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9

Seung Pyo Hong Yipyo Hong '화해' 운운하는 아무개들은 이제 그 입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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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 Pyo Hong
20 June 2014  · Shared with Public

오늘 종로5가에서 열린 '역사인식과 기독교' 긴급신학토론회에서 얻은 단순하지만 명확한 통찰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뜻'을 말하기 전에 먼저 아파하는 자, 고난  당하는 자, 우는 자와 먼저 함께 아파하고 고난 당하고 우는것이 선행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은 그 어떤 고상한 미사어구와 교리, 논리들은 다 개소리라는 것이다. 오만하게 궤변으로 '하나님의 뜻',  '화해' 운운하는 아무개들은 이제 그 입 다물라!

Yipyo Hong
19 June 2014  · Shared with Public

논란이 일고 있는 『제국의 위안부』(2013)라는 책의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문제가 아닌 보다 넓은 '제국'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그 결과,위안부 문제의 책임 대상을 탈일본화 시켜, 세계 보편의 문제로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래서 문제의 책 제목도 『제국의 위안부』라고 지은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런 식의 접근은, 식민지 지배와 전쟁 책임의 주체인 '일본정부'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를 자연스럽게 붕괴시켜 버린다. 의도야 어찌됐든 유럽의 제국주의, 일본의 제국주의, 그리고 팍스아메리카나가 모두 내포하는 막연한 폭력성 뒤에 '일본군'만의 죄악상은 은폐돼 버릴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의 특수성은 역시 천황제와의 관련성에 있다. 근세 이후 유사 종교로서의 아라히토가미(現人神)라는 절대적 존재를 정점에 둔 군대조직은 오직 일본군 뿐있었다. 천황을 위해 집단 자살을 감행하는 세계 유일의 광신적 군대조직이 바로 일본의 황군이었다. 외지인(식민지민)으로 차별받다 2등 국민으로 승격된 오키나와인들에게도 천황만세와 함께 집단 자결이 강요되지 않았나? 이런 일제의 종교적 광기는 결코 타국 군대에서는 볼 수 없는 일본군만의 특수성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이러한 천황제 하에서의  특수성 가운데 탄생했고 전개됐다. 그 점을 놓치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논의는 속빈 강정, 요란한 빈 수레로 전락한다.

  천황을 정점으로 한 '가족국가'의 건설의 야욕이 대동아공영권이었고, '팔굉일우'(八紘一宇)였다. 가부장적 천황제는 (1) 황족(귀족)과 평민을 나누었고, (2) 내지인(일본인)과 외지인(식민지민)을 나누었으며, (3) 남성과 여성을 나누어 거대한 피라미드의 사회를 구축했다. 각 영역의 하부 구조인 (A)가난한 평민, (B) 외지인(식민지민), (C) 여성이라는 세 범주 안에 모두 속한 존재는 바로 '가난하고 힘없는 식민지 조선의 어린 여성'이었다. 일본제국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정점의 천황과 가장 거리가 먼, 그래서 너무나 하찮아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상관없는 '벌레' 같은 존재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의 탄생 과정은, 몇일 전 하시모토가 강조한 UN군의 노르망디에서의 위안소(?) 등과는 근본적으로  탄생 배경을 달리 한다. 

이러한 치밀한 차별 구조 속에서 자행된 일본군 위안부의 특수성을 보편성으로 환원시켜 보려는 작업,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한일 간의, 아시아의  '화해'를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하진 않을까? 

박유하 교수는 문제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는 ... 병사를 향해 '살아 돌아오라'고 말했던 동지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복'을 입은 댕기머리 조선인이기도 했지만, 일본옷을 입고 일본머리를 한 청초한 '야마토 나데시코'(大和撫子)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모순'을 가장 처절하게 살아낸 존재였다. 협력의 기억을 거세하고 하나의 이미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소녀'상은 협력해야 했던 '위안부'의 슬픔은 표현하지 못한다"(『제국의 위안부』 207쪽.)

이 책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기본적 경외나 예의가 결여된 경솔한 측면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먼저 쟁점이 되고 있는 '동지'(同志)라는 표현을 보자. 물론 죄없는 조선인 일본군도 똑같이 징병되어 고통받던 이들이지만, 그들은 저자도 보편적 억압기제로서 힘주어 강조하는 말그대로의 '남성'들이 아닌가? 저자가 위안부 여성들을 남성 군인들과 손쉽게 '동지'라는 말로 동일시 해버리는 것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한편, 나는 위안부 여성들을 향해 '야마토 나데시코'였다고 표현한 것에도 신경이 쓰였다. 일본군 위안소 정문에는 많은 경우,  "몸도 마음도 바치는 야마토 나데시코의 서비스"(身も心も棒ぐ大和撫子のサーヴィス)라는 입간판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일본군의 성노예로 내몰면서 가볍게 광고하듯 붙여 쓴 표현이다. 타의에 의해 '야마토 나데시코'가 되어 버린 이들에게 그 혐오스런 이름을 다시 갖다 부르는 것에는 신중함을 기해야 하지 않을까?

'야마토'란 말도 그리 가볍지 않다. 일본 국수주의 신학자 에비나단조(海老名弾正)가 "우리 안에서 생성되는 이 야마토혼(大和魂)그리스도혼(キリスト魂)과 일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더욱 더 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予が最も愛するもの」, 『新人』, 6巻3号, 1905年,)고 말했을 때의 그 '야마토혼'... 결국은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의 신화와 제1대 진무덴노(神武天皇)의 조국(肇國) 정신을 말한다.

나는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 그러한 야마토다마시(대화혼)이 얼마나 박혀 있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야마토 나데시코'는 에비나를 본받아 "우리는 배 속으로부터 야마토다마시(大和魂)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每日申報」, 1943.8.7.)고 역설한 이화여전의 김활란이나, "어머니 자신들부터 우리나라의 야마토다마시(大和魂)를 몸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每日新報』, 1942.5.12.)고 주장한 YWCA 유각경 같은 지배계급의 여자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입을 옷이 없어, 혹은 입기 싫어도 입었어야 했을 기모노를 입고 뭇 남성들을 받아내야 했던 위안부 여성들에게, '청초한 야마토 나데시코'라는 감상적 수식어가 적절한 것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들은 다양할 수 있다. 이영훈 같은 사람은 경제사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고, 문학자인 박유하 교수는 문학적 이상과 감수성에 경도된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룬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면 기독자이자, 목사, 신학자인 우리들은 이 문제를 어찌 볼까? 성서에서도 '화해'는 중요한 개념으로 자주 등장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주셨고 또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고후 5:18, 공동번역)

이 말씀처럼 우리는 '화해의 임무'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들이다. '화해'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니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가?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하는 '화해'에는 조건이 있다. "그리스도를 내세워야 한다" 그래야 화해가 성립된다. 그리스도가 전제된 화해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 화해시키시고 원수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다"는 에베소서 2장 16절 말씀처럼 '십자가상의 죽음'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본 받은 참회와 희생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박유하 교수도 스스로 표현한 말처럼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은 "식민지의 모순을 가장 처절하게 살아낸 존재"들이다. 그리스도는 그런 핍박받는 약자들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 지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자를 위한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토록 고통받던 위안부들이 또 무슨 참회와 희생을 통해 십자가를 져야 할까?

  그러므로 일본이라는 국가권력과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 사이의 화해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이제 일본이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참 이유를 깨닫고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 그런데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 여성들에게 계속 십자가를 지라고 분위기이다. 십자가를 지게 한 이들을 손쉽게 용서하라는 십자가를 또 지라 한다. 제국일본이 져야 할 십자가에 대해선, 그들은 이미 충분히 십자가를 졌다는 식으로 변호하는 인상이다. 

그래서 '권력화된 할머니'라는 박유하 교수의 표현은, 여전한 '천황제 가족국가'의 공고한 절대 권력 앞에서 내뱉기엔 너무나도 궁색한 책임전가의 말로밖엔 안 들린다. 세월호 유족들을 향해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쌩 난리친다"던 모대학 교수의 말이 떠오른 걸 어쩌면 좋을까?
세월호 유족들을 위해 세종대왕 동상에 올랐던 감신대 신학생들이 마지막으로 읽었던 성경 말씀이 "우는 자와 함께 울라"(롬12:10- 21) 아니었나? 일본 국가 권력 안에 "함께 울어 줄 우는 자"가 과연 누구인지 의문이다. (물론 고통받는 일본 민중을 위해선 우리도 함께 울어야 하겠다!) 동시에 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이 고통의 깊은 강과 그 강을 넘기 위해 짊어져야만 했던 희생의 십자가가, 과연 '권력'이란 말로 손쉽게 환원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목사, 신학자는 일본 정부에 십자가를 온전히 지어 줄 것을 요구하게 된다. 죄없는 신께서도 자신을 탓하며 십자가를 졌건만, 죄없는 여성들이 어린양 제물이 되어 전장에서 스러져 갔다. 하물며 죄있는 자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십자가를 지려는 것이야말로 화해의 첫걸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1967년 일본기독교단의 전쟁 책임 참회선언 이후에 성공회, 일본기독교회 등의 일본 프로테스탄스 제교파의 회개고백이 이어졌고, 그 결과 한일 기독교는 비로소 화해할 수 있었다. 일본기독교단 여성 목사와 결혼한 뒤, 과거 천황을 위해 충성을 맹세했던 일본기독교단에서 복음 전도 사역을 하는 나의 삶 자체가 그 화해의 한 열매이다.

박유하 교수에게 무리하게 바랄 수는 없겠지만, 그가 쓴 책에선 그러한 성서적 관점이 결핍돼 있는 것 같아 기독자의 입장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착취하던 에굽...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명령도 끝까지 거부하던 바로 왕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에는, 노예적 삶이 주는 무게감은 너무 컸다. 결국 하나님은 누구의 마음을 더 긍휼히 여기며 헤아리셨던가? 이사야 선지자가 대언했던 아래의 하느님의 뜻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야훼는 약한 자를 돌보는 하느님이시란 걸...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수줍어하지 마라. 다시는 창피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너는 처녀 때의 수치를 잊을 것이요 과부 때의 창피를 결코 되씹지 아니하리라. / 너의 창조주께서 너의 남편이 아니시냐? 그 이름 만군의 야훼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의 구세주 아니시냐? 그분은 전 세계의 하느님이라 불리신다. /그렇다, 버림받은 여자, 가슴에 상처를 입은 너를 야훼께서 부르신다. "조강지처는 버림받지 않는다."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잠깐 너를 내버려두었었지만, 큰 자비를 기울여 너를 다시 거두어들이리라. /내가 분이 복받쳐 내 얼굴을 잠깐 너에게서 숨겼었지만, 이제 영원한 사랑으로 너에게 자비를 베풀리라." 너를 건지시는 야훼의 말씀이시다." (이사야 54:4-8, 공동번역)

박유하 교수는 책의 말미에 '친일파'라는 공격을 각오하고 이 책을 썼음을 명시했다.

"정대협의 '운동'을 거대한 '국가적 소모'라고 까지 느끼는 내 감성을 그저 '친일파'로 간주하려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친일파'라는 ...  개인에 대한 공격 자체를 목표로 하는 세월이 이어지는 한 제국과 냉전으로부터의 '해방'은 오지 않는다."(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320쪽.)

물론 감정적이고 획일적인 비난이 옳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제국과 냉전으로부터의 해방'이 오지 않는 이유가 '친일파'를 외치는 격앙된 목소리들에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자기를 비움으로서 십자가 길을 먼저 가셨던 케노시스(kenosis)의 하나님을 본받아, 일본군 위안부를 탄생시킨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참회와 자기 비움이 선행되어야 제국과 냉전으로부터의 해방이 오는 것 아닐까... '제국'의 문제와 '냉전'(남북분단)의 문제에서 나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는 무책임한 일본 정부의 태도가 지속되는 한 어찌 해방을 기대할 수 있겠나? 그런 의미에서 『화해를 위하여』 그 다음 책의 제목은 『일본의 위안부』라고 지었어야 한다고 본다. 무엇이 진정 한일의 화해를 가로 막고 있는지를 그 제목 하에 다시 적어 내려갔어야 했다. (西宮東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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