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칼럼]박원순 사후, 이제 피해자에 귀 기울일 때 : 네이버 뉴스
[김민아 칼럼]박원순 사후, 이제 피해자에 귀 기울일 때
신문A26면 TOP 기사입력 2020.07.28. 오전 3:00 기사원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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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이후 많은 명망가들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피해자 A씨 측 기자회견을 보다 “살의”를 느꼈다는 서울시 출연기관장, “고인은 죽음으로 ‘미투 처리 전범’을 실천했다”는 여당 의원, 고인을 가해자라 하면 “사자(死者) 명예훼손”이 된다는 또 다른 여당 의원, “고인 같은 사람은 100조원이 있어도 복원할 수 없다”는 진보 성향 사회학자까지. 그들이 내는 ‘소음’에 귀 기울일 생각은 없다. 지금 그들은 고인을 애도하고 있지 않다. 고인의 부재로 확인된 자신들의 ‘추락’에 패닉 상태일 뿐이다. ‘아무 말 대잔치’가 계속될수록 추락은 더 선명해질 것이다.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대신 나는 ‘피해자의 말’에 집중하려 한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7월13일 A씨 1차 입장문)
“문제의 인식까지도 오래 걸렸고, 문제 제기까지는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린 사건입니다. 피해자로서 보호되고 싶었고, 수사 과정에서 법정에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기다리겠습니다. 그 어떠한 편견도 없이 적법하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과정이 밝혀지기를.”(7월22일 A씨 2차 입장문)
세상은 A씨에게 물었다. ①왜 이제야 고소했나 ②의도가 뭔가 ③원하는 게 뭔가.
두 차례 입장문에 모든 답이 들어 있다. ①문제의 인식과 문제 제기까지 시간이 걸렸다(A씨는 4년간 20명에게 피해를 호소했으나 외면당했다고 밝혔다) ②법의 보호 속에 용서하고, 사과받고 싶었다 ③일상과 안전을 회복하고 싶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 때도 세상은 똑같이 물었다. 피해자 B씨는 답했다. “사건 직후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신상털이와 가십성 보도를 예상치 못했던 바 아닙니다.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 전 시장의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잘못한 사람은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유 때문입니다.”(4월23일 입장문)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김지은씨도 이야기했다. “살아 있는 권력 앞에 ‘진실’을 말하기까지 오랜 시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안희정은 차기 대선주자였고 미래 권력이었습니다. 미투는 가늠할 수 없는 힘과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죽게 되더라도 그 소굴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힘센 권력자라도 자신이 가진 위력으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2019년 1월9일 안희정 항소심 최후진술서)
미국 폭스뉴스에서 벌어진 권력형 성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에서 로저 에일스 회장의 성폭력을 폭로한 첫 내부고발자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소송으로 뭘 원하느냐’는 변호사 질문에 답한다. “그런 행동(성폭력)을 멈추게 하는 거요. 누군가는 말해야 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늘 단호하게 말해왔다. 왜 공론화를 망설였는지, 그럼에도 결국 고소·고발을 선택한 이유는 뭔지, 사법 절차를 통해 무엇을 바라는지. 가해자와 그를 옹호하는 세력이 듣지 않았을 따름이다.
대중의 인식은 달라지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15일 공개한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64.4%가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해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18~29세(76.1%)와 30대(70.8%)에선 압도적이었다. 여성(64.9%)과 남성(63.9%)의 차이도 거의 없었다.
사법부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8년 “법원이 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판례를 수립했다. 지난해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상고심에선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인정했다. 도도한 변화의 흐름 앞에 소음은 무력하다.
이제 ‘피해자의 말’로 돌아갈 때다. 제3자들은 입을 닫으라. 박 전 시장은 부천서 성고문 피해자(권인숙), 최초의 성희롱 피해자(서울대 조교)의 법률대리인이었다. 피해자를 향한 공격을 고인에 대한 애도로 ‘포장’하지 말라. 당신은 당신의 발밑이 흔들리는 데 당황하고 있을 뿐이다. 발밑이 무너진다면 당신 책임이지 피해자 탓이 아니다.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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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을 보면서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의 도덕적 토대가 얼마나 허약하고 허구인지 새삼 확인하면서 놀랐고 또 실망했다. 다행이라면 진짜 진보와 가짜 진보가 좀 가려지게 됐다는 것. 모든종류의 성추행, 성폭력은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인간의 양심에 반하는 짓이다.양심을 뭉개도 되는 이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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