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우산 아래에서 - 식민지 조선의 목소리 1910-1945
힐디 강 (지은이),김진옥,정선태 (옮긴이)
산처럼2011-07-10
원제 : Under the Black Umbrella: Voice from Colonial Korea, 1910-1945 (2001년)
88쪽
152*223mm (A5신)
403g
책소개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들의 체험을 기록한 구술사. 저자 힐디 강은 한국인 남편 강상욱과 함께 2011년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51명의 한국인들을 인터뷰하여 일제 치하에서 이루어진 삶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발견해내고자 했다. 이는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각 개인의 기억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또 다른 시각에서 재현하려는 시도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역사책이나 유명한 사람의 삶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개개인의 복잡다단한 일상이 촘촘하게 녹아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예상할 법한 일제 강점이라는 검은 우산 아래에서 보낸 식민지 삶의 어둡고 고단한 일상뿐만 아니라 이성을 만나고, 생명이 태어나고, 학교에 다니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애쓰고, 이웃과 아웅다웅하는 '실제' 삶이 깃들어 있다.
저자는 이들의 인터뷰 내용이 가능한 한 겹치지 않도록 정리하여, 개개인의 짧은 에피소드들이 한데 모였을 때 퍼즐을 맞추듯 식민지 조선의 전체상을 그려볼 수 있도록 했다. 1920년부터 1931년에 이르는 문화통치 시기를 살아간 사람들의 인터뷰를 실은 제1부 '선택에 의한 변화', 1931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일제의 동화정책 시기를 다룬 제2부 '강압에 의한 변화'로 구성되었다.
목차
한국어판 머리말
머리말 : 인터뷰 모으기
감사의 말
시작하며
제1장 첫 만남
제1부 선택에 의한 변화
제2장 독립의 함성
제3장 지도 한 장이 바꾼 내 이냉
제4장 교육을 선택하다
제5장 바늘구멍을 뚫고
제6장 사업과 모험
제7장 캐나다에 갈 뻔하다
제2부 강압에 의한 변화
제8장 내 호적엔 빨간 줄이 그어져 있다
제9장 수동적 저항
제10장 사상경찰이 저녁 식탁에 나타나다
제11장 일본인 되기
제12장 고베 조선소에 징용 가다
제13장 전쟁의 상흔
제14장 대한독립 만세
부록 1 : 인터뷰
부록 2 : 후일담 1945~97
부록 3 : 역사적 개관
옮긴이의 말
지은이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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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중앙일보
-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1년 7월 16일 '200자 읽기'
조선일보
- 조선일보 Books 북Zine 2011년 7월 15일자 '북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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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힐디 강 (Hildi Kang) (지은이)
1957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를 졸업했으며, 1980년 산호세 주립대학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샌프란시스코 문화교차연구소에서 한국학 관련 초빙강사를 역임했으며, 2000년부터 현재까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와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초빙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사뿐만 아니라 교육, 동화 등에 관심을 갖고 저서와 논문들을 발표했다. 2002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한국학센터에서 수여하는 리서치 펠로(Research Fellow)상을 받았다. 2001년에 발간된 《검은 우산 아래에서》는 2006년 일본어로 번역됐다. 접기
최근작 : <Tombstones without a Tomb>,<검은 우산 아래에서> … 총 10종 (모두보기)
김진옥 (옮긴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동아시아 어문학과를 수료했다. 한신대학교, 국민대학교 등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성공 리더의 조건 : 간디 리더십》, 《아로마 : 냄새의 문화사》 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4종 (모두보기)
정선태 (옮긴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글로벌 인문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개화기 신문 논설의 서사 수용 양상》, 《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 그 외부》, 《근대의 어둠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시선: 번역·문학·사상》, 《지배의 논리 경계의 사상》 등이 있으며, 역서는 《동양적 근대의 창출: 루쉰과 소세키》, 《일본 문학의 근대와 반근대》, 《가네코 후미코: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제국의 아나키스트》, 《일본어의 근대》, 《도조 히데키와 천... 더보기
최근작 : <지배의 논리 경계의 사상>,<백석 번역시 선집>,<1898, 문명의 전환> … 총 3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역사에 남겨지지 않은 일제 식민 치하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
이 책은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들의 체험을 기록한 구술사다. 저자 힐디 강은 한국인 남편 강상욱과 함께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51명의 한국인들을 인터뷰하여 일제 치하에서 이루어진 삶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발견해내고자 했다. 이는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각 개인의 기억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또 다른 시각에서 재현하려는 시도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역사책이나 유명한 사람의 삶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개개인의 복잡다단한 일상이 촘촘하게 녹아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예상할 법한 일제 강점이라는 검은 우산 아래에서 보낸 식민지 삶의 어둡고 고단한 일상뿐만 아니라 이성을 만나고, 생명이 태어나고, 학교에 다니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애쓰고, 이웃과 아웅다웅하는 ‘실제’ 삶이 깃들어 있다. 저자는 이들의 인터뷰 내용이 가능한 한 겹치지 않도록 정리하여, 개개인의 짧은 에피소드들이 한데 모였을 때 퍼즐을 맞추듯 식민지 조선의 전체상을 그려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의 특징은
● 인터뷰 대상자는 모두 미국 이주를 원했고 이를 실현하여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로서, 그들은 저마다 다른 출생지, 직업, 교육 수준, 종교, 성별, 경제력 등을 지닌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의 인터뷰 내용은 역사가 미처 기록하지 못한 것들로서, 가려져 있던 역사적 사실을 새로 발견할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어 그 의미가 자못 크다. 교육은 어떻게 받았고, 옷은 어떻게 입었으며, 생활의 궁핍한 정도나, 같은 마을에 살았거나 같은 학교·직장에 있었던 일본인과의 관계, 강제징용·징병이나 정신대 모집 상황, 직장을 구하는 것과 직장 생활에서의 일본인과의 차별 문제, 창씨개명, 신사참배, 정신대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실제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다.
● 일반 사람들을 인터뷰 대상자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이 중에는 민주당 총재를 지낸 여성 정치가 박순천의 조카인 박성필의 인터뷰(58∼60쪽)가 실려 있어, 고모였던 박순천이 일제 때 어떻게 활동하고 학교를 다니며 결혼했는지, 그리고 박명련에서 박순천으로 왜 이름을 바꾸었으며, 창씨개명에 대한 태도는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은단을 발명했던 사람의 딸 유혜경의 인터뷰(199∼204쪽)를 통해서는 아버지가 대학교수이자 유명한 서예가였지만 잠재적 반일운동가로 간주되어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는 등 일제 치하에서의 고단했던 삶을 엿볼 수 있다.
● 인터뷰 대상자가 출생한 연도는 주로 1900∼29년까지 45명, 1930∼39년까지 6명으로 20세기 초에 출생하여 성장기를 보낸 사람들이다. 이는 기존에 이루어진 구술사 자료 중에서도 연령대가 가장 높은 경우에 해당되어 주목되는 바이다.
● 인터뷰 대상자의 출생 지역은 만주를 비롯해 함경남북도, 평안남북도, 황해도 등 북쪽 지역이 16명, 그 외 강원도, 경기도, 충청남북도,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가 35명이다. 북쪽 지역의 식민지 시대 이야기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어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제1장 첫 만남>에서는 1800년대 후반부터 강제병합이 이루어진 식민지 시기 초반을 다루고 있다. 굳게 닫혀 있던 조선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세계 각지에서 온 사업가, 선교사, 정치가들이 함께 가지고 들어온 새로운 발명품, 언어, 규칙 등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거침없이” 조선인의 의식 속으로 치고 들어왔다. 전통과 근대가 충돌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누군가는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근대식 학교에 입학했으며, 어떤 이들은 동학 운동을 통해 전통을 지키고자 했다.
제1부 선택에 의한 변화에서는 1920년부터 1931년에 이르는 문화통치 시기를 살아간 사람들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규제가 완화되고 소수의 조선인에게 공직이 할당되면서 약간의 개인적 선택이 허용되기 시작했다. 자유의 증대는 경찰 감시 강화와 사상범 체포 증가 등 엄격한 통제를 동반한 피상적인 변화였지만, 이러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교육·직업 선택의 폭을 넓힌 조선인들이 적지 않았다. <
제2장 독립의 함성>에서는 3·1운동을 겪은 개개인의 경험담을 통해 각 지역에 따라 운동의 열기가 달랐으며 일제의 대응도 관할 경찰의 성향에 의해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제3장 지도 한 장이 바꾼 내 인생>에서는 세계지도를 보고서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임을 깨달은 홍을수가 계속 교육을 받기 위해 혈혈단신 일본으로 떠난 이후의 삶이 소개된다. <
제4장 교육을 선택하다>에서는 조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교육 기관의 범주가 다양해졌음을 보여준다. 1910년에 이르러 선교사, 일본인 혹은 조선인들이 세운 학교가 증가하면서, 서당의 교육을 받던 이들은 자연스레 근대식 학교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
제5장 바늘구멍을 뚫고>에는 조선의 손꼽히는 학교인 수원고등농림학교를 나와 은행 지점장으로 경제적인 여유를 누린 강병주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다. 태어난 고향이나 3·1운동 당시의 이야기, 학교를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하던 이야기에서부터 냉면을 만들어 먹던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소개되어 있어 흥미롭다. <
제6장 사업과 모험>에는 1920년대 문화통치 아래,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졌던 이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전통적인 농업에서 벗어나 전신 기사, 피혁상, 전매청 직원 등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들 중 몇몇은 직업에 따라 일본인과 밀접한 관계를 갖기도 했으며, 직장 안에서는 일본인과 비교하여 차별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음을 보여준다. <
제7장 캐나다에 갈 뻔하다>에는 부유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교육을 받았으나 반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평생 동안 경찰의 괴롭힘과 감시 아래 살아간 김찬도와, 개화한 집안에서 음악교육까지 받고 캐나다로 유학을 갈 뻔했던 이옥현 부부의 파란만장한 삶이 소개되어 있다.
제2부 강압에 의한 변화에서는 1931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일제의 동화정책 시기를 다룬다. 창씨개명, 신사참배, 강제징병 및 징용 등의 강압적 정책으로 인해 많은 조선인들은 그나마 남아 있던 개인적 선택의 권리마저 제한받았다. <
제8장 내 호적엔 빨간 줄이 그어져 있다>는 일제에 저항하는 모임을 조직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살았던 이하전의 이야기다. 그는 모임을 조직하는 것에서부터 함석헌 선생님과의 인연, 체포와 고문, 고된 감옥살이까지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들려준다. <
제9장 수동적 저항>에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조선인들이 행한 수동적 형태의 저항이 소개된다. 즉 독립을 염원하는 노래를 부른다거나 반일 루머를 퍼뜨렸다. 그리고 대다수의 기독교도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
제10장 사상경찰이 저녁 식탁에 나타나다>의 주인공인 유혜경은 아버지가 은단을 발명하고 대학교수였으나 더 나은 삶을 찾아 정착했던 상하이에서조차 일본 비밀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상황을 들려준다. <
제11장 일본인 되기>에서는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 즉 신사참배, <황국신민서사> 암송, 설날, 창씨개명 등이 조선인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으며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의 정책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준다. <
제12장 고베 조선소에 징용 가다>에는 고베 조선소로 강제징용을 갔던 정재수가 밀선을 타고 조선으로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이 생생히 담겨 있다. <제13장 전쟁의 상흔>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남성들은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숨거나 일자리를 구하고, 여성들은 정신대에 동원되지 않기 위해 결혼을 선택해야 했던 긴박한 상황이 소개된다. <제14장 대한독립 만세>에서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감격스러웠던 당시 조선인 각각의 기억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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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기를 실감나게 중계한다.
낮에뜬별 2017-09-29 공감 (1) 댓글 (0)
조선의 하늘은 당시 통한의 검은 비를 흘렸을 것이다 ㅠ.ㅠ
곧미남 2011-07-14 공감 (1) 댓글 (0)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의 다른 삶과 경험, 다른 시각을 엿볼 수 있는 기록집
사람살려 2016-02-2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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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에는 역사가 없다
역사책에는 역사가 없다
― 검은 우산 아래에서
힐디 강 엮음,정선태·김진옥 옮김
산처럼 펴냄,2011.7.10./13000원
우리들 살아가는 이 나라는 일본 군국주의 식민지를 겪었습니다. 이 나라는 군사독재정권을 겪었습니다. 돈으로 사람을 찍어내리는 정치권력을 꾸준히 겪고, 계급과 학벌과 지연 따위로 사람을 내리누리는 사회권력을 꾸준히 겪습니다. 바보스럽다 할 정치권력자가 작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작은 사람들끼리 서로 괴롭히거나 다투기까지 합니다. 정치권력자나 경제권력자나 문화권력자가 작은 사람들한테 저지르는 짓을 똑같이 이웃이나 동무한테 저지르곤 합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이 나라는 고작 백 해쯤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신분과 계급으로 빈틈없이 나누어 이웃을 섬기지 않는 정치·사회 얼거리였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마을살이였지만, 양반 신분과 계급은, 또 임금 신분과 계급은, 또 사대부 같은 이들 신분과 계급은, 사람살이를 아름답게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언제나 작은 사람들을 얽매거나 가두거나 들볶습니다. 권력을 가로채려는 다른 이들도 똑같이 작은 사람들을 옭아매거나 숨통을 죄거나 괴롭힙니다. 이들은, 권력을 거머쥐었다고 여기거나 권력을 가로채려고 생각하는 이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요?
- 두 번째 큰 변화는 1900년에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새 며느리의 이름을 지은 다음 그 이름을 호적에 올렸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아무개의 딸’이라고만 등록됐지요. (강병주,1910년 평북 출생/33쪽)
- 나중에는 창씨개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또 일본놈들한테 여러 차례 얻어맞았지요. (박성필,1917년 경남 출생/135쪽)
- 그저 살아남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설, 모욕, 박해를 당해를 당하고도 그러려니 했지요. 그것은 조선인의 정서에 무척 큰 상처였어요. (최길성,1911년 경기도 출생/147쪽)
권력을 거머쥐었건 권력을 가로채고 싶건, 모두 밥을 먹어야 목숨을 건사합니다. 밥 안 먹고 목숨을 건사하는 권력자는 없습니다. 그러면, 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흙에서 나오겠지요. 흙은 어디에 있나요? 시골에 있지요. 궁궐에는 흙이 없어요. 양반네 기와집에도 흙이 없어요. 흙은 시골에 있습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일구는 사람이 있기에, 임금도 있고 권력자도 있으며 지식인도 있습니다. 시골에서 말없이 흙을 가꾸는 사람이 있으니, 대통령도 있고 시장이나 군수가 있으며, 의사이니 변호사이니 교사이니 연예인이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어찌 될까요. 모두 죽겠지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돈이 철철 넘쳐도 굶어서 죽겠지요.
석유가 펑펑 솟더라도 맑은 물 한 줄기 없으면 목이 말라 죽습니다. 석유가 흐드러져 돈으로 밑을 닦고 집을 짓는다 하더라도 물 한 모금 없으면 목이 말라 죽어요.
다이아몬드나 금을 잔뜩 짊어지면 부자가 될까요? 아마 부자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었어도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지 못하면 죽어요. 100억이든 1000억이든 1조이든 100조이든 대수롭지 않아요. 싱그러운 바람이 없으면 곧바로 죽어요.
- 그때 나는 한복을 입고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가난한 농부들은 9월 말쯤에 겨울옷으로 바꿔 입고는 이듬해 4월까지 밤낮 그 옷만 입고 지냈어요. 그동안에는 옷을 빨거나 목욕을 하지 않았지요. 알다시피 한복은 하얀색인데 봄이 되면 때가 타서 거의 시커멓게 됩니다. 내가 입고 있던 옷이 그랬어요. 그때가 1월이었으니까 석 달 이상 같은 옷을 입고 지낸 셈이지요. 신발은 짚신이었어요. 가죽신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했어요. 그러니까 나는 더럽고 냄새나는 한복 차림에다 짚신을 신고서 일본 오사카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이지요. (홍을수,1905년 경남 양산 출생/69쪽)
제아무리 엄청나다는 권력이나 전쟁무기로 이웃나라로 쳐들어간다 한들, 이웃나라 사람들이 아무도 흙을 안 일구면 어찌 될까요. 채찍질을 해대며 흙을 일구라고 시킨들 될까요. 고문을 하고 살인을 하면 될까요. 맞아서 죽으나 굶어서 죽으나 똑같다고 여겨 시골지기 모두 꼼짝않고 버티면 어찌 될까요. 대통령도 임금도 권력자도 살인마도 군인도 정치꾼도 재벌 우두머리도 연예인도 영화배우도 운동선수도 교사도 교수도 의사도 변호사도 과학자도 뭣뭣도 모두 굶어서 죽어야 합니다.
이 나라는 왜 일본 군국주의 군화발에 짓밟혔을까요. 군대가 없어서? 임금과 신하가 바보스러웠기에? 양반네들이 바보짓만 일삼았으니? 여러 가지 골고루 섞였을 텐데, 시골에서 흙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람다운 대접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생각해 보셔요. 어떤 침략자라 하더라도 밥을 굶으면 죽어요. 어떤 침략자라 하더라도 물을 못 마시거나 바람을 들이켜지 못하면 죽어요. 나라가 버티는 까닭도 나라를 먹여살릴 뿐 아니라 튼튼히 받치는 시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교육이나 과학 모두, 시골이 밑바탕이 되니 펼칠 수 있어요. 전쟁은? 전쟁도 똑같아요. 군인은 흙 먹고 전쟁을 하나요? 군인은 굶거나 숨 안 쉬면서 총을 쏘나요? 총알이 없어도 전쟁은 하지만, 밥을 굶고는 전쟁을 못해요. 적군이든 아군이든 밥때에는 밥을 먹느라 서로 쉬지요. 밤에는 잠을 자야지요. 안 먹이고 안 재우면서 전쟁을 하지 못해요. 그러면, 군인이 먹을 밥과 군인이 잠들 자리는 누가 마련해 주나요?
오늘날 우리 사회 모습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생각합니다. 밀양 송전탑 말썽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제주 강정마을 말썽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평택 미군기지 말썽은 어떻게 되었나요? 크거나 작은 갖가지 말썽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길은 오직 하나예요. 모두 내려놓고 시골로 가면 돼요. 밀양도 시골 아니냐 하고 물을 텐데, 다 내주고 다른 시골로, 더 조용하고, 더 깊은 두멧시골로 가면 돼요. 한 사람씩 두 사람씩 차근차근 시골로 가면 돼요. 한국전력 사람들만 두고, 경찰과 공무원만 두고,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시장만 두고, 다들 시골로 가면 돼요. 시골에서는? 군청에 군수와 공무원만 두고서 읍내와 면소재지를 떠나면 돼요. 읍내에는 군수와 공무원만 있으라 하고, 모두 시골자락에서 흙을 만지면서 조용히 지내면 돼요.
왜 요리사가 대통령한테 밥을 차려 주어야 하나요? 대통령한테는 손이 없나요? 왜 운전사가 대통령을 자가용으로 실어 날라야 하나요? 대통령한테는 발이 없나요?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을 얻도록 해야 대통령이 달라지지요. 스스로 집을 짓고 이부자리 깔며 빨래를 손으로 하도록 해야 대통령이 거듭나지요. 한국전력은? 우리들이 전기를 안 쓰면 돼요. 우리 모두 전기를 스스로 뚝 끊고 안 쓰면 되지요.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할 까닭 없어요. 면접서류나 이력서가 있어야 할 일 없어요. 삶을 밝히고 사랑을 꽃피우는 길에는 아무것도 쓸데없어요. 우리들이 스스로 도시로 몰려들어 어떤 권력이나 콩고물이나 떡고물을 바라기 때문에, 온갖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아요. 온갖 정치 말썽·경제 말썽이 불거지기만 해요.
- 뭐라고요? 서당에 다녔냐고? 여자는 그런 델 다니지 않았어요! 여자들은 바느질하고 밥 짓는 거나 배웠지요. 그 나머지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들은 모두 소학교에 다녔지요. 나도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오빠들이 말했지만 어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여자들은 그런 거 배울 필요가 없다. 모두 쓸데없는 짓이야.”라고 말했어요. (이옥분,1914년 충남 출생/93쪽)
- 나는 제2차 세계대전이 우리 마을의 신분 질서를 통째로 뒤집어 놓았음을 알아차렸어요. 우리 삼촌네는 하인이 많았고 그들은 모두 제 직분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쟁으로 인해 모든 젊은이들이, 하인이고 양반이고 가리지 않고 모두 일본군에 징병되자 위계가 불분명해졌어요. 누구나 같은 운명이었고, 그러니 다들 평등해진 거지요. 이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 많은 하인들이 삼촌네 집을 나와서 다른 도시로 이주했어요. 구질서가 붕괴된 거지요. (유덕희,1931년 충남 출생/256쪽)
힐디 강 님이 엮은 《검은 우산 아래에서》(산처럼,2011)라는 책을 읽습니다. 힐디 강 님은 한국(남녘과 북녘)을 떠나 미국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를 만나서, 이녁이 한국전쟁 언저리, 또는 일제강점기에 겪은 이야기를 귀담아 듣습니다. 인문책 《검은 우산 아래에서》는 어쩌면 ‘이름난’ 사람들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으레 ‘이름 안 난’ 채 조용히 살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역사책에 안 나오는 이야기가 이 책에 흐릅니다. 역사학자는 눈여겨보지 않는 이야기가 이 책을 그득 채웁니다. 왜냐하면, 그예 삶이니까요. 그저 삶으로 누리던 하루하루이니까요.
- 이곳 감방에 누가 있었는지 알아요? 바로 함석헌 선생님이었어요. 왜 수감됐는지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저항운동 혐의로 체포된 것이었죠. 고문실에 끌려갔다 돌아오면 선생님은 거의 말을 하지 못하거나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이하전,1921년 평남 출생/173쪽)
- 경비병들은 우리를 고베 교외에 있는 기다란 막사 안으로 몰고 갔어요. 우리 그룹에는 조선인이 6천 명 있었어요. 3천 명은 미쓰비시, 3천 명은 가와사키. 모두 그 막사에 수용됐어요. 상상이 가세요? 식사는 콩, 콩, 또 콩이었어요. 흰 쌀밥은 한 번도 안 나왔어요. 그런 게 아예 없었지요. 이따금 작은 국그릇을 줄 때도 있었어요. 그런 때에도 적은 양만 나눠 줬어요. 우리는 젊고 배고프고 식욕이 넘쳤어요. 겨우 21살인데 어떻게 그런 음식으로 버틸 수 있겠어요? 견디다 못한 어떤 사람들은 몰래 음식을 조금 더 챙기려다가 얻어맞았어요. 아주 호되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지요. (정재수,1923년 전북 출생/223쪽)
역사를 배우려 한다면 ‘어떤’ 역사를 배워야 할까요. 역사를 말하려 한다면 ‘어떤’ 역사를 말해야 할까요. 정치를 말하거나 경제를 말할 적에도, 인문학이나 문학이나 문화를 말한다 할 적에도 ‘어떤’ 이야기를 말해야 할까요.
우리들은 ‘어떤’ 사랑을 나눌 때에 아름다울까요. ‘어떤’ 삶을 일구면서, ‘어떤’ 보금자리를 ‘어떤’ 마을에서 가꿀 때에 스스로 사랑스러운 하루 될까요.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우리 사회는 이대로 가면 무너질밖에 없습니다. 다들 아는 이야기일 텐데, 우리 사회나 정치나 교육이나 문화나 다른 모두, 오늘 이 모습대로 흐른다면 밝거나 맑은 앞날이 없습니다. 입시지옥을 그대로 두고서 무슨 정치 개혁을 읊나요. 아이들이 뛰놀지 못하고 교과서 지식 외워서 시험경쟁만 하는데 무슨 경제개발을 외나요.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지 않고서, 신분과 계급과 돈에 따라 가르던 한국 사회였으니 식민지살이를 겪을밖에 없었습니다. 사람 스스로 사람답게 살아갈 길에서 자꾸 벗어나고 끌려다니니 군사독재가 으르렁거렸어요. 오늘은? 모레는? 글피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4346.12.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사람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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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30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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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태(국문학과) 교수 공역, 검은 우산 아래에서(Under the black umbrella)2011.07.18
정선태(국문학과) 교수 공역, 검은 우산 아래에서(Under the black umbrella)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들의 체험을 기록한 구술서다. 저자 힐디 강은 한국인 남편과 함께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살고 있는 51명의 한국인들을 인터뷰했다.
일제 치하에서 이루어진 삶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발견해내고자 했다. 미국의 한국사 연구자인 저자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일제 치하 민중의 삶을 연구하고 그 결과물을 낸 것이다.
책에선 근대화와 식민지의 격랑을 맞은 평범한 사람들의 경험과 감상이 있는 그대로 펼쳐진다.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끔찍한 식민지의 경험이지만, 민간인 개개인이 느끼는 끔찍함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나는 일본인 학교에 다니는 몇 안 되는 조선인 여학생에 속했어요. 아버지가 서울 동쪽 외곽에 있는 일본인 병원의 유지 보수를 담당했기 때문이었지요. (중략) 그래서 일본에 다녀올 때면 그 사람들은 언제나 아버지와 우리 식구들을 위해 선물을 가지고 왔지요. 어떠한 차별도 느끼지 못했어요.”
“참배는 30분쯤 걸렸어요. 무슨 물을 붓고 손바닥을 마주치고, 그러고는 다시 내려와서 식량 배급표를 받는 거예요. 나중에는 창씨개명을 했어요. 나는 그저 남편이 하는 대로 따랐지요. 신경을 안 썼어요. 그냥 식량 배급표를 받기 위한 것이었죠.”
공동 역자인 정선태 모교 국문학과 교수는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거시사와 미시사가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이 책은 식민지 시대의 삶을 다양한 시점에서 조명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산처럼/288쪽/힐디 강 지음/정선태·김진옥 옮김/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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黒い傘の下で 日本植民地に生きた韓国人の声
(日本語) 単行本 – 2006/9/2
腰椎
5つ星のうち2.0 高い金を出してまで読む価値は無い。定価でも高いと思います。2019年10月16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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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人の経験を話してるような話はいいのだが、日本の悪い話は伝聞が多いように感じた。
夫から聞いたので確かだとかね。
なので、この本の内容をそのまま信じると痛い目に合う。
ただ、本当の経験談ぽいのがいくつかあるのでそれは興味深い。
というか、朝鮮人の女の子、行動力ありすぎだろ・・・。
そりゃ、いろんな犯罪に巻き込まれるわって思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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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in
5つ星のうち4.0 重大な本2014年8月12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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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韓併合を体験した、アメリカ在中のコリアン達の証言。
日本の良いこと、悪いことが書いてあります。
この本が貴重なのは、両方を書いてあること。
アメリカに住んでいるからでしょうが、現在の韓国では考えられ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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だいのじ
5つ星のうち5.0 米国人女性学者が(比較的)客観的に証言を録取した良書。2013年9月9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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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はアメリカ人女性学者(白人)である。ご主人が在米コリアンである。
彼女が本書を執筆するきっかけとなったのは、在米コリアンである義父の比較的幸せにも思われる子供時代の話を笑いながら聞いていた時、その時代が日本による植民地時代であることに気付いたことにあるという。
「日本による朝鮮植民地時代は、本当に不幸な苦難の時代だったのだろうか?」
それが彼女の本書執筆の動機となった。彼女は在米コリアンである夫の人脈を通じて植民地支配を体験した60人近い在米コリアンから植民地時代の思い出を聞き取り、文字化していく。本書は、これらの人々の証言が時に断片的に淡々と掲載される形式でつづられていく。
このため、同じ事件に関する証言でも、色々な人の証言を比較することができる点が、非常に興味深い。例えば、3・1独立運動に関する証言でも、
「デモに出かける人もいたが、自分たちは祖母と一緒に家の中から『独立、独立』と叫んでいた。近所の家もそれにならってみんなで叫んだ。夜になって日本の憲兵が来て、近所の男たちを銃剣で刺したり、足を切り落としたりしているのを見た。我々は祖母と抱き合って家の中で震えていた。」
「私たちは先生に連れられて丘の上からみんなで独立を叫んだが、その後、警察が来たり誰かが逮捕されたということはなかった。私たちの村は小さかったから問題にされなかったのだと思う。」
「警官はデモ隊の若い男が向かってくると銃で殴ることもあった。しかし老人には、『おじいさん、どうしてこのようなことをしたのですか』と説得していた。私たちのいた地域では日本の警官は優しかった。」
といった具合に、証言をする人たちの個別事情によって一つの歴史事件でも色々な観点から俯瞰することができる。
日本人にひどい目にあわされたという話もあれば、日本人に嫌な思いをさせられたことなどなく、いい人ばかりだったという話もある。むしろ日本人に大変世話になったという話なども出てくる。
これらの証言を読んでいくと、左翼やコリアンが主張しがちな全てが悲惨で暗黒の植民地時代という見方も、右翼の言説にありがちな朝鮮を発展させた「良い植民地支配」というのも一方的な見方であり(なお、著者も前書きでこの二つの観点が米国の学説においても分かれていると説明しており興味深い)、実際にはあの時代を経験したコリアンの階層、状況、居住地域、年齢等により、極めて多様であり、ひとくくりにできるものではないということが良く分かる。
著者は前書きで、聴き取り対象は在米コリアンなので、社会階層に一定の偏りがあることを認めている。しかし、在米コリアンだからこそ、その後の半島におけるナショナリズムからの影響から比較的自由な観点で率直に思い出として当時の記憶を語ることができ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印象を受けた。これらの証言が「虚偽」であるという人も、まずは批判的に読んでみたうえで史料批判するといいだろう。右翼にも左翼にも一読を勧めたい一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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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wind
5つ星のうち5.0 現実を見よう2014年3月28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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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々脚色が付きすぎた歴史を、事実から検証しましょう。
プロパガンダや虚飾ではない事実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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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ット・イット・ブリード
5つ星のうち5.0 歴史はモノを語らない。語るのは「人」である。2007年6月13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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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は在米韓国人。同じ在米の韓国人一世から、かの時代の聞き取りを行い本書にまとめたものである。「在米」ということで、「多様性・普遍性」は疑われるが、著者は出来る限り幅広い人々から話を聞いた。それは、巻末の聞き取りを行った人々の職種・学歴等に偏りがないというデータでも記されよう。
本書の「歴史」は学者のそれではない。人々のナマの「実生活」である。
故に、その言葉は、「朝鮮半島に構えのある」日本人には以外なほど届きやすいだろう。
「実生活」には、喜怒も哀楽もあるのだ。
しかし、注意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人間の生活感覚はしばし、実相と乖離する場合が少なくないことである。また人によってもそれは大きくズレる場合もある。景気感覚、男女平等、社会感覚等、その他数多の「分野」において、我々は、自身と感覚を共有できない人も多く存在していることも知っている。
なぜなら「個人の生活」とは常に「個人が自由に設定する客体に対する相対感覚」で語られるからである。俗っぽく言えば、要するに自分は、人と比べて「マシ」か「マシ」じゃないかという、あれである。
本書には、まぎれもなく植民地朝鮮の人々の「個々の生活の真実」がある。だが、間違っていけないのは、「個々の生活」が「歴史を判定」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
現実の社会では、「個人が飢えていたから歴史が間違い」で「個人が飽食だったから歴史が正しい」とは単純になりえないからである。木を見て森を語る時には注意が必要であろう。
そこを踏まえた上での本書を読むならば、大変興味深い。本書は「人と人」の為の「体験談」であるからだ。歴史でも政治でも文化でもなく、「人と人」の為に書かれた本である。人と人とはずばり日本人と韓国人である。「歴史の齟齬」は「人と人」で埋めたいという著者の気持ちがあるのではないか。翻訳者も巻末で、韓流と嫌韓で揺れる日韓関係に本書が「有効」であるのでは、と示唆しているようだ。賛成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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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5つ星のうち2.0 期待ほどでは2013年12月30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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評価が高いという前触れだったが、私にはインタビューに答えている朝鮮人の中に「公式発言」をしているようにしか受け取れない人物も多く混じっているように感じられた。著者の作為を排除した書物ということのようだが、インタビューされる側の作為までは疑わなかったのだろ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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ノーマッド630
5つ星のうち4.0 早く再販してください。2019年10月29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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早く再販してください。必要なのは真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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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Is Here To Stay
5つ星のうち1.0 プロパガンダ2012年4月26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形式: 単行本
いわゆるプロパガンダ、日本を貶めるための在米韓国人による本。敵を知るために一読をというなら薦めるが、内容を鵜呑みにしないこと。なぜならこれらは確証の無い話だから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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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s.spaceshower.jp/books/isbn-60201892
【Being Japanese!】シリーズ第1弾
今だからこそ考えてみませんか? 「自分が日本人であること」
アメリカ人でも中国・韓国人でもない日本人、白人でも黒人でもない日本人、リッチでもプアーでもない(と思える)このわたし、欧ブランド服着てダイニングテーブルで焼き魚&納豆食べる自分、そんな日本人の国である日本が、いまどこに向かおうとしているのか、向かうべきなのか、なかなか力強い説得力をもった言葉が世に出てきません。誰もが、日本人であることへの迷いを持っているようです。国や社会が向かう道を決めるのはひとりひとりのエヴリデイ・ピープルであって、政治家でも学者でもありません。そんな市井の人々が、さまざまな社会、境遇のなかで何を思い、生きてきたか、そのことをもっと知りたい。すべては自分というBeingに回帰していくものだから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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黒い傘の下で――日本植民地に生きた韓国人の声
日本に統治された韓国人はどう生きたのか?
それほど遠くない昔、韓国(現在の北朝鮮を含む)を統治した日本。日本人の広げる黒い傘の下に韓国人たちは何を考え、どう生きたのか。政治指導者・エリート層ではない、一般庶民への聞き書きから鮮やかに浮かびあがる、日本の一部にされた国民の偽らざる心情。竹島問題になぜあれほど彼らは激高するのか……人の一生と国の向かう道を深く思う。
【内容紹介】
「黒い傘の下で」は二〇世紀前半、朝鮮が日本の植民地支配におかれる前と植民地支配下におかれていた時代に関する記録である。日本は、まるで朝鮮半島の上に浮かぶ果てしなく大きな傘のような存在で、人々の暮らしや行動に不信、疑い、そして恐怖の影を落としていた。日本に支配されたことによって、程度の大小はあれ、朝鮮の人々は世界に対する関心を閉ざされ、植民地支配の影響の下で生きることになった。
私自身がもともと持っていた日本の植民地支配についての知識は二種類に分けられる。歴史書に整然と列挙されたものと、犠牲者による感情的なストーリーだ。そのため、義父が若き日のことを穏やかなユーモア混じりに語るのは、意外に感じられた。家族は義父がモダンな学校に古いスタイルの韓服(朝鮮の伝統的な衣服)を着ていった話を耳にして、くすくすと笑い、古い製麺機の取っ手の上に立って一家の麺作りを手伝った話も、笑顔で聞いたものだった。ある時、義父の話を聞きながら、私はふと、それがすべて日本の植民地時代の出来事であることに気づいた。
<中略>
私はそんな人たちを探し出そうと心に決めた。当時を生きた朝鮮人たちが語る歴史を集めることによって、日本の植民地支配下での豊かさと多様性とを見出そうとしたのだ。この本は、沈黙を破ったこうした人々の物語、当時の朝鮮での生活を再現し、日本の植民地という黒い傘の下で生きた多くの人たちが長い間保ってきたことによって作られたものである。(「はじめに インタヴューについて」より一部抜粋)
***
カン・ビョンジュ
男性 一九一〇年生まれ 銀行経営者 平安北道
祖父、カン・チュンダルの話をしたいと思います。祖父は一八五〇年、哲宗の時代に定州東部の氏族の村で生まれました。伝統的な村の、歴史ある長老の家系の一人でした。古い慣習をしっかりと守り、村から遠くに出かけたこともありませんでした。<中略>
この日、一人の外国人が道端に立ち、新しい宗教について話していました。祖父は彼の話に惹かれ、ほどなく当時の朝鮮ではまだ珍しかったプロテスタントとして洗礼を受けました。村に戻った後、どうなったとお思いです? 祖父は長老だったので、すべての村人を、意向にかかわらずプロテスタントに変えてしまったのです。
次の大きな変化は一九〇〇年のことでした。その年、祖父は新たに家族に加わった義理の娘に名前をつけ、彼女の名前を戸籍に載せたのです。それまでは戸籍には女性の名前は記載されず「誰々の娘」と記されるだけでした。そのいきさつをお話しましょう。祖父の息子(私の父)はその年一三歳で結婚しました。まだ幼い妻には名前がなかったのですが、本人は気にしてはいませんでした。いずれにせよ、朝鮮では、伝統的に相手を名前で呼んだりしません。
ところが、幼い二人が結婚したのは、女性も名前で戸籍に記載するといった法律を定めた甲午改革(一八九四~九五)の直後でした。ほとんどの家族はこの法律を無視していましたが、祖父はこれを伝統を打ち破る新たな手段と捉えたのです。<中略>
八年後、祖父は父を学校に入学させました。近くに開校したばかりの西洋式の五山学校では、中国の古典に代わって歴史、科学、そして数学を教えていました。この男子校の創設者は日本人ではなくイ・スンフンという朝鮮人でした。
五山学校が一九〇七年に創立されて一年も経たないうちに、祖父は自分の息子を入学させる意思を固めていました。考えてみてください。この学校はできたばかりで、ほとんど何の準備も整っていなかったのです。だから大人であれ子どもであれ、男性であればだれでも入学が認められたのです。入学したとき、父は二一歳。結婚してから八年が過ぎ、子どもも生まれていました。
最後に、一九一二年、祖父は六二歳にして四度伝統を破りました。一人息子を村から出し、医者になるために西洋医学を学ばせたのです。おかげで私の父は京城医学専門学校の最初の卒業生の一人となりました。(実は、つい最近ソウルから父の卒業証書を受け取りました)。父は学業を終えると村に戻り、徒歩で二〇分離れたナプチョンで開業医となりました。
父が高い教育を受けた一方、結婚相手である母は学校に通った経験がまったくありません(当時はそれが普通でした)。父はそんな母と農村で暮らすことに幸せを感じられず、母に「好きなことをやれ」という言葉と財産とを残し、満州で開業して自分の人生を生きるために村を去っていきました。その後、母はすべての財産を切り盛りし、小作農のまとめ役も担っていました。
満州との国境は村のすぐそばでしたよ。父は年に数回は帰郷していたはずです。一九〇六年から一九二八年の間に生まれた、七人の子どもがいましたから。両親は三人の息子だけでなく四人の娘たち全員に女子高等普通学校と大学の高等教育を受けさせてくれました。女の子が高等普通学校に行くことさえ稀だった時代だったというのに、まったく驚きです。
父が満州にいたころの、こんな話があります。満州のある司令官が、生きている人間から取り出した肝臓を食べれば、永遠の命を得られると聞きつけた。ある日、父は司令官の本部に呼び出されました。
「お前は西洋医学の医師だそうだな。手術もできるのか」
「左様でございます」
「三人の兵士が捕らえられ、もうすぐ死刑になる。俺が奴らを殺す前、生きているうちに一人を選んで肝臓を取り出してくれ」
司令官は目を据えて待っています。
「いいえ、私にはそんな残酷なことはできません」
父はそう答えました。
「ならば、お前も殺してやろう」
そして、父は命令にしたがったのです。
ある日、祖父が家の裏にあった豚小屋の屋根ふきをしていて、私はその周りで遊んでいました。五歳くらいだったので、一九一五年だと思います。突然村を囲む丘のひとつ、ソダン丘の上から、光沢のある茶色の制服を着た日本の憲兵が朝鮮人の部下たちを従えて姿を現しました。
当時、朝鮮人は警察官とは呼ばれず、日本憲兵の補佐をつとめていました。植民地政府は自らを守るために朝鮮の治安安定につとめ、日本語を話せる朝鮮人男性を雇っていたのです。朝鮮人の部下たちには黒い制服を与え、茶色の制服を着た憲兵の横を歩かせていました。
横柄な憲兵たちが一〇人以上私たちのところに下りてきて、祖父を取り囲みました。そしてロープで縛り、連行しようとします。憲兵たちは私には気づいていません。急いで家に駆け込み母親に告げると、母親は家から飛び出して憲兵たちに懇願しました。
「縛って連れていくなんて、義父が何をしたというのですか」
母は取り乱し、叫び、懇願しましたが、憲兵たちは彼女を蹴り飛ばし、祖父を連れ去ってしまいました。
理由は結局分かりませんでしたが、祖父は数日後には戻ってきました。
このエピソードは、祖母のキム家がいかに裕福であったか、そしていかに金に厳しかったかを物語っています。同時に、われわれに降りかかった災難が、日本人によってのみならず、同じ朝鮮人にもよるものでもあったことも示しています。日本の植民地支配以後、多くの朝鮮人たちは日本人と戦うためにゲリラ戦法を使い、自らを独立軍と名乗って、戦闘費用を捻出するために金持ちに金を強要していました。祖父の家系のカン家には手を出さなかったのですが、祖母側のキム家は目をつけられたのです。ゲリラたちはキム家に「もう一度来るから金を用意しておくように」と脅しました。キム家の父親は金を出すことを拒否し、ゲリラが戻ってきても金を渡そうとしませんでした。そしてその場で兵士たちに殺されてしまった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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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サンドゥ
(男性)一九一〇年生まれ。トラック運転手 京畿道
私の父は東学・天道教の伝道者でした。「東学」はとりわけ狂信的愛国主義で、西洋のすべてを朝鮮の伝統に反するものとして否定しました。
父の伝道活動に対して金銭が支払われることは全くありませんでした。兄たちは父を手伝っていました。信者たちは金の代わりにわずかな米をくれました。米の量は信者の家族の人数に左右されます。この米を売って得た金をソウルにある東学の本部に送り、本部が経費として使うのです。
私の家は広く、集会の計画を立てるために人々がやってきました。家では会議がよく開かれていたのを覚えています。それは秘密会議でした。「万歳、万歳」と叫ぶ集会について大人たちが話し合うのを聞いたこともあります。(訳注 朝鮮半島の独立を願い各地で万歳と叫んだ「三・一運動」のことと思われる)
父は日本人が来るのを嫌っていましたが、私はそれほど悪い印象を持ってはいませんでした。何故かって? 村は梅雨時になると決まって洪水になりました。貯水池やダム、橋を建設したのは、やってきた日本人です。岩で支払う税金制度もあり、各家庭は一年に二、三回決まった量の岩を拾いに行かねばなりませんでした。その岩は道路を作るのに使われたのです。
日本人の組織力には驚くべきものがありました。彼らは計画的に物事を進めるのです。詳細な計画を立ててやってきて、きちんとしたものを建設する。日本人が私の村に建てた橋は、雨や洪水の中でも持ちこたえました。また、日本人たちはいろいろな小物を持ち込みました。鋭いかみそりナイフ、すぐに火がつくマッチ、レコードプレイヤー……。それらはヨーロッパ製で、私たちが待ち焦がれていたものでした。最初に朝鮮にそれらを持ち込んだのは日本人でしたが、長い目で見ると良かったのだと思います。
(第一章「変化の訪れ」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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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ャンル : 社会 / ドキュメンタリー
関連ページ : ヒルディ・カン / 桑畑 優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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