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9

황대권 (우파) 지식인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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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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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지식인의 고뇌

유유상종이라고 우리는 늘 비슷한 관념과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교류하며 산다. 페북 친구를 보더라도 나랑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주로 친구로 받아들이고 또 친구를 청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어려워진다.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은 A가 당연히 옳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어쩌다가 그 반대되는 견해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몹시 당황스럽다. 대표적으로 촛불 시민이 태극기 부대 노인을 만나면 과연 소통이 될까? 십중팔구 삿대질하며 욕하다가 그냥 헤어질 것이다. 서로 “저런 놈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저주를 퍼부으면서.
근래 전시회 때문에 서울을 오가며 옛친구들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그 친구들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세상을 산다는 것을 잘 알기에 깊은 얘기를 나누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친구들이 깊은 우울증을 토로하는 바람에 시간을 들여 많은 얘기를 들어 보았다. 
그들은 ‘좌빨’ 정권인 문재인 정권 아래서 사는 것이 너무 역겹고 힘들다고 토로한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않고 데모만 하던 건달들이 선동질로 정권을 잡고 국정을 농단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같은 엘리트가 그런 건달들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 견딜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표면적인 우울증이고 더 깊이는 한국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불관용, 소통부재, 공격성과 폭력성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예컨대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교수 같은 분은 고발까지 당하여 재판정에 섰고, 책의 일부를 수정하여 재출간해야만 했다. 대중들은 ‘친일파’라고 비난하지만, 박교수의 논조에 동의하는 우파 지식인들의 생각을 깊이 들여다보면 경청할만한 측면이 있다. 일본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픈 의지가 분명 있었으나 그들이 가진 정치적 한계 때문에 민관합동기금을 만든 건데, 한국정부와 좌파지식인들은 그 지점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디테일을 무시하고 좌파들은 선동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본다. 

일본정부가 전적으로 떠맡지 못하는 정치적 한계란 ‘일본 국민회의’같은 극우집단의 반발을 말한다. 좌파는 한계 그 자체를 제국주의적 본질로 보고 전면 거부를 하는데 반해, 우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이지만 일본 정부의 진심을 잘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혐한 정서는 한국 좌파의 무조건적인 반일주의에 기인한다고 믿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의 사려깊은 분별력이 북한이나 중국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찐파시즘 정권이었던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을 표시한 바가 없다(우파들도 같은 논법을 쓴다. 좌파가 비판하면, 그 잣대를 왜 북한에는 들이대질 못하냐고 힐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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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선동을 떠난 정치는 상상하기 힘들다. 권력자가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있어 선동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해방직후 찬탁반탁 해프닝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찬탁이 옳지만, 국민정서가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시기였다. 우파는 이를 교묘히 이용하여 ‘거짓 보도’를 통해 대중을 단숨에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지식인들이 아무리 정교한 분석과 판단을 하더라도 대중의 정서를 이용한 선동정치를 당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우파지식인들은 '적폐청산과 반일을 무기로 선동정치를 하는 좌파정권'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우파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빼앗긴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다. 문제는 그 공부가 자신의 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좌파를 공격하기 위해서라는 점. 공부를 많이 할수록 사회가 소통불능해지는 이상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우파지식인과 언론들은 하자 많은 정치초년생 윤석렬을 열심히 밀고 있는데, 이는 어떻게해서건 ‘좌파 파시스트 정권’을 교체하고자 하는 집요한 몸부림이다. 지금 우파의 심정은 너무도 절실하다.

지금까지 사용한 좌파 우파는 정확한 정치학적 용어가 아니라 그저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한 것이다. 한국에서의 좌우 구별은 계급적 관점이 아니라 일본과 미국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또는 북한과 중국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양쪽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배려심과 호의를 가지고 말해주길 바라고, 싫어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적대심을 표시해주길 바란다. 스스로 지식인임을 자처하면서도 전혀 객관성이나 합리성이 없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70년이나 되었지만 한국사회엔 중간지대가 없다. 남과 북 사이에는 DMZ이라도 있지만 우리 사회엔 그 조차도 없다. 우파지식인의 고뇌는 좌파지식인의 그것과 데칼코마니이다. 내가 볼 때 이 양극화는 어떤 방법으로도 해소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결국은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낼”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소린데, 이 정도면 충분히 시간이 흐르지 않았나 싶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혁명과 기후위기가 좌우 모두를 쓸어버릴 것 같다.

7 comments
Lee Tonghyun
맞습니다
 · Reply · 3 h
김금남
정말 답답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 Reply · 3 h
최승필
페북에서 만나기 어려운, 정말 공감되면서 통찰을 담아낸, 또한 그러기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는 그런 글입니다..
(저는 그래서(?) 개인적으로 페북 친구의 정치적 취향(?)의 다양성을 의도적으로 확보하려고 노력합니다..작금의 IT기반 플랫폼의 알고리즘들이 사람을 더욱 편향되게 몰아갈수 밖에 없는것도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데 한몫 하는것 같습니다..ㅠㅠ)
 · Reply · 36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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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우파) 지식인의 고뇌

[예컨대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교수 같은 분은 고발까지 당하여 재판정에 섰고, 책의 일부를 수정하여 재출간해야만 했다. 대중들은 ‘친일파’라고 비난하지만, 박교수의 논조에 동의하는 우파 지식인들의 생각을 깊이 들여다보면 경청할만한 측면이 있다. 일본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픈 의지가 분명 있었으나 그들이 가진 정치적 한계 때문에 민관합동기금을 만든 건데, 한국정부와 좌파지식인들은 그 지점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디테일을 무시하고 좌파들은 선동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본다. 

일본정부가 전적으로 떠맡지 못하는 정치적 한계란 ‘일본 국민회의’같은 극우집단의 반발을 말한다. 좌파는 한계 그 자체를 제국주의적 본질로 보고 전면 거부를 하는데 반해, 우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이지만 일본 정부의 진심을 잘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혐한 정서는 한국 좌파의 무조건적인 반일주의에 기인한다고 믿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의 사려깊은 분별력이 북한이나 중국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찐파시즘 정권이었던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을 표시한 바가 없다(우파들도 같은 논법을 쓴다. 좌파가 비판하면, 그 잣대를 왜 북한에는 들이대질 못하냐고 힐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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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사용한 좌파 우파는 정확한 정치학적 용어가 아니라 그저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한 것이다. 한국에서의 좌우 구별은 계급적 관점이 아니라 일본과 미국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또는 북한과 중국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양쪽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배려심과 호의를 가지고 말해주길 바라고, 싫어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적대심을 표시해주길 바란다. 스스로 지식인임을 자처하면서도 전혀 객관성이나 합리성이 없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70년이나 되었지만 한국사회엔 중간지대가 없다. 남과 북 사이에는 DMZ이라도 있지만 우리 사회엔 그 조차도 없다. 우파지식인의 고뇌는 좌파지식인의 그것과 데칼코마니이다. 내가 볼 때 이 양극화는 어떤 방법으로도 해소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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