》에서 4대에 걸친 가문이 어떻게 변화하고 몰락해 갔는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이런 작품에 견주어 볼 때 저자는 한국 현대 문학에서 부르주아를 다룬 문학이 빈곤하다고 꼬집는다.
황석영은 《삼포가는 길》과 《객지》에서 계층 이동하는 부랑자, 간척 사업장 노동자의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1970년대 모습을 잘 담았다. 하지만 저자는 비판적 리얼리즘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굳이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면 시대의 핵심을 다루어야 한다. 리얼리즘은 단편과 잘 결합되지 않는다. 사회적 총체적 진실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작품이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비판적 리얼리즘이 구현가능하다.”
우리에겐 에밀졸라의 《제르미날》이 보여준 파업과 노동쟁의를 다루는 소설이 부재했고 노동계급을 담고 있는 소설이 부족하기에 1980년대에 우리는 고리키의 문학을 많이 읽을 수 밖에 없었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한국사회의 총체적 시야를 담은 작품은 없었다. 저자는 우리보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먼저 겪은 유럽의 소설 속 등장인물과 사회상을 예시 삼아 한국현대소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작품의 의의를 찾고 방향성을 살피는 저자의 시선은 날카롭다.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소설은 색다른 해석으로 다시 읽는 재미가 있고 낯선 작품은 소설가의 생애와 줄거리, 작품 속 발췌로 이해를 돕는다. 가히 다년 간 문학 강의를 해온 저자의 노하우가 느껴진다.
올해는 한국 전쟁 7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현대사와 함께 걸어온 한국현대소설을 다시 펼쳐볼 시간이 아닐까. 때를 같이 하여 철도원 3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은 황석영 소설이 나올 예정이다. 한국현대사의 전모를 담은 작품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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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 2020-02-17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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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 작품들을 읽고 싶다.
로쟈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인터넷 서점의 블로그를 통해서다. 그가 새롭게 출간된 책에 대한 간단한 평을 단 것을 보고 관심을 두었다. 그러다 그가 쓴 책을 읽으면서 그가 보여주는 글의 깊이에 반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상당히 명쾌하게 지적하면서 풀어낸 것이다. 이전까지 그냥 무턱대고 읽었던 작품을 이렇게 해석해주니 새롭게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물론 바로 읽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쌓인 책들과 쌓이는 책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그가 쓴 글의 영향은 이후 책을 선택하고, 사는데 조금씩 영향력을 행사했다. 러시아 문학과 유럽 문학 전문으로 알고 있던 그가 한국 현대 문학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하니 어찌 그냥 지나가겠는가.
저자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시대별로 남성 작가 10명과 그들의 작품을 분석한다. 이 열 명의 작가들이 왜 선택되었는지 보여주는데 솔직히 납득되지 않는 작가도 있다. 아마 이름은 알지만 낯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부분의 작품들을 읽었는데 읽었는지 헷갈리는 작품도 있다. 체계적으로 읽지 않고 남독한 결과다. 확실히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작가도 있다. 집을 뒤지면 한 권 정도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인성이다. 이런 기억을 가지고 로쟈가 선택한 작가와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생각한 부분과 다른 해석들이 하나씩 드러났다.
손창섭이란 이름보다 <잉여인간>이란 작품이 더 낯익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 바로 직후다. 폐허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어머니와의 관계를 지적한 부분이다. 이 원체험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자신의 실명을 작품 속에 그대로 쓴 작품도 있다고 한다. 어릴 때 이런 작품을 보면 실제 이야기로 착각했던 기억이 있다. 낯선 제목이지만 아마 책장 어딘가를 뒤지면 한국문학 전집 중에서 손창섭의 소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인훈의 <광장>은 거의 필독서처럼 다루어진다. 유명하니 읽었다. 사실 나에게 와 닿지는 않았다. 다른 시대와 상황이, 그의 선택이 공감을 불러오지 못한 것이다. 여러 번 개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일곱 번이란 이야기를 보면서 왜? 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 열심히 읽은 작가 중 한 명이 이병주다. <관부연락선>도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너무 오래 전이라 그런지 사실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한국의 발자크가 되려고 했다는 사실도 조금 낯설다. <지리산>을 읽으면 이태의 <남부군>과 너무 닮은 장면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단순 대중 소설가로 인식하고 있던 그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한 대목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무진기행>은 김승옥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을 읽고 그 수려한 문장에 놀랐다. 김훈의 에세이에서도 김승옥에 대한 글이 나오는데 저자는 문장보다 내용에 더 신경을 쓴다. 이 신화적인 작품을 제외하면 솔직히 강한 인상을 받은 작품은 없다. 솔직히 <무진기행>의 내용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번에 기억을 새롭게 했다.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저자의 지적 중 장편소설로 나아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대목이 나온다. 윤희중이 현대인의 전형이라고 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황석영의 초기 단편을 읽고 난 후 만난 <장길산>은 솔직히 지겨워 중단했다. 어린 시절 도덕관의 한계 탓도 있다. 지금도 가끔 황석영의 소설을 읽지만 현실을 다룰 때 그의 작품은 가장 재밌다. 신문 연재가 한국 작가의 재능을 깎아먹었다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이청준을 좋아하게 된 작품이 <당신들의 천국>이다. 지금도 그의 최고 작품으로 친다. 한국소설에서 나의 이십 대는 이청준과 이문열로 대변된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은 솔직히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 나의 관심을 다른 작품이었다. 이문열의 교양주의란 대목은 내가 즐겨 읽었던 작품들의 현학적인 부분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쩌면 가장 낯선 작가가 이인성이다. 평론가 김현의 문학그룹에 속해 있었다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난삽하고 난해한 소설이란 평을 보고는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사라졌다. 그래도 찾아내면 한 번 눈길을 줄 것 같다. 유명한 가족을 둔 사람이 명성에 짓눌렸다는 표현은 그렇게 낯설지 않다. 주변에서 가끔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승우의 <생의 이면>은 한 평론가의 추천으로 다시 관심을 가졌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이승우의 소설들을 생각하면 읽고 싶은 마음은 늘 있다. 프랑스에서 사랑받는 한국 작가란 표현을 보고 영화감독 홍상수가 떠올랐다. 최근 몇 년 동안 무거운 소설을 잘 읽지 못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물론 기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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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01 2020-02-13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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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한국문학에서 현대문학이란 개화기를 기준으로 이전의 문학을 고전문학, 이후의 문학을 현대문학이라고 일컫는다. 한국문학에서 현대문학과 대비하여 해방 이전의 문학을 근대문학이라 칭하며 이 책에서는 근대문학과 현대문학 사이에 겹쳐있는 인물이라도 현대문학 시기의 작가들의 문학을 다루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총 10편으로 1950년대 손창섭의 《비오는 날》부터 1960년대 최인훈의 《광장》, 이병주의 《관부연락선》, 김승옥의 《무진기행》, 1970년대 황석영의 《삼포 가는길》,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80년대 이문렬의 《젊은 날의 초상》, 이인성의 《낯선시간 속으로》, 이승우의 《생의 이면》이다. 각 챕터는 작가와 작품들을 주된 내용으로 삼아 반영론적 관점에서 작품을 읽고 평가하며 여러 비평과 문학사적 의의를 담고있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강의를 기획하고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하였다.
이 책은 총 10편의 작품들과 작가들을 소개하면서 각 개인의 작품성이나 문학사적 의의뿐만아니라 한국문학의 흐름 이해하도록 작품들의 시대적 배경을 함께 설명한다. 이 책의 내용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챕터가 2장 최인훈의 《광장》이었는데 솔직히 이 작품은 좀 난해하고 어두웠기에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었는데 회색인 문학, 지식인 문학이자 분단문학으로 표현되는 이 작품이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될 수 있다는게 꽤 흥미로웠다. 또한 회색인간이라 불라는 이명준의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한계를 보이는 결말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광장 대 밀실˝, ˝북한 대 남한‘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이 작품을 이해하기에 놓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 작품이 문학사의 흐름에서 ‘매개‘의 역할을 한 작품이라는 것도. 평소 국문학에 대해서 좋아하긴하지만 현대문학은 작품도 많고 작가들도 많아서 깊이있는 이해를 하기 어려웠는데 이 책을 통해 알고 있는 작품은 더욱 깊게 모르는 작품은 현대사회의 흐름에 따라 알수 있게 되니 좀 더 문학이 주는 깊이감이 달라졌다. 특히나 이승우라는 작가는 꽤 익숙하지만 아직 작품은 못 읽어봤는데 이 책을 통해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 국문학에 관심있는 분들이나 사회 변혁의 흐름과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보다 깊이있는 현대문학을 이해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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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하나의사랑과 2020-02-29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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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 한국현대사를 조망하는 한국 소설 10
소설에 녹아든 작가 개인의 경험과 시대 상황이 어우러진 한국 현대문학을 들여다보는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러시아 문학을 포함한 세계 문학 강의로 로쟈 저자의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 이 책 출간 소식을 듣고선 반가움이 컸답니다. 시대적 맥락과 작가의 전기적 맥락에 비추어 작품을 읽는 기본적인 독법 안에서 로쟈 저자만의 개성이 담긴 평가가 잘 드러난 글이 가득합니다.전후 1950년대 손창섭부터 1990년대 이승우 작가까지 한국 현대문학 작가 10인과 대표작품을 중심으로 작품의 핵심이 무엇인지, 세부사항과 특... + 더보기
인디캣 2020-02-13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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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학교 때는 많이 읽었는데 기억들이 가물가물하네요.다시 꼭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ororaㅣ 2020-02-13
기대됩니다 갹ㅣ 2020-02-13
기대됩니다 김시나ㅣ 20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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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깔려죽지 않기
코로나19 사태로 내주까지는 강의를 비웠다. <전쟁과 평화>에 비유하자면 나폴레옹 원정군에게 모스크바까지 내준 것과 비슷하다. 와신상담, 쓸개를 맛보며 버틴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만 바닥이 보이면 반등의 기회도 생기는 법.
느즈막이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면서 세계사를 포함한 세계문학사와 혁명론 같은 책을 써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 바로 착수한다는 건 아니고(세계문학의 대강을 그린 세계문학강의는 올해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기초공사용 구덩이는 팔 수 있겠다는 것(혁명론과 관련해서 읽어야 할 책 몇권을 일단 추렸다).
그리고 또 든 생각에 문학에 빠져 죽기 전에 깔려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어제 출판사의 요청으로 서가 사진 몇장을 찍어 보냈는데, 거실의 메인 서가가 세계문학전집 서가다. 당연하게도 전부가 꽂혀 있는 건 아니지만 대략 80퍼센트는 되는 듯싶다(칸마다 이중으로 꽂혀 있다). 세계문학강의는 주로 이 책들과 씨름하는 일이다(참고문헌과 논문자료가 거기에 더 얹어진다. 다 모으면 산더미다).
이렇듯 빠져죽거나 깔려죽을지 모른다는 건, 그렇지만 소수의 실감일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문학책이 서가 한칸도 채우지 못하는 집도 있지 않겠는가(러시아라면 예외겠다. 어진간한 집에 작가전집이 빼곡히 꽂혀 있을 만큼 사회주의 시절에 책이 널리 보급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책에 빠져죽지 않기‘나 ‘문학에 빠져죽지 않기‘는 특이한 호들갑으로 비쳐질 만하다.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가 생각이 났다. 학부때 한국문학 강의를 내가 제안해서 같이 들었던 친구다. 종교학 강의도 여럿 같이 들었다. 어제 그 친구가 좋다고 평했던 이재선 교수의 <현대 한국소설사>(민음사)를 중고본으로 구입하면서(1991년판으로 절판된 지 오래되었다) 지난날의 우정이 생각났다. 그 친구라면 몇마디 해줄 것 같기에. 그러고보니 영화 ‘이지 라이더‘(1969)도 같이 보았었군. 그 친구라면 ‘문학에 깔려죽지 않기‘에 맞장구를 쳐주었을 것이다. 절친한 사이였지만 우리는 ‘같이‘ 깔려 죽을 기회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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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20-03-07 공감 (51)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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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빠져죽지 않기 표지
이미 한 차례 예고한 바 있는데 <책에 빠져죽지 않기>(2018)의 별권으로 <문학에 빠져죽지 않기>(교유서가)가 이달에 출간된다. 마지막 교정을 남겨놓고 있는데 일정상으로는 내일 인쇄에 들어가고 내주쯤에 서점에 배포될 것이다. 올해 두번째 책(그간에 밀린 책이 많아서 올해는 출간 종수로 개인 기록을 세우게 될 것 같다).분량이 많지 않았다면 서평집의 한 꼭지로 들어갔을 텐데 세번째 서평집(<책에 빠져죽지 않기>)을 6년만에 내다보니까 분량이 애매해졌었다. 서평집에 넣기에는 너무 많았고 별도의 책으로... + 더보기
로쟈 2020-02-16 공감 (48)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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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한국현대문학
지난주에 입고된 <로쟈의 한국현대문학 수업>(추수밭)이 연휴 때문에 이번주에 츨고되었다. 알라딘에서도 오늘 오후부터 주문이 가능해졌다. 책은 지난주에 받았고(표지가 예상보다 두꺼웠다) 나로선 이미 구면. 내용상의 오류나 오탈자가 혹 있을지 모르겠지만(전례를 봐서는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통상 그렇듯이 나는 서문만 읽고 덮었다. 나중에 책을 교재로 쓴다면 그때 가서야 읽어보게 될 것이다. 자기가 쓴 책을 읽는 건 자기 얼굴을 뚫어지게 보는 것처럼 무안하다. 슬쩍 지나가면서 보는 걸로 충분하다는 게 나의 편견이다.
한국현대시를 포함해 현대문학을 강의하고 전후 현대소설들에 대한 강의까지 책으로 펴내게 되어 한편으론 조심스럽고 한편으로는 부듯하다. 부듯하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면을 세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 그동안 책을 읽었으면 뭔가 읽은 값을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요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번 책으로 입막음은 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면 일종의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어서 한국문학과의 계속 이어질 ‘전투‘에서 최소한 터무니없이 밀리지는 않게 되었다. 그게 책을 펴낸 소감이고 기대다. 더불어 이후에는 이 분야의 책들을 예전보다 당당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 <한국소설사>나 <현대한국문학의 이론> 등속의 책을 염두에 두고 하는 하는 얘기다.
참고문헌에도 들어가 있지만 강의에서 장석주의 <한국 근현대문학사>를 요긴하게 참고했다. 주로 저자의 약력에 대한 정보들. 그리고 김윤식, 정호웅의 <한국소설사>를 비롯한 여러 종의 문학사도 참고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참고문헌에 넣지는 않았는데 오래전 독서여서 그렇기도 하고 강의는 실제 작품을 자세히 읽는 것이었기에 문학사의 용도가 제한적이어서 그렇기도 하다. 혹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까 싶어서 생각난 김에 적는다. 모쪼록 이번 책이 한국현대문학 독서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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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20-01-28 공감 (46)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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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사를 다시 읽으며
주말 지방강의가 연기된 덕분에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모자랐던 수면을 보충하고 관심 주제의 논문을 몇 편 읽었다.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주제로 관심이 뻗어나가 있기는 한데 최근 <로쟈의 한국현대문학 수업>(추수밭)을 낸 걸 계기로 해서(나름대로는 정식 ‘입장권‘이라고 생각한다) 한국현대문학 100년에 관해 생각을 모으는 중이다(군사적 용어를 쓰자면 병력을 증강배치하고 있다).
물론 이 분야의 난점은 너무 많은 책이 나와 있다는 것이다. 초점을 좁히고 선별할 수밖에 없는데 나로선 익숙하면서 믿음직한 길잡이의 손을 다시 잡게 된다. 바로 재작년에 타계한 비평가 김윤식 선생이 그에 해당한다. 대학에 입학하여 두번째 학기에 ‘한국근대문학의 이해‘라는 선생의 강의를 수강하고 그 이후에도 여러 강의를 들었다(국문과 대학원에서의 강의까지). 도서관에서는 1970-80년대에 출간한 여러 논저들을 그래도 꽤 읽었다고 기억한다. 30여 년이 지나서 다시금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차이라면 이제는 내가 그때 선생의 나이가 되었다는 것.
나의 문학수업기에 대해서는(편집부에서 정한 이번 책의 제목에는 ‘강의‘ 대신에 ‘수업‘이 들어가 있는데 나로선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가끔씩 털어놓으려고 하는데 오늘 생각이 미친 건 1930년대생 비평가들과의 만남이다. 내게 중요한 이들은 다섯 명이다. 생년순으로 하면 이렇다.
이어령(1934)
유종호(1935)
김윤식(1936)
김우창(1937)
백낙청(1938)
이 가운데 직접 강의를 들은 비평가는 김윤식이 유일하고 다른 이들과는 책으로 만났다. 그러니까 독자와 저자로서. 한 세대의 연배차를 갖고 있지만 그래도 50년 이상 살아온 시간대가 겹치니 동시대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들의 데뷔작은 이렇다.
이어령, 저항의 문학(1959)
유종호, 비순수의 선언(1962)
김윤식, 한국근대문예비평사 연구(1973)
김우창, 궁핍한 시대의 시인(1977)
백낙청, 민족문학과 세계문학(1978)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20대의 나의 생각으로 한국에서 비평을 한다는 것은 이런 책들을 읽고 이와 비슷한 책을 쓴다는 것을 뜻했다. 여기에 김윤식과 김현(1942-1990)이 공저한 <한국문학사>(1973)가 추가되어야겠다. 곧 한국문학과 문학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들 저자들로부터 배우고 또 그들과 씨름한다는 뜻이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많이 읽고 배운 비평가가 김현과 김윤식이어서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그들의 생각과 말을 흉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나서 나는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달라졌다는 사실도 확인한다. 가령 최근에 현대시 강의와 관련하여 읽은 유종호, 김윤식, 김현의 평론들에서 한수 배우기도 했지도 이견도 제시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나대로는 지난 30년의 공부 성과다. 물론 이 분들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론과 작품론에 해당하는 강의는 매일같이 하고 있지만 문학평론이나 비평가에 대한 강의는 해보지 않았다(지젝 강의가 예외라면 한국 비평가로 한정하겠다). 다작의 저자들이라 이들의 전모를 강의에서 다루기는 어렵겠지만 대표 평론서나 평론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오래전에 주로 도서관에서 읽었던(구입한 책도 꽤 된다) 김윤식 선생의 책들을 중고로 상당수 구입했다. 주로 1970-1980년대 저작들인데 어디까지 다시 읽을 것인지 조만간 견적을 내보려 한다. 더 나아가서는 한국근대문학에 대해서 내가 어디까지 강의하고 어떤 새로운 해석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가늠해봐야겠다. 30여년 전에 들었던 강의에 대한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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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20-02-08 공감 (3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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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업과 빚갚기
지방 강의가 일부 취소되거나 연기돼서 3월까지 나로선 예정에 없던 작업시간을 갖게 되었다. 원고 교정과 새 원고 쓰기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다. 덧붙여 몇 가지 궁리할 시간.
궁리거리 중 하나는 한국문학강의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인데(어디까지 읽을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여름에는 <로쟈의 한국현대문학 수업>을 교재 삼아 이를 보완하는 강의를 하려한다. 책에서 다룬 작가와 작품에 더하여 이문구, 김원일, 김훈 등의 대표작을 읽을 예정이다.
이번 책에 대한 인상을 일부 읽다 보니 서문에서 사정을 밝혔음에도 남성작가들만 다루었다고 유감을 표시한 분도 있다. 강의를 진행한 건 지난 2017년인데 여름학기에 여성작가 10명(특강때 다룬 강경애까지 포함하면 11명)에 대해 다루었고 가을학기에 남성작가 10명을 읽었다(특강에서는 <한국문학의 위상>을 다루었다). 그리고 책을 내는 과정에서 몇몇 작품이 갖는 대표성을 고려하여(<광장>이나 <당신들의 천국><난쏘공> 등) 남성작가 편을 먼저 내게 된 것. 여성작가 편도 내게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한국문학에 대해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근대문학을 다룰 수도 있고(수년 전에 한 차례 진행했다) 2000년대 이후 문학을 다룰 수도 있다(일부 작가는 이미 다루었다). 그렇지만 세계문학 강의(올해도 영국과 프랑스, 독일, 스페인문학 강의를 진행한다)와 함께 도스토옙스키 전작 읽기를 진행해야 하기에 아직은 계획일 뿐이다. 당장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야 계획을 더 진전시켜볼 수 있겠다.
<로쟈의 한국현대문학 수업>의 서문에 적었는데 2017년에 한국문학 강의를 두 시즌에 걸쳐 진행한 것은 나대로 대학 입학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첫 학기에 ‘문힉개론‘(권영민 교수) 강의를 듣고, 두번째 학기에 ‘한국근대문학의 이해‘(김윤식 교수) 강의를 들으며 나는 문학과 한국문학에 입문했다. 30년이 지나서 내가 무얼 얼마나 알고 이해하게 되었는지 점검해보고자 한 것이다. 이를테면 벽에 기대 서서 자기 키를 재보는 것과 같은. 동시에 내가 얻은 인식에 대한 보답의 의미도 있다. 채무 청산이라고 할까.
내년까지는 도스토옙스키에게 진 빚도 갚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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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20-02-21 공감 (3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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